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앞두고 국내 공공미술 제도 개선에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 '건축물 미술장식' 대신 '공공미술'로 명칭을 바꾸고 개념의 재정립과 실천을 통해 한국 공공미술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도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적 환경 구축과 대중과 미술의 소통을 목표로 한 공공미술은 현대미술의 중요한 개념으로 부상했다. 광화문 복원공사 현장에 설치된 강익중의 <광화에 뜬 달: 산, 바람>, 신세계백화점 본점 재건축 공사장에 가림막으로 사용된 마그리트의 <겨울비> 그리고 최근 완성된 서울스퀘어 미디어캔버스 등 각박한 도시환경에 한 줄기 단비 같은 역할을 한 공공미술의 고마운 사례들을 주위에서 종종 만날 수 있었다.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청계천 복원 사업과 더불어 클래스 올덴버그의 설치 작품 <스프링>이 34억 원이라는 거액에 서울 한복판에 들어서자, 정점에 이른 듯 했다.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는 아직까지 명확한 의미를 확보하지 못하고 &lsquo;공공장소에 설치된 작품&rsquo;으로 폄하된 채 모호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국내에는 건축비의 1% 미만에 해당하는 비용을 미술장식품에 사용하는 &lsquo;건축물 미술장식 제도&rsquo;가 공공미술 제도로 자리하고 있다. &lsquo;건축물 미술장식 제도&rsquo;는 1972년부터 1994년까지 설치를 권장하는 시기를 거쳐 1995년 전국 설치 의무화가 시행되면서 올해 15년째를 맞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앞두고 국내 공공미술 제도 개선에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lsquo;건축물 미술장식&rsquo; 대신 &lsquo;공공미술&rsquo;로 명칭을 바꾸고 개념의 재정립과 실천을 통해 한국 공공미술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컨퍼런스 모습
그 일환으로 지난 5월 14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는 국제 컨퍼런스 &lsquo;새로운 지형을 모색하는 공공미술&rsquo;이 약 4백여 명의 청중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됐다. 미국, 캐나다, 일본의 공공미술 제도와 사례를 통해 국내 공공미술의 현 위치를 점검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바바라 골드스타인 산호세 공공미술 팀장, 리차드 뉴위스 밴쿠버 문화국장 대리인, 그리고 공공미술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에치고 츠마리 아트트리엔날레 총감독인 기타가와 프램이 발제자로 참석했으며 한국에서는 상명대 문화예술경영학과 양현미 교수와 아트컨설팅 THE TON의 윤태건 대표가 국내 공공미술 제도와 사례를 소개했다.


"공간을 공공영역으로 재창조하는 것"

1959년 필라델피아에서 처음으로 ';공공미술 퍼센트법';을 시행한 미국은 현재 약 350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각 도시 간에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정부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애초에는 건축물의 미적 강화를 위해 건축자금의 1%를 예술작품으로 위탁하도록 했지만, 정부의 후원이 점차 커감에 따라 작품자체가 갖는 미적 기능보다 공공미술의 공적인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즉, 공공미술은 작품이 그저 공적인 공간에 놓여있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lsquo;공공 영역&rsquo;으로 재창조하는 것으로 사고를 전환했다. 이는 미술장식에서 공공미술로, 제도적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국내의 상황에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다. 바바라 골드스타인의 미국 사례 발제 중 특기할 만한 사항은 개발사업자가 동일 수준의 기금을 도시의 문화신탁기금에 기부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 마련되어있다는 점이다. 문화신탁기금은 그 지역의 문화시설이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위해 다시 사용됨에 따라 지역 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바바라 골드스타인(좌), 리차드 뉴위스(우)리차드 뉴위스는 샌프란시스코와 밴쿠버, 두 도시의 사례 비교를 통해 미국과 캐나다의 공공미술 프로그램의 운영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공공미술 프로그램은 샌프란시스코 아트 커미션(San Francisco Arts Commission)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으며 시에서 설립하는 모든 건축물에 건축 비용의 2%라는 높은 비율을 공공미술에 할당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민간 프로젝트의 경우는 1%로 국내와 유사하다. 2010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밴쿠버는 올림픽을 전후로 연간 공공미술 예산을 3백만 달러에서 6백만 달러로 약 2배가량 늘렸다. 이는 밴쿠버에서 공공미술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후의 예산을 합산한 것보다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된 것이다. 밴쿠버 역시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간 프로젝트의 경우 ';공공미술예비금';(Public Art Reserve) 납부라는 선택사항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일본의 공공미술은 인구 7만 5천 명의 낙후된 농촌지역을 문화명소로 탈바꿈한 &lsquo;에치고 츠마리 아트트리엔날레&rsquo;의 사례를 통해 제시됐다. &lsquo;대지의 예술제&rsquo;라고도 불리는 에치고 츠마리 아트트리엔날레는 2000년에 시작되어 작년까지 총 네 차례가 열렸다. 작품을 한 곳에 모아 전시하지 않고 200개의 산간마을에 분산 전시함으로써, 산, 강, 밭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전시가 매 3년마다 이루어진다. 에치고 츠마리 아트트리엔날레의 선례는 안양공공미술축제, 마을미술프로젝트 등 도시 단위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양한 미술프로그램 효율적 분산 필요"

윤태건 대표는 &ldquo;국내의 미술장식제도가 &lsquo;장식&rsquo;과 (반)영구적 오브제로 미술작품을 폄하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rdquo;고 지적했다. 또한 퍼센트법에 대해서는 예산으로 하나의 미술장식품만을 구입하는 현재와 같은 방식을 벗어나, 뉴장르를 포함한 다양한 미술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분산시켜 진행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미술장식품 법정 금액이 1억 원이라면 현재처럼 1억 원짜리 미술장식품을 구입, 설치하는 방안 대신에 연간 1천만 원의 작품을 10년간 교체한다거나, 미술프로그램을 10차례 운영하는 방식이다.


2010년 서울디자인수도 서울의 해를 맞아 서울시가 대대적인 도시 계획에 나섰다. 지금이야말로 공공미술의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인식을 새롭게 다져야 할 중요한 시기에 놓여있다. 공공미술은 작품이 아닌 도시 전체를 움직이는 거대 프로젝트다. 그간 도마 위에 오르내리며 끊임없이 몸살을 앓았던 한국 공공미술에 대한 의구심들이 이번 컨퍼런스에 소개된 바람직한 선례를 거울삼아 도시 환경 개선과 진정한 &lsquo;공공&rsquo;을 위한 문화적 가치로 올바로 발현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현

필자소개
김현은 1982년 서울 출생으로 2008년 홍익대 대학원 예술학과를 졸업한 후 월간 [아트인컬처]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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