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의 경우 학예직의 임기가 대체로 보장되고 있으며, 이들의 실적은 관람객 동원 같은 계량적 잣대가 아니라 논문실적을 통해 평가하는 질적 관점에서 평가된 지 오래며, 현재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수 백 년 간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인사말 하는 한국큐레이터협회 박래경 회장지난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한국박물관협회가 주최하는 ‘제4회 한국박물관 국제학술대회 - 21세기 국가 박물관·미술관 정책의 방향과 전망’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참석한 각 협회마다 당면 현안들에 대한 다양한 이슈들을 쏟아내었으며 실태 및 대안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필자가 속한 한국큐레이터협회 및 한국학예연구원회,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그리고 한국대학박물관 학예연구원회 등 총 4개 협회도 ‘한국의 국공립박물관·미술관 학예전문인력의 경쟁력과 고용 안정성’을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가졌다. 이러한 주제 선정은 최근 국공립박물관·미술관 전문인력들이 점차 일반직에서 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불합리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박신의기조발제자로 나선 박신의 경희대 교수는 ';한국의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의 경쟁력과 학예전문 인력의 역할';이란 주제 아래 최근의 공립 박물관·미술관의 양적 팽창이 고무적이긴 하지만 그 운영에 대한 지자체의 이해는 여전히 초보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자체의 각 문화기관에 대한 운영평가가 전문성과 특수성을 고려하기보다는 보편주의와 경영 효율성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애시 당초 제대로 된 평가가 어려운 실정이다. 문화기관 전문인력의 역할에 대한 지자체의 인식부재는 결국 전문 인력의 부족을 초래하고 이는 곧 열악한 업무여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용불안, 열악한 근무여건 재차 확인

김윤아
연이은 발제에서 김윤아 하남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와 안성희 국립부산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기조 발제에서 지적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이들이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중소 지자체와 대학박물관의 운영실태 및 여기에서 근무하는 전문인력들의 고용문제는 예상보다 심각해 보였다. 예를 들면, 대학박물관 역사상 일반직 학예사가 학예관으로 진급한 예는 서울대 박물관이 유일했고, 중소지자체의 학예직은 계약직인데다 직급 자체도 광역시에 비해 낮게 지정되어 있어서 고용불안도 더 가중된다는 것이다. 한편, 국공립박물관·미술관 학예전문인력의 위상을 도서관 사서직과 비교한 것은 현 이슈의 심각성을 증폭시켰다. 1994년 제정된 「도서관진흥법」에 의하면 각 지자체의 인구 대비 건립 도서관의 수가 법률적으로 명시되어 있고, 건물 면적당 소장도서의 수량과 배정되어야 할 사서의 숫자도 대통령령으로 명시되어 있을 정도로 도서관 사서직의 위상은 높아진 반면, 박물관·미술관 학예전문인력은 제대로 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마지막 발제자인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박물관ㆍ미술관진흥법」(이하 「박미법」)이 말 그대로 진흥법이 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법조문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박미법」의 정식 등록 박물관·미술관이 되기 위해서는 박물관·미술관에 ‘학예직을 둘 수 있다’가 아니라 ‘두어야 한다’는 등의 의무조항을 포함하는 구체적인 법률 수정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김은영 전 경기도미술관 학예실장은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2009년에 진행했던 ';국공립미술관의 학예 전문인력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본 이슈의 실태와 쟁점에 대한 발제를 이어갔다. 다양한 평가항목별로 수치화한 데이터를 검토한 결론은 박물관·미술관에 근무하는 전문인력의 학력은 전반적으로 높았지만 근무경력은 짧았고, 대부분 계약직인데다 연봉 수준 또한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문화기관 전문인력들의 고용불안 및 열악한 근무여건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잠깐의 휴식시간 후 2부에서는 양현미 상명대 교수의 발제가 이어졌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지만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그치지 않고 있는 시점을 감안할 때 ‘박물관∙미술관 법인화가 전문인력 운용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시의 적절한 주제는 참가한 이들의 대단한 관심을 모았다. 실제로 그는 국공립 미술관이 법인화되었을 때 기존 사립미술관과의 차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난제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국공립미술관 법인화의 사례를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과 비교하는 데이터도 제시되었는데, 국내의 현실과는 태생적으로 다른 이들 나라의 예를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다.

하계훈 단국대 교수는 영국의 사례를 다루었다.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의 경우 학예직의 임기가 대체로 보장되고 있으며, 이들의 실적은 관람객 동원 같은 계량적 잣대가 아니라 논문실적을 통해 평가하는 질적 관점에서 평가된 지 오래며, 현재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수 백 년 간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과거지향적 고용안정성은 설득력 낮아, 혁신적인 이미지 쇄신도 필요

하계훈
모든 발제가 끝난 후 이어진 종합토론에는 현재 한국학예연구원회 회장을 맡고 있는 진준현 서울대박물관 학예관의 진행으로 현 이슈에 대한 제3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 황준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과 김범모 민주당 문화정책전문위원이 참여했고, 박물관·미술관 관계자로 필자와 백두성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원이 참석했다. 이해당사자가 아닌 객관적 입장에서 두 연구위원은 현재 국공립박물관·미술관 학예직들이 당면한 현안을 영화분야의 전문직들과 비교하면서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며 좀 더 추진력 있게 정책제안 할 것을 권유했다. 덧붙여 이제 더 이상 과거지향적인 고용안정성은 불가능하며 박물관·미술관의 전문인력이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대 국민적 차원에서 호소하기 위해서는 보다 혁신적인 이미지 쇄신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토론에 첨언한 필자는 문화기관 내에서 일반 학예직과 간부급 계약 학예직간의 불협화음이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 고용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전체적으로 각 발제자들은 제시된 현안들을 부각시키는 데 일정정도 성공했으나 대안모색에는 미미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같은 어려움을 안고 있음에도 소통조차 힘들었던 미술관·박물관 전문인력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했다는 점은 성과로 생각한다. 차제에 박물관·미술관 전문인력 간의 활발한 협업을 통해 당면한 현안들이 하나하나 풀려가길 기대한다.



사진제공 한국박물관협회



안규식

필자소개
안규식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런던시티대학에서 문화정책 및 매니지먼트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부산시립미술관의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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