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사고는 이런 식이다. 너무 뻔하거나 혹은 아무도 답할 수 없는 것잉기에 괄호 안에 묶어 두었던 문제들을 그녀는 굳이 끄집어내어 묻는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대책 없는 질문이 자바르떼가 사회적기업의 모범적인 사례로 성장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하우투'를 구하기에 앞서 먼저 내가 선 자리와 나의 지향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치열함 말이다.

이은진

이은진 신나는 문화학교 자바르떼(이하 자바르떼) 대표를 내가 처음 봤을 때 그녀는 무대 위의 ‘카수’였다. 독창 가수는 아니었던 것 같고, 떼창 무리에 섞여 있었지만 말이다. 아니면 키보디스트로 등장하거나. 아무튼 그녀는 무대 위에 있었고 나는 무대 아래 있었다. 이은진 대표나 나나 모두 20대 시절 이야기다. 그리고 드문드문 들었던 소식은 노래패 막내였던 그녀가 노래패의 대표가 되었다든가, 긴 노래패 활동을 접고 노동자문화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든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이은진이라는 이름 옆에는 자바르떼 대표라는 직함이 붙어있었고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을 소개하는 지면에서 종종 만나게 되었다.

젊은 시절 예술가를 꿈꿔보지 않은 이들이 있겠는가마는 굳이 이은진 대표의 카수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비단 그녀의 청춘시절로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녀가 노래를 불렀던 노래패 꽃다지는 노동자노래운동에서 시작하여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의 삶을 노래로 담고자 하는 노래집단이다. 그러니까 노래 부르기가 하나의 ‘무브먼트’인 셈. 그렇다고 지금 그녀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노동자문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녀에게서 떠오르는 간극 때문이다. 노래운동가, 문화운동가와 사회적기업의 CEO. 물론 이윤을 목적으로 한 영리기업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 각각에서 20대의 청춘과 40대의 중년이라는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드넓은 간극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 간극을 그녀는 어떻게 통과해왔던 것일까.

‘소녀시대’만 있으면 모두가 즐거운 세상에서 예술 하기

“우리 사회에서 예술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운동이다. 아이들의 교육에서부터 성인들까지 우리사회의 시스템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그러니 예술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러한 사회구조에 대한 고민과 변화를 위한 노력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예술의 자리란 초중고 교과과정에 배치되어 있는 시수, 그것도 점점 대학입시에 가까워질수록 보충수업을 위해 언제든 자리를 내줘야 하는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없어도 무방한 그런 것이다. 그나마도 의무교육을 벗어나고 나면 극히 소수의 애호가들 말고는 극장이라든가 전시회는 아이들 숙제를 위해 손잡고 따라나서는 곳이 되고 만다. 정기적으로 발표되는 문화향수 실태조사는 이러한 현실을 얼마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지! 그러니 교육이건 향유이건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 예술경영가들은 때로는 제도와 때로는 의식과 싸워나가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역시 ‘운동가’(!)다운 언어이고 사고이다. 그녀의 언어를 조금 바꿔서 말하자면 관객개발의 문제이기도 하고 마케팅 방법론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언어를 이렇게 바꿔놓고 보면 그것은 이미 그녀의 말이 아니다. 이은진 대표의 말은 ‘하우투’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소녀시대’만 있으면 유치원 아이부터 아버지 큰아버지들까지 모두가 즐거운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정말 행복해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왜 연주를 배우고 연극을 보아야 한다고 하는가?”

그녀의 사고는 이런 식이다. 너무 뻔하거나 혹은 아무도 답할 수 없는 것이기에 괄호 안에 묶어 두었던 문제들을 그녀는 굳이 끄집어내어 묻는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대책 없는 질문이 자바르떼가 사회적기업의 모범적인 사례로 성장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하우투’를 구하기에 앞서 먼저 내가 선 자리와 나의 지향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치열함 말이다.

“결코 쉽지 않더라”

그 치열함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운동가’로서 그녀의 삶의 궤적을 경유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녀는 이 땅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운동’이라고 말하지만 말이다.

“꽃다지 대표를 맡았을 때 소극장 콘서트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들을 만나고 싶었다.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음악에 대한 욕구도 있었고. 그래서 음반도 발표하고 그랬다. 그런데 콘서트를 준비하다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노동자’는 없더라. 노동조합 활동할 때는 노동자이지만 공장을 나서면 대중음악 듣고 드라마에 환호하는 똑같은 대중이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라고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지금도 여전히 ‘전국민이 소녀시대로 행복한 세상’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후 이은진 대표의 활동은 그 충격과 놀라운 발견에 대한 한 걸음 한 걸음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꽃다지 대표를 그만두고 노동자문화정책정보센터에서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드는 일을 한다. 그렇다고 무슨 건물을 세우고 리모델링 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회사 매점에 노래테이프를 듣고 시민단체 사무실 한 켠에 문화사랑방을 만드는 그런 일이었다.

