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미술관에는 시간과 이야기가 배어있다. 어느 고독한 작가가 고단한 몸을 뉘었을 따뜻한 온돌방과 세상을 떠돌던 아이들이 한 뼌 한 뼘 키워갔을 꿈과 두 부부가 다 먹지도 못할 고추를 한 바구니 따와 건네며 붓을 잡는 동네 아낙네의 손길과, 함께 쪼그려 앉아 잔디밭의 풀을 뽑으며 '화가 선생님'에게 풀을 뽑으며 '화가 선생님'에게 풀이름을 가르치는 할머니들. 이들의 시간과 이야기가 마당의 어느 구석, 미술관 어느 모퉁이, 한옥의 대청마루 곳곳에 배어 있다.

아미 미술관

아미 미술관
아미 미술관
아미 미술관
아미 미술관
아미 미술관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잠깐 펼쳐지던 시가지는 금세 끝났다. 새 군청 공사 현장, 덩치 큰 상가, 우뚝우뚝 솟은 아파트들. 서해안에 대규모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군 단위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부자라는 당진군의 활기를 차창 밖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이어지는 풍경은 여느 농촌과 다름없다. 나지막한 산세가 둘러싸고 있는 들판, 가을 걷이가 끝난 퀭한 논, 길가의 파삭하게 마른 잡초덩쿨, 그 사이 삐죽삐죽 나와 있는 억새, 이제는 쓰지 않는 낡은 방앗간. 지나는 차도 거의 없고, 사람도 없고, 개도 돌아다니지 않고,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도 쓸쓸할 만큼 새들도 없다. 고즈넉한 시골풍경이라기엔 쓸쓸함이 먼저 다가오는 것은 여행객의 시선 때문일까.

길을 조금 더 달려 도로변 가을걷이가 끝난 밭에 차를 세우고 집을 하나 돌아서니 하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걸음을 더 보태어 비탈길을 올라 운동장 한켠에 서고 나서야 미술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꽤 넓은 운동장이었을, 잡초 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돈된 잔디밭이 여전히 초록빛을 머금고 있고 나지막한 교사는 번쩍번쩍 뽐내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자꾸만 개관을 미루는 미술관

충남 당진군 순성면 성북리 581번지 아미미술관. 미술관 뒤편을 감싸고 있는 아미산의 이름을 붙인 이곳은 옛 초등학교 교사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 학교가 문을 닫은 후 교육청에서는 교사와 부속 건물을 철거하고 교원들을 위한 아파트를 건립할 계획이었으나 졸업생과 주민들의 반대로 아파트 건립 계획은 무산된다. 그곳을 프랑스에서 귀국한 박기호(회화), 구현숙(설치미술) 부부가 임대한 것은 1993년. 처음 시작은 ‘널찍한’ 작업실을 쓰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2000년이 학교부지 전체를 매입한다.

나중에 찬찬히 둘러보면서 발견한 것이지만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은 곳곳에 배어 있다. 이제는 정원으로 변한 운동장 담장 밑, (지금은 농촌여성문화연구소로 쓰이는) 학교 관사로 쓰였던 한옥, 미술관 뒤편 산책로 등 미술관 곳곳에는 이들 부부가 수집한 항아리며 옛 그릇이며 심지어 옛 소주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손수 쌓아 올린 나지막한 돌담이 한옥 안마당을 만들고 한 그루 두 그루 심기 시작한 나무가 훌륭한 정원목이 되어 자라고 있다.

미술관에 들어서는 이를 한눈에 사로잡던 미술관 건물도 낡은 교사를 사정이 닿는 대로 하나하나 고쳐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작업의 순서가 엉키고 두 번 일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과 노동과 시행착오가 겹겹이 쌓여, 깔끔하게 정돈된 흰색의 벽채와 지붕을 받치고 있는 옛 건물의 서까래가 어울린 예사롭지 않은 미장센을 만들고 있다. 그러고도 “부족한 부분이 자꾸 보여서” 개관은 자꾸 미뤄졌다. 다음 계절로, 한 해를 더 보내고…, 이제야 미술관 벽에는 채 인주도 마르지 않은 미술관 등록증이 걸려 있지만 개관전은 다시 내년 봄으로 미뤄졌다.

