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오늘

한 문화예술교육 활동 현장에 다녀왔다. 낯선 시선을 의식할 게 뻔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불편한 것으로 치자면 평가를 하러 간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평소와 다른, 시선의 개입으로 내가 본 것과 보아야 할 것이 동일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예술과 배움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이 빠진, 체험 프로그램을 보며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순간 회의감이 몰려온다. 언뜻 보기에는 “자, 한번 생각해서 적어봐.”라고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말을 건네는 듯 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나 제시된 주제와 쪼개진 표현의 틀(양식)을 보니, 자신에 관한 이야기, 생각, 느낌마저도 프로그램의 절차로 치부되며 소비된다. 애초 선정되지 말았어야 할 기획이다. 아, 기억이 났다. 심의과정에서 계획된 지원금의 소진과 선정 건수를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뤄두었던 서류를 다시 들춰 보며 마뜩잖은 마음으로 마무리 즈음에 선정한 몇 건 중 하나였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현장 평가는 주로 활동의 모니터링과 컨설팅을 포괄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모니터링만 진행되거나 활동의 참관 없이 컨설팅만 진행되기도 한다. 오늘은 활동의 참관과 이에 관한 대화를 미리 청해뒀던 터라, 활동이 마무리되고 아이들이 돌아간 후 조심스레 둘러앉았다.

예민하고 복잡한, 그러나 의미 있는 사건

평가는 여러 측면에서 정의하고 접근할 수 있겠지만 평가자와 피평가자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매우 예민하고 복잡한 사건이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교차하는 가운데, 여러 차원의 팽팽함이 드러났다 풀어지기를 반복하며 맥락을 만들어간다. 평가가 이뤄지는 시기가 주로 사업의 실행, 활동 이후이다 보니 지나온 것들에 대해 돌아보고 앞으로 해야 할 것의 방향을 다루게 된다. 이러한 의미의 평가는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구분되지 않는다. 즉, 누구나 평을 할 수 있고 다양한 형식과 상황에서 이뤄질 수 있다. 평가를 위해 기획되고 계획된 조건에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평가의 대상이 되는 활동 자체의 사이사이, 과정의 틈바구니에서, 일상적으로도 벌어진다. 오히려 사업이 마무리된 이후보다는 활동의 기획과 논의 과정에서 더욱 진지하고 의미 있는 평가적 활동이 이뤄진다. 하나의 사건, 동일한 사물을 두고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관점과 시선으로 이게 어떻다 저게 어떻다고 이야기를 하곤 하지 않나. 그래서 사건이나 사물은 하나이지만 풍부한 맥락이 생기고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다. 사실은 우리 일상도 그렇다. 다소 이르지만 요즘 같은 연말이 되면 정신없이 지나온 한 해의 아쉬움과 실수를 되돌아보며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12월의 의례다. 내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물음들이 지난 일 년간 얼마나 많았을까. 나 자신이나 활동에 관여된 이들은 함께 서로의 물음과 답을 주고받으며 그때마다 판단하고 선택해왔다. 어느 하루, 한 번,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나와 내 동료들이 만들어 낸 순간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성장했을 것이라 여긴다. 이것이 궁극적인 평가의 과정이고 목적이지 않은가?

공모사업 평가의 획일성

이에 반해 공모사업의 구조 안에서 이뤄지는 평가는 매우 단순하다. 첫째, 여러 사람의 시선이 각기 다른 층위에서 거론되고 교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물론 평가를 대하는 다양한 이유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각자의 입장에서 활동을 해석할 수 있는 접근으로서의 다양한 평가가 메타적으로 시도되는 사례가 거의 없다. 둘째, 평가자와 피평가자를 구별 짓고 위계를 만들어 현장의 문화예술인들이 평가를 통해 성장하고 도약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자기 기획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서로, 되뇌던 이들도 연말이 되면 철저히 피평가자가 되어 어색한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이러한 위계를 의도하는 것은 아마도 평가 결과의 신뢰도를 얻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였을 때 결과의 수용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이미 학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굳이 증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주체들이 평가의 과정에서 호명되는 것은 그 자체로 문화적 가치가 있는 일이다. 평가의 필요성, 의미, 방식 등이 일방적일 때 현장은 평가 결과는 물론 평가 행위 자체에 우호적인 태도를 갖기 어렵다. 셋째, 평가의 목적이 정책의 성과를 산술적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행정적 의도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점도 평가를 형식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단일한 의도의 평가는 매우 위험하다. 문화예술의 가치를 숫자와 규모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견제가 공존하고 있어 소위 분야 전문가들의 말과 글을 통해 각 현장의 이야기를 챙기고자 하지만, 많은 문화예술 현장들은 평가 지표를 신경 쓰며 알게 모르게 눈에 보이는 성과, 그럴듯해 보이는 장면, 손에 쥘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문화예술에 대한 현장의 몸과 태도가 그렇게 내면화되어 가는 것을 보는 것도 이미 익숙하다. 보이지 않지만 평가를 통해 작동되는 감시와 통제의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진단과 읽어냄

