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월 1일 밤늦은 시간, 고(故) 백남준 작가의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인공위성을 타고 서울에 생중계됐다. 전 세계 국영TV들이 참여한 이 작품은 2500만 명이 시청한 세계 최초의 거대 위성쇼라는 사실 이외에도 비디오아트라는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이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세계를 열광시켰다. 백 작가가 &ldquo;우리에게 21세기는 1984년 1월1일부터 시작되는 것이다.&rdquo;라고 말했을 만큼 이후 미디어 환경과 예술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자신 있게 예언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26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인류는 지난 500년보다도 더 큰 기술발전을 이뤄냈으며,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세계로 인도했던 인공위성은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게 됐다. 또한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인터넷이라는 그물망이 전 세계에 펼쳐 있어 원한다면 누구와도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기술 환경의 파도를 탄 미디어아트는 필연적으로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유유히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를 시작으로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제현대미술 행사의 중심 이슈이자 분야 역시 미디어아트다. 올해만 해도 &lsquo;해외 미디어아트 거장초청 세미나&rsquo;(문화콘텐츠진흥원 주관), 미디어아트센터인 엠-플래닛(M-PLANET) 개관, 백남준, 빌 비올라와 같은 거장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미디어상설전》(리움) 등의 행사가 이어지고 있으며, 4월에는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디지페스타';(DIGIFESTA, 광주시립미술관 주최)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큐레이터들이 &ldquo;미디어아트를 다루지 않고서는 전시 구현이 어렵다.&rdquo;고 말할 정도로 젊은 작가들 상당수가 미디어 기술과 예술을 접목시킨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아트의 아날로그적 고민

&lsquo;제13회 상상마당 열린포럼-미디어아트를 넘어서&rsquo;(3월 27일)는 이러한 일련의 흐름에서 미디어아트에 대한 오해와 그 실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 포럼은 공공미술에서 미디어아트가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국내 미디어아트의 문제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의 장도 마련했다. 패널로는 민병직 전 도시갤러리 큐레이터, 손영실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양아치 미디어아트 작가가 참여했으며, 토론자로는 정용도 쿤스트독 미술연구소장이 나왔다.

왼쪽부터 정용도, 민병직, 손영실, 양아치

먼저 손영실 큐레이터는 &lsquo;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rsquo;(이하 비엔날레)가 걸어온 10여 년의 시간을 정리하면서 &ldquo;2000년 제1회 비엔날레가 IT영역의 부각(국가 주력 성장 사업)과 궤를 같이 했다면 최근의 비엔날레는 미술적인 영역에서의 새로운 확장을 보여주려는 움직임이 더욱 강해졌다&rdquo;고 전했다. 동시에 &lsquo;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Festival :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의 작년 주제 ';인간성&lsquo;(Human Nature)을 예로 들어 현 시점의 미디어아트들이 아날로그적인 주제를 고민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 손 큐레이터는 비디오아트 등 초기 전자예술(Electronic Art)이 TV모니터를 사용했듯 현재의 미디어아트가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ldquo;조형공간(건물 벽, 광고판 등)에 이미지를 투영시키는 미디어아트의 다원적인 실험이 도시라는 화두를 미디어아트 속으로 이끌어왔으며, 이러한 작업들은 관람객에게 조형적이고 유연하며 촉각적이기도 한 체험뿐 아니라 시각적 몰입 형태의 다양한 가능성도 보여줬다&rdquo;고 역설했다.

이은 발표에서 민병직 큐레이터는 &lsquo;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rsquo;의 책임 큐레이터였던 경험을 토대로 도시와 미디어아트, 즉 공공미술 속의 미디어아트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사안을 이야기 속으로 가져왔다. 민 큐레이터는 &ldquo;미디어아트가 가지고 있는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 멀티미디어(Multimedia), 네트워크(Network) 등의 속성들이 조형물을 넘어서려는 의도, 물리적인 장소를 넘어서려는 움직임, 관심과 참여와 소통 등 최근 공공미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되는 가장 적절한 미술장르&rdquo;라고 전하는 동시에 &ldquo;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미술은 미디어아트를 불편해하고 있다.&rdquo;고 말해 관객들의 궁금증을 샀다.

