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예술계를 가로지르는 키워드를 별개로 뽑는 것은 무의미한 일처럼 보인다. 올해 코로나19를 제외하고서는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웹진 예술경영은 공연예술과 시각예술 분야 매체들이 판단하고 있는 흐름이 궁금해졌다. 각 매체의 편집장, 기자들과 올 한 해 공연·시각예술 분야의 이슈와 흐름을 짚어보았다.

일시/장소: 2020. 12. 1.(화) / 온라인 화상회의
진행: 안태호(웹진《예술경영》 편집장,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이사)
참석: 김미지(《한국연극》 기자), 박병성(《더뮤지컬》 국장),
송현민(《월간객석》 편집장), 황석권(《월간미술》 편집장)

코로나19로 인해 예술뿐 아니라 일상생활 자체가 큰 영향을 받았다. 올해 공연, 미술 분야 주요 흐름을 짚는다면?

송현민(《월간객석》 편집장, 이하 송현민)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매체 흐름상 1~2월은 그해 있을 공연의 프리뷰가 실리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공연 취소 소식을 전하는 데 분주했다. 더불어 예정에 없던, 영상과 인터넷으로 망명한 공연들이 자연스럽게 취재 아이템이 되었다. 그렇게 3~6월까지는 공연과 함께 변하는 영상 문화를 꾸준히 다루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다. 콘텐츠로서의 공연 영상을 정식 리뷰 대상으로 삼아도 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7~8월은 예년 같으면 여러 축제들을 다뤘어야 하는 때인데 역시 하반기 예정되었던 공연과 축제의 취소 소식을 전하는 데 급급했다. 12월은 내년 1~2월의 공연을 조망하고 전망하는 시간이었는데, 이 공연들이 과연 이뤄질지 의심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

김미지(《한국연극》 기자, 이하 김미지)
3월 정도부터는 아예 코로나19 특집을 시작했고, 7~8월에는 조금 잠잠하다가 하반기 들어서 공연 취소 소식을 많이 전했다. 연극계 주요 흐름을 이야기하자면, 먼저 공연 영상화로 인한 비대면 공연 활성화로 연극이 관객을 만나는 방식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극장 외에 연극을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졌고, 이로 인해 창작자 입장에서는 연극의 형태는 무엇이며 연극 자체가 무엇인지 본질적인 고민을 해나갔던 것 같다.
또 한 지점은 코로나19로 인해서 예술가의 지위나 권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현재 예술과 예술가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 예술가의 노동이 과연 인정받고 있는지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기사를 위해 인터뷰나 좌담을 진행하면서 창작자들의 이런 고민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연극계에서 미투(me, too) 이후 예술가 중심의 공정한 창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커졌는데, 이것이 올해도 계속되었다. 올해가 ‘2020 연극의 해’ 였는데 단발성 행사보다 그러한 환경 조성을 위한 사업들을 기획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황석권(《월간미술》 편집장, 이하 황석권)
미술계의 경우 선방했다는 내부 평가가 나온다. 창작자와 관객이 한데 모여야 하는 공연과는 달리, 미술 체험은 개인화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해 미술관이 휴관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관람에 제약을 크게 받지 않았다. 신체적, 물리적 한계로 전시장에 가지 못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관람이란 ‘실견(實見)’해야 한다고 여겨 전시관에 가서 직접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전시를 보게 되면서 전시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 같다. 생각보다 온라인 전시의 질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워낙 상황이 안좋으니 괜찮은 대안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또한 영상이나 미디어 작업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집에서는 집중력 있게 끝까지 보게 된다. 아무튼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병성(《더뮤지컬》 국장, 이하 박병성)
뮤지컬 시장은 2014년 이후 한동안 정체되어 있다가 2018년 부산에 드림씨어터가 생기고, <라이온 킹>을 비롯한 파급력 있는 공연이 내한하면서 큰 성장을 해왔다. 그리고 올해 <오페라의 유령>, <캣츠>, <노트르담 드 파리>, <워 호스> 등 큰 규모의 내한 작품 라인업을 보면서 역대급 시장을 예견했었다. 그러나 2월 뚜껑을 열자마자 코로나 시국에 접어들면서 아주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특히 마니아 계층보다는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대형 장기 공연은 코로나19 확진자 수치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그만큼 피해도 컸다.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에 따라 티켓 재오픈을 하는 등 혼란도 많았다. 기획사들은 열악한 제작 구조를 이번 기회에 개선해보자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다만 상업예술은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었고 오로지 제작사가 이 난항을 안고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에 비해 대학로 소극장의 경우에는 팬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의외로 선방했다.
올해 공연계 이슈는 코로나19로 대면 공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지원책을 마련할 것인가, 그리고 영상화였다. 코로나 초반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관객들을 위로하는 차원의 영상이 온라인 상영됐다면, 점점 진화해 유료화 과정까지 와 있다. 사실 공연 영상 유료화 이슈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시장 가능성이 약하다는 판단에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그런데 코로나 정국을 맞아 빠르게 진전되면서 공연을 영상화하는 것을 넘어 숏폼 콘텐츠 뮤지컬의 등장 등 새로운 장르로 시도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병성 <더뮤지컬> 국장, 김미지 <한국연극> 기자,송현민 <월간객석> 편집장, 황석권 <월간미술> 편집장

