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우리가 경험한 공공미술은 수잔 레이시가 피력하고자 하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과 외형적으로 유사성을 띄지만, 그 발주처가 대부분 정부와 기업이라는 점에서 상황은 매우 다르다.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은 사회 통합과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호명되었다. 우리가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의 상황은 여기에서 새롭게 출발한다.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에 의해서 편집된 책, 『Mapping the Terrain : New Genre Public Art』(1994)가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 지형그리기』(2010)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미국에서 같은 해에 출간된 『Culture in Action: A Public Art Program of Sculpture Chicago』와 더불어 60년대 이후 서구 사회 특히 미국 사회를 중심으로 야기된 사회 변혁과 그 과정 속에서 미술 생산 및 미술 제도에 대한 비판적 움직임과 그 실천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Culture in Action』이 1992년부터 1993년 사이 큐레이터 메리 제인 야콥(Mary Jane Jacob)의 기획으로 이루어진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결과물이라면, 이 책은 1989년, 1991년, 1992년 미술과 사회 그리고 공공성과 관련된 심포지엄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책 모두 이제는 어떤 차원에서 널리 통용되는 듯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의 개념과 철학, 그리고 비판적 구조의 틀을 형성한 의미심장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은 단순히 공공 미술의 ‘어떤’ 새로운 형식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 60년대 이래 서구 미술의 모든 도전적 시도를 공공미술 속에서 확장하려는 의미심장한 시도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편집자인 수잔 레이시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새로운 장르’는 60년대 이후 개념미술, 퍼포먼스 등 내용과 형식에서 실험적인 것에 대한 포괄적인 태도를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새로운 장르’는 특정 장르로서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니라, 관례적 의미의 장르로 규정될 수 없는 실험적 태도, 전부를 지칭한다.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역시 제도화되고 관례화된 공공미술의 경향들에 도전하면서 미술과 사회/삶에 대한 실험적인 모든 태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지점을 강조하는 것은 ‘공공미술’이라는 것을 회화 조각 공예와 같은 어떤 장르적인 형식으로 이해하는 한국의 낯설고 특수한 상황에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역시 어떤 장르의 하나로 이해하는 경향을 한국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르가 아닌 실험에 대한 포괄적 태도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지형그리기 」 이영욱 · 김인규 역, 문화과학사, 2010
이 책은 큐레이터, 작가, 평론가가 쓴 12편의 논문과 1백여 명의 작가와 프로젝트를 설명한 일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논문들이 필자들의 경험적 태도에 근거한 논거를 통해서 근대적 의미의 미술 생산과 미술 제도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미술의 새로운 도전과 이러한 활동에 대한 새로운 판단의 근거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과 고민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어떤 해결책을 제안한다기보다는 책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지형을 탐색하고 그려내기 위한 연구자들의 시도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소위 말하는 ‘공공미술의 교과서이다’와 같은 표현은 무의미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 책은 공공미술 자체 보다는 미술과 사회/공동체 사이에서 어떤 상상력을 작동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미학과 정치학 사이에서 지금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탐구의 과정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시도가 서구에서 60년대 이후 변화된 정치 사회적 조건 속에서 작동된 것임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구체제의 몰락과 새로운 대항/청년 문화의 출현, 민주주의 및 시민권의 확대와 더불어 다문화 사회로의 급속한 이행과정은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새로운 긴장관계를 형성했다. 그리고 문화를 단순히 인간의 보편적 삶의 형태가 아니라 (특정) 계급과 계층의 삶의 형식을 사회화하려는 갈등과 투쟁의 역동적 진행 과정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문화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변화시키고 미학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다각적인 문화 운동과 실험이 있었다. ‘새로운 장르 공공 미술’은 수잔 레이시가 고안한 개념어이긴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미술이 사회와 공공성에 대해서 어떻게 개입하고 자신을 작동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도전적 실험인 것이다.

「Mapping the Terrain: New Genre Public Art」Bay Press, 1994이 책이 출간된 지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책의 번역일까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미술과 공공성 혹은 미술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들에게 이미 널리 읽혀진 책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 과정을 통해서 한국에서도 공공미술의 패러다임이 새롭게 기획되고 작동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이 삶의 질과 쾌적성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고 더불어 급속이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을 경험하게 되는 시점에서 이 책이 드러낸 고민의 흔적들은 한국의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들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가들에게도 많은 자극과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들의 도전과 실험은 단지 개인 연구자의 실험의 차원으로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화된 것도 사실이다.

짧은 시간이었긴 했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2010년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공공미술은 외형적으로 대중화되었으며, 공공미술의 다양한 차원들을 대중들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현재는 공공 미술보다는 공공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보다 다르게 전이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읽혀지던 책이 역자들이 수고와 노력을 통해서 학생과 대중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씁쓸하다고 느꼈던 것은 연구자 입장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책의 번역과 배포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난 몇 년간 정부와 기업을 중심으로 야기된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가 성찰적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유사성과 간극, 우리 스스로를 성찰할 때

최근 몇 년간 우리가 경험한 공공미술은 수잔 레이시가 피력하고자 하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과 외형적으로 유사성을 띄지만, 그 발주처가 대부분 정부와 기업이라는 점에서 상황은 매우 다르다. 신자유주의 이후, 문화적인 것이 통치와 산업의 중요한 요소로 작동되는 시점에서 공공예술, 특히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은 사회 통합과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호명되었다. 그리고 작가들은 여기에 호응했다. 우리가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의 상황은 여기에서 새롭게 출발한다. 그러나 현재의 미술계는 이 부분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혹은 파벌과 유파로 나뉘어 자신들이 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이 보다 의미 있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씁쓸한 것은 이러한 상항에서 이 책의 번역이 어떤 해결책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공미술에 적극 개입했던 두 번역자를 포함해서, 자신들의 공공미술과 관련된 경험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들의 경험을 솔직히 고백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새로운 쟁점을 야기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공공미술의 상황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운동의 주체로 작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공공미술은 완성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도래할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그 과정 속에서 언제나 소음과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김장언은 독립큐레이터, 미술평론가로 퍼포먼스, 출판, 강연 등 다양한 형식의 프로덕션을 작가 및 큐레이터와 협업으로 진행한 바 있다. 대안공간 풀, 안양공공예술재단, 광주비엔날레 2008 제안전 큐레이터 등을 역임했으며, 《Mr. Kim 과 Mr. Lee의 모험》(작가 정서영, LIG 아트홀), 《God save the Mona Lisa》(갤러리 플랜트, 서울, 2010), 《돌아갈 곳 없는 자들의 향락에 관하여》(광주비엔날레, 2008)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상징과 소통 - 지금 한국에서 공공미술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Visual, 2010 vol7), 「지금, 여기 공공미술이 위치하는 지점들」(계간 문화예술 2008년 봄호)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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