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케르베로스는 지옥의 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큰 개다. 이 개의 임무는 산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죽은 자는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국가, 자본, 사회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의 세 개의 머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세가지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지옥문을 통과하는 것 만큼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신화에는 산 채로 지옥문을 통과한 자가 있었다. 오르페우스는 음악으로 이 개의 마음을 다른 데로 돌렸고, 쿠마이의 시빌레라는 잠자는 약을 탄 술에 빵을 적셔 개에게 던져주었다. 음악과 술은 어쩌면 불가능한 탈주를 가능하게 하는 예술의 원형일지도 모른다.

예술경영 역시 국가, 자본, 사회라는 세 개의 머리와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본다. 나는 이 세 개의 머리 중에서 사회와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연극 작업을 해왔다. 이는 개인적인 삶의 배경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고,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의 사상적 영향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며 어쩌면 무의식의 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력한 이유를 든다면 '유토피아'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고독하고, 경쟁해야만 하고, 폭력에 시름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일 것이다.

2006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남미 순회공연을 다녀왔다. 우리는 몇 개 연극제 참여를 제외하고는 주로 마을에서 공연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마을사람들은 우리에게 공연으로 답례를 하였다. 끝나지 않는 리듬과 멈추지 않는 춤으로 우정을 나누고 우리를 환대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도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르고 시를 읊고 했던 공동체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을 그곳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극장이 마을 한복판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을 보고도 우리는 할 말을 잊었다. 10여 년 간 빚을 내가면서 부여잡고 있던 대학로의 극장을 떠올리면 너무도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물도 전기도 없던 사막 한가운데에서 마을 공동체의 문화를 꽃피워온 페루의 비차마 극장을 직접 눈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한국에서 지금껏 무엇을 해왔는지, 어떤 허상을 쫓아다녔는지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미련 없이 극장을 넘겼다. 그리고 어떤 힘에 이끌리듯, 한겨울에 경북 청송의 산골 오지에 도착했다. 15년 전에 문 닫은 학교를 빌려, 수리하고, 건축 폐자재가 그득한 운동장 한 구석을 밭으로 개간하며 마을과 함께하는 연극작업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계획도 미래도 없이 주어지는 대로 이끌리는 대로, 때로는 텃세와 부딪히고, 또 다른 외로움에 불안해 하면서, 우리를 이끌고 가는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처음 우리를 맞은 이는 세 명의 아이들이었다. 장다리를 보고는 흥미를 갖기에 타보자고 했다. 인형 만드는 것도 배우고 싶다 하고, 저글링도 가르치는 대로 빨아들이는 아이들은 마치 벌써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인을 보냈다. 학교가 자기들의 아지트였다며 나타난 이 아이들이 이제는 청송공연예술놀이터의 중심이다.

문화적으로 척박한 이곳에서 어떤 연극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환경연극’이 떠올랐다. '환경연극'은 리차드 세크너가 창시한 개념이지만 민속을 포함한 근대 이전의 거의 모든 연극을 서구식으로 정리한 용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지역의 민담이나 전설을 결합한 환경연극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국제 레지던스를 기획했다. 2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이곳을 찾아왔고 우리와 함께 꺼져가는 마을의 문화를 성심껏 일구고 갔다. 아줌마 인형극단도 만들어져 주왕산에 얽힌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선보였다. 골짜기에 묻힌 이야기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연으로 만들어 그 골짜기 민초들과 나누는 것은 도시에서 작업할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청송공연예술놀이터 아이들도 쑥쑥 커나간다. 점차 공연 횟수가 늘고, 3명의 아이들이 15명으로 늘어났다. 이 아이들이 이 마을에 남아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길 바라지만 도시로 나가더라도 자신들을 키운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갖길 바란다.

이 마을에서 30년 가까이 멈춰온 정월 대보름 놀이가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말에 쌀을 담아놓고 초를 꼽고 조왕신을 모시는 아주머니가 창고를 힘차게 여신다. 서투른 소리로 아리랑 한자락을 하고 돌아 나오는데 아주머니께서 봉투를 찔러 넣어주신다. 경로회관에서는 악기 그만 치고 저녁 먹으라고 부른다. 예전에 이 마을의 상쇠였던 닭집 아저씨가 쇠를 치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름에 놀아보는 것이 30년도 더 되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고 한해 두해 안하다 보니 이제는 귀찮기도 하고 잊혀졌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악기를 매시고는 달집을 향한다. 풍등에 돈을 꽂고 두 손 모아 기원하며 소망을 띄운다. 설날은 각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날이고 정월 대보름은 마을 공동체의 풍요를 기원하는 날이다. 그런데 설날만 살아있고 정월 대보름은 잊혀져왔다는 것은 그만큼 마을의 공동체가 자율적인 기능을 상실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날 마을 분들은 새벽 4시까지 이 마을 식의 화투를 치며 밤을 지샜다고 한다. 유토피아를 만끽한 우리도 하루 종일 잠을 잤다. 이틀 동안 마을이 조용하다. 새소리만 개소리만 닭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렇게 저렇게 또 긴 겨울을 보내고 이제 기지개를 펴고 있다.

문화는 자부심의 원천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 자부심을 지닐 수 있는 것은 문화로부터이다. 돈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음악과 술로 케르베로스를 넘어 지옥의 문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국가 브랜드로서 국익을 위한 연극을 생산하고 상품으로서 자본의 창출을 위한 연극을 시장에 내놓기도 한다. 또한 자치와 자립의 공동체가 작동하기를 바라며 연극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연극의 작동원리는 같을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이 지옥에서의 미션을 해결하고 다시 지옥의 문을 나갈 것인가.




필자소개
장소익은 연극연출가이자 배우이다. 2001년까지 극단 한강을 이끌었으며 일인극 <부네굿> <열사굿>을 계기로 나무닭움직임연구소를 만들고 <체게바라>(Che Guevara)로 중남미 6개국을 순회공연한 바 있다. 청송에 거주하며 최근 영양 원놀음, 하회 별신굿 창작인형극 <각시>를 연출했고 환경연극 국제 레지던스를 기획하는 한편 안동 가톨릭 상지대 공연예술 워크숍, 영양 문화의집과 청송공연예술놀이터에서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