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와 리듬은 다른 것이다. 제도가 박자라면 리듬은 프로그램이다. 예술의전당이 박자라면 조수미 리사이틀은 리듬이다. 정책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 2000년대 간절했던 새로운 문화정책과 예술정책의 시행 이후, 많은 지원제도와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 기관도 생겼고, 공장도 생겼다. 지난 주말 경기창작센터에서 경기문화포럼의 일환으로 ‘창작스튜디오 네트워크 포럼’이 있었다.

2009년 개관기념으로 ‘레즈 아티스’ 국제컨퍼런스가 열렸던 것과 견주면 이번 포럼에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레지던스’를 키워드로 활동하고 있는 거의 모든 기획자와 기관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씬에서 로컬씬’으로 관심이 이동한 행사로 볼 수 있겠다. 이 때 로컬씬은 국제씬에서의 로컬인 대한민국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로컬씬은 다시 대한민국에서 ‘레지던시’를 이끌어 왔던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한 중앙과 이와 연관된 인접 프로그램의 로컬씬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번 포럼에서는 그 안에서 지역적 컨텍스트의 문제, 예술가 프로모션, 국제교류 네트워크, 학제적+크로스 장르적 실험 등 제도적 맥락과 창조적 프로그램 생성을 위한 몇 가지 프로그램들이 배치되고 논의되었다. 큰 지형을 그릴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심’ 이슈는 발견하지 못했다.

국제 레지던시 '무빙 스페이스 프로젝트'

국제 레지던시 '무빙 스페이스 프로젝트'
주관 춘천마임축제

틈과 균열 사이의 리듬 읽기를 소망한다

라운드테이블2의 발제 ‘창작으로서의 미술과 시장미술’에서 동덕여대 심상용 교수는 “현대미술의 아트월드(Art world) 역시 눈먼 자들의 수용소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의 아트월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눈먼 자들이라 함은 바로 제도에 편입되어 질문과 사유를 한 켠 창고 속으로 숨겨버린, 혹은 제도의 입맛에 스스로를 길들이는 이들 아니겠는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일견 과정의 공간으로 창조적인 행위에 대한 지원이라면 이 ‘눈 멈’을 벗어 던지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고 논의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 때 중요한 것은 ‘박자’로서의 ‘장치’가 아닌 ‘리듬’을 읽고 수행(performativity)하는 ‘장치’가 아니겠는가?


오늘날 동시대의 감각은 종횡을 가로지르는 감각, 생성과 창조의 정의가 ‘표현’과 ‘창작’하는 것을 넘어 그리고 그 행위와 감각을 넘는 ‘수용’ 감각-거칠게 말해서 교육하고 떠먹이는 감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이러한 행사들을 통해서 큰 지형학을 그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수용의 과정도 거쳤고, 적응의 과정도 거쳤고, 생성의 과정이 남았는데, 이때 대한민국의 새로운 생성론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든 전문가가 말하는 것이다. 레지던스 혹은 동시대 주요 예술기관들의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이 정책을 말했고, 너무 많이 개선방안을 말했다. 실제로 그러한 땀이 있었기에 정책적인 성과가 있고, 몇몇의 현장예술가들은 공공 지원에 힘입어 판을 만들고 있다.


그간 공공과 민간의 확연한 차이를 확인하고 또 때로는 그 차를 좁혀가는 몇 가지 과정을 거쳐 온 만큼, 이제는 공공과 민간 제각각의 입장도 아닌, 제도와 프로그램의 입장도 아닌, 중앙과 지역의 입장도 아닌, 박자와 리듬의 입장도 아닌 박자와 리듬이 함께 만들어 내는 그 무언가의 ‘아름다움 혹은 추함’, 지금의 이야기를 해야 할 그런 포럼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공연예술로 말하자면 모든 극장과 축제의 프로그래머나 예술감독, 평론가, 예술가가 서로 뒤섞여 ‘지원 프로그램이나 개선 방안’이나 등등의 ‘박자’ 따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틈과 균열’ 사이의 리듬을 읽고 첨예한 동시대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자리를 소망하는 것은 과연 머나먼 일인가.

임인자

필자소개
임인자는 대학에서 연극이론 및 연출을,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 예술포장마차 프로그래머와 강화정, 비주얼씨어터컴퍼니 꽃, 정금형 영국투어, 변방 거리극 프로젝트, 돌출춤판 및 토요춤판, 크리에이티브 바키, 유진규네 몸짓 등에서 프로듀서를 맡았고, 현재 한국거리예술센터 사무국장이자 9월 시작되는 제12회 서울변방연극제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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