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이었던 것은 유휴시설을 활용한 문화공간들이, 재건축이나 개조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학교, 은행, 결혼식장 내외부를 모두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설명을 위해 동석한 해당 공간 운영자들은 넉넉하지 않거나 한정된 예산으로 시설투자보다는 프로그램 개발이나 운영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23일부터 27일까지 2009지역문화아카데미 해외연수 ‘창의적인 지역문화 개발사례 견학’이 진행되었다. 이번 해외연수는 지난 9월과 11월 개최된 2009지역문화아카데미 지역문화 행정가/활동가 연수 프로그램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다. (관련기사보기 - “지역문화에 대한 행정가들의 열기”) 주제별로 정책과 사업을 구상하는 조별워크숍에서 선정된 우수 조 및 우수 연수자 31명이 참여하고 멘토 역의 세 명의 전문가가 동행했다.

이번 연수에서는 도쿄, 요코하마, 가나자와 등 일본의 세 도시를 방문하여 각각 창의적인 지역문화 개발 사례로 주목되고 있는 지역문화공간의 운영 현황을 알아보고, 직접 해당 기관 담당자로부터 운영 철학, 주요 활동 정보를 나누고 공간들을 견학하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니시스가모 아트팩토리(도쿄), 뱅크아트1929(요코하마), 히가시차야 거리(가나자와)

일본 제일의 대도시 도쿄는 도심 속의 폐교, 지역민과 밀착된 문화공간 운영사례 (니시스가모 아트팩토리, 세타가야 생활공방 등)를, 2004년부터 ‘창조도시 요코하마’를 추진하고 있는 일본 최초 개항도시 요코하마에서는 근대 건축물을 재활용한 문화공간(뱅크아트1929, 창조공간 반코쿠바시SOKO, 규나사카 스튜디오 등)과 매춘거리를 예술로 정화한 황금정 거리를, 공예 등 풍부한 전통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가나자와에서는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한편 현대화된 문화공간들(히가시차야 거리,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우타쓰야마 공예공방, 가나자와21세기 현대미술관)을 살폈다.


재건축, 개조 거의 하지 않아

방문했던 공간 대부분은 시민들을 위한 공공 문화공간으로 시나 구 단위의 정책이나 지원을 통해 설립되거나 보존되었지만 운영이나 유지는 서로 달랐다. 시나 구가 직접 운영하기도 하고 또는 운영을 위해 재단을 설립하거나 문화예술 전문가나 비영리예술전문단체들에게 운영을 일임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휴시설을 활용한 문화공간들이, 재건축이나 개조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폐학교를 활용하고 있는 도쿄의 니시스가모 아트팩토리, 요코하마의 공공폐시설(은행, 선박창고 등)을 활용한 문화공간 뱅크아트1929, 시립 결혼식장을 연습실로 운영하고 있는 요코하마 규나사카 스튜디오 등 학교, 은행, 결혼식장 내외부를 모두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설명을 위해 동석한 해당 공간 운영자들은 넉넉하지 않거나 한정된 예산으로 시설투자보다는 프로그램 개발이나 운영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문화공간으로써 필요한 시설을 갖추기 위해 새로 건축하거나 개조에 대한 예산을 적지 않게 투입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니시스가모 아트팩토리의 아키코 요네하라는 "별다른 개조 없이 지역주민들이 문화공간을 가깝게 친근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학교’라는 공간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정화를 추진하고 있는 요코하마 창조도시 전략은 귀 기울일 만하다. ';크리에이티브 시티 요코하마';의 핵심인물인 나카하라 마사하루 박사는 1시간 반 동안의 강의에서 "요코하마는 문화예술의 창조성을 굳게 믿고 있다. 이는 20여 년이 걸려 확립된 도시디자인, 근대건축물 문화공간 활용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매춘과 범죄(야쿠자)로 악명이 높았던 황금정을 문화예술을 통해 재생하고 있다. 유곽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에 예술가가 정주하게 되면서 갤러리, 영화감상실, 창작 스튜디오, 예술가 레지던시로 거듭났다."고 말한다. 작고 조그만 공간들이 새싹이 피듯 만개해 가는 모습은 사뭇 인상적이었다.

'크리에이티브 시티 요코하마'의 나카하라 마사하루 박사(좌), 황금정의 예술가 레지던시 공간(우)



가나자와 공방 입주 작가, 반 이상 정착

도쿄와 요코하마의 방문 일정을 마치고 일본을 횡단하듯 8시간의 버스여행 끝에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창조도시(공예)로 선정된 가나자와에 도착했다. 가나자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쟁이나 지진 등의 대규모 천재지변을 겪지 않아 역사적인 거리와 전통공예를 비롯한 전통예술이 이어져 오고 있는 도시이다.

가나자와시 창조도시 추진전략을 발표한 류타 타테이와 도시정책기획국 국장은 "가나자와의 역사와 인적자원 그리고 전통이 살아 있는 공간을 보존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개발하는 과정을 통해 창조도시로서 재탄생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우타쓰야마 공예공방 등 일반인, 학생, 중견예술가 등 다양한 층의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는 공간과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우타쓰야마 공예공방의 한국인 직원인 김기태 씨는 "시설, 유통지원을 포함한 가나자와의 문화예술 인프라,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지원책이 전국에 있는 예술가들을 유인하고 있다. 공예공방에 입주하여 연수를 받고 있는 예술가들의 반수 이상이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반수 이상은 가나자와에 정착하게 된다. 가나자와는 공예분야의 중심이다"라고 말하며 가나자와시의 인재 양성과 예술 인프라 구축 사업에 강한 신뢰와 애정을 내보였다.

전통과 현대산업의 만남을 주제로 한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건축으로나 프로그램으로나 일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가나자와시와 함께 가나자와시 지역 초등학교 4학년생이면 필수코스로 박물관 체험을 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어린이들의 창의성 개발을 위한 전격프로젝트다.

가나자와 창도도시 추진전략을 발표,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우타쓰야마 공예공방



관이 세우고 민이 운영한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방문을 끝으로 모든 연수일정을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 날 밤 연수일정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자리를 가졌다. 멘토로 함께한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는 연수를 정리하며 "뱅크아트1929의 오사무 이케다 씨도 강조했듯이 일본 지역문화 개발 사례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관이 세우고 민이 운영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요코하마시와 가나자와시의 창조도시추진과나 도시정책기획국의 전략에서도 보이듯 "행정에서의 리더십의 중요성"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박옥희 씨(밀양시청 문화관광과)는 “견학했던 공간들 대부분이 무료로 운영되는 시설이었다”며 “우리의 경우 정책이나 법적으로 무료개방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예술활동이 정책이나 법에 막히지 않도록 현장을 세심하고 돌아보는 행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이번 해외 연수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한편 신희숙 씨(전통연희단 잔치마당)는 “연수프로그램도 모두 좋았지만 지역문화아카데미를 통해 전국의 활동가들과 만나고 소통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성과인 것 같다”며 네트워킹을 강조했다.

사흘간의 세 도시 13개의 공간 견학과 기관 담당자와의 만남, 2개의 정책 강의 등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연수자들은 각 방문지마다 관계자의 설명을 경청하고 자료를 꼼꼼히 챙기고 활발하게 질문을 던지고 기관 담당자들과의 네트워킹을 위해 명함을 교환하는 등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연수에 참가한 행정가, 활동가들은 민관 협력과 파트너십, 각 공간의 운영 평가, 운영의 독립성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연수 참가자들의 대화에는 행정과 현장 간의 보다 원활한 소통을 촉진하고 서로간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고자 하는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었다.





주소진

필자소개
주소진 _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컨설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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