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예술극장은 공연계에서 떠맡아야 할 미션이 폭넓다. 그러다보니 아르코예술극장만의 도드라지는 색깔 있는 컨셉을 끌고 가기에 어려움이 있다. 공연계가 요구하는 미션을 도외시하고 독자적인 컨셉을 추구하는 것도 적절한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세분화하는 것이었다.

최용훈 전 아르코예술극장 극장장이 2009년 12월 31일자로 임기를 마쳤다. 2007년 5월부터 2년 8개월간의 극장장 겸 예술감독 직이 마무리된 소감을 물었더니 “시원하다”는 한마디가 전부다.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까 싶었던 예상과 달리 너무 짧은 대답에 질문이 무색해진다. 그런데 대체 무슨 대답을 원했기에 이 대답이 당황스러운 것일까.

최용훈 전 극장장은 아르코예술극장의 첫 극장장이다.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 극장장이 될 것 같다. 앞으로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은 대학로공연예술센터가 통합운영하게 된다.) 지난 2007년 아르코예술극장과 아르코미술관을 운영하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는 예술감독직을 처음으로 공모하였다. 대학로 한복판 마로니에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이 두 공간은 1981년(극장), 1979년(미술관) 각각 개관할 당시 공연 시각 분야의 발표공간이 부족한 현실에서 공간지원을 주요한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3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대관 위주의 운영에서 탈피, 프로그래밍을 강화하여 공간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운영방식, 운영목표의 변화에 따라 예술감독직을 신설했던 것이다.

현재 100여 개의 공연장이 밀집한 대학로의 모습은 아르코예술극장 개관이 그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개관 당시와 현재의 대학로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비단 대학로만이 아니라 다수의 공공극장 민간극장들이 개관하면서 ‘발표공간 지원’이라는 대관 위주의 운영에 변화를 모색할 시점에 왔던 것이다. 최용훈 전 극장장에게 맡겨진 소임, 한국공연예술계의 대표적 극장의 새로운 변화라는 소임이 결코 가볍지 않았을 터인데, ‘시원하다’는 한마디가 전부라니. 그러나 구구절절 설명할 수 없는 ‘만감’이 이 짧은 한 마디에 들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용훈



극장장 겸 예술감독, 아직은 효율적이다

김소연(이하 김) 명함을 보면 국문과 영문의 직함이 다르다. 국문에는 극장장으로 되어 있고 영문에는 예술감독으로 되어있다. 국내에서는 극장장이 더 영향력이 있고 외국 공연계와 접촉할 때는 예술감독이 더 영향력이 있다고 했었다.(웃음) 정확한 역할이 무엇이었나.

최용훈(이하 최) 처음 예술감독으로 공모를 했는데 중간에 과정에 좀 있었고 두 역할을 모두 맡는 것이었다. 직함은 극장장이다.

최근의 추세는 행정/경영과 예술감독을 분리하는 것인데 두 가지 역할을 한 사람이 감당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물론 이상적인 방식은 행정/경영과 예술감독이 각각 전문성을 가지고 조화롭게 극장을 운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과도기이고 그런 점에서 두 역할을 겸임하는 것도 가능한 선택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효율적인 부분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최용훈 기획극장으로의 전환을 표방했지만 예산은 여전히 대관으로 운영하던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전체 예산에서 극장 유지에 들어가는 예산의 비중이 기획예산에 비해 매우 높았다. 예산을 뒤지고 뒤져서 기획제작 예산을 최대한 확보했다. 물론 기획극장으로 운영하는 데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지만. 만약 행정/경영과 예술감독의 역할이 분리되었다면 예산 구조를 재조정하는 데에도 더 많은 과정과 절차가 필요했을 것이다. 물론 운영자인 예술위에서도 도움이 있었고. 공공기관의 예산 항목을 변경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또 그런 경직성이 있기 때문에 지금 만들어 놓은 구조가 안정적으로 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

극단 작은신화의 대표이자 연출가로 활동해왔다. 얼마 전에 끝난 <에이미>의 연출을 맡기도 했는데, 극장장 임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연출작업을 시작한 셈이다. 예술가, 창작자 출신의 극장장도 이색적이었다. 1997년 세계연극축제 사무국장, 한국연극협회 부회장 등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비슷한 연배의 다른 연출가들에 비해 축제나 협회 등의 일을 많이 해왔다. 그래도 민간에서 예술행정을 하는 것과 공공극장을 운영하는 것은 많이 다르지 않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일찍 일을 맡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행정적 업무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일의 방식이 다를 것이라는 예상은 있었다. 예를 들어 민간에서는 순발력 있는 조정이 가능하지만 공공은 정해진 룰에서 움직여야 한다. 또 공공영역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지 않나. 결과보고라든가 결산이라든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데 누가 봐도 납득할 근거를 최소한으로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과정 속에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창작자 출신 극장장이기 때문에 가졌던 남다른 포부는 없었나. 사용자(?)의 경험에서 이렇게 해보겠다는 것이 있었을 텐데.

극장은 관객과 예술가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예술가들이 국공립극장에 대해 갖는 이미지 중의 하나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최선의 조건으로 예술가들이 극장을 이용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극장 스태프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 극장장이었을 것 같다.

글쎄.(웃음) 구체적인 업무를 지시하는 것보다는 극장이 어땠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많이 했다. 그리고 우선 내가 그런 자세로 일하려고 했다.