매체 운영자의 입장에서 올해 발표된 작품이나 작가 단위에서 주요 경향들을 어떻게 짚고 있나?

김미지
작년 예술경영 웹진의 공연 결산 기사에 언급됐던 젠더, 배리어프리, 페미니즘 이슈가 올해도 비슷하게 가는 것 같다. <한국연극>에서는 매년 12월호에서 ‘올해의 공연 베스트 7’을 선정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여성 서사, 젠더, 청소년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여전히 강세였다. 작품 소재 측면에서 거대 서사나 역사적 문제보다는 개인의 사소한 문제를 다루는 경향이 보였고, ‘이게 연극이야?’ 싶을 만큼 날것의 이미지와 색다른 시도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황석권
미술에서도 젠더 문제 자체가 꾸준히 주요 이슈였고, 소수자의 입장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전시 경향으로는 현대 미술의 근원이 되는 근현대 미술사 재고찰에 기반을 둔 전시들이 많았다. 이전까지 한국 현대미술사 정리 과정에서는 오래되지 않은 과거이고, 레퍼런스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몇몇 대표작가에 대한 독점적이고 주관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이런 때에 미술사를 다시 정리하고 바로잡자는 움직임이 생긴 것이다. 앞서 미술계가 ‘생각보다 선방했다’고 이야기한 건 전시 숫자보다 이런 경향이 꾸준히 유지되었다는 측면도 포함한다. 안타까운 점은 젊은 작가들이 받은 경제적인 타격이다. 아예 프로젝트가 진행조차 되지 못하거나, 젊은 작가를 발굴하려는 갤러리스트나 화랑들이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한 정황들 때문이다.

박병성
뮤지컬계도 젠더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여성 서사가 중심인 작품으로 작년 <호프>에 이어 올해 초 <마리퀴리><리지>가 주목을 받았다. 전반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초연작이 드물었던 해였다. 내년 1월에 열릴 한국뮤지컬대상은 400석 이상 규모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데, 후보작이 10편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브로드웨이 경우도 토니상 남우주연상 후보가 1명에 불과했다. 작품 경향으로 본다면 작품 수는 굉장히 적되 여성 서사 뮤지컬이 두드러지는 해로 정리할 수 있겠다.

송현민
클래식 쪽은 올해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라 전 세계적으로 베토벤 열풍이 예견되어 있었다. 다른 장르에 비해 클래식은 작품이 보관된 악보를 교두보 삼아, 연습 기관과 협업의 조건만 맞으면 컬래버레이션이 가능해서 많은 페스티벌과 공연 라인업에 베토벤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교가 놓여 있던 해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한국뿐 아니라 유럽 국경이 봉쇄되는 지경에 이르러 베토벤 코드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면 수포로 돌아간 중요한 프로젝트들이 많다. 일례로 올해 국립극장 70주년 등 기념할 일이 있는 곳들이 많아 각자 큰 행사를 준비 중이었으나, 이 역시 코로나로 많이 무산되었다.

그 와중에도 눈에 띄거나 돋보였던 개별 작품이나 작가가 있었을 것 같다.

박병성
작품의 재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캣츠>는 고양이 분장을 한 배우들이 마스크를 쓰고 객석에서 등장해 관객과 호흡하는 등의 노력이 돋보였다. 대면 공연을 진행한 작품들도 공연을 만드는 사람과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 모두 위로받고 공연 관람 행위 자체가 소중함을 느낄 수 있던 시간을 보냈다. 그 외에 국립극단 70주년 기념작인 <화전가>는 공연을 보는 재미 자체를 느낄 수 있어서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고 싶다.

