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뮤지컬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Diversity(다양성)”이다. 물랑루즈 영화 속 니콜 키드먼의 역할로는 히스패닉계 뮤지컬 배우가, 영화 노트북 속 레이첼 맥아담스는 흑인 뮤지컬 배우가 캐스팅되어 뮤지컬이 제작되고 있다. 인종의 다양성에 대한 움직임과 동시에 전 세계를 강타한 K POP을 소재로 한 뮤지컬이 이번 달 브로드웨이에서 프리뷰를 개막하는 등 미국 뮤지컬 시장에서는 다양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과연,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위한 물결 속에서, 영화와 음악을 넘어 한국의 뮤지컬도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우란문화재단의 지난 도전들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미국으로 진출하다.

우리도 미국 시장에 진출해 보면 어떨까?에 대한 고민의 시작은 타코집에서였다. 그러니까 미국 진출! 도전! 같은 어떤 거창한 목표를 가진 시작은 아니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함께 작업하기로 한 창작자들이 뉴욕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한국에서 만든 뮤지컬을 미국의 가족과 친구들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이루고자 ‘어쩌면 해피엔딩’ 미국 버전의 개발을 시작하였다. 한국에서의 작품 개발이 완료된 후, 바로 영어 버전으로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미국 버전의 경우 작품 기획을 책임질 현지 프로듀서를 찾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2016년 7월, 10월 두 차례의 리딩을 준비하였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소박한 출발이었기에 그리고 그 과정을 너무 몰랐기에 그 한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차례의 과정을 거쳐 그 어려움을 알게 된 지금이었다면, 쉽게 결정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되묻게 된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미국 버전의 작품 개발은 단순히 한국어가 영어로 바뀌는 것 이상의 고민과 결정을 필요로 했다. 특히, 문화와 정서 차이를 고려한 현지화 작업이 중요했다. 그 첫 번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넘버의 삭제였다. 개인적으로는 두 창작자들의 과감한 선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 해.” 넘버 가사의 일부이다. 두 헬퍼봇 캐릭터가 서로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 힘들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겠다는 내용이다. 한국 관객들을 가장 정서적으로 자극하는 넘버였지만, 미국인들에게는 노래의 장르가 너무 발라드이고 정서적인 부분이 있어 이 넘버는 빠지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두 창작자들의 의견이었다. 나는 현지의 정서를 더욱 잘 이해하고 있는 두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하였다. 작품의 현지화에 대해 생각했을 때, 서울, 제주도라는 공간적 배경이나 캐릭터의 한국 이름을 바꾸어야 하나?라고 일차원적으로 생각했던 나에게 그 나라 관객들의 정서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큰 배움이고 깨달음이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다양한 음악적, 내용적 변화들을 통해 작품은 점차 미국 관객들에게 맞는 옷을 입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피드백을 위한 7월 내부 리딩이 끝나고, 10월 브로드웨이 관계자들을 초청한 공개 리딩이 진행되었다. 관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그렇게 공감해가며 공개 리딩이 진행되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뮤지컬 작품이 뮤지컬의 중심인 뉴욕 한복판에서 브로드웨이 관계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되다니,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리딩이 끝난 후 한 백인 프로듀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며 잠시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오고 싶다며 나가기도 했고, 너도나도 우리가 준비한 데모파일이 담긴 Helperbot Inc. USB를 받아 갔다. 그렇게 이 작품의 1차 개발은 모두의 관심 속에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다음 스텝을 기다리고 상상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한 쉼표를 찍는 뒤풀이 자리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은 그 쉼표를 거두고 곧바로 다음 행보를 위한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Jeffrey Richards라는 Tony Awards 8회 수상에 빛나는 거물급 프로듀서의 연락을 받게 되면서부터였다. 작품을 프로듀싱 하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온 그는 창작자들과의 미팅을 가지고 싶다고 제안해 왔다. 그렇게 타코집에서 시작된 창작자들의 소박한 바람은 이제 ‘어쩌면 해피엔딩’이 아닌 ‘진짜 해피엔딩’을 위한 브로드웨이 진출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해피엔딩’ 10월 리딩 현장

애틀란타 극장에서의 공연

그날 이후, 리드 프로듀서 Jeffrey Richards에 의해 ‘어쩌면 해피엔딩’은 본격적인 미국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으로의 출발을 위해 연출가와 디자이너들을 섭외하고 여러 번의 추가 리딩을 통해 2020년 1월 미국 애틀란타의 지역 극장에서 열린 트라이아웃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 과정에서도 현지화 작업은 계속되었다. 재즈음악에 익숙한 미국 관객들에 맞춰 작품 속 재즈음악 편곡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한국 버전에서는 들려주지 않았던 캐릭터의 과거 이야기가 전면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리허설의 막바지에 또 하나의 발라드 넘버가 삭제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넘버 2개가 삭제되는 바람에 현지화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지만, 미국 관객들이 ‘어쩌면 해피엔딩’ 아니, 이제 미국 버전 ‘MAYBE HAPPYENDING’에 대해 느끼는 감동은 우리가 보았던 한국 관객들의 반응 그대로였다. 공연이 끝난 후 미국 관객의 반응이 궁금한 마음에 로비를 돌아다니며 무작정 인터뷰를 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내가 본 가장 감동적인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반드시 브로드웨이로 가야 한다. 내가 사는 애틀란타에서 이 작품을 먼저 볼 수 있어서 영광이다.” 이 벅찬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동안의 긴 시간을 보상받는 것 같은 마음이었다. 여기까지 달려온 두 창작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축하를 보내며 애틀란타에서의 시간은 꿈처럼 흘러갔다.

