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지난 2월 초 아트 바젤 홍콩의 아트페어 취소 소식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술계는 코로나19를 지역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인식했고, 누구도 온라인 뷰잉룸이라는 낯선 플랫폼이, 아름다운 홍콩 섬의 빅토리아 하버를 배경으로 열리는 현대미술 축제와도 같은 아트 바젤을 대체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계절이 채 두 번도 바뀌기 전에, 국제적인 미술 행사뿐 아니라 지역의 크고 작은 전시까지 줄지어 온라인 영역에 안착하거나 필사적으로 진출하려는 모습을 목격하며, 부산비엔날레 김성연 총감독이 언급했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의 여정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임박했음을 실감한다.

미술관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온라인으로 향하게

올해 5월에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대표적인 공연 행사 ‘서울아트마켓(PAMS)’이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더 늦기 전에 과감한 결단을 했다고 했다. 그 역시 지금 보니 과감이라기보다 당연한 조치였는데, 바로 옆 사무실에 자리 잡은 시각예술유통팀 ‘2020 미술주간’ 사무국은 당시만 해도 의연했다. 미술주간 6년 역사상 처음으로 행사가 전국 7개 권역으로 확대되고 규모가 작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커진 올해는 사업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터였다. 온라인으로의 전환은 쉽사리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8월 중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이 발표된 이후에는 현장 행사들을 대체할 온라인 프로그램을 시급히 모색해야 했다. 사실 온라인만큼 콘텐츠의 무한 확대가 가능한 플랫폼은 찾기 힘들다. 동시에 그만큼 향유자의 집중도가 떨어지기 쉬운 영역이기도 하다. 콘텐츠와 프레젠테이션이 잘 버무려진 기획이 키포인트가 되어야 하는 셈인데, 미술주간 사무국에서는 당시까지 오프라인 행사 기획을 대부분 끝내 놓았던 상황이라 콘텐츠 자체는 심각한 도전 과제가 아니었다. 다만, 기존의 미술 향유 방식에 익숙한 관람자들이 이를 비대면으로 어떻게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할지의 고민이 컸다. 국내 국공립 및 사립미술관, 화랑, 아트페어나 비엔날레,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전시공간들이 이미 새로운 시도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다각도로 관람자를 만나고 있었던 온라인 현장 경험과 공유가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모든 장르의 예술이 그렇듯 미술이 ‘체험’과 ‘체화’의 미학임을 고려한다면, 현장성이 배제된 온라인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미술 경험을 대체할 만할 무언가를 제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를 다른 감각적 경험이나 대중문화 매체로 확장하여서 좀 더 대중 친화적이고 풍부한 내용으로 만들어 보자는 긍정적인 발상에서 ‘집콕으로 즐기는 미술주간’ 코너가 구체적으로 기획되기 시작했다. 기존 오프라인 행사를 방역 지침에 맞는 수준으로 유지함과 동시에 미술주간 참여자들에게 온라인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에 세부 프로그램별로 해당 분야의 전문기술, 경험, 기존 이용자 등을 보유한 외부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어, 콘텐츠와 프레젠테이션 둘 다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고자 했다. ‘당신의 삶이 예술’이라는 올해 미술주간의 주제에 맞게 남녀노소 누구나 일상에서 예술을 쉽고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는 맞춤형 서비스를 내놓고자 한 것이다.

안방에서 경험하는 미술 프로그램들


온라인 VR전시

<온라인 VR전시>는 미술주간 참여 기관 중 선정된 40여 개의 현장 전시를 VR로 보여준다. 전국 권역별로 전시를 안배하여, 코로나19로 미술주간 기간 내에 전국을 유람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집에서 볼 수 있도록 최적화된 전시 관람법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 주요 미술관 및 화랑의 전시를 VR 기술로 구현, 전시 감상에 목마른 관람객에게 대안을 제공해 온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이젤(eazel)’과의 협업으로 본 기획이 성사될 수 있었다. 360도로 촬영된 전시장 전경과 함께 제공되는 고화질 작품 이미지를 통해 방문자들은 가상현실에서도 생생하고 몰입감 있게 전시를 둘러볼 수 있다. 특히 전문 성우가 녹음한 전시 설명과 작품 소개가 포함된 오디오 가이드도 함께 게재하여, 웹 환경에 친근한 젊은 세대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양질의 미술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했다.

미술여행 브이로그

강화된 코로나19 지침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프로그램이 미술여행이었다. 사전에 전국 30개 도시를 방문하여 꼼꼼한 현장 답사를 통해 완성해 놓은 27개의 미술여행 코스는 국공립 미술관 휴관 및 지역 간 이동 자제 방침에 따라 대부분 변경되었으며 버스투어는 전면 취소되기까지 했다. 상심을 극복한 담당자가 내놓은 차선책은 이름도 익숙한 ‘랜선 여행’이었다. 미술을 아직 잘 모르고 미술관을 낯설어 하는 일반인들이 거부감 없이, 쉽게, 소풍을 가듯 당일치기 미술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아주 일상적인 어조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스토리보드를 꾸렸다. 이에 따라, 서울의 한적한 북촌 거리 이곳저곳에 숨겨진 소규모 전시 공간을 방문한 브이로그 연기자는 그다음 회차에서 친구와 함께 경기 지역을 탐험하고 이후에는 가족과 함께 강원 지역을 여행하는 등 미술 감상을 이어간다. 다행히 미술여행 코스에 참가하는 대부분의 미술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해 준 덕분에 일찍이 촬영을 시작하여 미술주간 개막과 함께 홈페이지를 통해 브이로그 영상을 제공할 수 있었다. 서울, 경기, 강원, 담양, 대전, 부산에서 촬영한 총 6편의 브이로그가 순차적으로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되고 있다.

