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20년 ‘포용과 혁신의 지역문화’라는 비전 아래 「제2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 기본계획은 ‘자치·분권’, ‘혁신적 포용국가’, ‘생활문화 시대’ 등 국정 비전을 토대로 <지역 중심>, <수요자 중심> 정책 추진을 위해 지역문화의 자율성과 권한 확대를 표방하고 있다. 이는 공급자 관점 정책으로 지역의 문화환경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기존 전달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공급자 중심의 하향식(Top-down) 방식에서 당사자 주체성을 발현하는 상향식(Bottom-up) 방식으로 정책 경로를 재정립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국가 단위의 비전이 표방하는 가치지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역문화를 포함한 문화예술사업 평가지표는 여전히 기존 국가지표 체계에 머물러, 공급자 중심 방식을 띠고 있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역문화 종합지수’는 지역문화현황통계를 활용하여 지역문화 여건 및 격차를 파악해왔으나, 지표가 공공·공급 중심으로 설계되어 수요 측면이 반영되지 않은 한계가 지적되어 왔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공급과 수요 부문이 결합된 ‘문화균형지수’ 모델을 개발·적용하여 실효성 있는 지역문화 여건 분석 및 정책적 활용 추진을 준비하고 있다.

대구문화생태계조사 결과(대구문화재단, 코뮤니타스, 2018) 대구문화생태계조사 결과(대구문화재단, 코뮤니타스, 2018)

지역 단위의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2018년 대구문화생태계 조사는 공공, 공급 중심의 지표가 현실 반영에 얼마나 큰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조사 결과, 기존 행정과 제도권 등 공공 영역 지표에 속하지 않은 민간주체가 7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공공 문화시설/단체 중심의 문화생태계를 넘어 다층적 지역문화 생태계 조성을 위한 민간 중심, 수요자 중심 생태계에 대한 발굴 및 확장이 주요 이슈로 도출되었다.

공급자 중심에서 당사자 중심 문화예술 사업평가 지표로

지역화, 재정 분권화 등 문화정책의 전반적인 변화 속에 문화예술사업 평가 또한 지역 중심, 당사자 중심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공급자와 수혜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시혜적 복지가 아닌 능동적 활동으로서의 문화예술, 당사자 주체 등의 정책 변화를 반영한 평가지표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본 원고에서는 기존 하향식 평가 기준 체계의 한계를 개선하고, 개별 문화예술사업의 성격과 목표에 부합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환경을 반영하는 “문화예술사업 평가지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구체적인 지표의 사례로는 2017년 진행한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사업 성과 평가’를 제시하려 한다. 2009년 시작된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이하 생문공)은 10년이란 기간 동안 꾸준히 공급자 프로세스를 벗어나 사회적 가치로 사업 확장성을 도모했다. 생문공 사업은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며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 이를 염두에 두고 새롭게 제안한 지표의 주요 내용과 차별성은 다음과 같다.

① 문화예술 활동의 본질적 가치를 반영한 성과 지표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 평가 지표」 (지역문화진흥원, 코뮤니타스)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평가 내용
출처: 지역문화진흥원·코뮤니타스, 2017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성과평가 연구보고서 15쪽.

기존 문화예술사업 평가지표는 수혜자 수, 만족도 등 정량적 지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업 운영 측면의 단편적인 성과평가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러한 지표로는 문화예술 사업이 추구하는 목표나 방향성을 고려하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활동의 본질적 가치인 다양성, 창의성, 공공성을 성과에 반영하기 어렵다.

따라서 문화예술사업의 성과평가는 공급자 중심의 양적 평가 방식이 아닌 문화예술 활동의 가치 중심 평가가 필요하다. 이에 생문공 사업 평가 지표는 생활문화 활동이 참여자 개인의 삶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에 대한 반영을 시도하였다. 세부 지표를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사업 「참여실태」 및 「참여자 만족도」 지표를 통해 사업에 대한 기본적인 참여 현황 및 ‘기획/프로그램’, ‘진행/운영’, ‘성과/효과’, ‘만족/개선요인’ 등 다각적으로 사업 성과를 측정하도록 짜여져 있다.

아울러, 개인의 주관적 삶의 행복도를 측정하는 ‘행복온도’와 여가를 ‘일이 없어 남는 시간’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활용 가능한 시간’, ‘개인 시간 내 활동’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생활실태」 영역을 사업 대조군과 비교하여 사업 참여자들의 일상적 생활 방식에 대한 탐색을 병행했다. 특히 인간의 삶의 방식과 존엄한 삶의 의미를 찾는 「삶의 격」과 사회적 네트워크, 신뢰, 규범 등을 살펴보는 「사회자본」 지표를 통해 삶의 영역에서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사업의 본질적 가치와 지향점에 부합하는 성과를 측정하고자 했다.