척도와 점수를 기반으로 한 평가 양식, 정책의 구체적 성과를 확인하는 도구, 이를 거부하거나 거절할 수 없는 갑을 관계, 위계의 강력함 등 현재 문화예술사업 평가 전반에 걸쳐 있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다른 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성격, 평가기관의 주무 부서나 담당자의 고민과 역량에 따라 문화예술 현장 평가를 통해 알고자 하는 바가, 잘했나 못했나를 판가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진단’과 ‘읽어내는 것’에 가깝게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나아가 현장의 문화예술 주체들을 응원하는 일이 더해진다. 오늘 마주했던 현장에서도 ‘둘러앉고’ 보니 서툰 그들의 활동이 이해가 간다. 올해 초 문화예술교육을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모여 단체를 만들고 처음 해본 기획으로 자신들이 배운 예술과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다른지,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단계였다. 이제 막 이 분야에 발을 들인 터라 어떤 질문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에게 어떤 평가를 해야 할까.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 부모들이 바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활동해왔지만, 그것이 문화예술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질문을 나눠본 적 없는 이들에게는 또 무엇이 필요할까. 문화예술사업의 주체들이 예술가,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에서 일반 시민으로 확대되면서 이제 평가는 횟수나 기간, 방법, 목적과 의미 등 모든 측면에서 더욱더 두터운 과정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피평가자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문화적 경험을 바탕으로 함께 기획, 교류, 소통이 가능한 평가를 설계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굳이 평가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좋다.

우선 평가의 목적 자체를 현장의 성장에 두고 설계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통제와 관리, 행정적 근거로서의 이유를 최소화하고 배우고 나아가는 과정으로써 평가가 구상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평가가 왜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함께하면 좋은지 다각적으로 접근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문화예술 현장의 주체들이 평가의 기획과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과정이 필수다. 현장의 다양한 주체들이 내부적으로 또는 서로의 활동에 관여할 수 있는 계기로서도 고려될 수 있다. 전문가들이 보조적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역할과 위치를 조정할 수도 있겠다. 이런 과정을 담아낼 수 있는 적절한 미디어가 있다면 더욱 좋다. 경기문화재단의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 ‘지지봄봄’도 현장 평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평가에 대한 새로운 담론과 대안의 모색은 경쟁적인 공모 일색의 문화예술 사업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청할 수 있어 문화정책이나 문화예술 사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제이다. 그러나 평가를 둘러싼 변화는 유독 더디고 보수적이다. 비록 늘 낙담하며 타협해오기도 했지만, 이제는 좀 바꿔보자!

  • 임재춘
  • 필자소개

    임재춘은 문화현장 비평, 문화기획에 관한 대화, 정책과 제도에 대한 제언 등을 업으로, 삶으로 살고 있다. 자신의 삶이 지나치게 어쩔 수 없는 것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스스로를 소진하며 살지 않으려고 삶을 잘 돌보며 살아가고자 애쓰는 중이다.
    생활적정랩 빼꼼(becomingLab)이라는 다소 편협한 공간을 운영하며 발효가 가진 인문, 문화적 사유와 실천의 의미들을 실험, 탐구하는 문화기획자들의 매개 노릇을 하기도 한다. 독립적으로 늙어가는 것에 관심이 많고, ‘멘토’, ‘선생님’이라 칭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막 살기도 어려워졌다고 푸념하는 시간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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