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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도시가 시민사회의 도시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어떤 필요조건을 갖추지 못했으며 우리는 그 도시 속에서 함께 공유할 것 없는 건조한 삶을 살아 왔다는 것을 이제야 함께 알게 되었다. 남산이나 북한산 같은 산림공원과 강변 둔치 등과는 달리 진정한 도시 공공영역이란 일상에서 스치듯 빈번히 접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역이어야 한다는 것을 정말로 뒤늦게 알게 되었다.

마로니에 공원
마로니에 공원
마로니에 공원
필자 제공 사진

2002년 월드컵의 기억은 우리에게 4강 신화와 거리응원으로 남아있다. 4강은 계속 신화로 남겠으나 거리응원은 우리의 도시 공간에 묵직한 과제 하나를 던져 놓았다. 바로 도시 공공영역의 과제다.

거리응원의 유쾌한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우리는 알았다. 이제껏 우리의 도시가 시민사회의 도시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어떤 필요조건을 갖추지 못했으며 우리는 그 도시 속에서 함께 공유할 것 없는 건조한 삶을 살아 왔다는 것을 함께 알게 된 것이다. 그 필요조건이란 도시 공공영역(크고 작은 광장. 도시공원. 보행전용 거리 등)이다.

남산이나 북한산 같은 산림공원과 강변 둔치 등과는 달리 진정한 도시 공공영역이란 일상에서 스치듯 빈번히 접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역이어야 한다는 것을 정말로 뒤늦게 알게 되었다.

도시의 필요조건 공공영역

그래서 처음 만들게 된 것이 서울 시청광장이었다. 하지만 잔디가 깔리고, 행사에 의해 빈번히 점유되는 애매한 영역이 되고 말았다. 광화문광장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역시 분수, 꽃밭, 동상 등으로 지나치게 번잡한 동시에 도로 한 가운데 고립된 영역이 되고 말았다. 도시 공공영역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실패를 불러왔다. 영역은 확보해 놓았으니 언젠가 적절한 조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문화지구 대학로에는 이미 영역이 확보된, 서울에서 으뜸가는 도시 공공영역의 후보지가 있다. 마로니에 공원이다.

마로니에 공원은 오래 전 이 지역을 주택지로 조성할 때 동네 공원이란 뜻의 ‘근린공원’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어린이 놀이터, 농구대도 그래서 있다. 그 후 이곳에 극장과 미술관이 들어선 후 점점 각종의 시설들이 그때마다 어지러이 추가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지난 해 이곳이 ‘문화공원’으로 지정변경 되었다. 쓰임새는 이미 문화적, 공공적인데 제도가 한참 늦은 셈이었다. 이제 이 영역을 그 제도의 토대 위에 본격적인 도시 공공영역으로 만들어 갈 일만 남게 되었다.

마로니에 공원이 진정 도시 공공영역이 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상태로의 변화를 말한다. 우선 놀이터, 농구대, 매점 등 근린공원 시절부터의 시설들이 자리를 내 주고 분수대, 동상, 기념물 등 그동안 어지러이 추가된 것들 역시 다시 정돈되어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편히 거닐고 쉬고 모이기 위한 공간이 더 많이 확보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공원을 거닐다 불쑥 만나게 되는 작은 이벤트 등과 그러한 상황들을 함께 즐기고 있는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느끼게 됨으로써 도시의 일상생활이 즐거워지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특히 오랫동안 이 장소를 과도하게 점유하며 전체 장소의 공적 분위기를 훼손해 온 이상한 모습의 공연장이 철거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름 그대로의 마로니에 공원이 될 수 있도록 잘 가꾸어진 활엽수의 풍경을 만드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마로니에 공원을 진정한 도시 공공영역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이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예상 활동들의 목록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 목록 속에는 도시의 공적 영역 속에서 가능한 일상적인 일들과 함께 우리를 자극하는 예상치 못할 일들도 상상으로 담겨야 한다. 또한 대학로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화활동의 정보를 알리고 나눌 수 있는 시설이 그 여유 지하공간에 만들어져서 활동의 목록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면 한층 더 좋은 일이 된다.

무엇보다도 이곳이 근사한 도시 공공영역이 된다는 것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마로니에 공원이 대학로의 핵심적인 문화적 공공장소가 되어 대학로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일들, 즉 문화적 생산과 소비를 서로 북돋고 서로 나누는 교환, 격려, 공감을 포함한 ‘소통의 장’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상업 등의 사적 영역이 해낼 수 없는 도시 공공영역의 핵심적 역할이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태계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일종의 생태계다. 그래서 그 안에서는 상업과 문화 사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처럼 다양한 형질들 간의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며 도시적 천이(遷移 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식물군집의 변화)를 해 나가게 된다. 대학로 역시 그리 해 왔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주택지에 미술관과 공연장이 들어서고 이후 작은 상업건물들이 하나 둘, 소극장과 함께 들어섰다. 때로 지나치게 상업시설이 확대되어 오히려 문화적 잠재력을 추방시키는가 했더니 여러 예술 대학들의 도심 캠퍼스가 들어와 새로운 힘을 보태기도 하는 아슬아슬한 천이가 계속되었다.

그러한 도시적 천이, 즉 점진적 변화는 생태계가 그러하듯 공공영역이 만들어주는 종 다양성의 힘에 의해 균형과 건강함을 유지해 나가게 된다. 왜냐하면 공공영역에는 ‘소통의 힘’이 들어있으며 소통은 담론의 형식으로 다양한 견해들을 생산하고 또 때로는 합의해 내기 때문이다.

마로니에 공원을 진정한 도시 공공영역으로 만드는 과제가 우리에게 그리고 대학로 전체에게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로만의 과제가 아닌 현재 우리 도시가 안고 있는 공공영역 확보의 숙제와 전적으로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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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철학 ② 과학 ③ 출판 ④ 경제

이종호 필자소개
이종호는 건축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동 대학 도시건축연구소-IUA 소장을 맡고 있다. 박수근 미술관, 이순신 기념관 등 사회의 기억들을 매개로 작업을 해 왔으며 광주, 순천, 무주 등의 문화도시 연구를 진행했다. 김수근 문화상을 비롯한 여러 건축상을 받았고 베니스와 광주비엔날레의 초대작가이기도 하다. yjhmeta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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