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행정 분야에서 행정인, 기획인, 예술인 직무자는 관료 통제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기대 속에서 결국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최근 방역 당국은 서울시 기초자치단체 중의 하나인 은평구청이 출자 출연한 은평문화재단 문화예술회관을 코로나19 백신 접종센터로 지정하여, 시설사용 관련 필요한 것을 전달하고 있다. 이 상황은 선출직 공직자와 상위조직의 요구, 다양한 고객의 기대 사이의 상반된 가치 대안에서 문화재단 운영을 위한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회관을 백신 접종센터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백신 접종은 공동체의 지속 가능함을 위한 중요한 문제이고, 대안적 공간이 마땅치 않을 때, 공공시설인 극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태릉 선수촌이나 대기업 연수원을 코로나 환자 격리 병동으로 사용한 예를 들 것이다. 하지만 반대 입장에서는 극장은 문화예술 향유와 창작, 지역 예술인들의 생존을 위한 공간이지 보건의료 공간이 아니고, 충분히 다른 대안적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행정이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위압적이라고 할 것이다. 은평문화재단의 사례처럼 조직의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의사결정의 딜레마 상황도 있지만, 공공극장과 문화재단은 조직 내에서도 다양한 요구와 기대가 충돌하여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문화행정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문화행정 의사결정의 가치충돌 상황에서 의사결정에 어떤 힘이 영향을 주고 있는지 측정해보고 싶었다. 앞서 말한 재단의 사례처럼 관료제 압력이 어느 정도 강한지, 혹은 고객의 기대는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또한 현실과 무관하게 당위적으로 누가 문화예술기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함께 측정해보고 싶었다. 연구모형의 설계는 다음과 같다.

문화행정 의사결정의 영향요인 문화행정 의사결정의 영향요인

관료통제 변인과 이해관계자 기대 변인으로 나누어 각각 3개씩 변수를 구성했다. 연구 참여자에게 변수와 변수 간 “무엇이 얼마나 더 반영되고 있나요?”라고 묻는 쌍대비교 가중치 방식으로 물어보았고, 이를 통해 답변자가 생각하는 6개 변수의 우선순위를 계량화해서 분석해보았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전제를 가정해보고 싶었다. 문화체육관광부나 서울시와 같은 정부 행정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와 같은 지원조직 행정인,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에서 근무하는 기획인, 국립예술단체 소속 단원 혹은 프로젝트 계약관계로 있는 예술인의 생각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 가정했다. 그래서 집단별로 인식의 차이가 어떤지 답해볼 수 있다면, 우리는 문화행정의 의사결정 과정을 좀 더 맥락적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정부 행정인, 지원조직 행정인, 기획인, 예술인 네 집단으로 나누고, 경력분포를 고려하여 연구 질문을 해보았다.

AHP 분석 연구참여자 기술통계 AHP1) 분석 연구참여자 기술통계

상위조직과 기관장의 요구가 압도적으로 반영되는 현실

문화행정 의사결정 영향요인(현실) 문화행정 의사결정 영향요인(현실)

현실에서 모든 집단이 ‘상위조직의 요구’가 의사결정에 가장 큰 힘을 미친다고 언급하였다. 그다음으로 부처(기관)장의 요구였다. 상위조직과 조직 대표자의 생각이 일치한다면 다른 의견은 반영되기 매우 어려운 구조이다. 우리는 관성적으로 고객의 기대를 중요하게 여긴다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획인을 제외하고, 일반고객의 기대는 의사결정에 가장 낮은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고객은 일반고객이 아닌, 상위조직과 부처(기관)장임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연구 결과 그래프에서 몇 가지 짚어볼 수 있는 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지원기관 행정인’이 직무 관련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상위조직의 요구를 가장 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인과 예술인이 속해 있는 조직에 비해 지원기관 행정인이 속해 있는 조직은 상위 행정으로부터 의사결정의 독립성이 상대적으로 더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지원기관 행정인의 경우, 직속상관의 영향력도 가장 낮은 것으로 확인된다. 본인의 직무 관련 상위조직의 힘이 너무 강할 경우, 조직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간관리자의 의사결정의 자율성은 더 낮을 수 있다. 그렇다면 현실이 이렇다고 해서 행정인, 기획인, 예술인은 이런 현실을 당연하다고 생각할까?

