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모의 사람들뿐 아니라 모두가 외톨잉고 외눈박이들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회사에서는 대표고 작품에서는 연출이지만, 가제트 형사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리숙한 가제트를 사건해결로 이끄는 것은 소녀 페니와 강아지 브레인 아닌가.

정석이 없고, 일반경영의 원칙이 잘 적용되지 않고, 내외부 변수가 너무 많아 예술관련 조직을 운영하기란 쉽지 않다고들 한다. 그 중에서도 서울과 지방, 심지어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대부분이 어렵고 가난한 현실적인 조건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예술조직이 공연단체라는 생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까. 작품이 아닌 ‘운영’ 측면에서 좋은 사례를 찾기 또한 쉽지 않다.

극단과 기획사를 합체한 조직형태로, 춘천에서 해외로 다이렉트 노선을 구축하며 점차 이름을 알리고 있는 문화프로젝트 도모의 황운기 대표를 만나, 그가 만들고자 하는 공연단체 운영의 새로운 사례와 이를 이끌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홍천, 춘천, 일본, 다시 춘천

황운기

그의 인생은 이미 열아홉에 결정되었다. 교회의 성극, 고등학교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무대와 가까워졌고, 은사님이 건넨 티켓으로 본 연극 한편, 아니 정확히는 공연장의 분위기가 그를 단호하게 연출가의 길로 이끌었다. “작품이 감동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 극장의 분위기에 감명 받아 포스터 한 장을 몰래 떼어 집으로 돌아왔고, 열아홉 사춘기 시절, 인생을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연출’을 떠올렸다.”

‘말리는 사람이 없었던’ 덕에 맏이인 황운기 대표는 예술단체 경영자이자 연출가, 첫째 동생은 춘천문예회관 조명감독이고, 막내는 배우다. 공연계에 올인한 삼형제로 여러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고.

춘천의 전통 깊은 극단 굴레에 입단하고, 굴레 안에 전문인형극단 꿈동이를 창단하면서 본격적인 연출 겸 운영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데, 2년 만에 그는 일본으로 훌쩍 ‘도망’을 간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연극하는 사람이 인형극을 하는 것이 ‘코 묻은 돈’으로 장사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굴레의 배우로 일본 도야마연극제에 참여했을 때 느꼈던 이질적인 문화, 무대전통 등에 대한 호기심이 일본을 택하게 했단다. 도제성격이 강했던 정통극단과 젊은 극단 등에서 배우도 스태프도 아닌 그저 견습생으로 일본 연극계를 경험했을 뿐이지만, 그때의 인연과 경험이 현재 도모의 해외네트워크의 중심이 되어 있다.

기획할 줄 아는 극단을 만들다

일본에서 돌아와 제대로 일해보자는 생각과 함께 창단한 것이 극단 도모였다. 배우 중심으로 창단되는 일반적인 지역극단들과는 달리 기획과 스태프, 연출, 배우 등 각기 다른 역할을 가진 다섯 명이 창단멤버였다. 친정과도 같은 굴레에서 독립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방향성과 운영방법이 다른, 지역극단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기획력 부재’를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춘천국제마임축제, 춘천국제연극제 등 국제적인 축제에서 일하는 선배들에게 보고 배우면서, 지역일수록 기획력이 필요하고 국제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러한 생각 때문인지, 도모는 창단 당시부터 극단의 자체 공연뿐 아니라, 다른 단체의 공연기획 대행이나 축제운영 등도 주요한 활동으로 가져오고 있다. 실은 극단 초기에 연극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활동유지가 힘들어, 다른 공연의 포스터 부착부터 홍보대행, 기획대행, 무대스태프 참여까지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돌아보면 현명한 ‘경영전략’이었지만, 실은 ‘생존방식’이었던 것. 그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외부에서도 도모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성장통을 극복한 약은 신념과 초심

