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월드뮤직이 상품처럼 팔리면서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경제성이라는 막강한 힘 앞에 월드뮤직은 자신만의 고유성을 타협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타웁킨 바이아 문화마켓 음악감독은 이런 모든 상황들 때문에 문화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우려한다.

삼바, 프레보, 마라카투, 카림보, 보사노바 하면 떠오르는 나라. 기념하고픈 삶의 순간마다 열정적인 춤과 음악을 빼놓지 않는 나라, 브라질. 유럽의 스페인과 포르투갈부터 서아프리카의 문화까지 여러 토착 문화가 녹아들어있는 곳이 브라질이다. 이러한 문화적 전통은 흥겨운 브라질의 춤사위와 풍성한 문화 행사들에 그대로 살아있다. 이렇듯 브라질 문화에는 인류가 이룩한 최고의 공연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브라질과 다른 나라의 문화가 만나는 세계적인 난장이 바로 매년 열리는 ‘바이아 문화마켓(Mercado Cultural da Bahia)’이다. 이 행사는 축제 공연과 콘서트가 어우러진 대규모의 문화박람회로 지리한 회의나 토론을 배제하고 뛰어난 음악과 춤을 선보이는 진정한 ‘문화의 시장’이다. 살아 숨 쉬는 문화를 그대로 펼칠 수 있는 공연의 장이 되자는 것이 그 취지이다. 브라질의 문화적 전통인 다양성을 이어가자는 것이다.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전통이 된 이 행사는 작년 11월 바이아 주도인 살바도르를 비롯한 총 8개 도시에서 제9회 행사가 열렸다. 바이아는 브라질의 26개 주 중 하나로 대서양을 바라보는 동북지방에 위치해 있는데 역사적으로 풍부한 문화적 전통을 지닌 곳이다. 카에타노 벨로조, 힐베르토 힐 같은 유명한 음악가를 여럿 배출하기도 했다.

바이아 문화마켓 포스터, 바이아지역의 민속행사인 (Boi de Dona Laurinha), 바이아지역 전통의 민속춤(Samba de Dona Dete)

바이아에서는 거리, 식당, 공원, 어디를 가나 이 지역의 대표적인 리듬 ‘바이옴Baiao’이 귓가를 파고든다. 그야말로 바이옴 천지이다. 브라질사람이 아니라면 생소하겠지만 브라질 현대 음악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음악이다. 전통기악곡인 바이옴은 원래 고대 피겨댄스나 유럽의 무도장 춤에서 유래되었다. 브라질 동북지역에서는 살롱이나 파티는 물론 종교행사나 기념식에서도 지역악단이 연주하곤 한다.


장르, 권역 망라하는 폭넓은 참여

올해 마켓의 주제는 ‘여행(이동)’으로, 사람들의 참여와 예술적 표현의 만남을 일컫는다. “여행이라는 주제 아래 바이아의 길을 따라 세계적인 문화 프로덕션과 지역문화운동이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제9회 바이아 문화마켓의 목표이다. 이 말에는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으로 다양하게 공동체들 간의 경험을 교류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올해 행사에서도 지역 공동체가 여러 차원으로 뻗어나가면서 어린이와 청소년 관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대대적인 노력을 쏟아 부었다.

올해는 폭넓은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개인 아티스트, 문화적 음악그룹, 월드뮤직 그룹은 물론 댄스그룹이나 극단 등도 참여해서 세계인의 나눔과 배움의 장이라는 행사 취지를 빛내주었다. 브라질에서는 아 바르카, 봉가르, 레드로포게테스, 트리오 아르기다 등 노래패나 악단은 물론이고 마리에네 데 카스트로와 마씨엘 살루같은 솔로 가수들도 참가했다. 해외에서는 스페인 중동부의 갈리시아에서 온 알로 이르마오, 멕시코의 후안 파블로 빌라와 아르투로 로페스, 아르헨티나의 마리아나 바라히, 이스라엘의 이단 라이헬 프로젝트 등이 함께했다. 한국에서는 장고 앙상블 소나기프로젝트와 판소리와 굿 공연을 보여준 채수정예술단 두 팀이 참가하였다.

문화, 관광, 생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 브라질 음악단체와 일반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소나기프로젝트 워크숍

작곡가이면서 제9회 바이아 문화마켓을 지휘한 벤하민 타웁킨 음악감독은 이번 행사에 대해 예리한 분석을 내놓았고 우린 열띤 토론을 나누었다. 그는 바이아 문화마켓이 전환기에 접어들었다고 하면서, 세계 각국의 문화시장에는 고유한 특수성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음악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바이아 문화마켓이야말로 예술가들이 사상을 교류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이며,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했다. 과거에는 행사 내용의 90%가 브라질 예술이고 10%만이 해외예술이었지만 이제는 그 비율이 반반으로 높아졌다. 이렇듯 세계문화 시장에 대한 넓은 포용력이 바이아 문화마켓의 특성으로 자리 잡으면서 지역 공동체와 세계 예술인들과의 만남도 풍성해졌다.


