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COVID19.
코로나19로 점철된 한 해였다. 연초 아시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곧 유럽, 미국 등 전세계 전 대륙으로 퍼졌다. 사람을 숙주로 세력을 확장하는 이 고약한 바이러스 덕택에 인간 활동은 ‘잠시 멈춤’버튼이 강제로 눌렸다. 덕분에 지구는 좀 더 깨끗해지고, 쉬어갈 틈이 생겼다. 미술계도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프라인 행사를 미덕으로 삼는 업계인지라 특히 타격이 컸다. 모든 이벤트가 온라인으로 강제 이주 됐다. 이름도 생소한 OVR(Online Viewing Room)은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를 넘어 작은 갤러리들까지 모두 장착하는 ‘기본템’이 되어버렸다. 이번 글은 코로나로 시작하고 코로나를 안고 가고, 코로나로 끝나가는 2020년, 그 끝에서 내년을 전망해본다.

2020년 하반기 아트페어 성적표 ‘내년에도 이렇게만’

2020년 하반기 아트페어는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뒀다. 을지아트페어나 어반브레이크 아트아시아 등 신진아트페어가 특히 주목을 많이 받았고, 아트부산과 대구아트페어 등 중대형 아트페어도 성과가 좋았다. 상반기내내 웅크려 있던 미술시장이 모처럼의 기회로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이제는 ‘힙지로’로 통용되는 을지로. 지난 10월 30일 을지트윈타워 지하 1층엔 긴 줄이 형성됐다. 코로나19로 어딜 가도 붐비지 않는 것이 일상이건만, 지하층을 가득 메울 정도의 줄이 생긴 건 바로 ‘을지아트페어’ 때문이다.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3일간 열린 행사로, 올해 2번째다. 서울 중구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출품작 모두가 10만원 균일가다. 작가 이름도 작품명도 써 있지 않고 번호만 표시돼 있다. 눈 밝은 사람이라면 좋은 작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미술을 잘 몰라도 한 작품 당 10만원이면 파격가다). ‘선착순’덕분에 아트페어 시작부터 관객들이 줄을 섰다. 구매한 작품은 그 자리에서 바로 포장해서 가져가는 시스템이라, 마지막날에는 ‘SOLD OUT’ 포스트잇이 곳곳에 붙었다. 이번에 참여한 작가는 약 370명, 지난해 129명에 비해 배 이상 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의 미술작품 구매 경험 확산’이라는 취지는 작가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 된 것으로 보인다.

2020 을지아트페어 포스터 2020 을지아트페어 포스터
출처: 을지아트페어 페이스북

또 하나 미술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신생아트페어는 ‘어반브레이크 아트아시아’다. 11월 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간 코엑스 C홀에서 열렸다. 페어는 도시미술과 도시를 기반으로 발생하는 미술을 일컫는 ‘어반 컨템포러리아트’에 집중했다. 최근 주류 컬렉터로 떠오른 MZ세대를 직접적으로 타깃팅한 것이다. 전시장엔 젊은이들의 열기가 넘쳤다. ‘얼굴없는 작가’로 전세계 어반 스트리트아트의 대명사로 꼽히는 ‘뱅크시’의 작품 4점이 전시 된 것도 입소문을 탔다. 뱅크시의 인기를 증명하듯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전시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드로잉퍼포먼스를 주최 측은 물론 관객들도 실시간 라이브방송으로 중계했다. 페어기간 동안 방문한 인원은 1만 명이상. “아트페어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최측의 기대가 과장으로만 보이지 않았던 이유다.

어반브레이크 아트아시아 페어 중 뱅크시 작품 앞에 모인 관객들 어반브레이크 아트아시아 페어 중 뱅크시 작품 앞에 모인 관객들
출처: 헤럴드DB

그런가 하면 기존 아트페어들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내려간 시점에서 개막한 ‘아트부산’‘대구아트페어’가 좋은 예다. 9월 중순 예정됐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거리두기 2.5단계에서 전격 취소로 돌아서자, 뒤늦게 지역에서 열린 아트페어가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렸다.
11월 5일부터 8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트부산을 찾은 콜렉터와 갤러리, 방문객들은 모두 기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얼마만의 아트페어냐', '이것을 기다렸다'는 소감이 쏟아졌다. ‘아트부산’은 지난 5월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의 여파로 한 차례 연기후 11월에 열렸다. 규모도 예년의 절반 이하로 축소됐다. 140여개 갤러리가 참여했던 것이 70여개 갤러리로 줄어든 것. 이중 10개는 온라인으로만 참여해, 전시장에 실제 부스를 낸 곳은 60여 곳이다.
그러나 참여 갤러리들의 수준은 오히려 높아졌다. 국내에서는 국제, 갤러리현대, 가나아트, PKM, 리안 등을 비롯 메이저 화랑이 참여했다. 해외 갤러리 중에서는 타데우스 로팍, 글래드 스톤이 처음으로 아트부산에 참여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여한 곳은 베를린의 페레스 프로젝트, 리만 머핀, 쾨니히, 탕 컨템포러리 아트 등이다. 판매 성적도 좋았다. 페어 출품 최고가 작품으로 알려진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게오르그 바젤리츠 대형회화 ‘프랑스의 엘케Ⅲ (Elke in Frankreich Ⅲ)’가 120만달러(한화 약 14억원)에 서울 콜렉터에게 판매됐고, 조현화랑의 김종학 신작 작은 꽃 20점은 오픈과 동시에 솔드아웃 됐다.

