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영 실장은 영화전공 대학원 학생이던 시절 스승인 김정옥 선생과의 인연으로 극단 자유에서 기획을 처음 시작했다. 그녀는 순수 관객 출신 기획자로는 자신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지금은 또 다르지만 당시 그녀가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기획경영인의 대부분이 배우나 연출 등으로 극단에서 활동했던 이들이었다.

“사진도 찍나요?” 인터뷰가 있던 날 만날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는 문자를 주고받다가 정혜영 실장이 불쑥 묻는다. 그렇다는 답을 보내자 정혜영 실장은 난처하다는 이모티콘을 길게 찍어서 보냈다. 혹시라도 인터뷰가 엎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기획경영인들을 소개하는 이 코너를 진행하다 보면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어떤 이는 끝끝내 고사를 해서 애를 태우기도 한다. 무수히 인터뷰를 성사시키고 진행했을 터이지만 정작 자신이 ‘인터뷰이’가 된다는 것에 당황하거나 불편해 하는 것이다. 정혜영 실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휴 뭐 나한테 들을 이야기가 있을까요?” “난 말을 잘 못하는데…” 메일을 주고받고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정 실장 역시 흔쾌히 답을 주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더 이상 연락이 없었고 우리는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문을 들어서는 정 실장의 모습에서 짧은 머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눈길을 느꼈는지 정대표가 쑥스러워 하는 손길로 머리를 만진다. &ldquo;연습 시작하면서 잘랐는데, 너무 짧은 것 같아&rdquo; 지금 정 실장은 극단 컬티즌의 여덟 번째 작품이자 이 극단의 대주주(?) 이호재 선생의 칠순 기념 공연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준비 중이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정 실장은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100일간 금주를 한다고 한다. &ldquo;이제 나이가 들어서 술 먹으면서 일하기엔 힘이 부친다.&rdquo;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녀는 사실 엄청난 애주가이다.) &ldquo;큰 극단이나 극장들처럼 여러 작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 년에 한 작품 올리는 건데 잘 해야지 않겠나.&rdquo;

정혜영


관객 출신 기획자 1세대

이야기를 나눌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그녀의 화법은 항상 그렇다. 무언가 분석하고 대의를 설명하기보다는 작업 과정의 소소한 장면들, 특히 그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ldquo;기획자로서 당신의 장점은 무엇인가&rdquo; 식의 질문에는 술술 흘러나오던 이야기가 갑자기 뚝 끊기면서 어색한 침묵이 흐르지만 어떤 연출과 작업할 때 이런 저런 일이 있었고, 그 인연으로 다음 작품에서는 또 어떻게 만났으며, 캐스팅으로 고민 고민하다가 연출과 함께 본 한 공연에서 우연히 적역의 배우를 만났다는 등등의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진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이야기들에서 그녀의 도전과 성취감이 자연스레 배어나온다. 하여, 나는 일 년에 한 작품 올리는 건데 잘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이 &lsquo;좋은 작품 만들려면 일 년은 쏟아 부어야 한다&rsquo;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ldquo;육 개월 일하고 육 개월 논다.&rdquo;고 답한다.

정 실장은 영화전공 대학원 학생이던 시절 스승인 김정옥 선생과의 인연으로 극단 자유에서 기획을 처음 시작했다. 그녀는 순수 관객 출신 기획자로는 자신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지금은 또 다르지만 당시 그녀가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기획경영인의 대부분이 배우나 연출 등으로 극단에서 활동했던 이들이었다. 그녀의 사수였던 김용현 서울뮤지컬컴퍼니 대표도 극단 자유에서 활동하면서 기획을 시작하여 당시에는 롯데뮤지컬극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ldquo;연극반조차도 안 해봤다. 그냥 연극 보는 것을 좋아했다.&rdquo; 그녀는 지금도 일을 떠나 연극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관객의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무언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을 즐겁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화법은 언제나 항상 스스로를 연극 보기를 좋아하는 관객이기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정혜영
학교를 졸업하고 광고회사를 다니다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영화를 전공하고 결국 공연기획에 입문하는 과정도 그렇고 지금 자신이 일을 하는 과정과 방식도 그렇고 그녀에게서는 항상 연극에 대한 애정과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뚝뚝 흘러넘친다. &ldquo;극단 자유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 나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출발이었다.&rdquo;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병복, 김정옥, 박정자, 박웅 등 극단 자유에서 지켜보았던 선생님들에 대해 &ldquo;한국연극사의 획을 긋는 이들&rdquo;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에게 항상 따르는 당연한 수사 이상의 존경과 애정이 배어있다. 비단 시대의 획을 긋는 예술가들만이 아니라 작업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그녀는 모두 소중히 생각한다. 배우, 연출, 비평, 제작 등 분야를 막론하고 연극계 원로들과 두터운 교감을 나누는 그녀의 화려한 인맥(?)은 비단 극단 자유라는 거점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ldquo;공연계에 입문하려는 이들이 조언을 구할 때면 되도록 활동이 활발한 극단이나 단체를 추천한다.&rdquo;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모두가 그녀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혼자 했다.


