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는 97년에 2003년 호를 냈다. 밀레니엄과 월드컵이 끝난 뒤인 2003년이 되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까에 대한 생각을 모았다. 원래 기획의도는 밀레니엄이 지나도 세상이 별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 이들 문화잡지들이 여러 이유로 없어졌지만, 여전히 문화와 인문학이 만나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은 필요했다고 본다.

신촌과 홍대 사이에 위치한 ';문지문화원 사이';(이하 문지사이)의 주일우 기획실장을 만났다. 사이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를 비롯해 세미나, 심포지엄, 워크숍, 전시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면서 예술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과 다양한 예술영역과 문화의 경계를 넘는 작업으로 우리 사회가 간과해 온 자리를 알차게 채우고 있다. 과학사를 전공한 후 문화매거진, 예술축제 등 실험적인 기획활동을 해온 주일우 기획실장을 만나 문지사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을 듣는다.


“작가 프로모션? 과장과 왜곡은 반대한다”

김노암(이하 김) 먼저 문지문화원 사이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주일우(이하 주) 나는 현재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고, 대표, 경영본부장 등 세 명이 문지사이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문지사이는 매달 40여 개의 인문학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올해로 운영 4년차에 들어섰다.

';문학과지성사';와는 어떤 관계인가?

주일우
';문학과지성사';와는 자매관계다. 우선 대표인 이인성 선생님에 대해 설명해야 하겠다. 올해가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님이 작고하신지 20주기다. 지난 시기 이인성 선생님은 김현 선생님의 뒤를 이어 문학과지성사의 리더 역할을 해왔다. 이인성 선생님은 예술적 실험을 하는 젊은 작가들이 상업주의에 빠지지 않게 견고하게 지원해 왔다. 현재는 서울대 교수를 그만두시고 문지사이의 운영과 작품 창작에 집중하고 계시다. 문지사이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요즘 예술계에도 유행하는 작가 프로모션이라고 볼 수 있나?

꼭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선생님은 작가 프로모션 과정에서 과장이나 왜곡이 일어나는 것에 반대한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 문학계에서 유행하는 역사물들은 서구사회에서 이미 100년 전에 한번 지나간 흐름인데 예술적인 성취로 보았을 때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와 같은 의문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뒤쳐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차라리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문화적 실험에 보다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창작의 진정성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대중문화가 확대되면서 스타시스템이란 것이 필요악이 되었지만 작품의 내용을 평하기보다는 작가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문화잡지의 시대가 지나갔지만

그럼 그런 한국의 문학계의 상황에서 어떤 계기로 문학과지성사는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사이는 문학적인 영역에서 확대된 것일 텐데, 1994년 문화잡지인 [이다]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성기완 등이 함께 활동했다. 조금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20~30년대 일제 시대부터 그 이후 70~80년대까지 문학이 예술전반적인 흐름을 주도해 나갔고 문학잡지들이 중심역할을 했는데, 80년대 후반 90년대 들어가면서 문화의 양상이 영화를 포함한 대중예술이 확대, 다원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인문학적 평가들이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90년대 중반 [상상] [문화과학] [이매진] [리뷰] 등이 나왔고 또 영화잡지들처럼 장르에 집중하는 잡지나 문화전반을 다루는 문화잡지들이 나왔다. 그때 [이다]도 만들어졌다. [이다]는 무크지로 4~5년 나왔다.

당시로는 인상적인 이름의 [이다]를 많이 기억하고 있다. 기억나는 기획으로 어떤 것이 있었나?

97년에 2003년 호를 냈다. 당시 밀레니엄 이야기가 나올 때라 밀레니엄과 월드컵이 끝난 뒤인 2003년이 되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까에 대한 생각을 모았다. 원래 기획의도는 밀레니엄이 지나도 세상이 별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당시 문학평론을 하지 않던 나와 우리 본부장과 현재 음악과 문화평론을 하는 성기완이 참여했었다. 2000년대 들어서 이들 문화잡지들이 여러 이유로 없어졌지만, 여전히 문화와 인문학이 만나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은 필요했다고 본다.

주일우 실장 본인은 본래는 과학사를 전공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는 과학도 문화의 한 현상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문화와 인문학이 만나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나 나는 특별하게 과학적 지식의 배경이 문화적인 문제에 중요한 키가 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균형 있는 시각을 갖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조직을 운영하고 관리하고 지속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기획실장으로서의 위치가 있을 텐데, 문지사이처럼 민간영역에서 문학아카데미프로그램을 가지고 기관을 유지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독립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대단히 어렵다고 할 텐데 어떤가?

사실 그렇다. 우리가 한 강좌 당 수강비의 절반 이상이 강사에게 돌아간다. 일반 대학과 비교해 봐도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같은 형태의 대중교육은 매우 어렵다. 우리보다 먼저 했던 ‘풀로 엮은 집’은 문을 닫았다. 풀로 엮은 집은 [리뷰]에 참여했던 사람들로 초기 투자도 많았고 그 대표도 노력을 많이 했지만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아트 앤 스터디’가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고 ‘다중지성의 정원’은 조합으로 운영된다. 또는 책 기획과 영업과 연계된 그린비출판사의 인문학 프로그램 등이 그나마 버티고 있다. 하지만 어렵긴 다 마찬가지다.

