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유럽 국립극장들의 역사, 조직, 운영방식, 프로그램 등을 소개하는 이번 세미나는 각국 국립극장의 서로 다른 위상과 역할이 대비되는 자리였다. 또 아시아와 유럽이 국립극장의 미션과 운영에서 각각 경영과 예술에 대해 서로 다른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기조발제중인 임연철 국립극장장창립 60주년을 맞아 다양한 공연과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국립극장에서 지난 4월 16일 ‘국가와 극장: 예술가 경영 사이에서’를 주제로 국제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에는 독일, 프랑스, 헝가리, 터키 등 유럽권 극장들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 극장들이 참여하여 각 극장의 역사, 조직, 운영방식, 프로그램 등을 소개했는데 국립극장 제도, 미션과 역할, 운영방식 등에서 유럽과 아시아가 뚜렷이 대비되었다.

먼저, 중국 국가대극원과 일본 신국립극장은 중앙정부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에서도 중앙정부의 역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등 한국의 국립극장과의 유사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아시아의 두 국립극장은 유럽 극장들과 달리, 예술가나 예술감독이 아닌 행정가, 기업임원 출신의 발제자가 극장을 소개했다.

중국의 국가대극원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2007년 말 개관한 극장으로 2,398석 규모의 오페라 극장 등 3개의 공연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올림픽을 앞둔’ 건립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극장은 베이징의 랜드마크로서의 건축물과 최신식 시설을 자랑한다.

국가대극원의 건립은 전액 국고로 이루어졌으나, 운영예산은 30% 국고, 60% 매표수입, 10% 기업후원으로 구성된다. 양질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담보한 최상의 작품을 선보인다는 ‘정품공정프로젝트’로 작년 국가대극원 매출은 베이징 전역 공연장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높은 입장권 가격에 따른 일반 시민들의 접근성을 우려하는 질의에 왕정밍 부원장은 “인민을 위한 가격정책”을 편다고 답하며, 특히 공연 보급을 위한 주말음악회 등의 프로그램의 경우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신국립극장은 현대식 공연을 위한 공연장으로 1997년 개관했다. 기존의 국립극장은 일본 고유의 전통장르를 공연한다. 오페라, 무용, 연극 장르별 예술감독에게 프로그래밍과 관련한 최대한의 권한을 주고 있는데, 이것이 신국립극장이 내세우는 여타의 도쿄 공립공연장-세타가야퍼블릭씨어터, 도쿄예술극장 등-과 차별성이다. 프로그램은 고전과 클래식의 현대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신국립극장 운영재단이 일본예술문화진흥회로부터 위탁을 받아 운영되고 있으며 예산 중 국가 수탁이 62%, 공연 수입이 25%를 차지한다.



