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아트홀의 가장 큰 성과는 기업이 후원하는 극장이 이러한 비주류 예술 프로그램으로 운영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 것 자체라고 한다. 기업은 대중적 어필이라든가 홍보 등을 요구할 것이라는 통념과 다른 예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성과라는 것이다.

LIG아트홀은 강남 한복판에 있는 극장이다. 한편에 강남역 사거리에서 강남대로와 교차하는 테헤란로를 두고 다른 한편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빌딩들을 지나쳐 걷다보면 삼층 높이는 될 듯한 거대한 둥근 기둥이 전면을 떠받치고 있는 건물이 나온다. LIG손해보험 본사, LIG타워이다. LIG아트홀은 이 건물의 지하에 있다. 마침 찾아간 날은 LIG아트홀 프로그램 홍보물을 그 거대한 기둥에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제 강남에도 극장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극장 불모지라는 오명(?)은 벗었다 하지만 많은 극장들이 거대한 쇼핑몰을 중심으로 생겨나는 것에 비한다면 빽빽한 사무공간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LIG아트홀의 위치는 독특하다.

게다가 국내 굴지의 보험회사가 운영하는 극장으로는 여타의 기업이 운영하는 극장들과도 좀 다르다. 엘지아트센터나 두산아트센터가 중극장 이상의 일정한 규모를 갖추고 잘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공연물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LIG아트홀은 본사 사옥 지하에 157석 규모의 극장과 다목적 리허설룸으로 이루어진 작은 극장으로 ';젊은 예술가 지원';을 표방한다. 물론 최근 예술계에서 ‘젊은’ 예술에 대한 주목은 정책에서나 시장에서나 항상 손꼽히는 이슈라 하지만 LIG아트홀은 세대로서의 ‘젊음’을 넘어 기존 장르적 관습에서 벗어난 실험적 작업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극장과 축제는 차고 넘친다지만 여전히 공연예술 애호가층이 넓지 않은 국내 현실에서 비주류 젊은 예술가 지원이라는 이 극장의 ‘포지션’은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빽빽한 빌딩숲 안의 작은 극장

“대한민국 서울에서 현대예술이 놓여 있는 모습이 그렇지 않나.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사회는 풍요로와졌지만 여전히 예술, 특히 동시대 현대예술은 이 사회의 어떤 조그만 귀퉁이에 숨어 있는 것 같다.”

LIG아트홀의 극장운영과 프로그램 기획 제작을 맡고 있는 조성주 예술감독(공연사업팀장)과 장진아 프로듀서는 LIG아트홀이 그런 풍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일단 사회는 현대예술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현대예술을 올리는 이런 극장은 필요하다는 것.

“위치도 그렇고 이 극장이 표방하는 현대예술, 젊은 예술가라는 것이 홍보에서는 걸림돌이다. 그래도 오피스빌딩 가득한 테헤란로에 극장이 있고 이 극장에 관객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 그것 자체가 예술이 사회적 소리를 갖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들의 이야기를 너무 비장하게 듣지는 말기를. 이들이 저돌적인 전사를 자처하는 것은 아니다. 조성주 예술감독이 인터뷰 내내 자주 했던 말은 “현실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현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이야기한다.” 프로그래밍의 원칙이자 극장운영의 원칙이기도 하다.

“젊은 예술가 지원은 극장이 만들어질 때 기업에서 세운 컨셉이다. 보험회사여서 그런지 ‘미래’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런 연장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것이 ‘컨템퍼러리 아트’라는 미학적 방향성으로 구체화되고 운영에서는 자체 기획과 제작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이 세 가지 원칙이 극장 프로그램의 아우트라인을 만들고 있다.”

물론 구체적인 프로그래밍에서는 이 세 가지 조건의 비중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실험의 수위를 조절한다거나 하는 문제들이 있다. 처음엔 너무 의욕이 넘쳐서 실수도 하고 했지만,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극장, 관객에 대한 고려를 잊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실험성과 대중성을 조율한다고 할 때 중간지점에서 타협해서는 실패한다. 소통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항상 어렵다.”


