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0년 11월 26일 오후 4시 장소: 예술경영지원센터 회의실 패널: 김노암 아트스페이스 휴 대표,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대표, 노형석 [한겨레]문화부 기자, 박만우 아뜰리에 에르메스 디렉터, (전)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조선대 교수 사회: 김소연 편집장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은 같은 해 같은 시기에 열린다. 올해도 세 개의 비엔날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막하여 가을 내 관객들을 맞았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를 시작으로 보자면 이제 우리 사회에 비엔날레 문화가 도입 된지 10년이 넘었다. 비단 올 가을만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와 규모의 비엔날레들이 창설되고 개최되는 등 우리 사회에서 비엔날레는 동시대 시각예술의 첨예한 담론의 장을 넘어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weekly@예술경영]은 ‘동시다발 대규모 공연예술축제’에 이어 올 가을 동시 개최된 세 개의 비엔날레를 주제로 좌담을 마련했다. 각각 비엔날레의 성과와 더불어 ‘한국형 비엔날레’라는 말이 제안되는 우리 사회의 비엔날레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괄목할 성장, 도시마케팅의 추진력 커

사회 대형공연예술축제가 그런 것처럼,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이 같은 시기에 개최되었다. 시작된 시기도 다르고 또 규모도 다르고 지향하는 바도 달라서 한꺼번에 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 무리가 될 수도 있지만 비엔날레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먼저 올해 세 개의 비엔날레가 열렸는데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노형석(이하 노) 세 개의 비엔날레 모두 국제 미술계의 관심을 환기 시키는 데는 성공한 부분이 있다. 광주비엔날레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외국 미술계 관계자가 찾아왔다. 광주, 부산, 서울에서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행사가 동시 개최되면서 국제 미술계의 화제를 모으는 데 일조했다. 외향적으로 드러난 행사 내용은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세부적는 논란의 소지도 보인다. 광주는 뮤지엄 전시를 표방했는데, 현대미술의 최전선을 표현하는 비엔날레의 본령과 얼마나 맞는가하는 논란이 있었다. 신작이 아닌 아카이브, 다큐적 사진 작품 중심으로 전시가 배치되다 보니 광주의 지역성 문제나, 현재 미술 담론의 문제와 잘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부산과 서울의 경우 전체 전시 주제나 형식에서 대중과 접근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주제에 맞게 작품, 전시의 틀이 유기적으로 잘 소화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부산은, 일본 커미셔너가 ‘진화’라는 틀을 가지고 일본이나 한국 작가 중심으로 문제작을 가져왔지만 작품별로 편차가 있었고, 주제 측면에서도 기획자와 다른 미술계 인사들 사이에 충분한 교감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사회 이러저러한 뉴스들이 없지 않았지만 작가라든가 작품에 대한 이슈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김노암(이하 김) 비엔날레가 동시대 예술의 가장 첨예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는 장이라는 기존의 성격에서 점점 그것이 수행하는 문화적 기능으로 그 역할이 옮겨가고 있는 것 같다. 국내적인 현상이 아니라 국제적인 흐름이 그렇다. 우선 비엔날레가 굉장히 많아졌다. 아시아에서는 비엔날레가 붐이 되면서 비엔날레는 일반적인 문화행사의 하나가 되었다. 또 비엔날레는 대규모 행사이고 그만큼 큰 예산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정치적 이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도시의 도시정책의 이해와 결합이 되다 보니 미술계 내 담론보다는 도시와 도시의 경쟁으로 논의가 옮겨진 것이 아닌가 한다. 비엔날레를 추진하는 힘과 관심이 이동하다보니 평론가들, 작가들도 딱히 정교한 분석을 내놓지 못하는 것 같다.

박만우(이하 박) 신생 비엔날레, 동시대 미술, 현대 미술에 뒤늦게 합류한 비서구권의 국가, 특히 아시아에서 급성장을 이루고 있다. 한국은 비엔날레 후발 그룹에서는 단연 선두이다. 싱가포르 비엔날레의 경우 광주 비엔날레에서 광고, 홍보 등을 배우고 있다. 한국이 신생비엔날레들의 모델케이스가 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개최 도시의 강력한 의지가 가장 큰 추진력이다. 그런데 그 의지가 현대미술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보다는 도시브랜드화, 장소마케팅 등 정책적 아젠다에 치우쳐 있다.