고객의 기대 중요하지만, 정부 행정인과 타 집단 간격 뚜렷

문화행정 의사결정 영향요인(당위) 문화행정 의사결정 영향요인(당위)

문화행정 의사결정에 반영되어야 하는 당위적 요인은 현실과 확연하게 차이가 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지표에서 그래프가 가진 부피의 크기는 당위적으로 이 지표가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에 비해 일반고객의 기대가 의사결정에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한다고 나타나며, 특히 기획인과 예술인이 일반고객의 기대가 가장 중요한 영향요인이 되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지원기관 행정인의 경우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일반고객의 기대보다 전문가 집단의 기대가 좀 더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 부분은 공공극장과 예술단체는 직접 제작 혹은 창작하는 작품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성향이 강하고, 2차 지원기관은 공모 및 지원사업을 통해 예산을 재분배하는 사업적 특징으로 심사와 자문, 연구 등을 통해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는 경향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해볼 수 있다.

현실과 가장 큰 인식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위적으로 지원기관 행정인, 기획인, 예술인 집단은 상위조직의 요구가 가장 낮게 반영되어야 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 부분은 의사결정 자율성의 결핍을 반증하면서, 현실과 당위 사이에서 가장 큰 인지 부조화를 보이는 지점이다. 인지 부조화가 크다는 것은 직무자가 의사결정을 할 때,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과 요구받는 것 사이에서 내적 갈등이 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행정인의 경우 현실보다는 당위에서 상위조직의 요구와 부처장의 요구가 낮아져야 한다고 답하면서도, 여전히 상대적으로 가장 높게 반영되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정부 행정인은 당위적으로 자신이 상위조직에 있다고 생각할 경우, 본인의 판단을 책무의 관점에서 하위조직에 요구하는 것을 당연한 권한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은 행정과 문화예술의 지원과 간섭의 팔길이를 짧게 만들 수 있고, 중앙 혹은 지방정부 행정인은 2차 지원예술기관, 공공극장, 국공립예술단체, 지역문화재단 등에 행정의 입장에서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다.

문화행정의 공공성, 누가 결정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문화행정의 의사결정은 결국 행정이 문화예술을 만났을 때, 공공성 가치를 누가 결정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행정인이 결정해야 할까, 문화예술인이 결정해야 할까. 문화예술인 중심의 의사결정에 행정인이 보완적 균형을 맞추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위의 연구 결과는 기본적으로 현실에서 지나치게 높은 관료 통제의 비중을 낮추고, 고객의 기대를 더 많이 반영할 수 있는 자율성을 더 많이 확대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함을 얘기하고 있다. 행정은 그리고 행정인은 국가 그 자체가 아니다. 행정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보통 상위조직의 요구를, 바꿀 수 없는 혹은 어쩔 수 없는 “국가의 지침”으로 언급할 때가 있다. 그래서 예술기관의 실무 행정인이 상위조직의 요구를 언급하며 기획인과 예술인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많다. 국가란 국민 위에 있는 별개의 무엇이 아니다. 행정인은 국민 혹은 시민을 대리하는 공복일 뿐이다. 문화행정의 의사결정을 상위 행정조직과 소수의 대표자가 독점할수록, 문화행정의 공공성은 더 멀어질 수 있다. 공공의 가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기대가 합리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을 때, 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여전히 계층제적 지시에 중독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1) 데이터 쌍대비교행렬로 개별 분석하여 일관성 비율(Consistency Ratio: CR)이 0.1 이하인 경우만을 선별하였고,
코딩하면서 0.1이 넘으면 응답자에게 추가 설명 후 재응답 요청함.

  • 장석류
  • 필자소개

    장석류는 학부 때 연극영상학부에서 연출전공을 하였고, 조직과 연결망 중심의 사회학(M.A), 협력적 거버넌스 영역을 중심으로 공공문화 행정학(Ph.D) 분야에서 연구를 해왔다. 정동극장에서 13년 동안 다양한 포지션으로 근무하였고, 최근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시드앤파트너스 이사, 서울문화재단 예술청 운영위원,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문화 강사 등으로 있으면서 다양한 문화정책 연구와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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