<마리퀴리>, <리지>, <화전가> 공연포스터
출처: 공연예술통합전산망 홈페이지

황석권
올해는 광주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관련 전시들 중에 눈에 띄는 시도가 있었다. 〈maytoday〉, <별이 된 사람들> 전시인데 미술이 한국 현대사의 중대한 사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좀 달리해 봤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그동안은 5.18민주화운동을 다루더라도 전형적인 해석과 엇비슷한 행사들에 그쳤다면, 올해 〈maytoday〉전은 같은 시기 해외에서 있었던 민주화 움직임들을 통해 광주를 되비치는 기획을, <별이 된 사람들>은 직접 5.18을 겪지 않은 이들이 본인의 방식대로 그것을 이해하고 펼쳐내는 기획을 시도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만한 행사는 부산비엔날레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모든 비엔날레에는 개최지의 이름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미술, 세계적인 흐름, 경향 이런 것들을 드러내느라 그 지역 자체가 무시받던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번 비엔날레는 지역 이름을 걸고 하는 비엔날레에 대해 한 번쯤 더 고민할 계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호평이었다. 작가들이 직접 해당 지역에 와서 경험하는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지역에 대한 이해들이 들어났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전시 중 VR 전시 조감도
출처: 메이투데이 홈페이지

김미지
남산예술센터의 <휴먼 푸가>가 인상적이었다. 한강 소설이 원작이며, 역시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이다. 더불어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 공연을 올린 남산예술센터가 운영을 종료했다. 앞서 언급한 월간 <한국연극>이 매년 선정하는 베스트 7에 남산예술센터의 작품이 두 개나 포함되어 있다. 그런 점들을 보면 이곳이 연극계에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는 건데, 사라진다니 아쉽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송현민
온라인 전환에서 좋은 작품의 요소를 짚어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서울시향은 국내 교향악단들 중 많은 예산을 보유한 곳이다. 코로나 초반에는 단순히 영상 촬영물을 송출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면, 5월쯤에는 뉴노멀(새로운 일상)을 내세우며 영상에 세련미를 더해 관람의 흥미를 높였다. 관람자들의 리듬을 고려해, 실제 공연시간 대로 진행하지 않고 단축시키기도 했다. 이런 예들을 보면 영상 기술을 흡수하면서 자가 발전, 진화한 단체와 그들의 작품을 언급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성공적이었던 사례들을 좀 더 꼽아보면 어떨까. 동시에 실제 온라인에서 그런 현장감을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이나, 제안들이 있으면 이야기해 달라.

황석권
가상 미술관 중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보존 과학자 C의 하루>라는 전시를 들고 싶다. 특수한 장비로 사진을 찍어 건축 조감도 같은 화면을 볼 수 있는데, 현장의 각 포인트마다 볼 수 있는 영상이나 월텍스트를 그 자체로 실감나게 볼 수 있도록 구현해 놨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앞으로는 처음 전시 기획 단계부터 온라인과 실제 전시를 각각 준비해야할 상황을 맞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실과 가상 각각의 전시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의 차별화가 분명히 이루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이 대안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적인 전시로서 기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보존 과학자 C의 하루> 중 {C의 서재} 설치 전경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송현민
창작산실 무용 공연 〈hit&run〉은 카메라의 문법과 육체 언어의 문법이 상당히 잘 맞아떨어진 작품이라 사례로 들고 싶다. 관객이 있는 상태보다 무관중 중계는 극장 내 카메라가 보다 활보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이나믹한 카메라 액션이 좋았다. 무대의 사각지대도 잘 보여주었다. 공연 영상에 대한 또 다른 지점은 '댓글의 인류학'이라고 이야기할 만한 현상이 있었다. 기존에는 사후에 이루어졌던 작품에 대한 언급이나 비평이 공연 진행과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이 놀라웠다. 대면 공연 도중에 관객들의 비평언어가 박수라는 행위 정도에 그쳤다면, 온라인 공연에서는 본인이 느낀 바, 아쉬운 점들이 아주 구체적인 언어로 도출되어 관객의 존재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했다.