아트부산 2020 최고가를 기록한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게오르그 바젤리츠 회화 아트부산 2020 최고가를 기록한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게오르그 바젤리츠 회화 <프랑스의 엘케Ⅲ (Elke in Frankreich Ⅲ)> 앞 전경
출처: 헤럴드DB

진짜배기 콜렉터들만 모여 있다는 도시, ‘대구’에서 열리는 ‘대구아트페어’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11월 13일부터 15일까지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행사엔 국제갤러리, 학고재갤러리, 이화익갤러리, 박여숙화랑, 갤러리 바톤, 우손갤러리, 신라갤러리, 미국 뉴욕의 깁스갤러리 등 국내외 69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지난해 114개에 비하면 60% 수준이지만 그만큼 부스가 커지고 간격이 넓어져 쾌적한 관람이 가능했다. 콜렉터들의 도시답게 개막과 동시에 억대 작품이 상당수 팔려나갔다. 미국작가 린 마이어스, 프랑스 조각가이자 설치가인 루이스 부르주아, 프랑스 조각가 장 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이 판매됐다. 참여 갤러리들은 국내에서 대면 아트페어가 열린 것이 수개월 만의 일인 만큼 콜렉터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보고 있다. 그만큼 ‘오프라인’에 목말라 있었던 셈이다.

사립미술관 ‘꿈틀’

코로나19로 휴관과 개관을 반복했던 미술관도 내년엔 사립미술관을 위주로 다른 지형도를 그릴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이목이 집중된 곳은 물론 삼성미술관 리움이다. 미술계에 따르면, 내년 3월 정상화를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2001년부터 격년으로 한국 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국제무대에서 성장 가능성이 큰 젊은 작가를 발굴해온 ‘아트스펙트럼’도 다시 진행할 예정이다. 로비공간도 리모델링한다. 국내 디자이너가 예술감독을 맡아 공간을 재구성한다는 후문이다.
리움은 지난 2017년 3월 홍라희 관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리움과 호암미술관장에서 돌연 사퇴한 뒤, 상설전만을 개최하며 사실상 개관 휴업이었다. 2019년 1월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리움 발전을 위한 주요사항을 논의할 ‘운영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위촉되면서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으나,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감염병 변수로 현재 휴관중이다. 리움측은 “기획전이나 아트스펙트럼은 다시 개최할 수 있도록 준비는 하고 있지만, 재개관이나 정상화에 대해 시기 등 구체적 방안이 확정된 것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2015년 한남동에 개관하며 밀레니얼 세대의 핫 스폿으로 떠오른 ‘디뮤지엄’도 성수동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디뮤지엄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중 서울숲 근처로 이전할 예정이다. 규모는 한남동보다 커진다. 올 12월 완공하는 아크로서울포레스트 인근으로, 수인분당선 서울숲역과 바로 연결된다. 이미 ‘D Museum’이라는 간판을 걸고 이전준비를 마친 상태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은 서울숲을 배후로 두고 있어, 한남동보다 관객접점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개관 준비 중인 성수동 디뮤지엄의 전경 개관 준비 중인 성수동 디뮤지엄의 전경
출처: 헤럴드DB

해외 아트페어들은

2020년을 돌이켜보면, 2월에 열린 프리즈 LA를 제외하고 대형 국제 아트페어들은 전부 현장행사를 취소했다. 아트바젤의 경우 홍콩 취소에 이어 바젤 행사 연기 후 취소, 마이애미도 취소했다. 프리즈도 5월 뉴욕행사와 10월 런던행사를 취소했다. 모두 온라인으로 대체한 것.
행사를 취소하면서 모두 ‘내년’을 기약했지만 코로나19의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일단 아트바젤 홍콩은 3월 대신 5월 개최를 선언했다. 백신이나 치료제의 연말 상용화가 요원하기 때문이다. 아트바젤 측은 "갤러리스트, 컬렉터, 파트너, 외부 전문가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결정했다. 박람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이다"고 연기 사유를 설명했다.

2021년 3월에서 5월로 연기한 아트바젤 홍콩 2021년 3월에서 5월로 개최 연기한 아트바젤 홍콩
출처: 아트바젤 홍콩 홈페이지

그러나 5월도 과연 코로나 이전처럼 성대하게 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홍콩에서 자가격리를 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본국으로 돌아가서 자가격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불편함을 감수 하면서 까지 콜렉터들이 움직일 것이냐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형 국제 아트페어가 주춤한 사이, 지역의 아트페어들은 현장 개막을 이어가고 있다. 상하이의 ‘웨스트번드 아트페어’와 ‘아트 O21’은 예정대로 지난 11월 개막했고, 행사를 성료했다. 상하이에 거점을 둔 해외 갤러리들이야 별 문제 없이 참여했지만, 그렇지 못한 갤러리들은 작품만을 보내 현지 인력의 도움으로 설치하고 판매했다. 모든 것이 원격으로 이뤄진 것. 코로나시대의 국제 아트페어 전경이다. 이같은 풍경은 2021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게 미술계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건강과 안전에 있어서는 가장 보수적인 곳이 미술시장이니까.

  • 이한빛
  • 필자소개

    이한빛은 헤럴드경제 신문에서 시각예술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거의 매일 해당 분야 기사를 생산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술계 머글(비전공자)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미술계 소식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학부에선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으며 뒤늦게 MBA과정을 밟고 있다. 시장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시장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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