세상의 한 켠에 작은 불씨라도 지펴보겠다는 열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았다.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와 행동을 한다는 사람들도 왜 새로운 예술, 새로운 문화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녀가 이 땅에서 예술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운동’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런 경험들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에서 세상의 완강한 벽이 있었다면 다른 한편에는 지쳐가는 동료들이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세대들도 더 이상 이러한 활동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더불어 사회의 변화와 노동운동의 변화 속에서 비정규직, 공부방 아이들, 장애인, 빈곤층 등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이 필요했다. 나 자신의 사고가 너무 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변화하는데 나는 여전히 어떤 딱딱한 틀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이은진이은진

지역에서 실마리를 얻다

사회적기업 자바르떼의 시작은 2004년 함께일하는재단(실업극복국민재단)의 제안으로 시작된 지역문화예술인들의 공공적 일자리 프로젝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술가들에게는 일자리 사업이자 소외계층에게는 찾아가는 문화예술교육사업이었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예술가들, 예술강사들을 새롭게 만나고 또 노동조합이 아닌 새로운 장에서 새로운 대중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교육의 목표를 정했다. 기능의 전수가 아닌,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를 발견하는 예술활동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그러한 교육이념과 활동에 동의하고 참여할 예술가, 예술강사를 모집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활센터나 공부방, 실업자 비정규직 관련 단체 등을 통해 교육생을 모집했다. 더불어 교육수요 조사와 공간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다. 그러한 교육의 목표와 사전조사를 바탕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사연수를 했다.”

외양적으로 보자면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이다. 그런데 이 6~7개월의 단기 프로젝트에서 이은진 대표와 동료들은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역을 선정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조사작업을 했다. 그런데 프로젝트 기한이나 예산규모에서 대상지역이 수도권으로 한정되면서 서울, 인천, 안산으로 지역을 좁혔다.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프로그램이 운영되다보니 다양한 지역 네트워크가 가능해지고 활동의 지속성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자바르떼는 교육과정이 끝나고 나면 강사들과 교육생들이 함께 문화제를 만든다. 그동안 교육활동을 바탕으로 발표의 장을 갖는 것이다. 그 자리에 모인 공부방 아이들, 자활센터의 교육생 등은 아이들과 부모이기도 하고 노동자와 노동자 가족이기도 하다. 좀 더 구체적인 삶을 이야기하고 좀 더 구체적인 삶을 읽고 나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바로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그렇다.

“예술강사들도 그렇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고정적인 수입을 갖게 되고 또 지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예술활동을 하는 의미, 예술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활력을 찾는다.”

이은진 대표는 자바르떼 활동의 목표는 뛰어난 예술가를 발굴하고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자바르떼의 활동은 ‘주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어떠한 프로그램으로 어떠한 교육적 효과를 얻고 성과를 얻었는가는 그 과정의 한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예술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에 자긍심을 갖는 것이다. 그것은 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양자가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주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란 그 속에서 서로가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이라는 말일 게다. 자바르떼가 교육사업인 신나는 문화학교 외에도 생태주의 어쿠스틱 밴드 ‘신나는섬’, 인천 풍물팀 ‘더늠’, 안산의 ‘클래식 앙상블’ 등의 공연단을 운영하고 문예교사연수, 문화예술기획 사업 등을 벌이는 것은 비단 사업확장의 의미가 아니라 바로 지역에서 새로운 장을 만들고 그 장을 넓혀 갈 ‘주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좀 더 두텁게 만들어가기 위해서 이다.

대책 없는 질문을 던지며 돌고 돌아

내년 7월이면 자바르떼도 사회적기업으로서 3년간의 지원기간이 끝난다. 지금까지 자바르떼가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제도의 지원도 한 힘이 되었다.

“문화복지 등의 개념으로 형성된 공공시장이 있다. 우리도 그 안에서 성장해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와는 다른 수익구조에 대한 고민과 시도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놓고 볼 때 문화복지의 개념을 좀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 비단 소외계층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점점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잃고 있다. 문화와 예술이 그런 이들에게 스스로의 삶의 목표와 의미를 새롭게 세우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은진 대표와 이야기하는 중에 들었던 이야기 하나.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고, 의욕도 없고 가정 형편도 어렵고 게다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가 미친 듯이 몰두 하는 것이 있다면 춤이란다. 공부방에 춤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아이는 정말 열심히 춤을 추고 또 정말 잘 추더란다. 그래서 이런 저런 무대에서 공연도 하고 있다. 이은진 대표가 한 이야기는 그래서 아이를 어서 유능한 기획사에 보내서 힙합전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자신에게도 무언가 재능이 있고 또 그것을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 그것이 그녀가 오랜 시간을 어렵게 어렵게 한걸음 한걸음을 걸어온 꿈이다.

얼마 전 자바르떼는 금천구 독산4동 주민센터로 사무실을 옮겼다. 내년 봄 금천구 내의 유휴공간에서 자바르떼의 문화공간을 열 계획이다. 10여 년 전 노조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문화공간 사업을 설득하기 위해 발품을 팔던 그녀의 걸음이 이제 여기에 와 있다. 세상을 의심하며 대책 없는 질문으로 돌고 돌아 온 길이라 하더라도, 비록 그녀의 삶이 지름길을 알려주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꿈꾸기의 묵직한 힘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하우투’가 아니다.


김소연 필자소개
김소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 위원,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평론을 쓰고 있다. ‘상업지구 대학로를 다시 생각하다’ ‘이 철없는 아비를 어찌할까’ 등의 비평이 있다.
kdoon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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