안무가 출신 예술감독, 대학로 출신 음악공연 프로듀서

조성주 예술감독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조성주 예술감독은 잘 나가던(?) 댄서이자 안무가이다. (잠시 이 문장에서 머뭇거린다. ‘잘 나가던’이라는 과거형을 써야 할지, ‘잘 나가는’이라는 현재형을 써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댄스씨어터온의 창단 멤버, 댄스컴퍼니조박의 공동대표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LIG아트홀 개관 프로그램에는 아티스트로 참여했다. 그러던 것이 2006년 LIG아트홀 개관 직후 예술감독을 맡은 이래로 극장운영과 프로그래밍에 집중하고 있다. 무용가 조성주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녀가 다시 무대에서 작업하기를 기다린다. “춤을 추고 있을 때도 축제 사무국 등의 일을 했었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지금 하는 일도 의미 있고 재미있다.” 조성주 예술감독은 극장에 대해, 제작에 대한 이야기에 열심이다.

장진아 프로듀서는 현재 LIG아트홀의 음악부분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녀가 기획을 시작한 분야는 뮤지컬이다. 현대극장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시작으로 대학로에서 일하던 그녀는 LIG아트홀 개관 전부터 이곳에서 일했다. 근속 기간으로 따지자면 조성주 예술감독보다 고참이다. LIG아트홀 프로그램 중 가장 대중적인 &lsquo;특별한 수요일&rsquo;도 그녀가 맡고 있다.

장진아 프로듀서
&lsquo;특별한 수요일&rsquo;은 점심시간을 이용한 인디밴드들의 길거리 콘서트이다. 물론 무대는 사옥의 경계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인도가 객석이 되면서 이런 저런 민원도 들어온다. 홍대 앞에서야 익숙한 풍경이지만 이곳에서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갑자기 들려오는 &lsquo;작은 테러&rsquo;이기도 하다는 이 프로그램은 이제 제법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이 무대에서 공연했던 36개 팀들 중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네 팀으로 별도의 콘서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ldquo;지역을 부딪쳐보고 싶었다. 처음엔 12시에 공연을 시작했는데 모두들 점심을 먹으러 가느라 걸음을 멈추지 않더라. 그래서 공연 시간을 12시 20분으로 늦췄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자연스레 공연을 보더라. 지금은 12시부터 샌드위치 들고 자리잡고 앉아 리허설 보는 관객들도 생겨났다.&rdquo;(조성주) &ldquo;특별한 수요일이 진행되는 날이면 LIG아트홀 앞이 호그와트로 가는 &lsquo;9와1/2&rsquo; 플랫폼 같다는 생각이 든다.&rdquo;(장진아)


&ldquo;소통은 개인적 소양에 맡겨둘 일이 아니다&rdquo;

극장 무대기술팀을 제외하고 극장의 기획 제작 홍보를 두 사람이 도맡고 있다. (너무 힘에 부쳐서 얼마 전 홍보파트에 새로 직원을 영입했단다.) 지난 4년간 아마 부부지간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않았을까. 당연히 두 사람의 파트너십이 궁금했다. 서로 장르도 다르고 창작과 기획으로 분야도 달랐던 두 사람은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얼굴도 몰랐다며 &ldquo;이거 공식적인 언어로 이야기해야 하나?&rdquo; 장진아 프로듀서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되묻는다.