그 이후, 여세를 몰아 브로드웨이 입성을 준비하던 작품은 팬데믹으로 인해 2년간 멈춰졌다. 그리고 이제 다시 브로드웨이행 마지막 담금질을 시작하였다.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 시장에 올라간다면, 한국에서 개발된 작품이 브로드웨이에 올라가는 첫 번째 작품이 될 것이다. 훌륭한 두 창작자들과 함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뿌듯함을 느낀다. 나아가 이 작업이 있었기에 프로듀서로서 끊임없이 해외시장에 대한 관심과 도전을 이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한국뮤지컬의 NAMT 도전

‘어쩌면 해피엔딩’을 통한 한차례의 미국 진출 경험 이후, 한국 작품으로 지속적으로 해외시장에 두드려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NAMT Festival 제출을 시도하고 있다. NAMT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뮤지컬 창작 및 개발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단체이다. 미국의 뮤지컬 개발 모델을 벤치마킹하면서 이 단체 그리고 미국 뮤지컬 개발 시스템을 더 깊이 알 수 있었고 한국어로 된 창작 뮤지컬을 번역하여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장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으로 Festival 공모를 시도하였다. 그 첫 번째 도전으로 기존에 개발했던 작품 중 유니버셜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 한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고 녹음하여 NAMT Festival에 최종 제출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뮤지컬에서의 언어, 특히 영어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시적이고 그리고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강세, 라임, 스캔션 등 영어를 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했다. 글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스캔션의 예를 들어보면 영어의 단어 Sentence는 강세가 앞에 있는데 이런 경우 한 마디에서 가장 높은 음이 강세와 같은 곳에 위치해야만 가사로서 알아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Sentence의 경우 음표로 한다면 솔파미 이렇게 강세가 위치한 곳에 높은 음이 필요한 것인데, 반대로 미파솔이 되어 발음의 강세가 있는 곳이 낮은 음이 되고 역으로 올라가는 형태가 되면 관객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스캔션은 한국에는 없는 개념이며 단순히 영어의 번역과는 다른 뮤지컬 특히 영어라는 언어가 가진 특징이다. 이 과정들을 통해 얻게 된 교훈을 바탕으로 또 다른 한국뮤지컬을 영어로 바꿔 공모전에 제출할 계획이다.

해외진출 도전 과정 중 하나로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뮤지컬 전문 프로듀서 글로벌 역량강화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일정 중 현재 작업 중인 작품을 미국 현지 연출, 음악감독, 배우들과 함께 읽어보고 노래를 불러보는 간단한 형식의 리딩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실질적으로 이들이 어떻게 한국 뮤지컬을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작업 중인 작품은 ‘가야’라는 고대국가의 이야기인데 삼국시대 이전 ‘가야’의 멸망을 막기 위해 12가야를 음악으로 통합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가 연주하는 악기는 훗날 ‘가야금’이라는 악기로 불리는 한국의 전통악기이다. 이런 상당히 한국적인 소재와 역사를 바탕으로 쓰인 한국의 창작 뮤지컬이 과연 미국 시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를 확인하고 싶었다. 리딩을 해본 결과 익숙하지 않은 소재라 하더라도, 미국인들은 확실히 거리감을 느끼기보다는 신선함과 흥미를 느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야’라는 나라와 그 시대 한국 문화, 나아가 악기를 더 알아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물론 미국 사람들이 가진 전통적으로 뮤지컬은 이래야 한다라는 스테레오타입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런 지점들은 ‘어쩌면 해피엔딩’을 통해 경험한 것처럼 현지화를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병행되어야 할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뮤지컬 전문 프로듀서 글로벌 역량강화 프로그램 일정 및 리딩을 통해, 한국 뮤지컬에 충분히 미국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유니버셜한 소재가 가져다주는 공감은 한국 관객이나 미국 관객들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K뮤지컬 역량강화 프로그램 중 작품 리딩

미국시장 진출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한국 뮤지컬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크게 2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중 하나는 작품이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공감할 수 있는 소재 그리고 잘 쓰인 이야기와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 모여 만들어진 좋은 IP가 있다면 누구든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미국 시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가 잘 쓰인 이야기인지 충분한 고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문화적인 다양성과 차이를 이해하고 그 작품을 어떻게 현지화할 것인가도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특히 현지화 과정은 우리의 추측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정말 미국이라는 나라, 문화의 인사이더가 함께 그 지점을 고민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영어로 번역될 때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언어적인 특징들 그리고 뮤지컬이기에 필요한 특성들을 미리 연구하고 준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인맥 관계이다. 브로드웨이 시장은 어쩌면 한국뮤지컬 시장보다 더욱더 보수적이고 한정적인 시장이다. 내가 단순히 진출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나가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경계선들이 있고 그 경계선을 뚫는 개인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인사이더들과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인사이더들과 어떤 관계를 만드느냐가 모든 과정의 첫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돈이 있다고 해서 단순히 좋은 작품이 있다고 해서가 아닌 정말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K영화 K-POP K드라마 등의 성공적인 해외진출에 힘입어 이제 한국 뮤지컬도 다양한 지원을 바탕으로 그 출발점에 서게 된 같다. 이 출발점에 서있는 많은 한국의 뮤지컬들이 해외시장 특히 미국 시장에 더욱더 많이 진출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 필자소개

    김유철은 우란문화재단의 프로듀서로 창작자 지원과 및 작품개발 담당하고 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외 다수의 작품을 개발하였으며, 연극 집에 사는 몬스터, 붉은 낙엽 등도 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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