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0년 11월 12일(금) 오후 4시 장소: 원더스페이스 패널: 정현욱-서울연극올림픽 행정감독 김신아-서울세계무용축제 사무국장 최윤우-월간[한국연극]편집장 사회: 김소연 편집장
정현욱

연중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공연예술축제들이 적지 않게 열리고 있지만 유독 서울에서는 대규모 국제공연예술축제들이 가을에 몰려있다. 이미 10회를 넘긴 서울국제공연예술축제(이하 스파프)와 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시댄스)를 비롯하여 지난 2007년 시작되어 올해 4회를 맞은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이 모두 9월~10월에 집중되어 있다. 게다가 올해에는 서울연극올림픽이라는 대형행사가 개최되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넌버벌 퍼포먼스’로 주제를 통일한 하이서울페스티벌까지 10월에 개최되면서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규모의 국제공연예술제가 가을에 폭주하는 양상이 벌어졌다.

[weekly@예술경영]에서는 이번 가을 대규모국제공연예술제 집중 현상을 놓고 그간 전개되어온 공연예술축제의 양상과 축제 기획 및 축제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10년의 놀라운 성장

사회 대규모 국제공연예술제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다행히 큰 무리 없이 마무리 된 것 같다. 국내에 이러한 규모의 국제공연예술제가 본격화 된 것이 97년 세계연극제부터인데 지난 10여 년 간 공연예술제의 규모가 놀랍게 팽창해 왔다.

정현욱(이하 정) 여러 가지 생각해볼 것들이 있겠지만 우선 이렇게 큰 규모의 행사를 동시에 무리 없이 치러냈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공연예술기획, 축제기획이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그램이나, 재정, 지원책들이 외국처럼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1년 단위로 결정되고 집행되는 국내 현실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기획, 행정 제반의 인적 인프라가 매우 우수하다는 반증이다. 정말 뜨겁게 일해 왔기 때문에 지금 가시적인 성과가 있는 게 아닌가. 그런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봤다. 이런 것들이 결국 노하우로 쌓여 앞으로 훨씬 더 크고 훌륭한 행사들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축제마다 차별화된 아이덴티티를 찾기 어렵다든가 하는 문제들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최윤우(이하 최) 지금까지 축제가 성장해온 동력이 해외의 우수한 공연을 국내에 소개한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공연예술계 전반의 환경이 변화하면서 이제까지의 축제 성장 동력이 힘을 다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제는 민간극장이나 공공극장에서도 해외공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가능하다. 축제가 아니더라도 우수한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아지고 있다. 해외의 우수한 공연을 소개한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여러 축제들이 동시에 개최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축제들마다 프로그램별 편차도 있고 차별성을 떠나 축제의 컨셉 자체가 모호하게 다가오는 축제들도 있다. 축제의 규모가 커지고 점점 많아지면서, 특히 올해 서울연극올림픽까지 동시에 개최되면서, 축제 특성화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왔다.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지금 당장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미룰 수 없는 과제인 것 같다.

김신아(이하 김) 행사들의 성장과 함께 최근 들어 국제화가 마치 열병처럼 퍼져나가고 있는데 우리가 여기서 돌아봐야 할 것은 질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여건 마련을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해 볼 것들이 있겠지만 우선 이렇게 큰 규모의 행사를 동시에 무리 없이 치러냈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공연예술기획, 축제기획이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말 뜨겁게 일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정현욱

인프라도 변하고 인식도 변하고

사회 축제를 비롯하여 공연예술계의 환경이 변화한 만큼 ‘세계공연예술계의 새로운 경향을 소개한다’는 것만으로 축제의 성격을 만들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좌표 설정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우리는 매우 짧은 시간에 성장했다. 97년을 기점으로 봐도 이제 14년이다. 우리는 내부에 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지만 밖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속도다. 우리는 성향이 매우 진취적이어서 뭔가 새로운 것 뭔가 발전하는 모습을 당장 실현하려고 한다. 14년이라는 시간은 한편으로는 학습의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아이디어도 모이고 정말 물건이 될 만한 축제들이 나오는 것이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유럽 등지와 역사가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필적할 만한 행사로 가고 있다고 본다.

