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들과 패널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 포럼에서는 '학력과잉'이라는 문제적 상황을 화두로 한 예술교육의 현실에서 뚜렷한 변화의 징후를 찾을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이 전해졌다.

건축설계사무소 11년차인 김상진 씨는 ‘유학 붐’이 일던 시기에 지방대학을 졸업했다. 그 역시 유학에 대한 고민을 했었지만 개인 여건상 유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했다. 김 씨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당시의 선택이 후회스러울 만큼 학력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 암묵적으로 진행되는 좋은 학벌 간 승진을 바라봐야만 했다.

노연주 씨는 대안학교인 금산간디학교 2학년 때 소통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휴학, 서울로 올라와 하자센터에서 영상을 공부했다. 이후 고민 끝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 (졸업논문격의) 영상을 만들어 졸업했고, 공부에 대한 막연한 욕구로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오니 ‘내가 왜 이 곳에 왔는가’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됐다.

인테리어를 전공한 프리랜서 작가 심기헌 씨는 현재가 행복하다. 신 씨는 제도 교육 속에 자신이 찾는 답이 없다고 느껴 대학원 진학 대신 지난 2년간 50여 개의 세미나, 포럼에 참여했고, 40여 개의 전시를 관람했으며, 12개 정도의 전시를 진행하면서 개인의 역량을 키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학에서 강의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학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상마당 열린포럼 <예술가들의 학력과잉, 예술교육 이대로 좋은가> 행사 현장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상상마당 열린포럼의 열네 번째 시간 &lsquo;예술가들의 학력과잉, 예술교육 이대로 좋은가&rsquo;가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은 주제가 주제인 만큼 청중의 대부분이 20, 30대 예비 예술인력들이었다. 특히 이번 포럼은 패널의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되는 여타의 포럼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청중 발제로 시작, 객석과 패널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앞서 이야기한 내용은 포럼에 참여한 청중들의 이야기이다. 김종휘 하자센터 부센터장(노리단 단장)과 박훈규 파펑크 스튜디오 디렉터, 임근준 미술평론가가 초대 패널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박훈규 파펑크 스튜디오 디렉터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영상과 음악작업을 해 온 박훈규 디렉터는 &ldquo;나는 하고 싶은 것만 했을 뿐 특별한 예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rdquo;고 스스로를 소개하며, &ldquo;예술적 재능은 학습보다 사람 원래의 모습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학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rdquo;고 말했다. 이어 임근준 평론가는 &ldquo;학력이라는 것이 검증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은 다 하는 데 나는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목적 없는 유학이나 상위 학력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은 불필요한 것&rdquo;이라고 단언했다.

김종휘 하자센터 부센터장이에 김종휘 부센터장은 &ldquo;교육이라는 것이 수업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rdquo;라고 주장하며, 북유럽의 예술교육 사례를 들어 &ldquo;선배들의 유산(예술)을 받아 본인의 서사를 새롭게 짜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예술교육일 것이며, 낡은 학교 교육의 기존 틀을 깨고 새로운 예술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현 제도 안에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자신만의 콘텐츠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rdquo;하다고 강조했다.

임근준 미술평론가
제도 교육에 대한 패널들의 다소 비판적인 논조에 대한 청중석의 반론도 제기되었다. 제도를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제도를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자 임근준 평론가는 &ldquo;예술가와 예술사 전반을 파악하고 예술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학교를 다니는 것이 유리하다&rdquo;고 전하며, 자칫 이번 포럼이 &lsquo;공부 많이 할 필요 없다&rsquo;라는 쪽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 가능성에 우려를 비치기도 했다.


변화는 더디고... 믿을 것은 나의 발품?

청중들과 패널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 포럼에서는 &lsquo;학력과잉&rsquo;이라는 문제적 상황을 화두로 한 예술교육의 현실에서 뚜렷한 변화의 징후를 찾을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이 전해졌다. 예술활동에서 중요한 인적 네트워크 때문에라도 대학원 이상의 학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는가 하면, 자신의 관심 분야를 열심히 찾아다녀야 예술가 역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포럼의 사회를 맡은 주희정 열린포럼 운영간사도 &ldquo;되고 싶은 것이 많은 만큼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게 사실이지만, 하려는 것에 대한 노동조차 하지 않는 많은 예술가 지망생도 있다&rdquo;고 의견을 보탰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청중석에는 예비 예술인력들이 많이 눈에 띠었다.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고 예술교육에서 예술가의 철학으로 이야기가 흘러가 버린 부분은 이번 포럼의 아쉬움이었지만 예술교육의 문제적 상황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있을 예비 예술인력들에게는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찬찬히 헤아려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사진제공 KT&G 상상마당


태윤미

필자소개
태윤미는 문화예술웹진 [컬처뉴스], 미술시장전문지 [아트레이드]에서 미술기자로 일했다. 지난 겨울부터 시작한 수개월의 여행 끝에 현재는 음악에 글을 입히는 작업 등 개인적인 글쓰기에 한창 열중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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