“음악은 상업성 아닌 관객을 중시해야”

전통은 핵심적인 요소지만 한구석에 있는 거미줄처럼 문화를 과거에 묶어두는 덫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타웁킨은 역설한다. 전통은 이 시대의 관객과 소통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월드뮤직이 상업주의에 따라 상품처럼 팔리면서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경제성이라는 막강한 힘 앞에 월드뮤직은 ‘월드비트’ ‘글로벌’ ‘팝’ 등의 딱지를 붙인 채, 미묘한 스타일과 전통을 흐려가면서까지 자신만의 고유성을 타협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음악가들도 방송과 음반 매체들이 전 세계 음악시장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타웁킨은, 음악은 상품성이 아닌 관객을 중시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모든 상황들 때문에 그는 문화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스라엘 이단 라이헬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단 라이헬 프로젝트는 이스라엘 최고의 대중음악 그룹으로 사랑과 인내의 메시지를 통해 이스라엘 대중음악계의 변모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이 그룹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카리브해와 중동의 마캄(maqam) 음악 스타일을 기본으로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아프가니스탄 등의 이스라엘 난민 음악가들을 합류시키고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음악 스타일의 융합과 결합을 통해 새로운 잠재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전 세계 대도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클럽 음악처럼 되고 말았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멤버를 끌어 모아 잘 팔리는 록밴드와 음악을 만들어낸 셈이다. 벤하민 타웁킨에 따르면, 이 밴드의 독특함은 음악 전면에 흐르는 두루뭉술한 팝 스타일에 진작 묻혀버렸을 뿐 아니라 브라질 사람들은 클럽 댄스만 좋아한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일종의 문화적 모욕이라고 주장한다.

상파울로 음악그룹 아 바르카(A Barca)
올해 바이아 문화마켓에는 그와 대조적인 그룹이 있었다. 상파울로에서 온 아 바르카는 대중음악을 하면서도 브라질 음악의 흐름을 보고 브라질 음악을 연구한다. 이들은 다양한 창작활동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생산하는 동시에 전통을 기록하고 교육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토착문화와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깊이 들여다본다. 또한 브라질에 있는 가난한 공동체들과 유대를 맺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왔다. 이 작업의 일환으로 한 노인이 부르는 노래를 비디오에 담아 작업하기도 하였는데, 이 노래는 아마 이들이 아니었다면 브라질 전통음악에서 영영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이런 독특하고 의미 있는 작업들은 아 바르카의 조직 취지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아 바르카가 이렇게 독특하고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설립 목적에 잘 나타나있다. “전통음악이야말로 브라질 예술가들이 앞으로 세계적인 예술 작품을 창작하고 발전해나가는 데 있어서 훌륭한 자양분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 바르카는 전통적인 지역공동체에서 예술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충분히 반영하려 한다.”

바이아 문화마켓에 참가하는 동안 나는 우연한 기회에 아 바르카 그룹의 리더이자 피아니스트인 링컨 안토니오씨의 안내를 받아 살바도르의 카사블랑카에서 열리는 문화행사에 가볼 수 있었다. 칸돔블레 무속의식 중 하나인 옥숨(Oxum)으로 물의 신을 위한 축제였다. 안토니오가 한국 손님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우리에게 아 바르카 그룹이 작업하는 방식을 보고 들을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아 바르카는 전통 행사에서 음악적 소재를 찾아 현대적인 공연장에 도입한다. 필자도 이러한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시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거미줄에 묶이지 않고 외연을 넓히다

한국 공연팀인 소나기프로젝트는 타악패로 다섯 개의 장구로 다양한 전통 장단을 들려준다. 한국의 장단은 공간을 뛰어넘어 브라질의 리듬이나 즉흥연주와 형제처럼 닮아 있어서 브라질 관객들에게도 친숙했다. 특히 소나기프로젝트의 리더인 장재효는 예부터 내려오는 뿌리 깊은 한국의 전통장단에 대담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물놀이 장단은 원래 4가지 타악기로 연주해야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장구 다섯으로 풀어낸다. 장구의 음색과 힘찬 표현력을 파고들어 옛것에 발 딛고 이 시대의 새로움으로 다시 빚어 올린 그들의 해석은 특별한 음악적 시각과 체험을 안겨준다. 이야말로 거미줄이 외연을 넓힌, 옛것이 새로이 태어난 완벽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한국공연단 채수정예술단은 판소리와 망자를 위한 무속의식인 씻김굿을 선보였다. 물론 바이아 문화마켓에서는 판소리와 굿의 문화적 맥락이 관객들에게 설명되지 않았지만, 이 음악이 지닌 힘과 열정은 시차 없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한국만의 독특하고 풍부한 음악적 우아함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을 깊숙이 파고든 이 한편의 드라마에 브라질 관객들도 호응한 것이다.

채수정예수단(좌)과 소나기프로젝트(우)

음악은 인류가 빚은 가장 복잡한 문화유산 중 하나다. 이제 전통은 현대 무대에서 제자리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자신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관객의 관심을 얻기 위해, 더 뛰어난 감성과 기예를 보여주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전통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혼을 만날 수 있다. 음악이 열리면 시간의 벽은 사라진다. 그래서 옛것과 새것이 서로의 얼굴을 맞대면 사실 그 둘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어떤 것이 진정한 삶이고, 삶의 표현이며, 위대한 음악이 주는 힘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바이아 문화마켓이야말로 이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하며, 우리의 삶이 얼마나 풍성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타웁킨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세계 문화시장은 전환기를 맞고 있고, 전통은 항상 진화중이다.





하주용

필자소개
하주용은 현재 뉴욕산조축제, 심포지움과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미국투어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뉴욕시립대학 대학원(The Graduate Center of the City University of New York)에서 음악이론 및 민족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뉴욕 버룩칼리지, 뉴욕시티칼리지 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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