시댄스의 과정을 봐도 그렇다. 축제가 10년이 되었을 때 그간의 축제를 한번 되돌아 봤다. 지난 13년간 우리가 엄청 변해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 공동제작의 경우를 보더라도, 98년에 처음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매우 소박하게 운영할 수밖에 없었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이젠 제작비도 매우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으며 제작과정도 상당히 체계화되었다. 계약서 하나만 봐도 엄청 달라졌다. 처음 레지던스를 할 때는 진행할 전문스태프를 구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5개국, 6개국 레지던스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관객층도 소수 전문가 그룹을 벗어나고 있는데 지금은 학생, 아줌마, 아저씨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올 정도까지 되었다.

프로그램에서도 변화가 있다. 이제 우리가 굳이 안 하더라도 주위에서 유명한 작품들은 다 가져온다. 우리는 지금 유명한 작품보다 앞으로 유명해질 작품, 유명해질 아티스트를 주목한다. 지금이야 이스라엘이 무용 강국으로 유명하지만 소위 제3세계,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 아랍권 등 국제무용계가 주목하는 예술가들에게도 항상 관심을 갖는다. 또 외국 작품을 일방적으로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내보낼 수 있도록 장기포석을 깔며 프로그래밍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서 컨텐츠가 약하다고 했는데, 그래서 ‘힙합의 진화’ 같은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또 작품이 들고나는 것만이 아니라 정말 영향력을 가지려면 현지의 오피니언 리더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연예술 국제저널리즘포럼’을 3년째 계속하고 있다. 포럼도 하고, 공연도 보고, 작년에는 통영과 고성을 다녀왔고 올해는 함께 안동을 다녀왔다. 입국했던 기자 중 한 사람은 “앞으로 무용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제 이 친구들은 본인들이 나서 한국공연을 소개하고 다니기도 한다.

지난 10여 년간 관객들, 공연자들 또 외국의 의식에 굉장히 많은 변화가 생겼다. 현대공연예술 자체가 서구에서 출발한 것이 많다. 이를 잘 모를 때에는 열등감도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일본의 경우 많은 비용과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는 그에 비해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한 것이다. 외국에서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들도 많아졌고, 또 외국에서 한국에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도 열등의식들에서 벗어나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고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큰 변화이다.

사회 행사를 치루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과정에서 인프라가 성장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런데 해외 공연이나 국제교률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관객층이나 예술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할 것 같다. (장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제화’가 공연예술계의 주요 이슈는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대형행사들이 이어지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있다.



각기 자기 성격을 지키고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협력할 수 있는 것은 같이 하면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긍정적이 방향이다. 오히려 민간축제를 놓고 정책에서 통합하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부적절한 것 아닌가,-김신아

축제의 관객층 확대가 공연예술 관객층의 확대인가

사회 그런데 올해 각 축제의 현장을 보면 많은 관객들이 찾았다. 물론 전공자들이나 관계자들의 수도 적지 않겠지만 그들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활기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비단 기획역량에서만이 아니라 관객규모에서도 이만한 규모를 소화할 만큼 성장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차별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도리어 비슷한 성격의 축제들이 전체 관객규모를 키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선 프로그래밍이 좋았다. 서울연극올림픽의 경우 동구권의 여러 나라에서도 오고, 대치국가인 이란과 이스라엘이 소개되었다. 남미권의 제3세계 연극들 등 다양성을 확보하고 다양한 문화의 연극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측면에서 좋았다. 국내공모작은 9편이 공연되었는데 임영웅, 손진책, 이윤택 등 원로 중견이 안정감 있는 무대를 보여주었고 신진들의 무대도 기대 이상이었다. 객석점유율도 평균 100%가 넘었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유료판매율이 80%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초대권을 최소한으로 제안했는데, 유료판매율이 문제가 아니라 일반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자 한 것이었다.

