당장 사라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청년들

저와 동료들은 전라남도 목포에서 ‘괜찮아마을’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마을을 만들고 있는 우리도 그리 괜찮은 청년들은 아니었나 봅니다.

서울에서의 삶. 우스갯소리로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그 사회에서, 우리가 숨을 쉬는 것도 매우 가뿐 일이었거든요. 그 숨을 쉬기 위해 우리는 하루의 거의 모든 일상을 일에 바쳐야 했습니다. 그 일자리마저 좀처럼 구하기가 어려워, 갈수록 우리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만 갔고요. 끔찍하게도 버티는 삶 속에서, 우리는 힘이 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월 주거비 60만 원, 식비 70만 원, 통신비와 각종 공과금 20만 원, 교통비 15만 원. 현대사회에서 청년으로 우리가 응당 누려야 할 최소한의 지출이 165만 원을 넘어갑니다. 숨쉬기 위해 우리는 하루 8시간 노동을 해야 하지만, 수중에는 약 14만 원이 남네요.1) 입고 싶은 옷을 사 입거나, 반가운 친구를 만나 맥주 한 잔 나누거나, 지친 마음 달랠 영화 한 편을 보는 것까지 바라지 않아도, 밀린 학자금 대출을 갚고 부모님에게 용돈을 보내드리기 위해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추가 노동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그것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우리가 내내 결핍을 느끼는 이유는 오롯이 자신에게 바쳐야 할 저녁 시간마저 잊고, 타인이 바라는 일을 쳇바퀴처럼 반복해야 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 아닐까요? 어쩌면 일상이 없는 인생에서 도전과 창의는 사치가 아니었을까요?

어릴 때 제가 집 밖으로 놀러 나가면서 “엄마 놀이터 다녀올게요.”라고 말하면 당신은 항상 “차 조심해라”라고 말씀하셨죠. 성인이 되어 객지에 나와 있는 다 큰 자녀에게도 당신은 항상 “운전 조심해라”라는 말씀을 끊어지는 수화기 너머 꾹꾹 눌러 담으십니다. 그런데 어쩌죠? 어머니. 지금 교통사고로 죽는 친구들보다 자살로 죽는 친구들이 5배가 많다고 해요.2) 우리 친구들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요? 비단 그들의 잘못만은 아닐 것입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청년이지만, 사회에 나와 최대의 실업률 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밟고 올라가야 하는 사회거든요. 그렇게 친구를 외면하고 오른 부끄러운 정상에는 누군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고, 저 멀리 더 높은 산에는 친구들과 서로 끈을 묶고 올라가야하기에 우리는 좌절합니다. 저는 이미 이곳에 친구들을 밟고 올라왔거든요. 무언가 잘못 꿰진 단추 같은 사회에서, 우리는 당장 사라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괜찮아. 잘살고 있어.” 누군가의 괜찮으냐는 질문에 마치 자동응답처럼 대답은 해왔지만, 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정말 잘살고 있는 걸까요? 당신은 괜찮으신가요? 걱정과 불안에 쫓기며 밤을 새우고, 끼니를 놓치다 속을 버리는 것은 아닌가요? 아픈 몸을 어르고 달래며 밝아오는 아침을 흐릿한 눈으로 맞았던 것은 아닌가요?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제는 무엇도 이룰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드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괜찮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당장 사라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괜찮아마을’ 1기 청년들 ‘괜찮아마을’ 1기 청년들

청년의 마음을 ‘괜찮게’ 만드는 마을

그런데 그렇게 괜찮지 않은 청년들이 모여 덜컥 일을 벌이고 말았네요. 이제는 우리도 괜찮아지고 싶다며, 청년들의 마을을 만드는 실험을 합니다. 연고 없는 지역에 내려와, 오랫동안 비어있던 빈집의 먼지를 걷어냈고요. 따뜻한 밥을 함께 나누며 ‘따로 또 같이’ 모여 사는 실험입니다. 나아가 조금 더 괜찮고 싶어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지역의 빈집을 주제로 상상하고 새로운 삶을 연습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휴식을 알게 되고 일과 일상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동체를 만듭니다.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응원하며 등 떠밀어주게 됩니다. 그러자 고마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72명의 청년이 입주해 각각 6주간 지내며 45개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냈고요. 지금은 30여 명의 친구들이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었네요. 그들은 같이 모여 살고 스스로 빈집에 들어가 공유 주거와 공유식당 그리고 공유가게를 만들어냅니다. 또 잡지를 만들어 지역의 섬을 발견하고, 축제를 열어 전국의 청년들을 이곳에 불러 모으기도 합니다. 영화를 만들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장편 경쟁에 선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채식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 채식 식당을 열었고,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맡아 운영하기도 합니다. 연간 수천 명이 그곳을 보기 위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8채의 집, 2,826m²의 빈 공간이 활성화되었고요. BBC, 런던타임즈, Quartz, Asian Boss, 도쿄 릿쿄대, 홍콩 일간지 남화조보 등의 외신에 소개되기도 합니다.

