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 ‘웨이브(WAVE)’는 초대형 디지털 사이니지에서 출렁이는 파도가 화면에 충돌한 모습을 담은 실감형 미디어 아트이다. 서울 코엑스 SM타운 전광판에 선보였던 가로 81m, 세로 20m 농구장 4개 크기의 초대형 ‘웨이브(파도)’가 화제가 되면서 대중들에게도 미디어를 활용한 실감 콘텐츠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감 콘텐츠는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인간의 오감을 극대화하여 실제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는 미디어 기반의 몰입형((immersive) 콘텐츠로 AR(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VR(가상현실Virtual Reality), XR(확장현실 eXtended Reality) 등도 큰 범주에서 실감형 콘텐츠에 해당한다. 2차원 중심의 기존 미디어의 한계에서 벗어나 시야, 각도, 형태 등을 극대화하여 3차원 혹은 3차원처럼 구현되는 콘텐츠를 통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시각적 혼동이 새로운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실감콘텐츠, 몰입형 콘텐츠라고 일컫는다.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실감형 콘텐츠에 관련한 작업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지난해부터 국립문화시설이 소장한 문화자원 활용 방안을 중심으로 디지털 영상관과 실감콘텐츠 공연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올해 5월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실감 영상관의 개관을 시작으로, 국내 모든 국립박물관에서 순차적으로 개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최근 11월 6일부터 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국내 최초 실감콘텐츠 공연 <태평성시: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이하 태평성시)를 공동 기획으로 선보여 화제가 었다.

<태평성시>의 총연출과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실감 영상관 제작에 참여한 고주원 서울예술대학교 영상학부 교수를 만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실감콘텐츠 전시와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디지털 실감콘텐츠로 구현한 <태평성시도>(좌)와 고구려 벽화무덤(우) 한국가구박물관의 중정뜰 전경
디지털 실감콘텐츠로 구현한 <태평성시도>(좌)와 고구려 벽화무덤(우)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

국립중앙박물관의 디지털 실감 영상관이 올해 초 개관했다. 어떤 준비 과정이 있었나?

박물관 안의 총 4개 공간에서 상영 중이고 8개의 회사가 참여하여 공간설계, 시공, 제작, 영상 제작까지 진행했다.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공간감 또한 시각적 몰입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영상 프로젝터의 위치에 맞춰서 공간설계부터 새로 해야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이기도하고 국립기관에서 처음 진행하는 실감콘텐츠 전시였기 때문에 많은 인력과 정성이 투입된 프로젝트이다. 참여 인력만 100여 명이 넘게 투입되었고 제작에도 7개월 이상 소요되었다.

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구현된 1관과 3관, VR체험이 가능한 2관 그리고 AR과 미디어파사드로 상영되는 경천사탑까지 총 4개의 실감형 콘텐츠가 전시되고 있다. ‘디지털 실감 영상관 1(1층 중근세관 내)’과 ‘디지털 실감 영상관 3(1층 고구려실 내)’은 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공간을 채웠다. 영상관 1에서는 보물 제1875호인 정선의 <신묘년 풍악도첩> 등을 소재로 한 4종류의 고화질 첨단 영상을 3면 파노라마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영상관 3에서는 북한에 있어 사진으로만 감상이 가능했던 안악3호무덤 등 고구려 벽화무덤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무덤 내부에 들어간 것과 같은 착시를 느낄 수 있다. ‘디지털 실감 영상관 2(2층 기증관 휴게실)’에서는 폭 8.5미터 크기의 8K 고해상도로 구현된 조선 후기의 태평성시도(작자미상)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 2,100여 명이 각기 다르게 움직이며 관람객의 행동에 반응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평소에 전시실에서 볼 수 없어 더 궁금한 박물관 수장고와 소장품을 보존 처리하는 보존과학실도 가상현실(VR) 기술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1층 복도(역사의 길)에 있는 경천사 십층석탑은 낮에는 증강현실(AR) 기술을 통해 각 면의 조각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고, 저녁에는 석탑의 각 층에 새겨진 조각과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숨은 이야기들을 미디어파사드를 통해 상영한다.1층 복도(역사의 길)에 있는 경천사 십층석탑은 낮에는 증강현실(AR) 기술을 통해 각 면의 조각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고, 저녁에는 석탑의 각 층에 새겨진 조각과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숨은 이야기들을 미디어파사드를 통해 상영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실감콘텐츠 제작에 참여한 서울예술대학교 고주원 교수 국립중앙박물관 실감콘텐츠 제작에 참여한 서울예술대학교 고주원 교수

