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메노포즈>, <쓰릴 미>, <스프링 어웨이크닝>, <스위니 토드> 포스터
박용호
박용호

<메노포즈> <알타보이즈> <김종욱 찾기> <쉬어매드니스> <쓰릴 미> <필로우맨> <스위니토드> <씨왓워너씨> <지붕위의 바이올린> <마이 스케어리 걸> <스프링 어웨이크닝> <날보러와요> <웨딩싱어> <어쌔신> <뷰티퀸>. 2004년 창립 이후 2005년부터 지금까지 뮤지컬해븐이 제작한 작품들이다. 대부분이 초연작들이고 또 국내외 뮤지컬계에서도 메인스트림에서는 비껴서 있는 작품들이다. 예를 들어 <쓰릴 미>는 브로드웨이 현지에서보다도 국내 관객들의 반응이 더 폭발적이어서 원작자들마저 의아해 할 정도이고, <김종욱 찾기>는 장윤정 연출이 학생시절 실습공연으로 만들었던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초연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거듭 제작되고 있는 뮤지컬해븐의 효자(?)들이다. 아마도 토니상 수상작인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뮤지컬해븐의 작품 목록 중에서는 가장 주류(?)라 할만하지만, 베데킨트의 희곡을 바탕으로 억압적인 기성사회에 대한 청소년들의 반항을 거친 질감으로 쏟아내는 이 작품은, 처음 제작을 추진하던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주목받았던 공연이 아니었다.

물론 뮤지컬해븐이 창립하던 2000년대 중반은 뮤지컬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던 시기였고 많은 뮤지컬 제작사들이 생겨나고 수많은 공연들이 오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그 수많은 공연들 중에 작품성과 대중성 양자 모두에서 안정적인 수준을 확보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는 제작사는 많지 않다.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등 이미 작품성과 상품성이 검증 완료된 대극장 라이선스뮤지컬이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던 시기에 뮤지컬해븐은 그러한 흐름과는 다르게, 중소규모의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들을 제작해왔다. 작품의 규모만이 아니라 작품의 내용이나 질감에서도 뮤지컬해븐의 작품들은 당시 폭발적인 시장의 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진 뮤지컬 관객들의 취향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뮤지컬해븐의 작품들에는 중년여성의 폐경을 다룬다거나, 동성애자가 등장한다거나, 엽기적인 살인행각이 등장한다. 어둡고 암울한 이러한 이야기들은 화려한 무대 스펙터클이라든가 달콤한 로맨스로 판타지를 강조하는 작품과는 거리가 있다.

&ldquo;공연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다&rdquo;

지나고 보니 결과적으로 틈새를 공략하는 후발주자의 성공적 전략이라 하겠지만, 연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둔 규모를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닌, 소규모의 신생제작사가 시장을 주도하는 흐름을 거스르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도박이라 할 만한 모험이다. 하지만 또 후발 주자들이 피할 수 없는 것이 모험이기도 하다. 이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하면서 &lsquo;뮤지컬해븐&rsquo;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라 할 만큼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한 박용호 대표는 대체 무슨 묘수가 있었던 것일까.

&ldquo;처음 시작할 때 여러 가지 판단과 선택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lsquo;작품&rsquo;이다. 좋은 작품을 제대로 만들어 올리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것 아닌가.&rdquo;

박 대표의 답은 간단했다. 그가 평소에도 누누이 강조해왔던, &lsquo;작품&rsquo;이 답이라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그렇게 말하지만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lsquo;공부가 세상에서 가장 쉬웠다&rsquo;는 식의 얄미운 모범생 같은 답이다.

