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가 다양해지면서 홍보 방법 또한 다양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포스터는 가장 중요한 홍보물의 하나이다. 작품의도, 공연 · 전시의 성격, 날짜 시간과 같은 정보부터 주요한 관객층을 염두에 둔 이미지 전략과 카피까지 한 컷의 이미지에 담아야 할 내용은 너무나 많고, 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지만, 항상 시간과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기획자, 작가, 디자이너, 언론인 등 공연 · 전시 관계자들에게 근래 발표된 포스터(프로그램) 중 최고의 작품 세 편을 추천받았다. 자, 여러분의 평점은 어떠신가! ③ 트렌드분석

미술전시와 관련된 홍보인쇄물들은 시대마다 나름의 의미와 개성을 보여준다. 매 전시마다 인쇄되는 포스터, 엽서, 팸플릿, 리플릿 등은 그 전시의 이면에 자리하는 비전과 욕망과 의미를 시의적절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크게 주의하지 않은 채 생산된 것들이 보다 더 구체적이며 진솔한 욕망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2010 광주비엔날레 포스터
2010 광주비엔날레 포스터
◀ 2010 아시아프 도록  ▶『everything is illuminated』(Jonathan Safran Foer, 2003)
◀ 2010 아시아프 도록
▶ 『everything is illuminated』
(Jonathan Safran Foer, 2003)
 2010 아시아프 도록 표지와 내지
2010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도록
표지와 내지
2010 부산비엔날레 포스터
2010 부산비엔날레 포스터

얼마 전 모 기업에서 주최한 전시에서 한 작가가 초대되었다. 디자이너이자 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전시 초대와 더불어 이 전시의 포스터와 리플릿 디자인을 의뢰받아 제작했다. 그는 디자인 업계에서도 실력이 입증된 베테랑디자이너였다. 얼마 후 기업 실무자들은 그의 디자인을 검토한 후 완곡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 디자인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의 디자인이 다소 파격적이고 일반인들에게 조금은 거칠게 느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작가와 그 기업은 협의를 거쳐 디자인 이미지를 일부 편집해서 쓰는 것으로 일단락을 지었다. 그 작가의 의욕이 반감된 것은 물론이다. 작가의 개성, 창의, 고유한 형식이 중요한 예술분야에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전시홍보의 경우 포스터나 도록 디자인을 둘러싸고 인식과 취향의 차이와 오해에 의한 갈등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모 시립미술관의 경우는 국제전시회 초청장을, 전시기획 실무담당자가 선정한 디자인과 미술관 관장이 선정한 디자인 2종류를 모두 제작해 발송한 경우도 있다. 또 대형기획전의 경우 작가의 사정으로 또는 작품의 소유나 작품 이미지 판권 문제, 도록 뒤에 기입되는 크레딧 문제 등으로 전시 개막을 앞두고 갑자기 내용과 구성이 변경되어 실무자들이 죽을 맛이 되기도 한다. 또한 협찬이나 후원사의 로고 등을 배치하는 문제도 민감한 사안 중 하나이다. 이러한 여러 사례들에서 디자인은 단지 디자인의 영역을 넘어서 기획 전반과 관련된다. 그런 이유로 실제 디자인 실무자와 전시기획 실무자 간의 그리고 작가까지 얽힌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는 미술작품을 디자인하는 경우 인쇄사고에 언제든 노출될 수 있다. 실제 작품보다 더 붉은 색으로 인쇄되었다거나 더 어둡게 나왔다거나 등등. 그 정도가 심할 경우 다시 인쇄하게 되는데 그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나 전시 주최자가 이중으로 비용을 처리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러면 서로 얼굴을 붉히고 다시는 협업하기 어려운 관계가 되어버리곤 한다.

근거 없는 기준들, 설득력 있는 관행들

이런 일은 미술현장에서 매우 자주 벌어진다. 기업뿐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각종 예술행사들의 경우 언제든 벌어질 수 있고 또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 비해 현대미술이 일반대중 속으로 들어가고 대중이 미술 속으로 다가올수록 심화된다. 불분명하지만 완고한 주최자의 입장과 대중의 통념 사이에서 작가와 기획자들은 빈번한 좌절과 당혹을 경험한다. 세대 간의 문화적 차이, 취향의 차이, 계층 간의 소득수준이나 문화자원의 차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학교에서 배운 예술과 미학은 이론일 뿐이며 졸업과 동시에 사회 속에서 해체되고 추락한다. 그리고 그것은 경험을 쌓는 과정이자 하나의 성숙으로 이해되어 해당 분양의 전문가가 되는 당연한 코스가 된다. 실제 그런 면도 있다.