비엔날레가 동시대 예술의 가장 첨예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는 장이라는 기존의 성격에서 점점 그것이 수행하는 문화적 기능으로 그 역할이 옮겨가고 있는 것 같다. 국내적인 현상이 아니라 국제적인 흐름이 그렇다. 또 비엔날레는 대규모 행사이니 만큼 정치적 이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도시의 도시정책의 이해와 결합이 되다 보니 미술계 내 담론보다는 도시와 도시의 경쟁으로 논의가 옮겨진 것이 아닌가 한다._-김노암

한국형 비엔날레,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 확산

사회 정책의 추진력을 지적했지만 비엔날레의 성장에는 또 관람객의 뜨거운 호응도 한몫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광주비엔날레가 성공하면서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현대미술에 왜 열광하지?’ 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광주비엔날레가 처음 개최될 때 약 200억의 예산이 투자되었다. 요즘으로 치면 천억 가까운 예산이다. 실패할 수가 없는 행사였다.(웃음) 아무튼 비엔날레의 성공으로 우리 사회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단기간에 이루어졌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긍정성이 크다. 예술교육을 제도권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비엔날레는 현대미술에 대한 훌륭한 교육의 장이 되었다. 투자 대비 효율이 높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현대미술을 교육한다고 할 때 아마 그보다 더 들것이다. 초등학교 때 비엔날레를 봤던 이들이 지금은 성인이 되었고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중요한 성과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백남준 선생의 기여가 있다. 백남준 선생은 사비를 들여 《휘트니비엔날레 한국전》을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여왔다. 사회적 현실을 강하게 제시한 비엔날레였는데, 이때 우리 관객들에게 현대미술과의 조우가 인상 깊게 반영되었다. 비엔날레의 존재도 알 수 있었고.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되는 데에 그러한 경험이 영향을 주었다. 비엔날레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임팩트가 아주 강하다. 요즘 광주에서는 학교에서 미술숙제를 내주면 도화지에 그림 그려오던 것이 오리고 붙이고 세우는 등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온다고 한다. 설치미술이라면서(웃음) 비엔날레가 기여한 점이다.

한국에서 비엔날레는 새로운 문화이다. 하나의 문화로서는 장점이 많다.

한국의 비엔날레가 가진 특징이 있다. 미술관 등 기존 제도가 담보하지 못하는 역할까지를 비엔날레가 떠맡고 있다는 것이다. 자체적 교육프로그램도 기획하고, 레지던스도 운영하고, 큐레이터 교육도 한다. 해외 주요 비엔날레가 신경 쓰지 않는 공공적 프로그램인데도 우리는 비엔날레 규모가 크고 미술관의 역할이 미미하다보니 비엔날레에 그 역할이 돌아간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의 비엔날레가 가진 특징이 있다. 미술관 등 기존 제도가 담보하지 못하는 역할까지를 비엔날레가 떠맡고 있다는 것이다. 자체적 교육프로그램도 기획하고, 레지던스도 운영하고, 큐레이터 교육도 한다. 해외 주요 비엔날레가 신경 쓰지 않는 공공적 프로그램인데도 우리는 비엔날레 규모가 크고 미술관의 역할이 미미하다보니 비엔날레에 그 역할이 돌아간 것이라 볼 수 있다.-박만우

여전히 거친 소통방식 ... 연속성 없음의 반증

사회 비엔날레가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문화체험,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는 평가인데 그래도 여전히 비엔날레 전시 작품들을 보면 주눅이 든다. 재미있는 작품도 있지만 도무지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막막한 작품들도 적지 않다.

광주, 부산만이 아니라 서울미디어시티까지 세 개 비엔날레의 지향이 ‘지적인 담론을 가지고 이야기하자’인데 그러다보니 이제는 과거처럼 비엔날레에 가서 “좋다”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미디어시티 서울의 출품작을 보면 각 나라 작가마다 사회현실의 고민을 담아낸 것들이 태반이다. 그냥 작품만 봐서는 맥락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공부를 해야 한다. 과거의 감상과는 다른 소통, 자세를 요구한다.

그런데 콘텐츠나 이슈를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거칠다. 도록에 실린 작품, 작가에 대한 해설이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국문에 문제가 있었다. 특히 이번 미디어비엔날레의 경우가 좀 더 심했다. 일반 시민들과도 가까워질 수 있는 소통의 방식이 필요하다. 비엔날레도 변별력을 가지면서도 소통이 용이한 담론을 캐치프레이즈, 키워드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비단 시민들에게만이 아니라 전문가들에게도 부담스럽다. 일예로 요즘 비엔날레에서는 비디오 아트가 많이 전시되고 있는데,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비디오 아트 상영시간을 따져봤더니,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를 제외하고도, 러닝타임만 8시간이 넘는다. 그렇다고 올해 더 늘어나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건 학습이 아니라 고문이다.