각국 국립극장 위상, 역할, 형태 달라

중국 국가대극원 왕정밍 부원장, 일본 신국립극장 오카베 슈지 상무이사, 독일 탈리아극장 요한나 바우어 국제교류 담당이사

세미나에서 소개된 유럽권의 극장들의 경우, 우리의 ‘국립극장’과는 그 위상과 역할이 상이했다. 명칭에서도 ‘국립’이 명기되지 않기도 했다. 극장의 네트워크, 혹은 극장의 위상에서 국립극장으로 간주할 만한 것으로 이러한 방식이 일반적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연방정부에 의해 설립되거나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일정한 재정지원을 받는 ‘뮤니시펄 씨어터’(Municipal Theater)인 독일 탈리아극장이 이번 세미나에 초청된 이유는 이 극장이 현재 독일 국내와 해외에서 독일의 대표적인 극장으로서의 인정받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탈리아극장은 1843년에 민영으로 개관하여 엔터테인먼트 위주의 공연을 소개해오다가 함부르크 시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으며 (자체 수입 전체예산의 12~14%) 운영진과 예술가 등 360명을 정식으로 고용하고, 자체 제작과 국제공동제작의 방식을 통해 시민들이 자신을 극장과 동일시할 수 있는 ‘지역의 극장’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발제자로 나선 요한나 바우어(탈리아극장 국제교류 담당이사)는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시기야말로 예술과 연극이 가져야 할 고유의 역할이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코메디 프랑세즈와 같은 ‘국가대표 국립공연장’도 있지만, 이번에 세미나에서는 아키텐 보르도 국립극장이 소개되었다. 보르도 국립극장은 프랑스 전역에 존재하는 42개 국립연극센터 중 하나다. ‘국립’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기는 하나, 중앙정부뿐 아니라 아키텐 지방정부와 보르도시의 재정으로 운영된다. 프랑스의 국립연극센터는 1946년부터 설립되기 시작했는데 ‘지방 극장이 파리 식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받는’ 시골 극장이 아니라, 지역에 기반하여 교육, 창작, 공연 등의 활동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발신할 수 있는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키텐 보르도국립극장은 1990년에 개관한 450석 규모의 극장으로 국립연극센터 중 가장 최신이며 규모도 크다. 보르도 국립극장을 소개한 도미니크 피투아제는 연극연출가로 2004년 2대 예술감독으로 취임, 6년째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발표에서 “극장이 대규모 문화센터여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피력했다. 보르도국립극장은 지역출신 예술가 발굴과 지원, 자체제작레퍼토리 강화와 국제네트워크 확대 등의 미션 외에 극장 내에 아키텐 보르도 연극학교를 자체적으로 개교하여 운영하고 있다.


터키, 전국 54개 국립극장에서 2천 명 상주 활동

프랑스 아키텐보르도국립극장 도미니크 피투아제 예술감독, 헝가리 빅신하즈국립극장 에세니 에니쾨 극장장, 터키 국립극장 레미빌긴 예술총감독

1896년 건립되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헝가리 빅신하즈극장의 극장장 에세니 에니쾨는 경제위기 등으로 어려움에 처했던 극장이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었던 요인을 ‘운영의 일관성’에서 찾았다. 그녀의 전임 예술감독은 40년간 전속극단의 단원이었고, 23년 동안 예술감독직을 수행했으며, 전임 예술감독이 후임자를 직접 훈련시킴으로써 극장의 일관된 방향성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속극단에 30년 이상 활동해 온 단원이 젊은 세대와 함께 활동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국립극장과 마찬가지로 창립 60주년을 맞았다며 한국과 터키, 그리고 양국 국립극장의 인연을 기쁘게 소개한 터키 국립극장의 레미 빌긴 예술총감독은 터키 전역 20개 도시에 있는 54개 국립극장 예술감독을 총괄한다.

“예술을 박탈당하는 것은 국가의 동맥이 잘리는 것”이라며 문화예술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졌던 초대 터키 공화국의 수장 아타튀르크 무스타파 케말에 기초하여 1949년 제정된 ‘국립극장 설립법’에 따라, 터키 전역 20개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는 54개의 국립극장에서는 연간 200개의 작품이 6천회 공연되며 500회 이상의 국내외 투어를 갖는 등, 국가 전체예술에 있어서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은 것은 800명의 공연자, 600명의 기술인력, 600명의 행정인력이 국립극장 전체에 소속되어 질 높은 사회보장 서비스를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레미 빌긴 예술총감독은 이러한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잘 체계화된 조직을 소개했다. 레미빌긴은 이러한 조직을 운영하는 재원은 모두 국가에서 받는 것이 당연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밝혀, 터키에서 국립극장이 가지는 위상, 나아가 예술이 가지는 위상과 신뢰를 가늠할 수 있게 했다.

이번 세미나는 각국 국립극장의 서로 다른 위상과 역할이 대비되는 자리였다. 또 아시아와 유럽이 국립극장의 미션과 운영에서 각각 경영과 예술에 대해 서로 다른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한편 60주년을 맞은 국립극장의 향후 행보에 대한 토론과 제언의 장은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국립극장 60주년 기념 국제학술세미나


필자소개
고주영 _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컨설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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