김미지
댓글에 대한 언급을 이어가자면, 오히려 관객을 만날 수 없으니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들인지가 궁금해졌다. 때문에 월간 <한국연극>에서는 올해 ‘관객수다’라는 지면을 기획해서 연재하는 것을 통해 변화하는 관객문화를 다루기도 했다.
영상화 이슈에서 연극은 타 장르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본다. NT Live처럼 아예 제작 단계부터 준비한다면 좋은 작품이 나오겠으나, 코로나 시대 온라인 연극 공연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국공립 단체처럼 규모가 큰 극장은 기술적으로 준비할 여건이 충분했겠지만, 민간의 경우 전혀 대비가 없는 상태로 어쩔 수 없이 급히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온라인 공연이 관객 저변 확대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 만나본 관객들 다수는 온라인 공연이 공연을 즐기는 게 아니라 소비하는 것 같다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런 세밀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은 채 정책들이 영상화 방향으로 나가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처음에는 무료 공연이 대다수였다가 점점 유료 공연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연극은 편당 2,500원~3,000원 사이로 가격 책정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가격의 적정성에 대한 판단이나 수익구조, 저작권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박병성
올해 공연 영상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영상 제작에 두 가지 방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NT Live처럼 공연을 영상으로 제대로 옮기는 데 주안점을 두는 방식, 둘째는 아예 공연의 특징을 담은 영상물로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주로 해외 사례가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무대 공연의 특징을 영상에서 구현하려고 했던 시도들에 관심이 갔다.

올해 취재와 기획에 제한이 많았을 것 같다. 매체에서 올 한 해를 어떻게 접근했고 대응했는지 이야기를 부탁드린다.

황석권
올해 발행한 《월간미술》책등에 찍힌 특집 주제를 보니 거의 코로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2020년 12월 특집 제목이 ‘2020년 팬데믹의 기억’이기도 하다. 가장 큰 목적은 기록을 위해서였다. 다음에 또다시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2020년 미술 판이 어떤 식으로 이슈들을 대했고 지나왔는지를 기록한 이 기사들이 하나의 매뉴얼로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무력감을 많이 느낀 해였는데, 비단 취재에 영향을 받아서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해외 취재를 제외하고는 국내 전시장을 방문하거나 관람에 크게 영향받은 것은 없었고, 체감상 올해 예정되어 있던 전시의 대부분은 소화해냈다고 본다. 그럼에도 암담했던 점은 미술 창작과 판매도 어려웠지만 가장 힘든 분야가 비평이란 생각이 든다. 당장 전시장 방문도 어려웠거니와 활동할 수 있는 매체환경도 열악해졌다. 그리고 '코로나'라는 석자를 빼고 어떻게 글을 시작할 수 있을지.

송현민
편집장으로서 뜻하지 않은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예술가들이 무대를 잃어버리니 자신들에 대한 관심에 적극적인 성의를 보여주었다. 코로나에 걸린 후 치유한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를 인터뷰(5월호)하기도 하고, ‘세계 오페라 무대를 빛내는 한국의 젊은 성악가 75인’을 인터뷰해 초대형 특집(6월호)을 싣기도 했다. 그 밖에 ‘코로나19로 귀국한 젊은 예술가 54인’(7월호), ‘세계 공연계 TOP 매니지먼트 CEO 14인’(10월호), ‘전 세계 여성 지휘자 16인’(11월호)도 진행했다. 한데 모으기 힘든 사람들, 만나기 힘든 사람들인데 마다하지 않고 인터뷰에 응해주어 편집부 기자들의 메일이 매일 국경을 넘나들었다. 취재 안테나의 방향이 바뀐 순간이다. 취재를 하면서도 외국에서 한국 공연계 방역에 보이는 관심에 답하기도 했다.

김미지
황 편집장님 말씀처럼, 어쨌든 매체는 기록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정책 설계할 때 현장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소통의 대상이 특정 단체 혹은 극장 중심이거나 아주 소수의 정해진 이들인 경우가 많다. 우리 매체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개개인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이고, 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그렇게 만든 기사들이 향후 정책의 근거 자료로 기능할 수 있다고 봤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시대에 지면 매체의 한계를 더욱 느꼈다. 웹진이라면 링크나 실시간 업데이트가 가능할 텐데, 종미 매체라 그렇지 못했다. 기자로서는 순수한 열정을 가진 창작자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게 이 직업의 즐거움인데, 예술가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깝고 힘들었다.

공연장이나 전시장이 다른 공간들에 비해서 훨씬 안전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국공립 시설들이 1차로 제일 먼저 문을 닫아걸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정부의 정책 대응에 대한 아쉬움들이나 정책 방향에 대한 제안과 함께 내년 전망을 부탁드린다.