미술여행 브이로그 ‘#1 과거와 현재의 공존-서울 안국동편’
출처: 2020 미술주간 유튜브 채널

상상하는 미술관 ASMR

올해는 행사의 규모뿐 아니라 미술 향유층을 확대하기 위해 타 매체를 적극적으로 섭외하여 미술주간 프로그램에 포함하고자 하였는데, 이와 같은 노력이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려 시기적절한 콘텐츠로 결실을 맺은 가장 좋은 사례 중 하나가 본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별 미술관 전시를 소개하는데 관심이 있었던 ‘EBS 라디오 이청아의 뮤지엄 에이로그’ 측과, 귀로 감상하는 전시 콘텐츠를 모색해 오던 미술주간이 협업하여 미술 전시의 ASMR이라는, 새로운 감각을 활용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술주간 참여 기관 중 선정된 5개를 포함, 총 10개 내외의 전시를 실감 나는 해설과 감각적인 사운드를 통해 소개함으로써 청취자들은 실제 미술관을 거닐고 있는 듯한 상상을 하며 전시를 경험할 수 있다.

상상하는 미술관 ASMR ‘이청아의 뮤지엄 에이로그’ #25 속아도 꿈결(불완전의 에너지展, 드영미술관)
출처: 이청아의 뮤지엄에이로그

책으로 만나는 미술, 영화로 만나는 미술

미술주간은 올해 초부터 일반인이 미술에 관심을 키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로 책과 영화를 선택, 국내 유명 영화관과 서점을 대상으로 파트너를 물색해 왔다. 미술 분야는 효과적으로 작가와 전시를 홍보하기 위해 대중이 사랑하는 매스미디어가 필요하고, 영화관과 서점 등의 유통 업체는 예술이나 인문학 같은 특정 문화 콘텐츠 서비스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미술주간 담당자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복합문화공간 ‘아크앤북’과 영화 주간지사 ‘씨네21’과의 협업이 체결되는 ‘영업 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

아크앤북은 4가지 주제를 가지고 총 24점의 미술 서적을 소개한다. 미술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스스로의 미술관을 만들고 미술과 교감하는 방법, 일상에서 예술을 즐기는 방법, 아트 컬렉터에 도전하는 방법, 그리고 올해 미술주간 특화 장르인 판화를 이해하는 방법 등이 국내외 저자를 통해 다채롭게 소개된다. ‘씨네21’이 제공하는 시네마 콘텐츠는 현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주요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다. 미술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폴락, 워홀, 보테로나 호크니뿐 아니라, 레보비츠, 마이어, 바르다, 아브라모비치 등 전공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주요 여성 현대작가들을 다룬 영화를 심층적으로 소개하는 기획 기사를 제공한다.

미술인도, 대중도 새로운 경험을 그리다

온라인 뷰잉룸의 등장이 그야말로 뉴스가 되던 올해 초와 다르게, VR이나 AR과 같은 기존의 IT 기술은 이제 미술인에게 낯익은 전시의 도구가 되었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을 온라인에서 현장감 있게 구현해 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이용자들이 실재하는 미술 작품을 어떻게 경험하도록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도 코로나 시대 미술계의 모습이다. 온라인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분명 있다. 그러나 대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 미술 행사로서 미술주간은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영역으로 조심스럽게, 그리고 유연하게 확장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미술 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미술인들과, 새롭게 미술 콘텐츠에 관심을 기울이고 향유자로 성장할 일반 대중으로부터 ‘올가을 미술주간이 있어 좋았다’는 소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유의미한 행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쉼 없이 수고해 온 미술주간 담당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2020 미술주간
‘미술주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연계 미술 행사다. 2020년 6회째를 맞는 미술주간은 9월 24일에 개막하여 10월 11일까지 개최되며, 전국 300여 개 미술관, 화랑, 미술 행사 등이 참여해 국민이 일상 속에서 미술을 향유하고 친숙하게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당신의 삶이 예술’이라는 주제 아래 일상 속에서 미술의 역할을 돌아보고, 코로나19 시대에 예술이 주는 치유와 위로의 힘에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 맞춰 집에서 안전하고 즐겁게 전국을 유람하며 미술 감상을 할 수 있도록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VR전시, 미술여행 브이로그 등 특화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 김소정
  • 필자소개

    김소정은 학부에서 역사를 공부한 후, 가장 흥미로운 사료이자 살아있는 자료가 되는 미술을 폭넓게 연구하기 위해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를 전공했다. 첨예한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전시 기획자로, 갤러리스트로 활동하다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예술유통팀에서 미술의 힘과 가치와 시장성을 선순환시키는 지원 사업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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