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야들보다 더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문화분야의 경우, 정부가 선택하고 노력을 기울인 정책방향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원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분야에서는 특히 개인의 비전이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임팩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하부조직을 거느리는 다른 정부부처들과는 달리 문화부는 비교적 적은 관리재원을 갖추기 때문에, 문화정책의 개발과 운영이 현대 정부의 가장 복잡한 업무분야 중 하나가 되었다.

[아츠 매니지먼트 네트워크](Arts Management Network, 이하 AMN) 2월호에는 유럽평의회에서 발간한 「균형잡기: 문화정책의 전략적 딜레마 21가지」(Balancing act : twenty-one strategic dilemmas in cultural policy) 보고서가 소개됐다.

AMN은 예술과 창의산업 전문가들을 위한 인포메이션 네트워크이며, 예술기획자와 행정, 경영인력은 물론 연구원, 학생, 정책입안자, 기업가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예술경영과 정책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1996년 독일최초의 온라인 예술경영지로 시작된 AMN은 현재 24,000명이 구독하고 월40,000명이 방문하는 매체로 출판 외 교육, 코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사무총장 Thorbjørn Jagland)는 유럽인권협약(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을 바탕으로 1949년에 설립된 기관으로 현재 47개의 회원국이 참여한다. 유럽평의회는 유럽 공동의 민주적 원칙 개발을 목적으로 하며 인권, 민주주의, 문화정체성과 다양성, 사회문제 해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다.


유럽평의회 Council of Europe 로고저자 프랑수와 마타라소와 찰스 런드리는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중앙과 지방의 경제가 상호의존적으로 변화되는 오늘날의 정부는 변화를 지휘하던 과거의 정부들과 달리 변화에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의 모든 업무가 그렇지만 문화는 특히 공공부문, 민간부문, 독립부문에서 다양한 파트너들과 협력해야 한다. 다른 분야들보다 더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문화분야의 경우, 정부가 선택하고 노력을 기울인 정책방향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원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화분야에서는 정책 결정자 개인의 신념에 따라 투입된 막대한 공공재원이 아무런 가시적인 변화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문화분야에서는 특히 개인의 비전이 이렇게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임팩트를 가질 수 있다.

균형잡기: 문화정책의 전략적 딜레마 21가지문화부는 이렇게 변화무쌍한 문화업무를 수행하지만 수많은 하부조직을 거느리는 다른 정부부처들과는 달리 문화부는 비교적 적은 관리재원을 갖추기 때문에, 문화정책의 개발과 운영이 현대 정부의 가장 복잡한 업무분야 중 하나가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서로 다른 정책간의 균형을 잡는 다른 정부부처와 달리, 문화부는 사회 안에서 문화가 갖는 역할에 대한 서로 다른 비전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논문을 통해 국가의 문화정책이 서로 다른 대립되는 개념들 사이에서 어떠한 위치를 선정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대립되는 개념들

마타라소와 런드리는 문화정책 결정을 위한 사고과정에서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21쌍의 대립되는 개념을 선별하여 제시한다. 우선 구조적 딜레마(Framework dilemmas)의 4가지 대립쌍을 언급하는데, 그 이유는 이 4가지 전략적 대립쌍들 사이에서 정부가 어떻게 위치선정을 하는지 여부가 다른 모든 문화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문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민주주의와 문화가 무엇인지 등의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구조적 딜레마로 시작하는 논문은 이에 영향을 받아 문화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데 필요한 전술적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순서로 이어진다.

나머지 대립쌍들은 실행 관련 딜레마(Implementation dilemmas), 사회적 개발 관련 딜레마(Social development dilemmas), 경제적 개발 관련 딜레마(Economic development dilemmas), 운영 관련 딜레마(Management dilemmas)로 나뉘어 제시된다. 이 글에서는 제시한 21쌍의 대립쌍을 소개한다. 그리고 실행, 정책수립에서 선행되는 구조적 딜레마의 대립쌍 하나를 좀 더 자세히 언급하겠다. 그 다음으로 문화정책과 공공서비스에서조차 경제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현재의 문화환경에 걸맞도록 경제개발과 운영에 관련된 딜레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추가로 제시한다.