기획제작 전문화 시대를 거쳐 극단으로 회귀하다

그녀가 입문한 90년대는 연극계에서 기획제작의 분화가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당시만 해도 극단이 공연을 올릴 때는 포스터를 만들고, 티켓을 예매처에 직접 배포하고-당연히! 인터넷이 없었던 당시에는 당연히 온라인 예약시스템이 없었다- 수금하는 일까지 모두가 극단에서 해결해야 했다. 프로듀서 중심의 극단이 생겨나고 극단은 작품을 만들고 홍보마케팅은 기획사에서 대행하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은 90년대를 경유하면서 기획제작사들이 생겨나면서 본격화된 것이다.

극단 자유의 활동을 접고 연출가 극단들과의 개별 작업을 하고 있던 당시 30대 기획자 모임에서 만난 몇몇 지인들과 의기투합해서 96년 공연기획사 컬티즌을 운영했다. 이유리(청강산업대 교수)도 그때 함께 일했던 동료이다. 이선희 등 대중가수들의 콘서트, <남경주의 굿바이 뮤지컬 콘서트>, 강부자 주연의 <오구-죽음의 형식> 초연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관심을 가진 이들이 의기투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삼성영상사업단, 연희단거리패와 공동제작으로 참여했던 <눈물의 여왕>이 공연기획사 컬티즌의 마지막 작업이 되었다. (삼성영상사업단도 이 작품을 끝으로 해체되었다.)

시대의 흐름이 그러한 것처럼 당시 30대 기획자 모임의 구성원들이나 공연기획사 컬티즌의 동료들이 이후 성장한 기획제작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오고 있는 것에 대비해보면 정 실장은 다시 극단으로 회귀한 셈이다. &ldquo;지인이 그러더라. 광고회사 다니다 영화 배우다 결국은 연극을 한다면서, 너는 왜 거꾸로 가냐고.&rdquo; 그런데 여러 방식 분야에서의 활동 중 어떤 작업이 가장 즐겁고 의미 있냐고 물었더니 정 대표가 주저 없이 답한다. &ldquo;극단 컬티즌이다.&rdquo;


극단 컬티즌, 배우와 제작자의 조합

나이나 경력으로 보자면 규모 있는 단체나 조직의 CEO급이지만, 그녀는 지금 8년 째 극단 컬티즌 기획실장(정식직함은 대표다)으로 작품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총괄하고 있다. 한국연극계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이라는 것이, 더구나 극단의 프로듀서의 역할이라는 것이, &lsquo;배우, 연출, 디자이너가 하는 일을 뺀 나머지 모두&rsquo;인 현실에서 그녀 역시 구석구석 &lsquo;나머지 모두&rsquo;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공연이 시작되면 티켓 창구에서 매표까지 맡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일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ldquo;아무래도 육십 넘어서 티켓 창구에 있으면 관객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겠나&rdquo;라고 답한다. 그럼에도 지금 하는 일이 가장 즐거운 일인 이유는 바로 &lsquo;작품을 만드는 과정&rsquo;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극단 컬티즌의 모태는 이호재 선생의 팬클럽 &lsquo;빨간소주&rsquo;이다. 술을 좋아하는 이호재 선생의 팬클럽인 만큼 빨간딱지가 붙어있던 알콜도수 30도의 진로소주에서 착상한 이름이다. 지금도 극단 컬티즌 사무실 문에는 &lsquo;빨간소주&rsquo;라는 작은 문패가 붙어있다. 혹자는 극단 컬티즌을 이호재 선생의 극단이라 부르는데, 정 실장은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ldquo;처음부터 극단의 형식을 갖추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원신청을 하려고 해도 그렇고 제작을 하는 데 극단이 아니라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rdquo; 극단을 만들면서 오현경, 정동환 선생이 함께 하게 되었고 나머지 단원들은 의상디자이너, 조명디자이너, 번역가 그리고 기획자들이다.