작년과 올해를 지나며 우리 사회가 매우 세련된 소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금까지 시댄스가 98년부터 제3세계의 공연들을 계속 소개해왔는데 남아공, 포르투갈, 핀란드, 스웨덴 등의 작품이 일찍 매진되었다. 그래서 이젠 유럽의 유명한 단체만 먹힌다는 생각도 바꿔야 할 것 같다. 관객들은 이제 특이하고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객석을 보면 무용관계자들보다 일반 관객이 많았다. 관객도 변하고 특정 장르에 대한 두려움도 달라지는 것 같다. 전체 파이를 넓히기 위해서 관객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노력하면 문화소비패턴도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감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어떤 주간지 기자가 극장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공연예술 활성화’를 기사로 쓰고 싶다고 의견을 묻기에 쓰지 말라고 했다. 그것만 봐서는 안 된다. 9~11월 사이에 150편 가까운 공연들이 축제에서 공연되었다. 반면 축제 이외에 8~11월 사이 국내공연이 거의 없다. 일부러 시기를 피했을 수도 있고 지원제도가 많이 바뀌면서 공연수가 줄어들리라는 예상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10월 사이에 국내공연이 이렇게 적었던 적이 없었다. 축제가 파이를 키워내고 그만큼 많은 시민들이 공연을 보게 된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반면에 소극장 공연들은 전혀 다른 공연환경을 접하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김신아최윤우

새로운 자극이냐 권력화냐

좀 다르다. 이번에 관객층 보니까 축제관객은 일반적인 대학로 소극장 관객과는 다르다. 해외공연을 적극적으로 보는 층이 있고 또 국내공연에 대해서도 축제참가작이라는 것이 신뢰감을 주면서 새로운 관객들이 찾아온다. 짧게 하기 때문에 몰리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물론 홍보 등에서 개별 작품과는 규모가 다르다는 점도 있다. 공연도 일정부분 홍보마케팅에 투자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관객이 모이는 데 한계가 있다. 축제는 비용을 쓸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개별 공연들은 그렇지 못하다.

축제에 사람들이 몰리고 관객들이 공연이 재미있다고 감탄한다고 해서 그 관객층이 국내공연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다. 국내공연과 축제의 해외공연들은 너무 동떨어져 있다. 내년에도 축제에는 사람이 많을 거다. 그것도 어떤 부분에선 한시적인 거다. 당장의 객석점유율만 따져서는 공연예술의 발전, 창작활성화라는 축제의 미션이 희석된다.

‘공연예술 활성화’라든가 그런 정책적 미션을 내거는 것은 언어의 향연 아닌가. 축제는 축제다. 축제로서 즐기는 것이 가장 1차적인 미션 아닌가. 여타 국내 공연예술계의 문제들은 또 다른 정책과 제도 등을 통해 풀어야지 그 문제들을 축제가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축제가 모든 것을 해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예산이 투여되고 그만큼 규모가 생기는 축제들은 힘이 생긴다. 그러면서 공연예술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나.

한줌의 관객만을 전제로 한 이야기인 것 같다. 한줌의 관객을 놓고 덩치 큰 애들이 다 뺏어 가면 덩치 작은 아이들이 다 죽는다는 극단적인 시각은 위험하다. 소극장이나 개인예술가들은 비용이 없으니까 관객개발이 힘에 부친다, 그런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관객개발은 꼭 비용이나 규모의 문제만은 아니다. 공연예술계도 좀 더 적극적으로 관객을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부족하기 때문에, 여건이 어렵기 때문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축제가 정의롭게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다. 단, 축제는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뺏어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공연에 관객이 들지 않는 것은 자기책임이다. 그런데 대규모 예산으로 틀을 만들고 그런 틀을 만들어버린 상태에서 그래도 너희가 책임져야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 아닌가. 개별 창작자나 창작집단이 자율적으로 창작활동을 할 여지가 너무 없어지는 것 같다.



축제에 사람들이 몰리고 관객들이 공연이 재미있다고 감탄한다고 해서 그 관객층이 국내 공연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예산이 투여되고 그만큼 규모가 생기는 축제들만 힘이 생긴다. 그러면서 개별 창작자나 창작집단이 자율적으로 창작활동을 할 여지가 너무 없어지는 것 같다.-최윤우

축제 간 시너지, 공공기관의 합리적 역할 필요

사회 한편 올해는 축제가 집중되면서 통합티켓 ‘가을愛’ 등 축제 간 공동운영에 대한 적극적인 시도가 있었다.