② 개인-공동체-지역으로 확대되는 사업성과를 포괄하는 평가지표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사업 효과성평가 지표(지역문화진흥원, 코뮤니타스) 2017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사업 효과성평가 지표(지역문화진흥원, 코뮤니타스)

새로 제안한 지표의 또 다른 점은 개인 혹은 사업 범위 수준에 머물러 있던 기존 평가의 범위를 확장했다는 점이다. 생문공 평가지표는 사업의 범위가 아닌 활동의 범위로 사업에 참여하는 다각적 주체와 지역사회를 포괄하도록 하고 있다. 세부 지표로 살펴보면, 참여자 간 상호작용, 의사결정 참여도/민주성, 타인/공동체/지역에 대한 관심사, 인류 보편 가치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생문공 사업 초기 효과성 평가 측면에서 개발되었고, 새로 지표를 제안하며 평가 범위가 확대되었다.

평가 범위가 확대된 이유는 생문공 사업이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관계 맺음과 지역 읽기를 시도하며 지역문화 생태계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사업의 목표가 이동해 왔기 때문이다. 우측 세부 지표를 살펴보면, 초기 지표는 사업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개발된 지표에 추가 지표를 더해 확대된 범위를 평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예를 들면 초기 ‘의사결정 참여도’ 지표는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민주성’을 측정하도록 개선했다.

개별 사업 본연의 목표와 성과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일방향적 하향식 평가가 아닌, 다각적·다층적 평가를 통해 사업의 방향성과 영향력이 미치는 범주를 아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개별 현장에서 문화예술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지역과 문화예술 정책에 시사점이 환류될 수 있는 순환적 평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③ 다양한 주체의 참여와 소통이 이뤄지는 평가 체계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 성과공유회 출처: 지역문화진흥원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 성과공유회
출처: 지역문화진흥원

생문공 사업의 평가 체계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점은 다양한 주체들의 다각적인 평가 참여이다. 평가 대상을 살펴보면, 참여단체, 참여자(수혜자), 대조군뿐만 아니라 전문가로 구성된 현장 모니터링이 병행된다. 전문가 모니터링 지표는 '지역/마을공동체', '추진주체/체계(조직)', '프로그램/사업', '비전', '지역생태계(네트워크/지원)', '예산 및 홍보'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량적 평가와 정성적 평가가 함께 병행되는 모니터링 체계에서 지표 구성보다 먼저 논의해야 할 부분은 문화예술사업 현장을 함께 공유하고 반영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이다. 평가위원 개인의 주관적 신념에 따른 간극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작된 모니터링단 모임은 평가 취지부터 과정과 결과를 공유하는 워크숍 형태로 진행된다.

현장 모니터링이나 컨설팅을 실시하는 대다수 문화예술사업에서 현장의 많은 이야기와 정보들이 평가위원 개인에게 축적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생문공 사업 평가는 전문가 워크숍, 참여자 FGI, 종합토론회 등 다양한 현장 공유를 통해 사업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들을 기록하고, 지표로는 드러나지 않는 사업성과를 발견·공유하는 환류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사업의 끝단에 머문 평가가 아닌, 과정형·협력형 평가를 통해 사업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가며

문화예술 현장과 정책 변화에 따라 개별 사업들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문화예술이 지역과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더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는 지금, 성과 환류를 위한 문화예술사업 평가지표의 개선은 외면할 수 없는 과제이다. 새로운 문화예술 패러다임에 맞는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현장의 변화를 반영한 평가지표의 개선과 당사자 중심의 평가 체계로 변화가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법·제도적 차원의 지원 병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현장에서 더 많은 숙의와 공론의 장이 마련되어 당사자 중심의 문화예술 사업, 민간생태계를 포괄하는 평가 체계들이 더욱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 김아영
  • 필자소개

    김아영은 미래적 가치를 생각하는 연구공동체 「코뮤니타스」 前 연구팀장으로 지역 축제 및 문화 관련 사업 평가연구를 담당했고, 지금은 「(사)제주마을소도리문화연구소」에서 마을과 주민을 만나며 지역계획 수립과 역량강화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지역문화 그 언저리에서 전방의 활동가와 강호의 고수들을 동경하며, 현장에서 닳아버린 운동화 밑창과 귀동냥을 꾸준한 자랑으로 여기며 산다. 참, 낯선 도시를 ‘산책’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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