주일우



공공과의 협업...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도전

나 또한 대안공간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공감이 간다. 최근 공공영역에서 인문학 교육이 확산되고 있다. 문지사이는 마포구청과 강좌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으로 아는데 어떤가.

맞다. 지자체나 정부와 협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전망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부처럼 예산이 풍부한 기관이 아니다. 결국 지자체나 정부가 운영하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례로 다음세대재단 지원으로 석학특강을 한 적이 있다. 거의 보름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매달렸다. 당시 강사비를 5회에 200~250만 원 드렸는데, 그 후에 학술진흥재단에서 동일한 사업을 하면서 강사비로 2천만 원을 책정하더라. 우리는 자연히 접었다. 물론 학술진흥재단에서 석학들에게 강사비를 많이 드리는 것에 동의한다.

요컨대 문지사이와 같은 민간영역에서 자생적으로 운영하는 인문학 아카데미 프로그램이 90년대 문화잡지들의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고, 지자체의 시민대상 교육프로그램들과의 관계와 상호 입장과 시각이 다르다고 보인다.

그렇다. 안정적인 시스템을 정부의 지원에서 얻기 어렵다. 정부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익을 내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서울시에서 창작공간을 많이 만드는데, 컨텐츠가 필요하다면 우리처럼 자생적으로 활동하는 주체들과 함께하는 노력과 방식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건물 임대료만 해결돼도 매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공공영역에서 민간에 좀 더 많은 부분을 맡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문학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은 어째든 정부가 맡는 것이 현황이고 돈을 잘 쓰게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포구청과 함께하는 시민강좌의 경우 매우 성공적이다. 동시에 우리는 보다 차별적인 다른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 수 있는가가 우리의 과제다.

그 문제는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의 공통과제라고 생각한다.

민간영역과 협업함으로써 공공영역에서 민간영역으로 이양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영역에서 공공영역으로 이양하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민간영역은 다른 영역을 개척하는 모양이다. 어째든 공공영역 예산이 우리보다는 많고 안정적인 것은 사실이니까. 결과적으로 공공 영역과 협업함으로써 생기는 여러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만나게 된다.

어째든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이 동일한 분야에서 건전한 경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조금 더 보다 균형적인 인식이 상호 필요해 보인다. 온라인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리고 영상시대에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이 융합되고 국제화되는 현실에서 문지사이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장이 작기에 좋은 기획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본다.

지금 우리는 매체 변화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최근 e-book으로 표현되는 출판계의 변화는 물론 아이폰과 같은 것을 보면서 어떻게 적응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예술가들과 인문학자들이 함께 협업하는 ‘Text@Media';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된 미디어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그리고 시장적인 고민보다는 이론적인 고민을 통한 작업들이 실제로 수익창출이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현재는 그것을 통해 우리 기관을 유지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연구를 통한 새로운 방식을 준비 중이다. 어째든 인문학적 배경에서 매체의 변화에 대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가시적인 수준은 아니다. 요컨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어플리케이션의 문제라고 본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외국과의 교류에서 어떤 기술적인 부분의 교류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러나 실지로 그것을 넘어가는 시스템의 문제로 막히는 부분이 많다. 어째든 실제로 외국의 전문가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컨텐츠를 만들어야 외국과의 협업이 가능하다고 본다.

필자 김노암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주일우



“컨텐츠를 만들어야 외국과의 협업이 가능하다”

올해 문지사이가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에 가입했는데, 최근 문지 사이의 프로그램이 실제 창작현장의 제작기술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예를 들면 공동창작의 문제 등 좀 더 특화된 것을 개발하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예술적이 것에 맞추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 현재 일반적인 인문학 강좌는 마포구청과 같은 공공영역에 넘기고, 점점 특화된 프로그램을 하려 한다. 그 가운데 예술 또는 창작과 관련한 사람들이 그 관심에 비해 적절한 교육을 받을 접점이 부족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그들에게 인문학적 경험을 확대하고자 한다. 그래서 공연기획자나 전시기획자, 창작자들과 만나고 협업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워크숍 중심의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예술가들이 별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전망을 가질 수 있는 물리학 교육을 준비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전문 교육은 학교와 같은 제도교육에서는 어렵다고 본다.

문지사이가 예술분야의 창작자들과 인문학이 만나는 장을 만든다는 것은 전시기획자로서 환영한다. 문지사이의 활동이 계기가 되어 다른 기관들에 생산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 앞으로 좋은 모델이라 될 것이라 본다. 또 문지사이의 활동을 볼 때 향후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협업할 기회가 많으리라 기대한다.(웃음)





김노암

필자소개
김노암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회화繪畵와 미학美學을 전공하였다. 미술현장에서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며 그림과 글로 시절을 보내고 있다. 현재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를 운영하며 미술웹진 [이스트 브릿지], KT&G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의 운영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대표이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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