기획주최나 기획실무담장자 또는 참여 작가를 제외한 직간접 관련이 없는 이들은 전시홍보디자인에 관심이 크지 않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아주 예외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매우 강박적인 미술애호가들 또는 준전문가들이 있기에 디자인에 신경을 더 써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실제 전시를 만드는 기획자나 작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식과 취향의 차이가 유일한 원인이자 갈등의 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째든 미술현장에서 실제 전시기획에 참여하고 실무를 진행해 본 경우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전시홍보디자인을 둘러싼 경험을 하게 된다. 몇 가지 근거 없는 기준들이 난무하기도 하고 또 나름 설득력이 있는 이유로 관행적으로 적용하는 기준들이 있다.

보통 미술분야에서 포스터의 경우 해당 참여 작가의 얼굴이나 작품이 크게 클로즈업되는 것으로 대부분의 디자인이 결정되고 했다. 그러나 점차 장르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보다 시각적 정보와 감각적 취향이 범람하는 시각영상정보시대에 포스터도 변하게 된다. 마치 첨단 또는 아방가르드에 준하는 빛나는 아이디어와 눈을 사로잡는 디자인이 점차 늘어나는데 공교롭게도 해외 유명 디자인과 점차 유사해진다는 단점을 동반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중요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시각적 쾌감과 지적 유희를 준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말하자면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디자인의 시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디자인들은 일종의 작품의 반열에 올라 수용되고 각광을 받기도 한다. 매우 창의적이고 지적인 디자이너들이 또 디자인 감각이 탁월한 작가들(여기서는 현대미술가들)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보인다.

양장본 도록, 권위와 제작예산의 함수 관계

전시기획자로서 나는 도록 디자인에 대해 몇 가지 편견 또는 확신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양장본으로 만든 도록을 대체로 많은 이들이 선호한다는 것이다. 해당 작가는 물론이고 주최자, 기획자, 미술기자, 컬렉터 등등.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수록한 양장본 또는 하드커버로 만든 도록을 갖고 있다는 것은 현장에서 활동할 때 든든한 배경이 된다. 우선 양장본으로 만든 도록에 수록된 작가나 작품은 전문가나 일반 애호가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비합리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실제 영미권의 잘나가는 미술가들의 경우에도 양장본으로 만든 도록을 지닌 이는 매우 드물다. 그 지역의 대표작가가 아닌 이상 매우 어렵다. 더욱이 천으로 된 양장본의 경우 거의 아우라가 생길 정도의 권위를 은연중 만들어내기도 한다. 대체로 이런 도록은 아주 대가나 원로작가의 경우 또는 국가대표급 작가의 경우에 볼 수 있다. 물론 그의 활동이나 예술성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부유한 미술가들이 자비로 그런 고상하며 권위가 어린 도록을 만드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한편 각종 국제전시의 경우에도 양장본 또는 하드커버로 제작된 도록을 내는 것이 관례화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국제행사의 경우 해외작가들의 사정에 따라서 또 국내작가들과 달리 여러 문화적 차이와 진행상의 다양한 이유로 촉박하게 제작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예산이나 컨텐츠가 풍부하고 또 제작에 대한 의지가 확고함에도 전시 개막일에 맞추기 위해 제작기간이 짧은 일반적인 두께의 표지를 채용한 도록을 제작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천으로 된 양장본의 표지와 소위 떡제본이라는 무선철(풀매기) 방식으로 본드를 사용하는 제본방식이 아닌 양장이나 반양장의 제본 방식을 채택할 경우 제작기간이 거의 2~3배가 요구된다. 그러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게 마련이다.

몇몇 기획자나 작가들은 보통 표지로 쓰는 종이두께보다 더 얇은 종이나 또는 특수한 종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매우 시사적이거나 사회적인 개입을 표방한 개념적인 작업을 선호하는 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이들은 대체로 젊거나 해외 유학파가 많고, 공공미술과 관련된 프로젝트일 경우 더더욱 많은 페이지가 필요한 텍스트가 생산 또는 사용된다.

