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말에 열흘 정도 호주에 다녀왔다. 애들레이드 프린지와 퍼스페스티벌(Perth International Arts Festival)이 목적지였다. 열흘 동안 스물 대여섯 편의 공연을 보았다. 그 중에 주목하고 싶은 공연 몇을 소개한다. 축제에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분들이나 관심이 있는 분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편의상 별점으로 쳐서 별 다섯 중 다섯 또는 네 개 반에 해당되는 공연만 소개한다. 별점이란 게 주고 싶은 사람 마음대로 주는 것임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미천한 경험에 비추어 이들 공연들은 조만간 우리 시장에도 소개될 것으로 본다.


<당신을 사랑한 내 자전거>(My bicycle loves you)

렉스 온 더 월(Legs on the Wall) |호주 | 퍼스페스티벌 공연

출처 시드니페스티벌

출처 시드니페스티벌

렉스 온 더 월의 신작이다. 연초에 시드니축제에서 초연을 올렸고 퍼스축제가 두 번째 공연이다. 이름처럼 벽을 타는 게 전문인 극단이다. 그 특성상 주로 야외에서 이루어진다. 이번 공연은 보드빌이다. 초기 무성영화를 바탕으로 아크로바틱, 마임, 라이브 밴드가 잘 어우러진다. 스토리는 별 게 없다. 공연과 같은 제목의 무성영화를 모티브로 현재로 불러낸 것이다. 쉽게 실현하기 어려운 테크놀로지와 아날로그(여기서는 특히 몸과 아크로바트가 대표적이다)의 결합이 절묘하다. 공연 후에 만난 극단 대표이자 연출자인 패트릭 놀란도 그 점이 출발점임을 인정한다. 재능과 음악성이 돋보이는 밴드가 매력적이다. 대사, 거의 없다. ★★★★★

<세상에 정말 어려운 일은 없어>(Nothing is really difficult)

공연집단 왁(WAK) | 네덜란드 | 애들레이드 프린지

출처 WAK 홈페이지

출처 WAK 홈페이지

이번 여행에서 맛본 최대의 즐거움. 과문한 탓으로 처음 들어보는 단체의 낯선 공연이었기에 뜻밖의 발견이었다. 공연집단 왁은 네덜란드의 젊은 피지컬씨어터 그룹으로 남성 세 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이 이 공연의 스태프이고 출연자 전체다. 그들이 수송해온 40피트 컨테이너가 공연장이다. 대사가 없을 뿐 아니라 일정한 스토리라인도 가지지 않은 공연이다. 관객은 그저 공연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상당한 수준의 곡예와 마임, 연기와 함께 공연장으로 사용되는 컨테이너 곳곳에 숨겨둔 장치들이 즐거운 서프라이즈를 선사한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곧 보게 될 것 같다. ★★★★★

<레 지라프>(Les Girafes)

콤파니 오프(Compagnie Off) | 프랑스 | 퍼스페스티벌

출처 퍼스페스티벌 홈페이지

출처 퍼스페스티벌 홈페이지

새 작품은 아니다. 만든 지 10년쯤 되었다. 아홉 마리의 기린과 소프라노가 거리를 누비는 대형 거리극이다. 퍼스축제 기획자 중 한 명인 자넬 멕켄지는 작년 개막 야외공연을 맡았던 스페인의 &lsquo;라 퓨라 델 바우스&rsquo;(La Fura dels Baus)(금년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만날 수 있다)와 함께 대중을 무척 잘 아는 팀으로 꼽았다. 서양의 대형 퍼레이드가 대개 그렇듯 사육제적인 분위기가 물씬하다. 거대한 붉은 기린이 오페라 아리아를 비롯한 음악과 조명, 폭죽 등에 어울려 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집는다. 2009년 고양호수예술축제에 참가할 예정이었지만 신종플루 때문에 축제가 취소되는 바람에 내한 공연이 무산되었다. 2010년에는 같은 극단의 <레 그로>(Les Gros)가 하이서울페스티벌에 초청되었으나 천안함 사건으로 축제가 연기되는 바람에 역시 없던 일이 되었다. 참 인연이 없다. 공연 다음날 필자와 같은 호텔에 묵고 있던 연출자는 이 기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ldquo;한국에 갈 준비가 되어있다&rdquo;며 쾌활하다. ★★★★★

<칸티나>(Cantina)

스트럿 앤 프렛 프로덕션 하우스(Strut & Fret Production House) |
호주 | 애들레이드 프린지

출처 애들레이드 프린지 홈페이지

출처 애들레이드 프린지 홈페이지

새로운 스타일의 서커스 공연이다. 새롭기는 하지만 정서는 흑백영화 속에 나옴직한 유럽의 싸구려 뮤직홀이다. 이 작품이 공연된 스피겔 텐트극장 자체가 그렇다. 원형으로 된 무대를 중심으로 칸칸이 나눠진 테이블좌석이 둘러싸고 있다. 가운데는 춤을 추거나 공연이 이뤄진다. 카바레라고 상상하면 된다. 공연장을 가로지르는 줄타기와 탭댄스, 마술과 서커스가 적절히 공연장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서양식의 향수어린 음악이 공연의 격을 높인다. 뉴 서커스의 성인용이다. 호주의 내로라하는 공연예술가들이 참여했다고 자랑한다. 공연과 관한 한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스트럿 앤 프렛의 야심작. 작년 가을 브리즈번축제에서 초연되었다. ★★★★


필자가 머문 기간과 맞지 않은 바람에 보지 못한 공연 중에는 극단 1927(2009년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 초청되었던 <비트윈>을 만든 팀이다)의 신작 <거리에 나선 동물과 어린이>(The animals and Children Took to the Streets), 2006년 초연 이래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인도의 <만가니야르>(The Manganiyar Seduction) 등이 눈에 띈다. 둘 다 금년 퍼스 축제의 공식 초청작이다.



이승엽 필자소개
이승엽은 1987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극장운영과 공연제작 일을 하다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의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술감독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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