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하얀 설원을 질주하는 늑대 두 마리 사진을 포스터에서 본 아이는 잔뜩 기대에 부푼다. “어, 늑대가 나온대!” 정말로 미술관에서 늑대가 뛰어다닐 줄 알았던 아이는 조금 실망한 눈치이지만, 이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무빙 씨어터moving theatre, 기존의 규정에 구애됨 없이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백남준이 창안한 개념';체험이 신기한 듯 눈을 말똥거린다. 늑대는 아니지만 가축처럼 매여 질질 끌려나온 리코더 몸체가 숨결과 만나 장난질을 치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빨간 돌고래가 유영하는 영상의 바다에 푹 빠져서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변신하는 몸과 사물의 이중주에 꽂혀 나가자는 부모를 주저앉히는가 하면, 미메시스 본능에 충만하여 퍼포머의 몸짓을 따라하기도 한다.

지난 7월 17일부터 주말마다 열린 백남준아트센터 퍼포밍아트프로그램 &lsquo;달리는 늑대들&rsquo;이 벌써 이번 주로 마지막이다. 올해 들어 공연예술네트워크 판이 미술관에서 진행한 기획만 벌써 두 번째다. 각각 초점은 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와 닿는 것은 관객들의 반응이다. 무대라는 프레임에서 해방된 춤은 관객들 역시 자유롭게 한다. 아이들의 반응은 가장 선명하다. 지난 5월 국립현대미술관의《올해의 작가》 전시와 연계된 LDP무용단의 레지던시 <미술관, 속을 뒤집다>의 프레젠테이션을 관람한 한 블로거는 이렇게 말한다. &ldquo;그들의 공연은 정말로 더 이상 &lsquo;미술관을 두려워하지 않게&rsquo; 하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신나게 뛰어다니고, 깔깔대며 웃었고, 춤을 추었다. 얼마 전 세들라베 무용단도 어떤 면에서는 즐겁고 신났지만, LDP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세들라베 무용단은 자신들과 우리를 &lsquo;무대&rsquo;라는 공간에서 나누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LDP는 관객의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했고, 실제로 우리는 그것을 즐길 수 있었다.&rdquo;

정영두의 <점, 1에서 100 사이>, 미술관 외부의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 이나현 <Space in Move> 달리는 늑대들, 백남준아트센터

사실 미술관에서의 춤 공연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관심 있는 소수만이 접하곤 했던 이전과 달리 훨씬 개방성이 강해졌다는 점, 그리고 무대 공연의 연장선상에서 접근하기보다 공연자들이 &lsquo;장소성&rsquo;을 좀 더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점 정도가 차이랄까? 하지만,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 도중에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남은 일반 관객들이 질문하는 수준부터 우선 다르다. 공연의 맥락에 익숙한 이들이나 감지할 거라고 생각했던 핵심을 짚어 내거나, 심지어 더 신선한 시각으로 자극을 주기도 한다. 가만히 앉아 바라보기만 하는 수동적인 관객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체험하고 해석하는 &lsquo;해방된 관객&rsquo;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물론 &lsquo;장소성&rsquo;에 관한 작업은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다. 하지만, 미술에서는 이미 거쳐 간 작업이 공연에서는 존재의 감염이라는 힘에 의해 그 내용이 변화한다. 특히 &lsquo;달리는 늑대들&rsquo;의 경우, 화이트큐브에서 시각과 개념에 갇힌 감각을 깨우고 장르 구분이 막아놓은 원형적 흐름을 순환시켜보고자 하는 의도가 컸다. 사실 현장에서 부딪혀보지만 각 장르 종사자들 간의 감각적 간극은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레지던시의 경우, 국립기관으로서는 지극히 예외적인 시도로 받아들여질 정도이다. 어쨌든 이는 무용 창작자의 입장에서 무대의 틀을 벗어나 삶의 맥락을 끌어들여보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사정상 미술관 전시 공간으로 축소되어버렸다는 점을 밝혀둬야겠다. 그렇지만, 테크니컬한 도구로서 이용되던 즉흥이 &lsquo;장소성&rsquo;과 결합되면서, 참여자들이 그 본연의 맥락을 뒤늦게 눈치 채게 된 것은 예기치 못한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이러한 시차와 온도차는 표면으로 드러난 그 이상일 것이다. 실은 좀 더 확장적인 작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마음만 저만치 앞서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관객들은 점점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술관이나 공연장에 한정된 작업이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루어지는 사태들에 마음을 더욱 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운드 아티스트는 미술관에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어른들조차 귀마개 없이 견디기 어려운 노이즈 퍼포먼스까지 접하면서 자란 아이들은 얼마나 더 &lsquo;아방&rsquo;해질까, 궁금하다고 했다. 오늘따라 그게 더욱 궁금해진다.&rsquo;



허명진

필자소개
허명진은 무용전문지 [몸] 기자를 거쳐, 무용평론가이자 출판, 레지던시 등을 주관하는 &lsquo;공연예술네트워크 판&rsquo;의 편집위원, 공연 관련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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