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의 등장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사회 각 분야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예술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요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보다도 예술 분야가 빅데이터의 등장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한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율주행은 단 1%의 오류로 인해 생명이 오가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지만, 예술에 서는 기존의 진부함을 깨트리는 1%의 가능성이 새로운 예술적 시도의 씨앗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소개하고 이러한 기술이 예술 분야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흔히 사람과 비슷한 어떤 인격적인 존재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인공지능은 주어진 목표를 잘 달성할 수 있도록 환경 정보를 인식하고 적절한 행동을 선택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자동차마다 달려 있는 내비게이션도 인공지능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전 세계 대학에서 널리 사용하는 인공지능 분야 교과서인 러셀과 노빅의 『인공지능: 현대적 접근방식』은 길 찾기 문제를 제일 첫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전통적 인공지능이 길 찾기와 같이 탐색과 추론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의 인공지능은 빅데이터에서 패턴 찾기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딥러닝(deep learning)이 패턴 인식에 특화된 인공지능이다. 그 원리를 좀 단순하게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먼저 입력을 둘 중에 하나로 분류하여 출력하는 아주 단순한 처리 과정이 있다. 이 처리 과정에는 몇 가지 수치가 있어서, 그 수치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출력이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이 단순 처리 과정들을 여러 개 겹쳐 놓으면 아주 복잡한 처리도 할 수 있게 된다. 아래 그림은 이미지를 처리하는 딥러닝 모형의 한 종류인데, 사각형 하나하나가 각각의 처리 과정에 해당한다. 딥러닝의 ‘딥(deep)’, 즉 깊다는 의미는 이렇게 단순한 처리 과정을 매우 많이 겹쳐놓은 데서 나온 것이다.

이미지를 처리하는 딥러닝 모형의 한 종류인 ‘GoogLeNet’
출처: Szegedy et al. (2014). Going deeper with convolutions. arxiv:1409.4842. 이미지를 처리하는 딥러닝 모형의 한 종류인 ‘GoogLeNet’
출처: Szegedy et al. (2014). Going deeper with convolutions. arxiv:1409.4842.

단순한 처리 과정을 여러 단계로 겹쳐 놓으면, 각 단계마다 조율해야 하는 수치들도 그만큼 생기게 된다. 이 수치들을 조율하는 것이 러닝(learning), 즉 학습에 해당한다. 이 ‘학습’은 대략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딥러닝으로 사진을 강아지와 고양이로 분류하는 작업을 가정해보자. 먼저 수천만 장의 강아지 사진과 고양이 사진을 모은다. 그리고 사진을 하나씩 입력하면서 딥러닝의 처리 과정을 거쳐 사진을 강아지와 고양이로 분류한다. 이렇게 분류된 결과를 정답과 비교하면서 수만, 수억 개의 수치를 조금씩 조율한다. 이 과정을 끈질기게 반복하다 보면 강아지와 고양이 사진을 정확하게 분류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조율해야 할 수치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사진도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딥러닝과 빅데이터는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추천과 마케팅


시청자가 어떤 영화나 동영상을 좋아할지를 예측하는 데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시청자의 기존 시청 이력과 새로운 동영상 정보를 입력하면 시청자가 그 동영상을 좋아할지, 아닐지를 예측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이나 영화를 볼 수 있는 플랫폼인 유튜브나 넷플릭스는 시청자들에게 콘텐츠를 추천하는 데 이러한 원리를 사용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추천할 때는 시청자의 연령이나 성별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마케팅에서 고객을 연령과 성별을 기반으로 나누는 것을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다.
대량의 데이터로 고객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천할 수 있다면, 반대로 고객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넷플릭스가 제작하여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는 시청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용과 감독, 주연 배우를 결정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넷플릭스가 제작한 모든 영화나 드라마가 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여러 편의 영화 중에 몇 가지를 추천하는 것에 비해, 제작은 좀 더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는 어마어마한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있고, 고객도 수억 명에 달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예술 창작자나 제작자 입장에서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 중의 일부는 소규모의 창작자들도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유튜브에 채널을 만들어보면 유튜브의 추천 기술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청자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자체 홈페이지를 운영하더라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구글이나 네이버를 통해 광고하면,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검색하다가 홈페이지에 방문하는지 알려준다. 광고 효과 외에도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구글 애널리틱스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면 다른 인터넷 서비스들과 연계하여 홈페이지에 유입된 고객들의 취향에 대해 세세한 정보를 보여준다. 유튜브급은 아니라도 콘텐츠 추천 솔루션들도 다양하게 나와 있어서 홈페이지에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