&ldquo;공연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손맛, 특색이 있어야 한다. 뮤지컬이 산업이라도 그렇다. 좋은 식당들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 있고 자기만의 개성이 있다. 공연도 마찬가지다.&rdquo;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종종 이런 식으로 음식에 대한 비유를 많이 했다. 좋은 재료를 선택하고 최선을 다한 요리를 내놓는 자부심 있는 식당 주인. 그가 꾸는 꿈은 혹시 그런 것일까. 음식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문화가 될 때는 만드는 이와 먹는 이의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소통행위 이기도 하다. 예술이자 산업인 뮤지컬에 대한 음식의 비유가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제작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 회사를 운영할 생각은 없었다는 그가 뮤지컬해븐을 만들게 된 것도 &ldquo;정말 보고 싶은 작품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ldquo;맛있는 것을 권하는 데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인가&rdquo;

현실은 어렵지만, &ldquo;우리 팀은 방관자가 아니다&rdquo;

박 대표에 대한 뮤지컬계의 중평은 안목, 제작, 합리적 운영의 3박자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안목이야 앞서 이야기했던 뮤지컬해븐의 레퍼토리들이 말해주는 것인데, 그의 안목은 비단 작품 선택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삼성영상사업단 시절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제작할 당시 무명이었던 류정한을 &lsquo;토미&rsquo; 역에 세우는 과정에서 박 대표의 강력한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곡들에 비해 음역도 넓고 어려운 토미의 곡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류정한뿐이라는 그의 판단에 처음엔 선뜻 동의하지 않았던 제작진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단다. 결과는 배우에게나 작품으로나 성공적이었다. 김무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A급으로 성장한 김무열은 <쓰릴 미>에 처음 캐스팅 될 때만 해도 지금 그가 보여주고 있는 자신의 진가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었다.

비단 배우만이 아니라 스태프들까지, 뮤지컬해븐의 많은 작품들을 거의 데뷔작이라 할 신인들과 함께 만들어간다. 잘 만들어야 한다고, 그래야 &lsquo;제대로 된 관객들&rsquo;이 호사를 누릴 수 있다고, 중요한 것은 작품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그렇다면 좀 더 검증된 역량 있는 스태프들과 작업하고 싶지 않을지 궁금했다.

&ldquo;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과정을 얼마나 치밀하게 진행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물론 제대로 과정을 밟아가는 것을 어렵게 하는 공연계의 현실이라는 것이 있다. 스태프들도 창작자이기 이전에 생활인이고, 작품에 온전히 몰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팀은 방관자로 안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경력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rdquo;

소규모 신생 제작사로서 차선의 선택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무색해지는 말이다. &lsquo;작가의 의도를 정성스럽게 섬기는 것&rsquo;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그는 번역과정에서도 작가와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 차례의 검토를 거친다고 한다. 공급자에 의해 시장이 형성되는 공연계에서는 만성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공연들이 오른다. 웬만한 인지도가 있는 작가, 연출가, 디자이너들은 일 년에 7~8개 작품을 올리는 것은 예사이다. 그러니 그와 같은 과정을 바쁜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번은 &lsquo;이렇게 많았나&rsquo; 놀라고, 또 한 번은 &lsquo;이렇게 없었나&rsquo; 놀라고

그런 점에서 보면 &ldquo;현재 활동하고 있는 제작자들 중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책임질 수 있는 드문 제작자 중의 한 사람&rdquo;이라는 박 대표에 대한 평가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가 과감하게 숨겨진 작품들을 찾아내고 신인을 캐스팅할 수 있는 것도 재목을 알아보는 안목과 더불어 프로덕션을 지휘하면서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는 제작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하여 그에 대한 뮤지컬계의 기대는 적지 않다. 2000년대 뻗어나가던 뮤지컬 시장이 경제 불황과 함께 조정기를 맞이하고 있는 이즈음 뮤지컬계의 관심은 과연 새로운 시기의 킬러콘텐츠로 규모 있는 창작뮤지컬이 나올 수 있는가 이다. 우리보다 시장의 규모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위라 할 일본도 사실 창작뮤지컬의 지분은 미미하다. 그래서 박 대표의 행보가 더 주목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불황이라는 파도를 피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지난해 기대작이었던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부담을 남겨 놓았다. 뮤지컬 어워드 최우수외국어상 수상 소감을 말할 때 &ldquo;좋은 작품이 돈 많이 버는 세상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rdquo;는 그가 안타깝다. &ldquo;<스위니 토드>를 할 때는 뮤지컬 마니아가 이렇게 많았나 놀랐고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는 이렇게 없었나 해서 놀랐다.&rdquo;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뮤지컬 성장의 견인차였던 뮤지컬동호회 등 뮤지컬 마니아층의 활동이 현저히 위축된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독특한 색깔로 안목 있는 관객층을 확보해왔던 뮤지컬해븐에게는 이러한 현실이 불황보다 더 두려운 것이 아닐까.