11월에는 실감콘텐츠를 활용한 공연 <태평성시>가 무대화되었다. 낯선 기술을 무대 공연에 활용하기 위해 특히 무엇에 중점을 두었나?

2020년 11월 6일부터 3일간 극장 ‘용’에서 개막한 <태평성시: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는 문화유산 기반의 실감콘텐츠 공연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2실에서 전시 중인 조선 후기 회화 <태평성시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모티브로 했다. 당대 사람들이 꿈꾼 이상 사회를 그려낸 대작 <태평성시도>를 소재로 하여 21세기 오늘날의 상상력과 첨단 영상 기술력을 더해 인터랙티브 기반의 넌버벌 퍼포먼스를 기획하였다. 장면별로 움직이는 13개의 ‘무빙패널’을 제작하여 단순히 공연의 오브제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영상도 배우처럼 현존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했던 결과물이기도 하다.

2008년부터 인터랙티브 공연을 시도했었지만 처음에는 오류율이 많아 공연 도입이 힘들었다. 조명이나 센서 에러, 소리와 진동에 대한 오류가 잦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AI 기반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툴이 많이 늘어나서 최근 몇 년 새 본격적으로 공연을 구상하게 되었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국악, 연희, 원숭이 탈춤 등 전통 요소를 충분히 가미,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 누구나 공연의 흐름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14명의 출연진은 배우가 아닌 전원 연희자로 캐스팅하여 무대 위에서 다채로운 역할을 주었고, 연희자들은 공연의 흐름을 박진감 넘치게 리드하며 완성도 있는 공연을 만들어 주었다. 또한 박물관과의 협업이 중요한 공연이었던 만큼 과거에 머무르는 박물관이 아닌 미래지향적 공간을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만의 대표 콘텐츠로 선보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디지털과 전통이 융합한 최고의 걸작이 미래를 만드는 문화재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실감콘텐츠 공연 <태평성시도>의 장면들 실감콘텐츠 공연 <태평성시도>의 장면들
실감콘텐츠 공연 <태평성시도>의 장면들

실감콘텐츠 공연과 전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전시는 공간을 구축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한번 만들면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공연은 무대 디자인, 영상, 조명, 음향, 음악, 배우, 스태프들의 합이 매 공연마다 동시에 맞아야 하기 때문에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는 개념의 차이가 있다. 게다가 실감콘텐츠 공연은 임장감(臨場感)을 강조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의 현장감이 다른 공연들보다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 또한 요즘은 공간에서 같은 공연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개인주의 사회에서 느끼는 감성적 허기를 채우는 현장으로써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관객 역시 단순 관람이 아닌 개입을 원하는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상영과 공연, 관람과 참여의 차이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참여하고 의사 결정을 하고, 집단행동을 함으로써 콘텐츠를 완성해가는 방향이 실감형 전시와 공연의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 조인선
  • 필자소개

    조인선은 전통예술 디렉터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아쟁을 전공했다. 한국관광공사와 서울시의 대표 스타트업으로 선정된 국내 최초 전통예술플랫폼 모던.한을 운영하고 있다. ‘전통은 진화 중’이라는 슬로건으로 한국의 다양한 전통예술의 우수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시키고자 한다. 현재 예술경영 웹진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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