광고, 포스터, 통합카드인 가을愛, 외벽 배너 등 홍보마케팅에서 몇 가지 공동운영을 시도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추진되면서 활용할 수 있는 툴도 제한적이었고 효과도 제한적이었다.

좀 더 일찍 추진되었다면 여러 가지 시도가 가능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기내지에 소개한다거나 공항 한 가운데에 소녀시대가 아니라 축제 배너가 걸리고, 관광안내 책자들에도 축제 홍보물을 끼워준다던지 전략적으로 개별 축제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영역들에 대해 공동운영을 시도해 볼 만한 툴이 많이 있다. 미국에 있는 사이트에서 프로모션을 해주겠다고 제안이 왔는데, 엄청 욕심이 났지만 예산이 안 돼서 못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문화예술위원회, 문화부 같은 공공기관이 개별 축제가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지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개별 축제들은 자체 행사 진행에 사력을 다해 뛰고 있다. 그러다보니 공동운영에 (인력이건 시간이건 예산이건)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공공기관이 그러한 역할을 맡아주면 좋겠다.

사회 공동운영을 통한 시너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축제 과잉에 대한 비판도 있다. 축제 간 통폐합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가을에 여러 축제가 열린다고 하지만 다 각자의 역사가 있고 미션이 있고 비전이 있다. 각기 자기 성격을 지키고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협력할 수 있는 것은 같이 하면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긍정적인 방향이다. 오히려 민간축제를 놓고 정책에서 통합하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부적절한 것 아닌가.



행사를 치루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인프라가 성장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런데 해외공연이나 국제교류에 크게 관심이 없는 관객층이나 예술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실감하지 못할 것 같다. (장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제화'가 공연예술계의 주요 이슈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대형행사들이 이어지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있다.-김소연

장기적 포석, 민간과 공공의 역할 분담
그리고 과감한 고민

사회 지금 나눈 이야기들은 축제의 성장에 따른 새로운 위상과 역할을 모색할 시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각자 이에 대한 생각으로 이 자리를 마무리하자.

공연축제들이 대부분이 앞에 ‘국제’가 붙는다. 국제축제는 들고 나고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창이다. 창을 통해 내가 나를 보고 다른 사람이 나를 본다. 축제는 그런 창의 역할, 창의 기능을 가지면 된다. 요즘 해외진출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은데 (정책적으로) 아직은 이러한 관심들, 그에서 비롯되는 제도나 정책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지금은 지원체계가 좀 더 필요하다. 또 해외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도 아직은 필요한 역할이다. 그런데 모든 축제들이 연례행사인데 매년 좋은 작품을 들여온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비엔날레, 트리엔날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급해 하지 말고 장기적인 포석을 둘 필요가 있다.

여러 시도도 하고 고민도 하는데 국제공연예술축제로서 국제적 신뢰도를 높이고 그래서 무용하는 사람들의 향후 활동의 발판을 만들 수 있는 것, 질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판을 벌려주는 것이 시댄스가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시댄스는 서울연극올림픽이나 스파프처럼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축제와는 다르다. 민간에서 출발했고 축제 운영의 일부에 대해서만 공공지원을 받는다.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축제와 민간축제의 역할에 대해서도 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민간의 활동을 공공기관이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공공기관이나 세금을 가지고 하는 축제들은 좀 더 사회성에 대해 고민을 해줬으면 한다.

축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지난 십년간 많은 것들을 공연들을 볼 수 있었던 점은 즐거웠다. 이게 거의 유럽 등의 국제적 흐름과는 시차가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놀랍고 새로웠는데 이제는 보고 느끼는 데에서 나아가 새로운 향유, 나아가 공유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각 축제에서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축제의 방향성이나 목적을 잘 검토해 봐야 할 것 같다. 목적과 방향성이 모호할 때 과감한 고민이 필요하다. 인위적인 통폐합과 같은 방법은 반대다. 서로 유사한 점이 있다면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변화를 꾀해야 한다.

정리 _ 김소연 편집장 kdoon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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