장진아 프로듀서는 조성주 예술감독에 대해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기본적인 프로그램의 아우트라인이 결정된 후에는 자신이 스스로 진행하도록 맡긴다고 말한다. &ldquo;서로 너무 똑같지 않아서 좋다. 예술적 취향에서 서로 적당한 거리가 있다 보니 서로 다른 시선으로 보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도움이 된다. 내가 프로듀서가 아닌 예술감독으로 이름이 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그냥 이름만 얹어 놓은 거다. 장진아 프로듀서가 다 한다.&rdquo; 옆에 있던 장진아 프로듀서가 말을 거든다. &ldquo;그렇지 않다. 구체적인 진행은 내가 책임을 가지고 하지만, 프로그램의 기본적 틀을 짤 때는 팀장님과 함께 한다.&rdquo;

너무 공식적인 언어로 답하는 것 아니냐 되묻자 장진아 프로듀서는 &lsquo;시간의 힘&rsquo;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ldquo;이해할 수 없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게 되고 어느 순간에는 구구절절 서로를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오더라.&rdquo;

조성주 예술감독은 한편 수긍하면서도 커뮤니케이션 방법의 객관화를 이야기한다. &ldquo;조직을 운영하고 조직 내에서의 원활한 소통을 만든다는 것은 한 사람의 개인적 소양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조직이더라도 구성원이 함께 인지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업무분담, 업무의 프로세스 등을 포함하여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을 객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업의 조직문화도 흥미롭게 관찰하고 배우고 있다.&rdquo;

조성주, 장진아



비주류 예술에 대한 기업의 직접 지원 사례가 성과

이 두 사람을 만나겠다고 무턱대고 지하 2층 극장으로 들어섰다가 잠시 길을 헤맸다. 당연히 사무공간이 극장에 붙어 있으려니 했는데, 사무실은 4층에 따로 있었던 것. 대기업 사옥 구조가 그렇듯이 방방이 인식기가 붙어 있어서 사원증 없이는 출입도 어렵고 손님들을 만나는 공간은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잠시 주눅이 들었던 것도 사실. 극장을 드나들 때는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던 기업과의 소통에 대한 궁금증이 떠올랐다. 아무리 비주류 현대예술에 대한 지원을 표방했다 하더라도 &lsquo;실적&rsquo;에 대한 요구가 있을 텐데 말이다.

&ldquo;당연히 데이터가 필요하다. 점유율, 프로그램 수 등이 낱낱이 드러난다. 데이터로도 극장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나타난다. 지금은 가치 있는 데이터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rdquo; 조성주 예술감독은 이러한 기업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자신에게는 배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가 꼽는 LIG아트홀의 가장 큰 성과는 기업이 후원하는 극장이 이러한 비주류 예술 프로그램으로 운영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 것 자체라고 한다. 기업은 대중적 어필이라든가 홍보 등을 요구할 것이라는 통념과 다른 예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성과라는 것이다. &ldquo;어떤 점에서는 도리어 예술계가 어떤 통념에 멈추어 있다. 서로 신뢰를 가지고 만나야 하는데, 예술가들은 도리어 기업하는 사람들이 예술을 알겠어 하며 미리 소통을 포기한다.&rdquo;


올해 나의 소망은? &ldquo;비밀&rdquo; &ldquo;여행&rdquo;

이 당찬 열혈 예술감독, 프로듀서에게 인터뷰 마지막 질문으로 올해 꼭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조성주 예술감독이 바로 극장에서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답한다. &ldquo;올해부터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확대된다. 이전까지는 발표 위주의 지원이었다면 연구 등으로 폭을 넓히고 기간도 2년제로 늘었다. 작가 지원 프로그램의 호흡이 길어지는 것이다. 또 현재 부산 LIG아트홀 개관 준비를 하고 있다.&rdquo;

극장에 대한 계획 말고 자신에 대한 계획을 다시 물었다. 조성주 예술감독은 &ldquo;있지만 비밀&rdquo;이라고 입을 다문다. 장진아 프로듀서는 여행을 꼽았다.

&ldquo;이쪽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 거의 개인 생활을 갖지 못한다. 독신이 많은 것이 그것을 선택해서라기보다는 결혼을 계획할 현실적 조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고 내 동료들 대부분이 그렇다. 정말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올해는 꼭 갖고 싶다.&rdquo;

장진아, 조성주


김소연

필자소개
김소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lsquo;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rsquo; &lsquo;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rsquo; 등의 비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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