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물어간다. 한국사회 어느 해가 그렇지 않겠는가마는 올해도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비단 사건들이 많았다는 것만이 아니다. 한편에는 예기치 못한 변화가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목 빠지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 변화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선 자리를 냉철하게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weekly@예술경영] 연말특집과 함께 다사다난한 흐름 속에서 여러분의 좌표를 세워보시길 바란다, 연재순서: ② 2010 공연예술 키워드

고선웅
권재현
박성혜
박호빈
이진아
임인자
원일
황우창
조용신
최민우

2010년 공연예술에서는 어떠한 흐름이 전개되었을까. 지난 12월 7일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주최한 ‘지금의 예술, 다가올 예술’ 컨퍼런스는 한 해 공연예술의 장르별 흐름을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예술가, 평론가, 기자, 제작자 등 장르별 전문가 10인의 전문가들이 각각 2010 한국 공연예술의 장르별 키워드를 발표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작품 트렌드, 시장, 정책 등 다양한 관점에서 패널들이 발표한 키워드를 간추려 소개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주최한 <지금의 예술, 다가올 예술> 컨퍼런스 현장

연극

난전亂廛, 난전亂戰, 난전難戰

&ldquo;기획이 많았던 한 해였다. 연극 축제가 끊임없이 열렸고 올라간 편수도 적지 않았다. 세련된 공간도 늘어나고 지원금과 상업자본이 들어와서 재래시장에 난데없는 훈풍이 불었다. 그러나 그런 호사가 반갑지 않다. 난전亂廛이 생겼다고 탓할 수 없는 자본사회지만 무언가 답답하다. (&hellip;) 나를 포함해 내 주변의 연극인들은 대부분 쉴 새 없이 바빴다. 그나마 좋은 일이지만 솔직히 어딘가 모르게 억지스러웠다. 마냥 바쁘고 상기된 채 고군분투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올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 감각에는 패러다임이 진짜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난전亂戰이다. 안으로는 연극을 만만하게 보고 뛰어드는 대중극과 관객지향적 오락극이 범람하고 밖으로는 디지털의 격랑이 해일처럼 세상을 쓸고 있는데 연평도처럼 작은 연극의 섬에서 흔들리지 않고 온전히 연극을 할 수 있을까. 숙제만 있고 답은 연구되지 않아 분분하기만 한 2010년이었던 것 같다. 내 발등의 불도 문제였지만 동네에 난 불이 더 살벌하게 느껴졌다.(&hellip;)&rdquo;

고선웅 _ 극공작소 마방진 대표,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극작가/연출가

탈음입연(脫音入演)과 일류(日流)

&ldquo;2차 베이비붐 세대들이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됐고 이들은 대중문화 시장에 돌풍을 주도했던 세대이다. 지금의 공연시장에서도 이 세대들의 수요가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을 충족시켜줘야 한다. &lsquo;무대가 좋다 시리즈&rsquo;나 뮤지컬 제작사들의 연극제작은 단순히 돈 많은 곳에서 연극을 상업화 한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제작자, 배우, 수요자, 이 삼자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는 측면으로 이해해야 한다.(&hellip;)

뮤지컬에서는 한류열풍으로 일본 관객들이 몰려오고 있다면 연극에서는 일본극작가들, 일본 작품들이 한국시장을 알게 모르게 잠식하고 있다. &lsquo;웰 메이드 연극&rsquo;은 예술가들이 최고의 작품이라 꼽는 작품이 아니라, 잘 만들어지고 대중적이며 부르주아 관객들의 수요에 맞춰줄 수 있는 작품이며, 한국연극계에 이런 작품들이 굉장히 부족하다는 지적을 하고 싶다.&rdquo;