이렇게 점점 난해해져가는 것, 그 자체가 연속성을 가지고 비엔날레 행사가 디자인 되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계기성 행사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감독-총감독-에 의해 좌지우지 되다 보니 중장기 발전이라는 플랜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프랑스의 리옹 비엔날레의 경우 예술 감독은 국립 리옹 현대 미술관 관장이 쭉 행사를 맡아왔고 큐레이터는 초빙해왔다. 영국의 리버풀 비엔날레도 창설 디렉터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비엔날레를 해온다. 공연예술계의 아비뇽 페스티벌처럼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오랫동안 해 나가야 정체성, 차별점이 생긴다.

광주도 큐레이터, 즉 커미셔너 제도를 사용했는데 일장일단이 있다. 초기에는 예술감독이 전체적인 구조와 틀을 짜고 전체적인 상을 유지하는데 집중한 반면 큐레이터들은 보다 구체적인 이슈와 담론을 위한 작가와 작품 구성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서로의 역할이 상호보완하는 형태였다. 그러다 점차 예술감독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은 좀 더 연구해볼 과제다.



정책의 추진력을 지적했지만 비엔날레의 성장에는 또 관람객의 뜨거운 호응도 한몫한 것이 아닌가 한다. 광주비엔날레가 성공하면서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현대미술에 왜 열광하지?

외국인 감독 초빙,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지만

결국 지역성과 연계된 문제이다. 지역성을 어떻게 반영하느냐, 각 비엔날레의 차별성도 이와 연관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운영,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쯤 공론화 시켜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한다.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이 외국인 감독 초빙이다. 그 자체로 문제인 것은 아니다. 단 지역성을 고려해야 하는 문화예술행사라면 보완장치가 필요하다. 최대 1년 6개월이라는 선임기간동안 예술감독이 지역성(사회, 역사, 미술 인프라, 해당 도시, 한국이라는 국가 등)을 이해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예술감독으로 선임된다 하더라도 자신이 지금까지 진행해온 일들을 하면서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참여한 한국작가들이 현 단계 한국미술을 대표하는가의 문제, 또 각 비엔날레에서 한국작가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타당한가의 문제 등이 제기된다. 외국인 감독을 내세워 국제적으로 프로모션 하는 것이 이제 한계에 오지 않았나 싶다.

비엔날레에는 엄청난 규모의 문화자산이 투자된다. 단지 예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행사를 잘 치러낸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원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보기 어렵다.

모든 비엔날레에서 지역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명한 도시가 아닌 도시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들은 지역성을 강조한다. 리버풀비엔날레, 리옹비엔날레 등을 보면 결국 참여 작가의 출품작에서 비엔날레의 성격도 드러나고 또 거기에는 항상 지역성이 연계되어 있다. 지역의 것을 고려한 &lsquo;커미션&rsquo;, &lsquo;신작&rsquo;이 그런 역할을 한다. 리버풀비엔날레는 80%가 신작이고, 리옹비엔날레도 60%가 신작이다. 이스탄불비엔날레도 그런 경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리버풀의 경우 새롭게 제작된 출품작들의 절반 이상이 개최 도시에 영구히 보존된다.

광주, 부산에서 외국인 감독이 총괄한 이후로 신작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다보니 점점 전시 코디네이터들의 업무가 단순 노동에 머물게 된다. 신작 제작이 줄어들게 되면 코디네이터들이 할 일이 운송, 통관, 설치 등의 수동적 역할만 할 수 밖에 없다. 비엔날레를 통해서 기획자들도 트레이닝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트레이닝은 신작제작에서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

비엔날레의 영향력이 크다보니 비엔날레를 통해 장르가 재편되기도 한다. 비엔날레를 통해 도약한 장르가 사진이다. 90년대만 해도 사진은 시각예술의 장르 가운데 인식과 활동이 매우 열악했다. 10년 전만 해도 사진관 문화였지만, 지금 사진은 엄청난 도약을 했다. 그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비엔날레이다. 반면 판화는 매우 약화된 대표적인 형식이다. 장르간의 편식현상, 불균형 또한 비엔날레(만이 아니라)가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세 개의 비엔날레 모두 국제 미술계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는 성공한 부분이 있다. 광주비엔날레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외국 미술계 관계자가 찾아왔다. 광주, 부산, 서울에서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행사가 동시 개최되면서 국제 미술계의 화제를 모으는 데 일조했다. 외향적으로 드러난 행사 내용은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세부적인 논란의 소지도 보인다.- 노형석

아트광주의 실패가 말하는 것

사회 앞서 노형석 선생이 아트광주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아트페어의 형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비엔날레가 시장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에 대한 지적은 계속 있어오지 않았나.