흙 묻은 장화와 프랑스어 교본

그런데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미술관 이야기인가. 성공한 중견 예술가의 손길이 ‘쓸모없는’ 공간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다. 물론 아직 부족하다는 주인장 말과는 달리 부부의 감각과 노고가 배어있는 미술관은 비워져 있으면 비워진 채로 한편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관심을 끌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동네 사람들을 위한 그림교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작업실 테이블에 놓여있던 프랑스어 교본. 미술관은 전시실, 작품 보관실, 작업실 그리고 동네사람들이 와서 그림을 그리는 방, 이렇게 네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기호, 구현숙 부부는 이곳에 작업실을 꾸린 이래, 그림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한켠의 공간을 마련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때로는 지역 교사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밭일이라도 하다 오는 듯 흙 묻은 장화 신은 동네 이웃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쇼핑몰 문화센터도 있고 지자체가 운영하는 문화프로그램들이 있지만 또 굳이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이다.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의 일종의 아웃리치프로그램이라 할 것인데, 공공지원을 받는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아니고 미술관 운영을 위한 수익사업도 아니다. 특별한 운영계획도 없고 운영의 목표도 없단다. 박기호 관장은 뭔가 절박한 마음으로 그려낸 그림이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다운가에 대한 이야기에만 신이 났다. 아름다움 자체만이 그가 탐하는 것이라는 듯 말이다. 그는 고고한 예술지상주의자인가.

작업실 테이블에 놓여 있던 프랑스어 교본은 미술관 운영과는 더더욱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이들 부부는 학교가 삶을 채워주지도 못하지만 학교를 벗어나면 곧장 낭떠러지가 되어버려 -농촌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떠도는 아이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 또한 이곳에 들어온 후 계속 되어 온 일이다. 막연한 동경이겠지만 “꼭 프랑스에 가고 싶다”고 찾아오는 아이도 있고 학교 공부라면 죽어라 싫어하면서도 주말이면 동대문상가를 돌면서 디자인 스크랩을 할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은 아이를 불러 가르치기도 했다. 그렇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아이들이 벌써 몇몇이다. 휴먼다큐멘터리 한편은 나올만한 이야기이지만 묻는 말에 대한 짤막한 답 말고는 이야기를 더 잇지 않는다.

온돌방 바느질 친구들의 장터

아미미술관을 찾은 날은 ‘핸드 메이드 데이’였다. 미술관 뒤편 옛 관사로 쓰이던 한옥에서 진행되던 바느질 모임 회원들이 그간 만들어온 작품들로 장터를 열었다. 막 도착했을 때는 “밤이슬에 작품들이 젖을까봐” 미리 준비하지 못한 디스플레이로 분주했다. 박기호, 구현숙 두 부부작가도 준비하는 사람들 틈에서 함께 작품 배치를 의논하고 미술관 이곳저곳에서 전시에 필요한 소품들을 옮겨온다.

이날 장터에 전시된 작품들은 바로 옆 한옥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박관장은 매일 아침 방에 군불을 땐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지붕 위에 솟은 굴뚝에서 아침에 땐 군불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집을 부수러 온 포크레인을 몸으로 막아 살려낸 후 보일러로 개조된 방바닥을 헐고 구들을 놓고 흙을 다시 까는 등의 일도 두 부부가 손수 했다. 한옥 안마당에 세워놓은 이젤에는 사진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둘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업고 온 아이들은 마루와 마당에서 뛰어놀고 집에서 싸운 고구마며 감자며 쪄먹으며 보낸 이들의 여름이 담겨있다. 적지 않은 시간의 켜가 느껴지면서도 전시관으로 관리되는 고택들과는 달리 집이 숨 쉬고 있는 느낌을 뿜어내고 있는 것은 사람이 사는 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바느질 모임을 진행한 농촌여성문화연구소라는 간판이 마루 안쪽에 보일 듯 말듯 걸려 있지만 이전에는 후배 작가의 거처가 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른, ‘레지던스’ 공간이었던 셈이다.