권재현 _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무용

국제적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는 매너리즘

&ldquo;올 한해 국내보다 국외에서 한국 컨템포러리 댄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도가 굉장히 많았다. (&hellip;) 매년 개최되고 있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세계무용축제(시댄스), 모다페, 페스티벌 봄 등을 통해 현대무용의 국제교류는 그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어 놓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무용 공연의 흐름과 경향에 비해 우리의 대응과 작품들은 지극히 소극적이고 매너리즘에 빠진 경향이 짙다. 예술적, 미학적 담론 부재와 일정한 경향만 존재하는 작품들은 즉각적이고도 대등한 관계의 교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없다. 2010년은 작품성 뛰어난 현대 창작무용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고 높았지만, 우리는 예전과 별반 다름없는 작품들로 대응해 왔던 것 같다.&rdquo;

박성혜 _ 월간 [몸] 편집인, 무용평론가

&ldquo;무용계가 별다른 돌파구 없이 정체에 빠진 것은 꽤 오래전이다. 창작자들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고 일반 관객도 없다. 그리고 소수의 무용 관련자들은 &lsquo;이제는 너무 질렸어.&rsquo;라며 새로운 누군가를 기다린다. 마치 메시아를 기다리듯이.

엄청난 정보와 네트워크에 의해 국제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서로의 감각이 굉장히 균일화 되었다. 그래서 무용축제의 수준은 세계적으로 올라가는 반면 작품을 만들어내는 안무가들은 계속 업그레이드 되지 못하고 있다. 자꾸 모방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언어를 찾는 게 아니라 유행하는 것, 시각적으로 빨리 어필하는 스타일을 찾다보니 의도와는 달리 그렇게 되는 것이다.&rdquo;

박호빈 _ 댄스씨어터 까두 대표, 안무가/무용수

다원예술

경계

&ldquo;(&hellip;) 최근 몇 년간 보고 있는 작품들은 가령 다시 전통적인 극장 안으로 들어온다든가 전통적인 길놀이 형식을 활용한다든가 필름작업으로 다시 돌아간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 이전에 있었던 매체의 특정성으로 돌아간다기보다는 그런 매체로부터 탈취했던 경험과 함께 다시 그것을 재매개 하는 방식들이 아닌가 생각했다.

장소특정적 작업과 굉장히 유사하지만 예전의 작업들이 현실과의 경계, 허구와 실제 사이의 경계를 허물려는 작업들이 많았다 한다면 지금은 오히려 현실 안에 프레임을 들여놓음으로써 이것이 연극이 되거나 공연예술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rdquo;

이진아 _ 평론가, 숙명여대 국문과 교수

이동하는(moving), 변형하는(transforming)

&ldquo;올해 다원예술분야는 미학적 혁신성과 정치적 혁신성을 횡단하면서, 거리로 나온 예술의 사회적 개입, 시각예술가(미디어, 사운드 아트, 설치, 사진 등)들의 극장에서의 공연, 미술관에서의 무용/연극/퍼포먼스 기획 등 다양한 층위의 횡단이 본격화되기 &lsquo;시작한&rsquo; 한 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동사(verb)적 표현을 더해 생각해 본 도식(圖式)적인 키워드가 아래와 같다. 한편으로 &lsquo;도시&rsquo; &lsquo;기억&rsquo; &lsquo;소멸&rsquo; &lsquo;욕망&rsquo; &lsquo;변신&rsquo; &lsquo;혼종&rsquo; &lsquo;대결&rsquo; &lsquo;게임&rsquo; 등 동시대의 화두 그리고 과정의 예술, 태도의 문제, 예술가들의 창작환경의 문제, 예술과 자율성, 예술과 사회, 정치하는 예술 등은 언제나 상존하고 있는 이슈라고 할 수 있다.&rdquo;

임인자 _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음악

우뇌(右腦)의 시대

&ldquo;좌뇌는 지성적, 직선적, 조직적, 말을 만드는 언어적 뇌이고 우뇌는 직관적, 전일적, 감각적, 예술경험과 관련된 창의적 뇌다. 앞으로 우뇌론이 예술계 모든 장르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우뇌를 본격적으로 개발해서 사용했던 예술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서양음악이 닥쳐있는 총체적인 문제, 그것은 좌뇌의 역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나는 체험적으로 생각한다. (&hellip;) 국악계는 작곡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그룹이 많아진 데서 &lsquo;변화&rsquo;를 찾을 수 있다. 연주자들이 스스로 그룹을 만들고 창작을 하며 세계로 진출하는 그룹들이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전통음악의 의미가 현대음악으로 다시 평가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산조 같은 것이다. 산조는 절대적으로 자신의 연주에 대한 확신과 기교의 극단적인 지점을 갖고 있어야 그 악기를 통해서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이다. 이것이 우뇌의 작용이며 동양 음악의 창조적 원리 중 하나다.(&hellip;)&rdquo;

