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하게 미술 현장을 동경했던 젊은이들에게 현직 큐레이터들의 경험담은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또한 미술관 뒷 무대에서 땀 흘리는 큐레이터들이 정작 서로를 만날 공적인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큐레이터들 간의 교류도 이번 행사를 뜻 깊게 했다.

서울뮤지엄데이라고 들어는 봤는지. 클럽데이는 들어봤어도 뮤지엄데이는 못 들어봤다면, 바로 그게 정답이다. 지난 29일(목) 금호미술관에서 처음 열린 ';서울뮤지엄데이';는 서울 소재 16개 사립미술관 큐레이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비 미술 인력들과 미술애호가들을 직접 만나는 자리로, 그동안 국내 미술계에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던 행사이다.

한국사립미술관협회가 개최하는 이번 행사는 아카이브, 컨설팅, 강의 등 세 개의 파트로 나뉘어 29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사립미술관 기능의 발전’ ‘미술의 저변 확대’ ‘신진 미술인력 발굴’ 등 행사의 목표만 본다면 이전의 미술관 행사들과 크게 다를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미술관 2층에 마련된 ‘컨설팅 스페이스’에 발을 들인다면 아마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컨설팅, 아카이브, 강의 ... 다양한 행사 관심 높아

미술관에 놀러갔다가 의문 나는 점이 있을 때 담당 큐레이터를 찾아 질문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니, 미술관 큐레이터를 찾아가 어떻게 미술관에서 일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내 작품을 이곳에 전시할 수 있는지, 단순 무식하지만 심히 애타는 질문들을 던져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건지 아닌 건지, 등을 두고 갈등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가 바로 이번 행사의 꽃, ‘맞춤식 컨설팅’이다.

예비 미술 인력, 예비 작가 등을 대상으로 현직 큐레이터의 컨설팅이 진행된 '컨설팅 스페이스' 모습

‘컨설팅 스페이스’에 들어서자 미술관과 갤러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장면을 쉽게 묘사하자면 취업박람회의 각 부스들의 모습과 흡사했는데, 각 미술관별로 현직 큐레이터들이 나와 책상을 앞에 두고 예비 미술 인력들과 예비 작가들을 만나 무언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손님으로 앉은 이들의 대부분이 미술대학 재학생이거나 막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 혹은 아직 작품을 발표하지 못한 젊은 작가들이다. 이들 중 누구는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가져와 직접 큐레이터 앞에서 약소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고, 누구는 미술관 인턴십에 참여하고 싶다며 지원서를 작성했으며, 누구는 이력서를 들고 와 자신이 왜 미술관에서 일하고 싶은지에 대해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행사 참여 미술관들의 주요 활동을 엿 볼 수 있는 ‘아카이브관’에는 「미술관 관리, 운영 서식 매뉴얼」「미술관 도슨트 및 자원봉사자 교육」 등 쉽게 접하지 못했던 한국사립미술관협회의 자료들에서부터 이미 출간된 예술서적, 10여 년 전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전시의 도록, 연구 서적, 미술관 발행 잡지 등 다채로운 자료들이 마련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한참동안 묶어두었다.

같은 시간, 미술관 지하에서는 ‘미술관과 미술관 전시’ ‘국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동향’ ‘세계 뮤지엄의 뉴패러다임’ 등 일반인부터 예비 작가, 예비 큐레이터들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특히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관심을 받은 ‘국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동향’은 현재 젊은 미술학도들의 관심사가 미술 환경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행사 참여 미술관들의 주요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아카이브관' 모습, '국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동향' 강의 모습



“선배들의 생생한 경험담, 다시 미술에 설렘 느껴”

이번 행사를 진행한 사비나미술관의 강재현 큐레이터는 “안에만 들어가 있어 관람객과의 소통 시간이 부족했던 큐레이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비 작가와 예비 큐레이터들에게 현장 노하우를 전해주고, 그들의 고민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고자 이번 행사를 준비하게 됐다”면서, “책과 현장의 괴리를 인지하고, 현장에 들어와서도 실무를 통해 미술에 대한 환상을 하나씩 벗겨가면서 미술 전문가가 되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막연하게 미술 현장을 동경했던 젊은이들에게 현직 큐레이터들의 경험담은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행사를 찾은 한 학생은 “워낙 미술 현장으로의 진입이 어려워 포기할까 생각하던 차에 용기를 얻게 됐다”면서, “이론으로 얻을 수 없었던 현장의 생생한 경험담들을 먼저 현장에 입문한 선배들의 입으로 들으면서 다시금 미술에 설렘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작가를 꿈꾼다는 또 다른 학생은 “내 작품을 보여주며 작품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 행사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미술관 뒷 무대에서 땀 흘리는 큐레이터들이 정작 서로를 만날 공적인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번 행사가 신진 미술 인력들을 위한 자리인 것만은 아닌 듯싶다. 큐레이터들은 틈틈이 시간이 나는 대로 서로의 전시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미술관 운영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했고, 새로운 전시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조심스레 던지며 상대방의 코멘트에 귀 기울였다.

이번 행사는 일회성이 아니다. 내년에는 지역 미술관의 참여와 더불어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제2회 뮤지엄데이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주최 측은 전한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외국의 어떤 행사를 벤치마킹했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을 만큼 독특하면서도 실용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뮤지엄데이가 자체 프로그램 개발과 함께 발전된 모습으로 지속된다면 앞으로 다양한 미술 인력이 발굴되는 독보적인 미술 현장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사진제공]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태윤미

필자소개
태윤미는 문화예술웹진 [컬처뉴스], 미술시장전문지 [아트레이드]에서 미술기자로 일했다. 지난 겨울부터 시작한 수개월의 여행 끝에 현재는 음악에 글을 입히는 작업 등 개인적인 글쓰기에 한창 열중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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