2000년대 이후 세계 현대미술계는 작품의 퀄리티나 정체성 등에 대한 비평적 평가에 의해 어떤 경향성이나 흐름이 형성된다기보다는 인맥 네트워킹에 의해 흐름이 주도되고 있다. 비엔날레도 마찬가지다. 미술시장의 욕망에 지자체 등의 정치적 욕망이 가세하고 있다. 최근 국내 비엔날레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광주비엔날레에는 미국 유럽의 이름난 컬렉터, 기획자가 몰려왔다. 결국 비엔날레가 그들의 사교마당을 만드는 데만 급급하지 않았나하는 느낌이 있다. 메이저 화랑들도 해외 미술시장의 큰손들을 맞이하기 위한 파티 등에 분주했다. 그들만의 잔치였고, 그들만의 교감을 위한 것에 불과했다는 느낌이다. 국내 평단, 작가들과 소통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행사가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떠나가는 느낌이다.



모든 비엔날레에서 지역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명한 도시가 아닌 도시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들은 지역성을 강조한다. 리버풀비엔날레, 리옹비엔날레 등을 보면 결국 참여 작가의 출품작에서 비엔날레의 성격도 드러나고 또 거기에는 항상 지역성이 연계되어 있다. 지역의 것을 고려한 '커미션', '신작'이 그런 역할을 한다. 광주, 부산에서 외국인 감독이 총괄한 이후로 신작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박만우



기획자 입장에서는, 욕망이 발현되고, 충돌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본다. 그것이 지자체의 정치적 욕망이든 미술시장의 욕망이든. 다만, 국내에서 벌어지는 미술 행사 중 많은 자원이 투자되는 큰 규모의 영향력 있는 행사들이 장기적으로 미술문화가 자라나는 토양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아쉽다.

광주의 경우 무리하게 아트페어와 비엔날레를 접목했는데 가장 큰 패착으로 남았다. 광주라는 지역성과 시장성을 결부시키려 했지만 판매도 거의 없고 서울의 주류 화랑들은 거의 외면했다. 영국의 명문 화랑인 리슨갤러리를 초청했는데, 화랑이 새로운 전시형태를 표방한다며 부스 판매장의 문을 처음부터 아예 닫아버렸다. 참가는 했다지만 행사의 구색만 맞춰주고 아트페어의 본령인 작품 상담 판매는 접어버린 해프닝이었다. 광주시나 비엔날레는 아트페어를 계속한다고 하는데, 시민세금을 들여서 전망도, 시장성도 없는 행사를 계속해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비엔날레와 아트페어가 융합되는 것은 현재의 흐름이다. 2008년 부산비엔날레 개막기간에 맞추어 서울오픈아트페어가 부산에서 동시에 열린 사례가 있다. 올해에는 서울에서 KIAF 열리고 바로 다음 주 부산비엔날레가 개최되었다. 또, 부산비엔날레 주전시장인 시립미술관 바로 옆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아트에디션이라는 아트페어가 열렸다. 2008년에는 조직위에서 의도적으로 동시 개최를 했다. 2010년에는 조직위와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온 것이다. 전체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미디어 아트 작품도 거래가 된 소정의 성과가 있었다. 비엔날레와 아트마켓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아직 선진화되지 못한 미술시장을 볼 때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것으로 가능해지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광주비엔날레와 동시에 개최된 아트광주에 대한 광주시의 입장은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전시이벤트를 개최하자는 것이었다.



2000년대 이후 세계 현대미술계는 작품의 퀄리티나 정체성 등에 대한 비평적 평가에 의해 어떤 경향성이나 흐름이 주도되고 있다. 비엔날레도 마찬가지다. 미술시장의 욕망에 지자체 등의 정치적 욕망이 가세하고 있다. 최근 국내 비엔날레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노형석



아트페어는 미술품을 사고파는 장터다. 전시이벤트를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작품을 팔기 위해 컬렉터나 고객들의 눈길을 끌고자 하는 것이다. 대중적 미술체험만을 명분으로 내세워 지자체와 비엔날레 조직위가 상업 판매 행사를 주도하면서 거액의 국고, 시비를 투입하는 행태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광주의 미술 인프라가 약하기 때문에 관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최근 급부상한 홍콩아트페어는 미술대학, 교육기관, 비엔날레, 현대미술 지원, 정책이 전무하지만 아트페어가 성공했다. 영국의 전문적인 인력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트마켓 없이 미술계가 홀로 갈 수는 없다. 비엔날레가 가진 국제적 기준을 볼 때 지역 인프라 없이 아트페어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제고할 수 있다. 어떤 방향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가 가능성을 접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게 결국 정치적 욕망이다. 지자체 예산 결정자의 욕망이 기획으로 구현이 된다. 게다가 공공자원을 쓰면 보고서가 필요한데, 일간지에 얼마나 나왔나, 홍보가 얼마나 되었나, 보도 사진에 군중장면이 있느냐 등으로 구성된다. 대형 행사의 평가기준이 구시대적 이라는 것이다.

