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뮤지엄은 완성된 그림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역할을 가진 기존의 미술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활동의 거점을 의미한다. 미술관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거주하며 창작하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이론가들의 연구, 거주를 통한 작가 간(국가 간)교류, 그리고 지역사회를 위한 공공적 활동을 레지던시를 통해 구현하는 것이다.

레즈 아티스(Res Artis)는 1993년 네덜란드를 기반으로 창설된 ‘예술가 거주 프로그램’(Artist Residency, 이하 레지던시) 운영 기관의 네트워크이다. 여기에는 현재 40여 개국에서 시각예술, 공연예술, 영상 등 장르를 불문하고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200여 기관과 단체가 멤버로 가입되어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개관한 경기도미술관 부설 ‘경기창작센터’는 개관 기념 프로그램으로 ‘2009 레즈 아티스 컨퍼런스’를 유치했다. 10월 30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이번 행사는 해외의 레지던시 시설 기획운영자, 한국의 예술가, 지원기관 종사자 등이 참가한 가운데 이틀 간의 컨퍼런스, 그리고 마지막 날 한국의 창작센터 투어로 구성되었는데, 행사의 메인 프로그램인 컨퍼런스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포스트 뮤지엄, 작가의 역할 변화

경기창작센터 중앙동컨퍼런스 개회 인사말에서 김홍희 경기도미술관 관장은 레지던시에 대한 최근의 관심과 경기창작센터와 같은 구체적 실현의 배경으로 ‘포스트 뮤지엄’(post-museum)을 언급했다. 김 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포스트 뮤지엄이란 완성된 그림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역할을 가진 기존의 미술관 기능에 한계가 드러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활동의 거점을 의미한다. 미술관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거주하며 창작하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이론가들의 연구, 거주를 통한 작가 간(국가 간) 교류, 그리고 지역 사회를 위한 공공적 활동을 레지던시를 통해 구현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첫날 세션 ‘아트레지던시와 미술관’에서는 미술관에서 아트레지던시가 필요하게 된 이유와 배경 등을 설명하는 강연이 있었다. 미국의 아시아소사이어티 미술관의 멜리사 추 디렉터는 미술관의 기능 확장이 필요한 이유를 작가들의 역할이 확장된 데서 찾는다. 최근 현대예술에서 작가는 단순한 창작자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이자 큐레이터이자 개최자로서 역할이 확장되었다. 따라서 “생산의 장소(스튜디오)와 전시의 장소(미술관)의 거리가 점차 허물어져 가는”(권미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교수) 상황에서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킬 다른(포스트) 공간이 부상하게 된 것이다.

강연에 이어 토론에 나선 발제자들은 공통적으로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계’를 레지던시의 핵심적인 활동으로 꼽았다. 마가렛 슈 뱀부컬처인터내셔널 디렉터는 개인 소유의 양계장을 창작스튜디오로 개조하여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비엔날레와 레지던시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미술관에서 할 수 없는 대안적이고 시의성 있는 공공적 예술 활동을 통해 시민과의 접점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사례를 소개했다.

호주의 큐레이터이자 레즈 아티스의 이사이기도 한 니콜라스 수타스 역시 기존 미술관의 체제 변화와 지역사회와의 관계 변화를 드러내는 것이 레지던시라고 전제하고, 개방된 구조 에서의 실험과 작가와 지역사회 상호 혜택을 위한 협력과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했다.


아트레지던시와 지역사회 협업

2009 레즈 아티스 컨퍼런스
둘째 날 세션 ‘아트레지던시와 타 기관’에서는, 그렇다면 이러한 역할을 요구받는 아트레지던시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구조가 갖추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사례와 제언이 이어졌다. MIT 시각예술프로그램 디렉터인 우테 메타 바우어는 공학으로 유명한 MIT에서 첨단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예술창작을 위해 MIT 내 기관들이 협력하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비단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인종, 다전공이 공존하는 학교의 여러 연구기관과 협업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들은 나아가 현지의 다른 교육기관, 정부, 민간기업과의 공동기획 등을 통해 레지던시의 결과물을 지역사회에 환원해고자 노력한다고 이야기했다.

박경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그간 지역 운동가와 예술가가 협력하여 진행해온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비록 직접적으로 레지던시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일정한 공간에 일정 기간 체류하며 창작활동을 도모’하는 활동을 이르는 기존의 레지던시의 개념에서 또 한발 나아간 ‘유목형 레지던시’를 제안하며 이러한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기관, 전문가, 행정가, 주민과의 협업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예술/비예술) 기관 간 협업의 중요성은 다른 예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도쿄원더사이트의 유사쿠 이마무라 디렉터는 2007년부터 레지던시를 운영해온 도쿄원더사이트의 경우 도쿄도정부의 정책의지로 설립됐지만, 지속적인 (시행착오와) 결과물을 통해 도쿄도에 문화예술 정책을 제안, 설득하는 위치를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도쿄원더사이트는 운영의 자율성 획득과 동시에 예술지원이 가능하도록 도의 도시법을 개정하고, 예술지원을 담당하는 기관이 설립되는 데 기여하게 되고, 민간기업과 비정부기구(NGO)가 함께하는 ';도쿄문화발신프로젝트';(Tokyo Art Point Project)라는 도 차원의 대대적인 문화예술 프로젝트라는 성과를 낳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컨퍼런스 참가자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계’와 ‘타 기관과의 협력’이라는 성공적인 레지던시의 방법론, 혹은 사명을 수도권을 중심으로 속속 개관하여, 이제 막 첫걸음을 준비하고 있는 창작센터들이 어떤 식으로 실천해나갈지 기대해본다.





고주영

필자소개
고주영 _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컨설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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