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4년 간 여러 가지 버전의 전속작가제를 거치며 경험에 의해 현장에서 자연적으로 정착된 대안은 유대와 책임감으로 존속 가능한 관계를 유지하는 '암묵적' 전속작가제이다. 이러한 과정의 가장 큰 순기능은 화랑과 작가의 관계가 보다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일이다. 당시 천안에만 본거지를 두고 있던 아라리오갤러리는 2005년 초, 한국작가 구동희, 권오상, 박세진, 백현진, 이동욱, 이형구, 전준호, 정수진과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월 3백만 원이라는 작가 월급 외에 작업실과 재료비 등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대우로 당시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에도 역시 미술기자였던 나는 아라리오갤러리의 관계자나 전속작가들을 인터뷰를 하고 싶었으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는 이야기다. 일간지에서는 날마다 그들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내기 바빴고, 그 기자들보다 더 바빴던 사람은 경쟁 화랑들이었다.


아라리오갤러리의 파격적 조건

상업 화랑들은 우왕좌왕하며 빼앗긴 작가를 그리워할 여유도 없이 현실적인 자구책을 모색해야 했다. 그래서 어떤 화랑은 아라리오만큼은 못 해주더라도 어쨌든 전속작가제도를 서둘러 만들기도 했고, 어떤 화랑은 잠시 솔깃해 했지만 결국 꼬장꼬장한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했다. 가령 가나아트갤러리는 지용호, 이동재, 안성하 등과 2년짜리 계약서를 쓰며 평창동과 장흥의 아틀리에를 제공했고, 표화랑은 차민영, 정용국, 이강욱 등과 전속을 맺었다. 반면 국제갤러리는 그룹전이나 개인전을 열어주거나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작가들은 있지만, 지금까지도 ‘전속’이라는 말을 쓰는 데 조심스러워 하는 듯했다.

물론 ‘전속작가’라는 말이 아라리오갤러리를 통해 처음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05년 이후 점점 상승세를 타면서 2007년 한국 미술시장은 전에 없던 대 호황기를 맞이했고, 당연히 잘 팔리는 작가들은 대우가 좋은 갤러리로 몰리게 됐다. 몇몇 인기 작가들의 경우, 품귀현상까지 빚어지면서, 될 성 싶은 작가들을 미리 ‘찜’해두기 위해서라도 명확한 계약관계, 즉 전속작가제가 화랑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번졌다.

특히 이 시기에 생겨난 몇몇 젊은 화랑들은 화랑 경영의 전문성을 내세우기 위해서, 또는 오랜 전통 대신 끈끈한 유대적 집단이라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서 전속작가제를 받아 들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원앤제이갤러리다. 개관과 동시에 전속 작가를 발표했고, 개관하고 1년 동안 정말 전속 작가들의 개인전만 열었다. 특이한 점은 이렇게 전속 작가를 전면적으로 내놓으면서 작가 월급이라든가 작업실 제공 같은 혜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대신 갤러리 측은 최선을 다해 전속 작가의 판매와 프로모션을 책임진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주는 만큼 받는 것 아니겠는가. 대개 전속 작가제를 운영하는 화랑은 소속 작가에게 다른 국내 상업 화랑에서 매매 및 전시 활동을 일체 금지시키기도 하고, 사전 협의를 하면 가능하되 전속 화랑에서 다른 화랑에서 팔린 작품 가격에서 10~20%의 커미션을 받아가기도 한다. 화랑에게 혜택을 받은 만큼 유통에 대한 자율성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작가와 작품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물론 갤러리스트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작가들 사이에서는 하기 싫은 작업을 하도록 갤러리 측에서 압력을 가한다거나, 여러 명의 전속 작가들 중에서 잘 팔리는 작가만 편애한다거나 등등의 잡음이 들려오기도 했다.