구조적딜레마 1. 예술로서의 문화/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 문화정책은 어디까지를 포함하는가? 2. 문화활동의 대중화/ 문화라는 개념의 민주화: 문화정책의 정치적 기원은 무엇인가? 3. 문화 자체로 가치가 있는 문화/개발도구로서의 문화: 개발도구로서 문화는 얼마나 고려되어야 하는가? 4. 모두가 자유롭게 공유하는 예술/조건이 붙는 사회적 활동으로서의 예술: 예술은 얼마나 중립적이어야 하는가? 실행관련 딜레마 5.시민사회의 의견수렴/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 문화정책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6. 정부의 직접관리/ 정부의 영향 배제: 지원금은 어떻게 교부되어야 하는가? 7. 공공서비스/시장의 힘: 적정한 수준의 공적 개입은 어느 정도인가? 8. 명성에 대한 투자/공동체 다수에 대한 투자: 정부는 어떤 투자를 해야 하나? 9. 국가적 문화/ 국제적 문화: 국가적 문화인가? 국제적 문화인가? 사회개발관련 딜레마 10. 공동체의 집합/공동체: 문화정책은 소수자들의 정체성 표현을 얼마나 고려해야 하는가? 11. 문화적 다양성/단일문화: 문화정책은 문화다양성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촉진해야 하는가? 12. 문화적 유산/동시대성:문화정책은 문화적 유산과 동시대의 실험성 사이에서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13. 방문객/거주자: 문화정책의 대상은 누구인가? 14. 외향적 이미지/내부적 현실: 문화는 무엇을  더 표현할 것인가? 경제개발관련 딜레마 15. 보조/투자: 공공지원의 목적은 무엇인가? 16. 소비/생산: 정부는 문화의 소비와 생산을 어떻게 지원하는가?  운영관련 딜레마 17. 중앙집권/지방분권: 문화정책 실행의 주체는 누구인가? 18. 직접지원/위탁: 문화분야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19. 예술/예술가: 문화정책은 예술이나 예술가를 어떻게 지원하나? 20. 문화시설/문화활동: 문화자원을 어떻게 고르게 문화시설과 문화활동에 분배하는가? 21. 예술가/매니저: 매니지먼트가 얼마나 고려되어야 하는가?



문화의 범위, 문화정책의 범위

1. 예술로서의 문화 / 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 문화를 예술로 한정짓는 국가들은 주로 시각, 공연예술, 문학, 축제 등에 초점을 맞추고 극장, 갤러리, 박물관, 고건축물 등의 인프라와 유명한 예술가나 단체에 정책을 집중한다. 그 반대편의 개념은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는 모든 것들을 문화에 포함시킨다. 이러한 국가에서 예술은 독특한 지역과 지역민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많은 표현방식 중의 하나다. 민속춤, 음식, 거리문화와 패션도 문화에 포함된다. 앞서 언급한 문화를 예술로 한정짓는 국가들도 이러한 표현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이를 문화정책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방송은 한층 더 중요한 부분이다. 방송은 한 국가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프랑스나 이스라엘 같은 국가의 경우 방송분야와 관련하여 정책적으로 외부의 영향, 특히 미국의 영향을 제한한다. 문화를 광범위하게 규정할 경우, 그만큼 다양한 표현방식에 대응해야 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문화의 범위를 규정하는 행위는 문화정책의 범위와 추가적인 세분화된 정책수립에 영향을 준다.


지원 기관의 성격보다 펀딩의 목적과 조건이 중요

15. 보조금 교부 / 투자 정부로부터 직접 지원되는가 아니면 독립된 정부기관으로부터 지원되는가 하는 문제보다는 펀딩의 목적이 무엇이고 그에 따른 조건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일반 보조금은 흔히 명시된 사업과의 연계성이나 사업의 실행 기준에 무관하게 교부된다. 이는 수혜자를 의존적으로 만들고 막대한 예산의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비교적 상업적인 문화생산 분야에서는 공공지원이 투자형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영국의 과학기술예술기금(The UK National Endowment for Science, Technology and the Arts)은 상업화할 수 있는 문화분야에 기금을 투자하고 그 수익을 다시 기금으로 환원시킨다. 비영리분야에서는 매칭펀딩과 사업계획,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검토한 후 보조금을 교부하는 방식이 늘어가고 있다. 정부 지원은 일반적인 보조금 지원에서 상업적인 투자까지 다양한 방식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정부 문화정책 입안자들은 이러한 정부의 지원목적을 명시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평가하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문화자원의 효율적, 효과적 활용

21. 예술가 / 매니저 문화분야의 전문가나 공공부문의 종사자들은 매니지먼트에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 일반인들이 의사나 교사를 의료나 교육기관 서비스매니저들과 다르게 보는 것과 비슷하다. 의사는 병을 치유하고 교사는 학생을 가르친다. 이에 반해 의료기관이나 교육기관의 서비스매니저들이 하는 일은 그다지 생산적이거나 도움이 되는 일로 보이지 않는다. 음악가나 배우가 문화예술서비스 매니저를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는 매니지먼트 비용을 예술가에 대한 지원으로 돌리는 문화정책은 매우 바람직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매니저들이 없다면 예술가들의 활동은 그만큼 비효율적일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활동자체가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 매니저들의 보이지 않는 활동들, 계획의 수립, 펀드레이징, 인력관리, 리서치와 마케팅 등은 예술가들의 가치를 높인다. 물론 매니저들이 필요이상의 권한을 갖거나 매니지먼트에 과다한 비용을 책정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매니저들이 문화자원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활용에 기여한다는 점과 이들의 교육과 양성에 대한 지원이 부족할 경우 예술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문화정책은 예술가의 훈련과 양성에 더불어 매니저 양성에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저자
프랑수와 마타라소, 찰스 런드리 (François Matarasso, Charles Landry, 유럽평의회 문화정책연구개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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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욱

필자소개
심재욱은 ‘안국동 가옥 문화생산자 레지던시’의 프로그램 매니저로 활동하며 번역 및 미술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 전시부 교육정보축제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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