원일 _ 창작음악집단 바람곶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소통

&ldquo;보편적이기도, 흔해빠지기도 한 키워드이나, 2010년 음악계에서 가장 간과하고 놓쳤던 단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국의 월드뮤직이라 부를 수 있는 우리 음악을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무엇을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을 간과해왔다. 과거 외국에 우리 음악을 들고 나가면 실제 좋은 음악이라 하더라도 그들과 소통할 방법이 없었다.

다행이도 최근 10년 사이 월드뮤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라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조금씩 나온 한해였다.&rdquo;

황우창 _ 월드뮤직 칼럼니스트

뮤지컬

전통소재의 활성화, 제작의 보수화

&ldquo;수년전 로맨틱 코미디, 휴먼 드라마 소재가 창작뮤지컬의 다수를 차지했던 것에 비해 올해는 전통소재를 현대적인 표현 방식에 의거해 만드는 뮤지컬이 창작의 주된 흐름이라 볼 수 있다. (&hellip;) 대중적 인지도를 선점한 소설, 영화, TV드라마가 뮤지컬로 제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도지만 매체 간의 차이를 뚜렷이 반영하는 각색이 필요하다.

올해 뮤지컬 전체 시장의 매출은 작년에 비해 현상 유지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라이선스 뮤지컬은 늘어나고 흥행이 불투명한 창작 초연은 줄어들었다. 현재 연중 가장 성수기인 연말시장에서 대극장을 차지한 것은 모두 라이선스 아니면 재공연들이다. 일부 메이저 제작사들은 올 한해 대극장 뮤지컬 창작을 포기하고 보수적인 제작 노선을 택했다. 가령 중소형 작품만을 개발하거나 지자체/종교계 등의 투자를 받거나 아예 기존 뮤지컬 시장에서 다소 벗어난 이벤트형 공연물의 제작대행에 힘쓴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상대적으로 흥행 가능성이 높은 아이돌과 한류 스타의 캐스팅이 봇물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hellip;)&rdquo;

조용신 _ 뮤지컬 칼럼니스트, 제작감독

&lsquo;티내기&rsquo;의 소멸과 스타

&ldquo;2010년, 한국 뮤지컬 시장을 10년간 지탱해 온 &lsquo;허영 프리미엄&rsquo;이 사라졌다. 뮤지컬이 너무 흔해졌다. 더 이상 명품이 아니라면 티켓가격이 낮아져야 할 텐데, 그럴 수가 없다. 제작비가 수직상승해 기본 수익구조를 만들려면 티켓가를 낮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허영심을 대체할 수 있도록 나온 것이 바로 &lsquo;스타&rsquo;와 팬덤이다.

2010 뮤지컬계의 세 스타-아이돌, 박칼린, 조승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뮤지컬이 스타 없이 흥행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이것은 냉정한 현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스타 없이 흥행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뮤지컬에서 스타가 그렇게 중요한데 뮤지컬 장르에서 과연 스타를 배출할 수 있는가? 객관적으로 볼 때, 이러한 예는 조승우밖에 없다. 뮤지컬이 어떻게 스타를 배출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던져준 한해가 아닌가 한다.(&hellip;)&rdquo;

최민우 _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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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2011 트렌드전망 ③ 2010 예술경영 10대뉴스 ④ 좌담

고주영 필자소개
고주영은 2006년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팀으로 입사, 2009년부터는 기획지원부에서 웹진 기획편집과 예술경영 직무매뉴얼 등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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