시장의 판도나 취향의 트렌드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가 걱정하는 것은 여전히 허약한 리뷰문화이다. 내 작품을 좋게 봐달라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줄 수 있는 리뷰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나온 작품 중에는 그대로 잘 나왔다는 식의 상대평가 말고 정말 관객들이 믿을 수 있는 절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신뢰가 작품을 중심으로 한 합리적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ldquo;내 취향은 아주 평범하다&rdquo;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지인에게 박용호 대표에게 궁금한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었다. 대뜸 대체 뮤지컬해븐의 레퍼토리가 보여주는 그의 안목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 즐겨듣는 음악은 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ldquo;우리 작품이 독특하다, 혹은 어둡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작품을 계속 만든다고 오해를 받기도 했다.(웃음) 하지만 우리 작품은 사실 동성애를 다룬다고 할 수도 없다. <쓰릴 미>도 동성애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이다. 게이라는 설정에서 남다른 갈등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 작품이 독특해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공연계가, 제작자나 관객이나 편식이 심하다는 것이다. 나는 작품을 만들 때 우리 작품의 관객으로 뮤지컬 고어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뮤지컬 고어가 아닌 이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까를 생각한다. <메노포즈>를 만들게 되었던 것도 마지막에 관객들과 함께 춤추는 장면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중년 여성의 폐경에 대해 뭘 알겠나.&rdquo;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한 이력을 떠올리며 예술적 감수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그는 그런 질문에는 별로 답할게 없단다. &ldquo;그건 훈련되는 게 아니다.&rdquo; 그렇다고 그의 대답이 타고난 천부적 소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ldquo;어렸을 때의 꿈도 그때 아이들의 열에 아홉이 그렇듯이 육군대장이라든가 과학자라든가 그런 것이었다. 음대에 진학한 것도 음악에 대한 대단한 소명이 있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학교 다니면서 선생님이 너무 싫었다.(웃음) 난 아주 평범하다. 특별히 좋아하는 책이라든가 음악 그런 것 없다. 영화 <개 같은 내 인생>을 좋아한다.&rdquo;

그가 말하는 &lsquo;박용호&rsquo;는 문화적 마이너 감수성, 투덜이, 하지만 보통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심, 그리고 자유로운 인생에 대한 동경 등이다. 지극히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다. &ldquo;내가 비즈니스 감각은 좀 있었던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알바를 엄청 많이 했다. 나중에는 친구들 알바를 주선할 정도였다.&rdquo;

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일하게 된 것도 음악과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이었다. 공연사업부가 해체된 후 음반제작부에서 일하던 당시가 아이돌 스타들이 막 만들어지던 때였고, (그는 이때가 우리나라 음반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든 때라고 말한다.) 더 이상 의미가 없어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뮤지컬해븐 대표로 그가 있다.

어찌 보면 두려울 것 없는 자신만만함이 먼저 다가올지도 모르지만 그의 흥미로운 안목과 놀라운 추진력은 &ldquo;콩 심은 데 콩 나야 한다.&rdquo;는 너무도 당연한 것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기에 당연한 것을 믿고 실현하려는 그가 주목된다는 사실. 우울한 역설인가? 그렇지 않다.

김소연

필자소개
김소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lsquo;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rsquo; &lsquo;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rsquo; 등의 비평이 있다. kdoon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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