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이건 한 분야를 개척하고 그 분야의 1인자가 된 사람들에게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자 하는 열정과 성실함이 배어나온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면 하우스매니저 없이 공연의 막이 오르고 극장이 운영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이선옥 매니저의 목소리는 객석에서 듣던 것과 꼭 같았다. 성우나 아나운서 같은 전문 방송인처럼 잘 다듬어진 부드러운 음색으로 또박또박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안내 멘트가 화제가 되기 전부터, 멘트의 내용을 떠나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얼굴을 마주 대하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 역시 객석에서 느끼던 그대로 이다. 마주 대하고 있는 상대를 부드럽게 압도하는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는 비단 방송용이지만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음색이나 말투를 떠나 그녀의 뜨거운 열정과 성실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대 뺀 극장 전체”, 그녀의 오지랖 넓은 정의는

이선옥이선옥 매니저는 2000년 엘지아트센터가 개관한 이래 지금까지 이 극장의 하우스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1999년 예술의전당 하우스매니저 공채가 국내 1호 하우스매니저의 탄생이고 보면 그녀는 국내 공연장에서 하우스매니저라는 역할을 개척한 1세대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분야의 탁월한 1인자이다.

물론 개척자라거나 1세대이기 때문에 1인자라는 것은 아니다. 화제가 되고 있는 그녀의 공연 안내 멘트 때문도 아니다. 그녀의 직장이 국내의 손꼽히는 최고의 공연장이라는 것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우선 그녀에게는 상대를 압도하는 자부심이 있다. 어떤 분야이건 한 분야를 개척하고 그 분야의 1인자가 된 사람들에게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자 하는 열정과 성실함이 배어나온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면 하우스매니저 없이 공연의 막이 오르고 극장이 운영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우스매니저가 극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하우스매니저에 대한 그녀의 정의에서부터 설득당하고 만다. 그녀가 스스로 설정하는 하우스매니저에 대한 정의는 무척이나 오지랖이 넓다. 그녀의 정의에 따르면 하우스매니저는 “극장 전체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 “극장에서 무대를 제외한 관객에게 개방되는 모든 공간과 서비스에 대해 책임을 지고, 공연 진행 시 무대감독과 함께 공연진행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따라서 (극장에 따라 구체적인 업무가 달라지게 마련인데) 그녀가 엘지아트센터 하우스매니저로서 하는 일은 안내원 교육과 관리는 물론 소방 설비 등 극장 안전시설의 점검에서부터 식음료바나 주차장 관리 인원에 대한 점검까지 넓혀진다. 비록 극장에 직접 소속된 이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극장에 오는 관객들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고 관객들의 쾌적한 관람을 책임지는 하우스매니저라면 당연히 자신이 맡아야 하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또 공연의 진행에서도 그녀는 단지 무대감독의 큐 사인을 전달하는 역할에서 그치지 않는다. 막을 언제 올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에는 무대의 준비상황도 중요하지만 객석의 상황 역시 중요하다. 물론 모든 공연에는 공연자, 극장, 관객이 함께 약속한 개막 시각이 있고 그것을 지키는 것은 모두의 의무이다. 그러나 관객까지 포함하여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지는 공연에는 항상 예상치 못한 부득이한 상황이 전개되게 마련이다.

“막을 올릴 시각은 코앞인데 객석이 너무 비어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땐 티켓창구에 연락해서 예매 관객수를 확인하고 아직 입장하지 못한 관객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한다. 관객들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교통 상황이 안 좋다거나 할 때는 예매 관객의 반도 입장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무대감독과 협의해서 개막 시간을 조금 늦추기도 한다. 물론 미리 도착한 관객들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시에 개막하고 수백 명이 개막 후에 우르르 입장하는 것이 더 피해가 될 수 있지 않나.”

그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공연은 막이 오른 후 입장하는 관객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한을 둔다. 때로는 공연자 측에서 개막 후 관객입장을 불허하는 경우도 있다. 공연자 측이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막이 오른 후에 관객들이 입장하는 것은 이미 입장해 있는 관객들에게는 피해가 된다. 그런데 또 사람이 움직이는 일이니 항상 예외적인 상황이 생겨나게 되고 공연자들이나 관객들에 대한 피해가 최소한이 되도록 안내를 하는 것도 하우스매니저의 역할이다.

이선옥 매니저는 공연에 앞서 몇 번이고 대본을 살피고 또 리허설도 꼼꼼하게 지켜보면서 먼저 지연 관객의 입장 시점을 제안한다. 물론 공연자 측에서 지연관객에 대한 입장 시점을 먼저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공연자와 관객 양자의 입장을 모두 고려한 정확한 시점을 잡기 위해서는 하우스매니저 역시 공연의 흐름에 대해 파악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제의 안내 멘트, “재미있자는 것만은 아니다”

이선옥관객들 입소문으로 화제가 된 그녀의 톡톡 튀는 안내 멘트도 비단 그녀의 개인적인 재기발랄함이나 ‘재밌게’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안내 멘트라는 것이 핸드폰 꺼라, 사진 찍지 말아라, 하는 관객들에게 뭔가 제한을 가하는 것 아닌가. 또 대중가수들의 콘서트일 경우 관객층이 다른데 극장을 부담스러워 한다. 한편으로는 관객들에게 관극 에티켓에 대해 좀 더 부드럽게 전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막이 오르기 전에 관객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시도해 본 것이었다.”