창작에 활용되는 인공지능


예술 창작 자체에도 인공지능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제너레이티드 포토스(generated.photos)’ 와 같은 사이트에는 아래 그림과 같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올라와 있다. 이 사진들은 인공지능이 그린 것이다. 여기에는 ‘적대적 생성’이라는 기법이 사용된다. 먼저 두 개의 인공지능을 만든다. 하나는 ‘화가’, 다른 하나는 ‘평론가’라고 부르기로 하자. ‘화가’는 무작위로 사진 같은 이미지를 만드는 인공지능이다. ‘평론가’는 실제 사람의 얼굴 사진과 ‘화가’가 만든 사진을 구별하도록 학습된 인공지능이다. ‘화가’는 이 ‘평론가’를 속이도록 학습된다. 이 둘을 번갈아가며 학습시키다 보면 결국에는 ‘화가’는 실제 사람의 얼굴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가상의 사람 얼굴을 생성할 수 있게 된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제너레이티드 포토스’가 만든 사람 얼굴들 인공지능을 이용한 ‘제너레이티드 포토스’가 만든 사람 얼굴들

이러한 인공지능 기법으로 사람의 얼굴만이 아니라 다양한 자연물과 인공물의 이미지도 만들어낼 수 있다. 모든 이미지를 인공지능이 만들 필요도 없다. 최근에는 사진이나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에 여러 가지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아래 그림은 엔비디아(NVIDIA)의 ‘GauGAN’이라는 인공지능 아트 툴 소프트웨어의 사용 화면이다. 왼쪽의 사람이 그린 스케치를 토대로 인공지능이 그려낸 화면이 오른쪽에 나타난다. 이처럼 사람의 창작을 인공지능이 보조하여 창작을 더 쉽고 빠르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인공지능 아트 툴 ‘GauGAN’의 사용화면 인공지능 아트 툴 ‘GauGAN’의 사용화면

음악이나 글쓰기에도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기술의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음악의 경우 음과 음이, 문장은 단어와 단어가 순서대로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순서에는 어느 정도 규칙성이 있다. 외국어 시험에 흔히 나오는 “빈칸에 들어갈 표현으로 적절한 것은?”과 같은 문제를 풀 수 있는 이유로 앞뒤의 단어들을 보면 빈칸에 들어갈 단어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빅데이터에서 이런 문장들을 무수히 모으면 인공지능으로도 빈칸 채우기 같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서라면 오타 교정 정도지만, 아예 글 전체를 인공지능이 쓰게 할 수도 있다. 글의 끝에 빈칸을 붙여두고 인공지능이 채우게 한 다음, 그 뒤에 다시 빈칸을 붙이는 것을 반복하면 글을 끝없이 이어서 쓰게 된다. 미국의 오픈AI(OpenAI)가 개발한 ‘GPT2’라는 인공지능은 인터넷에서 400억 자 분량의 텍스트를 학습해, 사용자가 제시한 문장 다음에 올 표현들을 생성할 수 있다. 이런 기법만으로 완전한 이야기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리라도 작가에게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간단한 배경 음악 정도를 만들어낼 수는 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 ‘GPT2’가 문장 표현을 생성하는 화면 인공지능 프로그램 ‘GPT2’가 문장 표현을 생성하는 화면

인공지능을 창작에 이용하는 것은 다른 기술들보다도 더 빠르게 현실화될 것이다. 추천이나 마케팅 등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면 고객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창작에 도움을 주는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로 미리 학습된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거나 다운로드받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예로든 얼굴 사진, 풍경, 문장의 생성 프로그램 역시 모두 무료로 체험해볼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기회가 되기도 하고 위기가 되기도 한다. 버글스(Buggles)의 노래 제목 ‘Video killed the radio star’처럼 새로운 기술은 예술에서도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유튜브 등은 예술계에도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도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와이어드』지의 편집장이었던 케빈 켈리는 2008년에 쓴 글에서 창작자로 성공하기가 더 쉬워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수의 열광적인 팬들만 있다면 창작자가 충분히 창작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데,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 팬들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그런 창작자를 도와줄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 유재명
  • 필자소개

    유재명은 서울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인지과학을 전공하여 인공신경망과 강화학습을 이용한 이야기 생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기업인 ㈜퀀트랩의 대표와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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