평가 프로세스 자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평가라는 것이 정책적으로, 차기 행사를 위한 중요한 잣대라고 할 때 공신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해외의 전문 인력이 참여해야 한다. 평가가 모니터링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정치적 부하 때문이다. 지자체도 중앙에서 국고지원을 받고 차기 행사 집행을 위해 평가 점수를 반영한다. 그런데 그 결과가 예산에 반영될 정도라면 큰일 난다. 결국 점수는 상향조정될 수밖에 없다. 문화관광체육부의 정치 역학이 중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어려운 점 중의 하나이다. 비엔날레의 숙명이다.



노형석, 김노암김소연, 박만우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어야

사회 결국 성과를 이어가면서 지금 제기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갈 것인가에 고민이 있다. 각자의 제언으로 이 자리를 마무리할까 한다.

비엔날레 무용론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lsquo;쇼는 계속되어야 한다&rsquo;는 입장이다. 이것이 정도(正道)라고 딱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은, 작은 차원이지만,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와 베니스비엔날레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타이의 경우 해외 유수의 비엔날레에 참여한 작품들을, 자국의 대부분의 미술애호가, 학생들이 못 보게 되니, 타이베이에서 다시 전시한다. 이게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광주비엔날레와 부산이 같은 해에 열리고, 격년으로 베니스가 있다. 전국적인 국내외의 미술 전문가들이 선정위원회를 만들어서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한 한국 작가의 좋은 작품을 뽑아서 차기 년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여작가로 선정하고, 그 작가가 커미셔너를 초빙하는 것으로 한다면 비엔날레의 관심 고조도 가능해 지지 않을까? 경쟁심 유발이 아닌, 한국작가들의 전시 출품작을 더욱 공들이는 것이 어떨까 한다. 그래야만 프로모션이 가능하다.

세계적인 추세로 봐도 비엔날레와 아트마켓은 상호 공생하면서 윈-윈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아트마켓 측면에서 비엔날레를 꾸리는 국내 지자체들은 무엇보다 과시성으로 장터부터 꾸려보려는 고루한 발상을 벗어나야 한다. 광주와 부산의 유관기관 관계자, 비엔날레 사무국이 아트마켓 동향에 대해 수시로 길을 열어놓고 정보 교류를 할 필요가 있다. 국내 화랑가, 딜러는 비엔날레와 상시적이고 유기적인 네트워킹이 별로 없다. 아트광주의 경우 행사가 1년여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비엔날레 관계자들이 서울 화랑가를 돌며 화랑주들에게 참가를 설득했다고 한다. 이런 식의 네트워킹은 곤란하다. 국내외 미술시장 관계자, 국제 경매사 쪽과 지속적이고 심층적인 네트워킹을 해서 자연스럽게 미술시장이 비엔날레 행사를 기점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사무국의 전시지원, 대외 활동 평가를 세분화해서 과시성이 아닌 실제적인 운영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세계 미술계에 뚜렷하게 각인될 비엔날레의 브랜드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대체적으로 공통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박 선생의 실질적인 아이디어도 좋다. 그런데 지금 논의된 이야기들은 어찌 보면 미술계 내적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가 가진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엔날레의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미술계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와 관련된 문제로 연결해야한다. 미술계만의 숙제로 붙잡고 있으면 의제가 작아진다.

비엔날레는 어떤 식으로든 이 사회에 임팩트를 주었다. 재미있는 것이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를 소재로 학위논문이 행정학, 정치학, 도시지역학, 문화정책 등에서도 많이 나오고 있다. 사회의 관심도 커지고 사회에 대한 영향력도 커졌다.

비엔날레학회가 필요하다. 엄청난 자산이 비엔날레에 투자되고 있는데 그 중 일정 부분은 비엔날레를 연구하고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그런데 사용해야 한다.



지금 논의된 이야기들은 어찌 보면 미술계 내적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가 가진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엔날레의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미술계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와 관련된 문제로 연결해야 한다. 미술계만의 숙제로 붙잡고 있으면 의제가 작아진다.-김노암



정리 _ 김소연 편집장 kdoon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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