첫 시도는 대중가수 콘서트에서 그 가수의 대표곡 제목을 엮은 멘트였다. 대부분이 가수의 팬들인 관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특별한 배려로 받아들였고 관객들이 기꺼이 즐겁게 핸드폰 등을 정리하는 것은 물론 달구어진 객석 분위기가 콘서트까지 이어졌다. 공연장의 이미지와 안 맞는 것은 아닐까 우려도 있었지만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면서 극장에서도 그녀를 지지하고 있다.

대본에서부터 실연까지 1인 퍼포먼스라 할 만큼 그녀의 안내 방송에 대한 마니아가 점점 늘어간다. 뮤지컬처럼 장기공연에 수회 반복해서 공연을 보는 관객들 중에는 안내멘트를 바꾸지 않느냐는 반응이 오기도 한단다. 관객들의 높아져가는 기대치가 무겁지 않나 물었다. “대본에서 찾으면 된다. 대본은 아주 두껍다.” 이선옥 매니저의 답이다.

생소함은 줄었지만… 아직 이해의 폭 좁아

“관객들이 정확한 시간에 입장해서 편안하게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다.”

이선옥 매니저가 다시 정의한 하우스매니저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되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연자와 관객 모두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하우스매니저의 역할이 점점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물론 공연에 대한 상당히 숙련된 경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단 하우스매니저만이 아니라 공연의 여러 분야들이 그렇다. 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기술은 물론 공연 전반을 바라볼 수 있는 전체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비단 하우스매니저라는 역할에 대한 성실함을 넘어 공연제작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를 느낄 수 있다. 스스로 이 분야에 늦깎이로 입문했다는 그녀는 20대 청춘을 공연기획 제작 현장을 발로 뛰어다녔다. 방송연예를 전공했지만 공연제작에 관심이 있었던 그녀는 학교 졸업 후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했고 그때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에 스스로 찾아가 일을 찾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고향인 부산에서 외도(?)를 하던 그녀를 새 극장의 하우스매니저로 불러올린 것도 공연기획부 인턴으로 일하던 그녀를 눈여겨 본 김의준 대표와 김주호 부장(현 서울시향 대표)의 발탁이었다. 그녀에게 하우스매니저의 역할이 오지랖 넓게 정의되는 것은 공연제작 전반을 꿰뚫고 있는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연계의 열악한 현실은 이러한 전문적 능력에 대한 이해와 그에 대한 합당한 대우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요즘은 하우스매니저라는 직종에 대한 생소함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전문직이라는 인식은 부족하다. 여전히 극장의 필수 인원으로 인식되는 극장의 스태프 중 하나로 하우스매니저가 인식되고 있지 못하다. 또 대부분 극장에서 하우스매니저의 역할은 안내원 관리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하우스매니저를 채용하는 극장은 늘고 있지만 2~3년의 안내원 경력이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심은 높지만 전문인력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은 미숙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베테랑 하우스매니저인 그녀 역시 고민이 적지 않다. 오지랖 넓은 그녀는 아직도 공부하고 싶은 것, 개발하고 싶은 영역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사실 지난 10년간 그녀에게는 공연장에서의 업무 이외의 시간은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여전히 하우스매니저를 관객을 응대하는 서비스라는 이해를 넘지 않는, 하여 ‘젊은’ ‘여성’을 선호하는 공연예술계의 현실은 일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욕심 많은 그녀의 고민을 깊게 한다.

이선옥


꼬마전구로 만든 케이크의 불을 켜며

공연문화가 성숙했다고 하지만 직접 관객을 응대하다 보면 천태만상의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관객의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관객들에게 피해가 될 때는 제한할 수밖에 없다. 때때로 벌어지는 ‘사건’들은 대부분이 좋은 공연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야 하는 지점에서 벌어진다. 늦은 시간에 입장하면서 왜 내 돈 주고 산 R석에 못 안느냐고 항의하는 관객, 사진 촬영을 제한하는 것에 대해 인간적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격하게 화를 내는 관객. 아마도 빙산의 일각일 그런 ‘사건’들을 듣다보면 공연 에티켓 이전에 서비스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천박한 인식이 먼저 다가온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관객들이 지불한 티켓값에는 그가 받아야 하는 서비스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이 무제한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인 것도 아니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 대한 인격적 비하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더 씁쓸한 것은 그렇게 격하게 항의하는 이들 중에는 공연전문가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선옥 매니저는 때때로 안내원들이 함께 그들만의 이벤트를 마련한다. 언젠가 공연 중에 생일을 맞은 배우를 위해 무대에서만 보이는 2층 객석 뒤편에 작은 꼬마전구로 케이크를 만들어 커튼콜 때 불을 켰다고 한다. 무대인사를 하던 배우가 꼬마전구 케이크를 보고 환하게 웃자 관객들 중에도 몇몇이 돌아보고 함께 축하해 주었단다.

“무엇보다 생일에도 관객들을 위해 무대에서 땀을 흘리는 배우들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나 안내원들이나 극장의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이기 이전에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현실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이러한 애정이 없다면 과연 우리의 공연계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 매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이선옥 매니저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러한 감상적인 느낌이 다가오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김소연

필자소개
김소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 ‘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 등의 비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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