디스플레이가 마무리될 즈음 손님들이 오기 시작한다. 낡은 돗자리 나무들 나무 밑에 놓여 있던 돌들이 전시대가 되고 따뜻한 가을볕이 조명이 되어 멋진 장터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장터는 장터인데 물건을 흥정하는 품새가 영 어색하다. 가격을 묻는 손님들 앞에서 주인이 당황하면서 “선생님~”을 부른다. 장터를 돌다보니 박기호 관장이 이야기했던 작품이 눈에 띤다. 아이는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그림 위에 수를 놓아 만든 작품이 있는데 박 관장이 아이의 그림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했던 바로 그 작품이다. 이날 장터에서 이 작품은 상한가였다.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아미미술관 등록증에는 ‘관장’ 박기호라 적혀 있다. 그런데 그는 ‘관장’이라는 이름이 영 어색하다. 그가 아직 흔한 명함을 못 만든 것도 그 때문이란다. “미술관도 잘 모르고… 운영도 모르고…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일 뿐”이라는 그는 장터를 분주히 오가고 손님을 맞으면서도, 나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저 필요한 사람들이 쓸 수 있게 한 것 말고 우리 부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그저 잘 쓰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한다.

왜 그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더구나 작가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시간에 나무를 자르고 집을 고치고 동네 사람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바느질 모임 아낙네들의 시중을 드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미술관 운영 계획을 물었을 때 “그런 거 없다”고 운을 떼면서 ‘사이’를 많이 두고 그가 한 말은 정말 좋은 작가들이 앞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디딤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작가 발굴’이야말로 요즘 공공지원의 핫아이템이 아닌가. 아직 부족하지만 이런저런 지원제도가 운영되고 있고 게다가 최근 활발하게 개관하고 있는 창작공간들의 취지도 그렇다. “이미 인정받은 사람 말고, 정말 그림을 그려야 할 사람, 도움이 필요한 그런 작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이야기를 새기는 장인들

이런 저런 제도의 빈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자신의 삶을 쏟아 붓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어느 예술가 부부의 집념에 대한 것이 아니다. 아미미술관에는 사람들이 있다. 비단 장터의 북적거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고독한 작가가 고단한 몸을 뉘었을 따뜻한 온돌방과, 세상을 떠돌던 아이들이 한 뼘 한 뼘 키워갔을 꿈과 두 부부가 다 먹지도 못할 고추를 한 바구니 따와 건네며 붓을 잡는 동네 아낙네의 손길과, 함께 쪼그려 앉아 잔디밭의 풀을 뽑으며 ‘화가 선생님’에게 풀이름을 가르치는 할머니들. 이들의 시간과 이야기가 마당의 어느 구석, 미술관 어느 모퉁이, 한옥의 대청마루 곳곳에 배어 있다. 미술관을 들어설 때 한눈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그것은 잘 가꾸어진 조경이라든가 건물이 아니다. 그렇게 배어 있는 시간과 이야기 때문이다.

왔던 길을 되짚어 올라가면서 다시 텅 빈 들판을 지난다. 아니 이 빈 들판에도 시간이 있고 이야기가 있으련만 차장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이에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비단 여행객의 시선 때문일까. 빈 들판뿐이 아니라 북적대는 도시의 공간도 그것이 품고 있을 시간과 이야기를 드러내지 못한다. 아미미술관의 두 부부는 그런 하나하나의 시간과 이야기를 공간에 배어들게 하는 장인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차창 밖 빈 들판을 바라보며 문뜩 떠오른다.


사진촬영 _ 주성진

김소연 필자소개
김소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 ‘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 등의 비평이 있다.
kdoon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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