괜찮아마을 프로그램 중 하나인 ‘공동체 수업’(좌)과 ‘괜찮은 식탁’(우) 모습  괜찮아마을 프로그램 중 하나인 ‘공동체 수업’(좌)과 ‘괜찮은 식탁’(우) 모습
괜찮아마을 프로그램 중 하나인 ‘공동체 수업’(좌)과 ‘괜찮은 식탁’(우) 모습

놀라운 것은 이곳에 모인 청년들의 일상 변화입니다. 어느 하루를 돌아보건대, 일을 마친 주민들이 모여 시장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행복한 저녁 식사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몇 명은 뜨개질 수업에 참여하고, 또 몇 명은 사회와 환경에 관한 시사 토론을 합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작사와 작곡 수업이 있었습니다. 서울 어느 번화가에서의 삶 못지않은 이곳의 하루하루는 지루할 날이 없습니다. 주민들 스스로 부단히도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점차 이런 기회가 늘어나고, 우리는 이곳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더욱 중요하게 여길 것입니다. 어쩌면 노동의 시간을 줄여 일을 적게 하되, 대신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마을이 될 것입니다. 공동 주거와 공동 식사로 이곳에서 ‘숨 쉬는’ 비용이 가히 혁신적으로 줄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지역의 빈집을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빈집과 공유가 이곳의 전부는 아닙니다. 바로 공동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라고 힘들지 않았을까요. 58년 개띠. 베이비부머의 정점에 태어난 당신 역시 살면서 많은 경쟁과 실패 속에서 좌절할 일이 없었을까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당신은 10시간 완행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갔습니다. 이미 도착했을 때는 서산 너머 해가 뉘엿뉘엿 지고, 농사를 마친 아저씨들이 서로 반겨주는 그런 고향이요. 초가집 막내아들이 왔다는 동네 친구들의 부름에, 할머니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당신을 반겨주었죠. 된장찌개에 고봉밥 한 그릇 먹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잠이 들던 찰나, 이내 새벽녘 닭 울음소리에 깨면서 당신은 이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지금도 회사에서 잘리거나, 그만두면, 고향에 돌아가 농사짓겠다던 당신의 말에는 항상 향수가 뚝뚝 묻어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아파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아파트는 이미 재건축을 하여, 그곳엔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졌고요. 그렇다면 우리의 고향은 어디일까요? 우리는 힘들고 지쳤을 때, 회사에서 잘리고 목소리 내야 할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하릴없이 버텨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돌아갈 고향이 없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공동체

우리는 지금 고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동체. 그것 하나만으로도 괜찮아마을이 만들어져야 할 이유가 됩니다. 이곳은 그렇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당당할 수 있었던 당신의 믿는 구석이 우리에게도 필요하거든요. 사회에서 상처받고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가는 그 어떤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은 그만 살아야 할 이유와 같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 고향을 만듭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갈 곳이 있다고 말하며, 그러니 더 살아보라고 말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세상에 더 많은 괜찮아마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즉 많은 고향과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괜찮아마을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세상에 공개하고, 수많은 방문과 초청에도 매번 진심을 다 하는 이유입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열정밖에 없던 청년들에게 공간과 기회를 제공해준 사회에 보답하기 위해, 쌓은 경험과 지식을 모두 공유합니다. 설령 우리가 가진 게 그것밖에 없더라도 말이죠. 사회적으로는 우리가 한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고, 경험이라는 자본을 축적하여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그럼에도 최근, 이 기획이 어떤 사전 접촉이나 학습 없이 도용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가장 마음 아팠던 부분은 기획안의 도용 사실보다, 정말 어렵고 힘들게 축적된 경험을 이어가지 못하는 낮은 사회적 자본의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그 경험은 많은 청년들이 눈물 흘려가며 쌓은 과오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실패의 경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개선사항이나 발전하려는 노력 없이 똑같은 사회적 비용을 중복으로 지불하며 진행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런 현실에 아픔을 느꼈고 다시는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불이익을 감수하며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다행히도 많은 분이 이 사실에 함께 분노해주시고, 공감해주셨네요. 예상치 못한 사회적 지지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획자들이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지 못했으며, 또 현실에서 사회적 자본 축적의 한계를 느끼며 아쉬워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더욱 우리가 꿈꾸는 사회를 반드시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느끼게 되는 일이었죠.

그렇기에 세상에 더 많은 고향과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종국에는 이 세상에 더는 괜찮아마을이 필요가 없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회 어디에서도 서로 괜찮으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될테니까요. 그런 사회에서 우리 청년들은 더 이상 어제에 쫓기지 않고, 내일에 끌려가지 않는 그런 오늘을 살면 좋겠네요. 그러면 그들은 태어나면서 선택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갖지 않으며, 대신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아는 사회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개인이 가진 가치는 지키면서, 사회적 성취는 함께 이루는 사회. 서로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사회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타인과의 경쟁보다, 서로 등 떠밀어주고 손잡아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서로가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저녁 식사 밥상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는 이제 당장 사라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이 아니라, 당장 살아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고 싶습니다.

1) 2020년 최저임금 월 1,795,310원 기준, 주 소정근로 40시간, 유급 주휴 8시간 포함.
2) 30대 사망원인 24.6% 자살, 4.8% 운수사고, 통계청, 2017년

  • 홍동우
  • 필자소개

    홍동우는 서울 최초의 공유스쿠터 사업을 시작했다가 이후 전국일주 여행사 ‘익스퍼루트’를 만들었다. 현재는 목포 바닷가 마을에서 청년들의 공동체 ‘괜찮아마을’에 거주하며 ㈜공장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스무살에 시작한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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