극장장을 맡은 후 공연장 객석에서 상당히 자주 마주쳤던 것 같다. 홍대 앞의 작은 소극장에서도 우연히 마주쳐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사실 대학로 연출가들은 잘 찾지 않는 극장이었고, 공연도 신인의 작은 작품이었다. 공연을 상당히 많이 보았던 것으로 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많이 보고 많이 만나려고 했다. 특히 후배들의 작업을 잘 몰라서 걱정했던 부분이 있다.


먼저 필요한 것이 극장의 프로그래밍 능력

최용훈
사실 밖에서 볼 때는 극장장 최용훈보다는 예술감독 최용훈이 먼저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프로그램이다 보니. 예술감독으로서 프로그램에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무엇인가.

아르코예술극장은 공연계에서의 미션이 폭 넓은 극장이다. 서울연극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모다페, 춤작가시리즈 등은 공연계의 대표적인 프로그램들로 아르코예술극장의 기본 반찬이랄 수 있다. 즉 공연계에서 떠맡아야 할 미션이 폭넓다보니 아르코예술극장만의 도드라지는 색깔 있는 컨셉을 끌고 가기에 어려움이 있다. 공연계가 요구하는 미션을 도외시하고 독자적인 컨셉을 추구하는 것도 적절한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세분화하는 것이었다. 프리젠트, 파트너, 초이스, 챌린지, 기획대관 등으로 프로그램을 구분했다.

언젠가 공연을 놓쳐서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lsquo;아르코 초이스로 공연된다&rsquo;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웠던 적이 있다. 공연이라는 것이 막이 내리면 사라져버리는 현장예술이라 좋은 공연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할 때 안타까웠는데, 그런 점에서 아르코 초이스는 의미 있는 공연을 좀 더 많이 이들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단순 재공연을 넘어 의욕적인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물론 초이스의 &lsquo;안목&rsquo;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가가 관건이지만.

그래서 공연을 아주 많이 봤다.

주목되는 공연을 소개하는 &lsquo;초이스&rsquo;와 젊은 창작자들을 소개하는 &lsquo;챌린지&rsquo; 이외에 &lsquo;프리젠트&rsquo;라든가 &lsquo;파트너&rsquo; 등은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았던 것 같다.

프로그램 구성에서 &lsquo;초이스&rsquo;가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lsquo;프리젠트&rsquo;는 공동제작으로 제작비중이 높고, &lsquo;파트너&rsquo;는 제작 일부를 지원한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한정된 예산에서 많은 공연을 올릴 수가 없었다. 공연 편수가 작다보니 뚜렷하게 프로그램의 성격을 보여주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극장장 겸 예술감독으로서 제작공연에 대한 욕심이 있었을 같다.

아르코예술극장은 예술지원기관이 운영하는 극장이다. 그런 만큼 예술감독의 독자적인 취향이나 비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극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아르코예술극장은 &lsquo;공간지원형 기획극장&rsquo;이다. 즉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극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타의 공공극장들과도 그 역할이 구별된다고 생각한다. 공연예술계에서 만들어지는 좋은 콘텐츠와 극장의 기획력이 만나서 활기 있는 극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최용훈 극장장에 대한 평가 중에 미학적 성취는 200점이지만 관객개발에서는 미흡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조금 더 혹평을 하자면 예술가를 섬기느라 관객을 섬기지 못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전자는 그렇게 평가한다면 고맙고 후자는 인정하는 바이다. 그런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임기), 예산과 인력과 조직이라는 주어진 시스템을 놓고 일의 우선순위를 생각할 때 먼저 할 일은 극장의 프로그래밍 능력을 제고하는 것이었다. 이 극장의 특성, 예술지원기관이 운영하는 극장이라는 것, 공연예술계의 폭넓은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 등을 고려할 때 선택한 목표가 &lsquo;공간지원형 기획극장&rsquo; 이었다. 좋은 공연은 어쨌든 관객이 찾는다.

하지만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 홍보와 마케팅이 없으면 눈 밝고 귀 밝은 관객들만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

당연히 개별 공연의 홍보를 넘어 그것을 극장 브랜드로 묶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서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의 문제가 있다. 인력이나 예산 등의 기반도 필요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홍보나 마케팅 전문가가 투입된다고 극장 브랜드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작품이 있고 이것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홍보 마케팅 전문가가 있고 또 폭넓은 관객들에게 전달되기까지의 &lsquo;시간&rsquo;이 필요하다.


이제는 연출가 최용훈, 올해 연출 작품만 7개

최용훈 2년 8개월간 연출작업을 거의 접고 극장운영에 매진했다. 앞으로 극장운영에 대한 계획은 없나. 공연환경에서 극장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나 공연예술계로나 지난 2년 8개월의 경험이 밑거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지금 정보소극장을 다른 극단들과 공동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는 계획이 없다. 올해 잡혀 있는 연출 작품만 7개다. 당분간은 연출가로 충실하게 작업하고 싶다. 물론 나의 경험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얻은 것이 많다. 우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특히 젊은 창작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다보니 사람을 대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사실 작업할 때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내가 만나고 싶은 방식으로 만났던 것 같다.

당분간은 연출가 최용훈으로 만나겠다. 하지만 극장장 겸 예술감독 최용훈의 경험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김소연

필자소개
김소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lsquo;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rsquo; &lsquo;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rsquo; 등의 비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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