아리리오 갤러리, 가나아트센터, 국제갤러리


전속작가제의 명과 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웃지 못 할 일도 많았다. 그 즈음에 젊은 작가들 2명 이상이 모였다 하면 하는 이야기가 누가 이번에 어디 전속이 됐다더라, 어느 갤러리 대우가 더 좋다더라, 거긴 작가들을 등쳐먹는 곳이라더라 등 부러움 반, 의심 반이었으니 말이다. 전속작가제를 둘러싸고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아, 모 갤러리는 전속작가를 결정했으나 그 명단을 절대 공개하지 않았다. 한때는 그 갤러리의 전속작가가 50명이라는 오보가 나서 미술계가 한바탕 술렁이기도 했지만, 이후 11명으로 알려졌다. 화랑 업계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곳’으로 불리던 그 갤러리의 관계자는 작가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로, “전속작가가 다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하곤 했다. 물론 작가들 사이에서는 서로 아는 처지라 몇 명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명확하게 드러난 명단은 없었다. 결국 앞으로 열리는 개인전을 통해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안타깝게도 갤러리의 생명이 짧아 그 작가들이 정말 누구였는지는 끝까지 묘연하게 됐다.

최근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의 몇몇 멤버가 기획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 일로 연예계가 떠들썩했다. 2005년부터 유행처럼 번지던 전속작가제를 두고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에서 연예인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맺는 ‘노예 계약’과 다를 바 없다”는 어느 중견 작가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미술계에도 연예계에서나 벌어지는 이런 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4년이 좀 넘는 시간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 사이 미술시장은 최전성기를 맞기도 했고, 뒤이어 급격한 하락세를 겪기도 했다. 특히 전속작가제는 자금 순환이 순조롭지 않은 상황에서는 유지하기 힘든 시스템이다. 시장 경제의 흐름, 갤러리의 내부 구조, 컬렉터의 취향, 작가의 컨디션 등 모든 것이 변하는 가운데, ‘전속’과 ‘계약서’라는 단어 자체에 지워지는 부담감이 적지 않다.


여러 가지 버전의 전속작가제, 화랑과 작가 관계 보다 명확해져

그래서 최근의 화랑가에서는 상호 간의 신의를 바탕으로 하는 ‘암묵적’ 전속작가제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물론 지난 3~4년 간 여러 가지 버전의 전속작가제를 거치며 경험에 의해 현장에서 자연적으로 정착된 대안 일 것이다. 전속작가제의 가장 큰 순기능은 화랑과 작가의 관계가 보다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과거 원로작가들이 이 화랑 저 화랑을 갈아탔던 것은 ‘상도’의 문제라기보다, 화랑을 단지 전시를 한 번 열고 마는 성격 없는 공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굳이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아, 이 작가는 저 화랑 소속이지!”라는 인식이 심어져 있을 만큼 작가와 화랑 간의 관계가 긴밀해졌다.

또한 계약에 의지하지 않는 대신, 서로의 유대감과 책임감에 의해 존속 가능한 관계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관계가 가능하려면 사전에 화랑과 작가 간의 탐색전이 필수적인데, 작가에게 믿음을 주려면 평소 화랑의 작품 스타일과 경영 마인드를 올바르게 정립시켜놓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최근에 개관한 한 갤러리 대표에게 물었다. 만약 시간이 지나, 작가가 지금보다 크게 성장하게 되어 다른 화랑에서 보다 좋은 조건으로 제의가 들어온다면 어찌할 것인가라고. 그는 “그때는 ‘쿨’ 하게 헤어질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고 답했다. 마치 결혼이라는 사회제도보다 애정으로만 관계를 지속하는 요즘 연인들처럼.




호경윤

필자소개
호경윤은 동덕여대 큐레이터과를 졸업하고, 현재 미술전문지 월간 [아트인컬처]의 수석기자로 재직 중이다. [네이버] [주간동아] 등에 고정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전시《출판_기념회》(2008, 갤러리팩토리)를 기획한 바 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