김미지
돌이켜보면 사스, 메르스 같은 선례가 있었음에도 코로나로 인한 큰 피해가 반복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재난 대응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나 지원기관에서 내놓은 지원책을 보며 그들이 여전히 예술현장을 모르고 있구나, 다시금 느꼈다. 정책적인 편의성에만 기대는 지원책을 내놓았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소극장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객석 거리두기와 과태료 부과 지침은 정책 단위에서 예술(가)을 바라보는 시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다. 그럼에도 연극계는 민간이 잘 대응하며 공연을 이어나갔다. 다수의 국공립 극장이 문을 닫았을 때, 민간은 스스로 안전 매뉴얼과 방역 지침을 마련해 공연을 지속했다. 공공 극장도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았겠지만, 차라리 기준을 세워 선례를 남기고 모범을 보였으면 혼란이 덜했을 텐데 왜 문을 닫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는지 아쉬움이 든다.
지원 사업의 대다수는 지금 당장 피해를 입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이후 공연계를 활성화하는 방향이었던 것 같다. 예술인 긴급재난지원금은 예술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이것 역시 예술가의 범위, 기준 때문에 혼란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로 인해 예술가의 사회적 위치와 정체성 등이 아직 우리 사회 내에 합의,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강조하고 싶은 건 정책적으로 모든 대안이 온라인 공연 활성화, 영상인 것처럼 설계해 밀어붙이는 건 지양해야 한다는 점이다.

박병성
동의한다. 내년에 증액되는 상당 부분의 공연쪽 예산이 공연 영상 사업에 할애된 것으로 알고 있다. 공연이 있어야 공연 영상도 있는 건데, 마치 비대면 사회에서 유일한 해결책이 공연 영상인 것처럼 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황석권
생각할 지점들이 많이 나왔고, 부정적인 쪽만 보지는 않으려 한다. 처음에는 전시 관람만큼 개인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예전부터 실천해왔던 예술 체험 행위는 없으니 무조건 닫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기관은 정해진 방역 지침을 따라야 하니, 나름의 입장이 있었을 거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대응을 위해 경험에 기반한 좀 더 세밀하고 촘촘한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다.

송현민
‘오프라인 공연장’, ‘온라인 비대면 공연’이라는 조어가 만들어지고 기사에 쓰인다는 건 특정한 흐름이 가시화되고 대두된다는 뜻이고, 지금의 상황이 그만큼 불가피한 현실이란 이야기다. 내년에 고민도 이와 연장선상에 있는데, 두 가지를 짚고 싶다. 하나는 같은 공공기관 공연장인데도 자체 기획 공연은 중단하고 대관 공연은 진행하는 공연장 방역의 형평성과 윤리성이다. 또 하나는 지원에 대한 중간 검토인데, 올해 여러 방면에 걸친 시도가 있었다면 내년에는 기동성을 갖추면서도 중간마다 지원이 올바르게 가는지에 대한 점검의 시간이 많아졌으면 한다.

황석권
내년도 전망이 만만치가 않다. 그런데 예술이나 예술가가 심각하게 쓸모나 그런 것들을 고민하기보다 심드렁하게 본인의 예술실현에 몰입했던 이들이지 않나? 그러나 내년은, 올해의 무기력함을 떨치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좀 마련해야 됐으면 한다.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작가나 관계자, 기획자 모두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대책들을 여러 제도가 보완할 수 있었으면 한다.

박병성
상업 공연 입장에서는 겨울 대목을 코로나로 그냥 넘기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이 과정에서 일반관객들은 무언가 대체재를 찾아 떠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를 극복해 공연계가 일상을 회복하더라도 이 관객들이 돌아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또 하나 걱정은 그동안 공연 제작사들이 대출이나 융자로 버텼는데 내년이면 상환 기간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상업 공연의 경우 내년 공연의 대관이 이미 잡혀 있어서 탄력적으로 되돌리기도 힘든 상황이다.

김미지
내년 전망에 대해서 감히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일단은 계속 얘기했던 것처럼 재난 상황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 그리고 정부 지침이나 지원기관의 지원책을 체계적으로, 세밀하게 마련했으면 좋겠다. 덧붙여 예술가들도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스스로 자생성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느낀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건 예술계에서 남산예술센터에 관심을 많이 보였으면 한다. 연극계로서는 굉장히 많은 담론이 함축된 사건인지라, 좋은 방향으로 해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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