&ldquo;관 주도사업인 만큼 무엇보다도 현실화되어야 하는 미술이 공공미술이기 때문&rdquo;이라고 이유를 밝힌 민 큐레이터는 &ldquo;관 입장에서는 이벤트나 퍼포먼스가 고비용 저효율 행사로 여겨지고 있으며, 작품을 장기간 시행한다고 해도 관리나 유지 등 행정적, 기술적 요인들이 취약하기 때문에 공공미술에서 미디어아트가 실현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rdquo;라고 부연했다. 참고로 지난 3년 동안 &lsquo;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rsquo;에서 실현된 작품은 80여 개로, 이 중 미디어아트 작품은 단 두 작품뿐이다. 이 중에서도 한 작품은 현재 조형물로만 남아있다는 게 후문.

마지막 패널 양아치 작가는 &lsquo;미디어아트를 넘어서기 위한 몇 가지 가능한 상황들&rsquo;을 발표했다. 양 작가는 전기, 전자가 배제된 미디어아트, 노이즈음악에 맞춰 춤추기, 무선감시카메라를 통한 드라마 제작 등을 나열하며 미디어아트 작가로서 고민하고 있는 지점들을 진지하게 들려줬다. 특히 양 작가는 이미 많은 작가들이 사용해 온 오픈소스(Open Source)를 아무 고민 없이 작업 속에 끌어오는 작가들을 비판하며 &ldquo;하는 이야기가 다 다를 수 있겠지만 형식면에서 비슷한 패턴을 자주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의 한계는 분명 지적해야 할 것&rdquo;이라고 강조했다.

퀘벡 400주년 기념 전시, 퀘벡시 주최, 2008(좌) <Light Attack> Daniel sauter, 2006



공공미술은 미디어아트를 불편해 한다?

패널들의 발제가 끝난 후에는 정용도 소장의 토론과 더불어 관객들의 질문시간이 이어졌다. 정 소장은 &ldquo;기술은 2차적인 문제&rdquo;라는 백남준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ldquo;이제 미디어아트는 기술적인 부분을 벗어나 예술적인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rdquo;고 주장하는 동시에 &ldquo;예술적 책임과 관련 없는 개념만 보여주고 있는 국내의 미디어아트 관련 전시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rdquo;고 말했다. 더불어 &ldquo;미디어아트가 어떤 방식으로 문화 속에 녹아들어가 예술성을 건질 수 있는지, 시각적 유희로밖에 보이지 않는 국내의 미디어아트가 어떻게 공공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인지&rdquo; 등의 질문을 던졌다.

이에 손 큐레이터는 &ldquo;조형물에 이미지를 투영하는 작업은 관람객들에게 얼마나 잘 인지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아무리 작업이 좋더라도 색깔의 대비가 약하면 작업을 실현하기가 어렵다&rdquo;고 토로하면서 &ldquo;작업을 진행할 때 작가의 예술적 색깔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지만 미디어아트에서 기술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rdquo;고 답했다. 또 민 큐레이터는 &ldquo;미디어아트가 공공성을 담보하려면 미디어 활용을 통해 사회, 정치적 문제 등을 향유하는 작품들이 있어야 한다.&rdquo;고 주장하며, 미디어를 그저 작품을 발표하는 하나의 매체로만 사용하는 작가들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기존 영상문화 속에서 미디어아트만의 차별성 획득이 가능하냐는 관객 질문에 양아치 작가는 &ldquo;사실상 어렵다&rdquo;고 운을 떼며 미디어아트가 기술 미학에 대한 조사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으며, 산업과 맞물리면서는 진보적인 예술로서의 모습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 &ldquo;내용은 하나도 재미없는데 엄청난 돈과 기술력이 투자됐다는 애니메이션이 무슨 대단한 작품처럼 홍보될 때 드는 기분을 미디어아트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rdquo;이라고 조소했다. 더불어 &ldquo;본질적인 질문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다&rdquo;며, &ldquo;여전히 전기 혹은 전기세 등이 작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데에 절망감을 느낀다.&rdquo;고 말했다.

상상마당 열린포럼 ‘미디어아트를 넘어서’ 현장
이번 포럼은 국내 미디어아트 현실에 대해 이론가, 작가, 기획자 등 각각 대비되는 관점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한편 전시장을 벗어나 도시의 거대 조형물에 투사되고 있는 작품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두드려져 ';도시';를 미디어아트의 공간으로 가져오고 있는 근래 미디어아트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살필 수 있었다.

&lsquo;상상마당 열린포럼&rsquo;은 전문가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모여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담론을 이끌어 내고자 기획된 열린 포럼으로, 지난 2008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태윤미

필자소개
태윤미는 문화예술웹진 [컬처뉴스], 미술시장전문지 [아트레이드]에서 미술기자로 일했다. 지난 겨울부터 시작한 수개월의 여행 끝에 현재는 음악에 글을 입히는 작업 등 개인적인 글쓰기에 한창 열중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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