요컨대 현대미술이 대중화되고 양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좀더 전시나 작가와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도록을 양장본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고 또 실제 그 전시홍보에 있어 전략적으로 다른 전시들에 비해 유리하다. 양장본 이외에도 엠보싱, 압인, 펀칭, 부분 코팅 등이 좀 더 고상한 도록을 위해 사용된다. 그러나 이 방법은 거의 현실적인 예산과 제작기간과 맞물려 있다. 금색이나 은색 등 별색을 사용할 경우 제작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그러니 현장 경험이 있는 이들은 포스터, 도록 등만 보아도 대략 해당 전시의 예산을 추측할 수 있다.

정보의 범람과 새로운 디자인 개념

미술환경이 국제화되면서 전시제목이나 도록에 들어가는 텍스트의 편집디자인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영문에 비해 국문(한글)의 서체의 종류가 매우 빈약해 실제 미술전시 관련 디자인에서 디자이너들은 영문을 선호한다. 국문을 쓸 경우 일반적으로 무난한 서체를 쓰고 글자 폰트를 가능한 작게 하여 글자가 문장으로 읽히지 않고 마치 기호나 조형적 요소로 보이도록 의도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노안이 일찍 온 이들이나 실제 중년층 이상은 가독성이 없는 디자인을 원망하며 매우 짜증스런 독해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미술관련 도록은 읽기보다는 보기 위한 일종의 그림책처럼 디자인된다.

한편 국제화는 물론 미술시장이 커지고 한국 사회에서 미술이 차지하는 위상이 확대되면서 과거에 비해 전시회가 늘고 또 작가들도 많이 양성됨에 따라서 과거 선배들에 비해 전시경력이 폭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더 이상 도록이 제공하는 그 작가에 대한 정보만으로는 작가의 경력을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정보의 양이 많다는 것이 곧 정보의 정확성이나 정보의 질이 좋아졌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디자인 개념과 형식이 필요해진다. 이는 아마도 최근 몇 년간 미술계에 제기되는 레지던스와 아카이브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도 연결된다.

전시홍보나 가이드를 위한 디자인은 사실 디자이너, 전시기획자, 작가 그리고 주최자나 후원자의 취향과 의견이 만나는 교집합에서 만들어지는데, 실제 현장에서 그것은 또한 매우 어려운 작업이자 목표가 된다. 협업자들의 예술관과 사회성, 의사소통의 능력에 따라서 전시나 전시관련 디자인은 산으로 가기도 하고 바다로 가기도 한다.

미술 분야에서도 회화, 조각, 영상, 사진 등 그 형식에 따라 팸플릿이나 리플릿의 판형과 규격 종이 종류와 무게(두께) 등이 다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반드시 작가의 작품의 주제나 그 예술관을 참조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할 경우 매우 복잡한 상황이 전개된다.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의사소통에 실패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보편성의 강화, 자기고유성의 약화

현대미술분야가 국제화되고 국경과 지역의 고유성보다는 세계화로 미적 보편성이 확대되면서 전시형식과 전시 관련 디자인 또한 범 지구화되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시각예술문화의 국제적 경쟁력 강화(이 말은 사실 미술계에서 정확히 정의되거나 다수의 동의를 끌어낸 말은 아니다)이자 동시에 자기고유성의 약화이기도 하다. 어째든 그러한 현상이 미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옳다거나 그르다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각문화와 환경이 이로 인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은 필요하다.

미술전시와 관련된 홍보인쇄물들은 시대마다 나름의 의미와 개성을 보여준다. 매 전시마다 인쇄되는 포스터, 엽서, 팸플릿, 리플릿 등은 전시의 주제와 내용, 출품 작가와 작품이 보여주는 것만큼 그 전시의 이면에 자리하는 비전과 욕망과 의미를 시의적절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크게 주의하지 않은 채 생산된 것들이 보다 더 구체적이며 진솔한 욕망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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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공연 포스터·프로그램 ② 전시 포스터 ③ 트렌드분석-전시 ③ 트렌드분석-공연

김노암 _ 아트스페이스 휴 대표 필자소개
김노암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회화繪畵와 미학美學을 전공하였다. 미술현장에서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며 그림과 글로 시절을 보내고 있다. 현재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를 운영하며 미술웹진 [이스트 브릿지], KT&G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의 운영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대표이자 본지 편집위원.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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