처음 출발 자체가 그렇고 또 지금도 여전히 극단 컬티즌에서 이호재 선생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지만 점차 해를 더하면서 단지 제작을 위한 형식으로서의 극단을 넘어서는 극단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2002년 창단 준비공연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이후 지난 해 <뱃사람>까지 극단 컬티즌의 작품 연보를 보면 <쿠크박사의 정원>을 제외하고 번역희곡이건 한국말로 쓰인 희곡이건 모두 국내 초연작들이다. 또 2008년 <언덕을 넘어서 가자>와 같은 대중적인 희곡이 있는가 하면 2004년 <넘버>처럼 복제인간을 소재로 정체성과 관계의 문제를 난해한 구조로 다루고 있는 카릴 처칠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ldquo;특별히 번역극, 창작극, 대중극, 실험극의 배분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다. 이호재 선생은 배우인 만큼 창작극을 선호하지만 새로운 작품을 하고 싶어 하시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rdquo; 작품을 고르기 위해 극단 구성원들, 연극계의 지인들로부터 다양한 작품을 추천받아 검토하는데 결정한 희곡에 대해 이호재 선생은 대부분 동의한단다. 이심전심일까? &ldquo;좋은 희곡, 좋은 배우들, 좋은 스태프들과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야 이호재 선생이나 나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rdquo; 처음부터 그리고 여전히 &lsquo;이호재 선생에게&rsquo; 맞는 작품이 작품 선정의 첫 번째 기준이자 가장 중요한 기준이지만, 그것이 이호재 혼자 빛나는 작품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공연을 보면 알 수 있다.

컬티즌의 공연에는 젊은 극단의 거칠더라도 에너지 넘치는 무대와도 다르고 그렇다고 중대형 극장이나 극단들의 규모 있는 무대와도 다르다. 그 다름에는 작품 선정부터 연출을 섭외하고 캐스팅을 의논하고 제작비를 운영하고 티켓창구까지 지키고 있는 정 실장의 역할이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극단 컬티즌은 배우와 제작자가 주축인 극단이라 할 수 있다. 여럿이 뜻을 모은 동인제 극단이건 강력한 예술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개인을 중심으로 한 극단이건, 창작의 기본단위로서 극단의 핵심이 연출가인 것이 대부분인 것을 생각하면 극단 컬티즌은 매우 특이한 구조이다.

&ldquo;이호재 선생의 존재감이 크다. 연출을 섭외할 때도 그렇고 배우들을 섭외할 때도 다른 스태프들도 그렇고 우리 작업에 흔쾌히 합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호재 선생 아니겠는가.&rdquo; 그렇다 하더라도 극단 컬티즌의 존재감이 점점 다르게 느껴지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더니 &ldquo;신뢰가 생긴 것 같다&rdquo;고 답한다. &ldquo;우리는 흡족하지는 않더라도 개런티는 확실히 챙긴다.&rdquo;라고 웃으며 말한다.

정혜영



세대와 세대를 잇다

극단 컬티즌의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원로 배우들과 중견 연출가들의 만남이라는 점이다. 이호재 선생을 비롯하여 오현경, 윤소정, 정동환, 전무송 등 컬티즌의 무대에 서는 원로급 배우들과 김동현, 송선호, 이성열, 위성신 등 40대 연출가들의 만남은 컬티즌의 무대가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ldquo;극단 입장에서 선생님들이 주로 작업했던 연출가들을 모시는 것도 쉽지 않고, 또 이호재 선생도 새로운 희곡으로 작업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새로운 연출가들을 만나고 싶어한다.&rdquo; 지난해 <뱃사람> 공연 이후 이호재 선생은 이성열 연출의 <운현궁 오라버니> <오장군의 발톱>에서 연달아 함께 작업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해무> <돌아서서 떠나라> <길삼봉뎐> 등의 안경모 연출이 작업하고 있다.

극단 컬티즌은 연륜이 깊거나 규모가 큰 극단은 아니다. 일 년에 여러 작품을 올릴 만큼 활동이 활발한 극단도 아니다. 그럼에도 극단 컬티즌은 배우와 제작자라는 독특한 조합으로 세대와 세대를 이으면서 새로운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활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기 저기 흠집이 가득한 핸드폰을 만지면서 &ldquo;욕심을 버리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rdquo;라고 말하는 정 실장의 즐거운 작업이 그 활기의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소연

필자소개
김소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lsquo;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rsquo; &lsquo;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rsquo; 등의 비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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