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는 바쁘다. 무용과 출신인 필자의 선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하소연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다. 춤추거나 혹은 만들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소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무용가는 무진장 바쁘다’는 것이다. 춤추기 위해 의당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것들, 그리고 정작 춤추는 것, 혹은 안무하는 것과는 상관없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소한 것들이 그들을 피곤하게 한다.

우선은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데, 대학교 무용과나 예고 시간강사는 그나마도 최고의 전문직에 속한다. 대부분이 무용학원 아르바이트에 매달리는데 최근에는 이나마도 어려워 뮤지컬 오디션에 얼쩡거리거나 이조차 잘 안되면 전형적인 88만원 세대처럼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어 편의점에서 날밤 새우기 일쑤다. 덕분에 공연을 위한 연습을 밤 10시에 시작해도 전혀 이상한 것이 없는 것이 무용계의 일반적 풍토다.

여기에 안무가나 무용단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더 바쁘다. 그 바쁜 무용수들 설득하고 어렵게 구해서 작품 하나 해보려면 스케줄 짜는 것부터 난관이다. 어렵게 구한 연습실에 사람을 맞춰야 하니 출연자 모두가 한번 만나 연습하는 것 자체가 올림픽에 출전해서 금메달 따는 것처럼 어렵다. 심한 경우 극장 리허설 때 처음으로 모두가 모이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그뿐인가. 필자와 같은 평론가는 작품에 대한 질타는 물론 성장을 위한 공부 좀 하라고 난리다. 누군들 작품을 위한 연구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있겠는가? 미술관도 가보고 영화도 보면서 좋은 분들 만나 조언 구해 작품에 매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피곤에 지친 심신 대충 추스르고 정신 차려 보면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밀려온다.

작품 제작비 몇 푼이라도 얻으려면 각종 기관에 지원신청서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없는 문장력과 부족한 어휘력은 평소 활동이나 전공과는 너무나도 멀기에 몇 줄 안 되는 글이지만 참으로 막막하다. 겨우겨우 칸을 채우고 나서 일이천 만원 손에 쥐고 어렵게 공연하고 나면 이번에는 각종 세금과 보고서 작성 서류들이 밀려온다. 이건 공연 횟수와 비례해서 증가하는데 형편 좋은 대학 교수들이야 조교들 시키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무용가들에게는 모두가 인건비라는 돈이다.

여기에 해외진출을 꿈꾸거나 다양한 정보를 얻어 남들보다 한발 앞서려면 무용 창작과는 거리가 먼 정보 수집을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녀야 한다. 극장 관계자, 행정가, 기획자들 만나 운영의 효율성, 절세, 홍보 전략, 흑자 마케팅, 협력 유도, 후원과 협찬, 행정과 조직 활성화와 같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의지와 열정이 있어도 이를 마음먹은 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무용가를 너무나도 피곤하게 하는 이러한 일들이 평생 춤추면서 닥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배워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깔끔한 보고서, 명확한 무용단 운영 체계를 증명하는 완성된 행정서식 자체를 무용단 평가의 기준으로 삼으니 뒤늦게 행정학, 회계학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행정 전문인력을 고용하자니 무용단, 아니 대표자 자신이 고용주가 될 수 없는 절대 빈곤자인 경우가 태반이다.

1-리케이댄스<이것은 꿈이 아니다> 2-메타댄스프로젝트 <사이버스페이스오딧세이21> 3-국민발레단 <춘향> 4-댄스컴퍼니 더바디<바다가 죽어서 남긴 시신>

이러한 악순환의 원인은 우선 무용가 대부분을 배출해 내고 있는 대학에서 이와 관련된 것들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두세 시간 연습이 그대로 학점이 되는 시스템으로 50년을 지내온 곳이 바로 대학 무용과다. 심지어 일 년 내내 노트북은 물론 변변한 노트 필기 한번 안 하고도 다닐 수 있는 곳이 무용과다. 덕분에 무용과 자체 내에서는 단체 운영을 위한 행정 전문가 양성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조건의 현실은 무용가에게 행정 전문인력까지를 스스로 감당하게 한다. 또 대부분이 그렇게 하고 있다.

여기에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하나가 덧붙여진다. 바로 순수 무용공연만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점이다. 수요 없는 시장에 공급 과잉 현상은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적자 공연을 너무나도 당연시 여기는 무용계의 무감각은 운영과 행정 전문화를 등한시하는 주요 원인이다. 물론 수입에 비례해 작품이나 단체를 평가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또 적자를 모두 대표자나 안무가 개인이 책임졌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가 만연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적자 공연은 반드시 실패한 공연이 아니라는 정서 역시 단체 운영의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 한 몫 한다. 덕분에 무용가는 절실하게 행정 전문가를 찾지 않는다. 대신 자기가 바쁘다. 무용수 모으고, 장소 섭외하고, 돈 끌어 오고, 사람 만나면서 직접 운영하느라 바쁘다. 그야말로 작품보다는 작품 만들기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해 매진하느라 바쁘다. 정말 바쁘다.





박성혜

필자소개
박성혜는 한성대 무용학과와 숙명여대 무용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무용전문지 월간 [몸]에서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각종 일간지와 잡지에 무용 평문을 게재하였다. 현재에는 중앙대와 서울예술대학에 출강 중이며 공연예술 전반에 걸친 출판, 레지던시, 포럼을 주관하는 공연예술네트워크 판에서 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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