이렇게 가지고 있는 인력과 능력으로 뭐든지 하던 시기를 거쳐 사단법인 문화프로덕션 도모로 성격을 전환한 것이 2007년도다. 일본의 네트워크를 집대성한 일본 전국 투어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 모두의 자긍심을 진작시킨 계기가 되었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도모 조직 전체가 충만해진 상태였다. 새로운 영역을 열 수 있는 에너지가 모아지면서, 단순히 극단이 아니라 전문 프로덕션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때마침, 문화부에서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 정책을 막 시작하던 즈음이었는데,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면 조직의 투명성이 높아져 활동을 확장,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무엇보다 도모에서 하고 있는 활동들이 사회적기업의 미션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기존의 활동이나 성격을 버리고 혁신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약간은 주먹구구식으로 해오던 일들을 조직적으로 구조화 시킨 것이다. 하지만, 조직확장의 여파는 컸다.

“(예비사회적기업이 된) 2009년에 큰 몸살을 앓았다. 대단히 유명한 작품을 하지는 않아도 우리끼리 즐겁게 연극 만들고, 봉사하고, 여행 가던 조직이었는데, 일례로 두 배로 늘어난 직원들에게 월급을 꼬박꼬박 줘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노동부에 고발 당하는 조직이 된 거다. 이로 인해 조직의 흐름이나 정체성에 왜곡이 오지 않을까, 고민이 컸다. 초창기 멤버 중에도 조직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의견이 있었고, 당연히 충돌이 생겼다.”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외부 사람들은 급작스럽게 많은 인력을 수용하고, 그에 맞춰 춘천 중심가에 사무실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며 오해를 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경영자의 역할을 해야 했던 황운기 대표의 대처방식은 소박하지만 정면돌파였다. 도모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사회적기업이 뭔지, 극단이 어떠한 조직인지, 도모의 상황이 어떠한지를 오픈했다. 공무원이든 지역의 예술계 사람들이든 만나면 이야기했고, 내부적으로도 조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고방식의 직원들을 정리했다.

“도모를 이끌어 가는 데는 공동의 목표가 가장 중요하다. 도모에 소속된 사람들이 도모를 사랑할 필요는 없다. 함께 가는 친구, 동반자일 뿐, 도모가 인생의 목표거나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단, 도모를 일반기업과 같은 직장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람들과는 타협이 불가능했다.”


황운기
황운기 황운기

도모에 충실하지 마라, 자기 꿈에 충실해라

“가급적 격의 없이 일대일 소통을 자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 방편으로 별뜻 없이 ‘식사 같이 하자’고 해도 아무래도 대표다 보니 직원들은 긴장하는 눈치다(웃음). 다들 문제가 많지 않나. 집안문제부터 시작해서 진로까지. 그런 이야기들을 이끌어내면서 강조하는 것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찾으라는 얘기다. 도모와 상관이 있건 없건. 하고 싶은 게 없으면 도모를 나가라고 할 정도다.”

작년 말에 회계담당 직원이 메이크업을 배우고 싶다고, 학원을 등록할 생각인데, 업무시간을 조금 할애해줄 수 있겠느냐고 대표에게 물어왔다. 당연히 그러라고, 기본 코스가 끝나고 특수메이크업 코스에 들어가면 회사에서 지원도 하겠다고 약속했다.

“회계는 본인이 현재 발휘하고 있는 능력이지만, 하고 싶은 걸 찾고 실천하는 게 그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겠나. 설령 그 직원이 메이크업을 배워서 도모를 나가더라도-다들 그렇게 걱정하더라- 도모와는 좋은 관계로 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받을 거라 생각한다.”

황운기 대표의 사람관리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는 예가 또 있다. 올해 도모의 공연계획을 물었더니, 작년 말부터 당분간은 신작 공연계획이 없단다. 원래 도모는 집행위원들이 작품을 정해 공연을 만드는 방식이었는데, 이제는 배우들이 스스로 원하는 작품, 하고 싶은 것들을 하게 해주고 싶어서 신작 계획을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배우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논의하고 발전시켜 도모에 맞는 프로젝트를 선정해 실행할 생각이라고.

이 과정을 통해 배우들이 평소의 몇 배나 되는 대본을 읽고 스터디를 하면, 결국 좋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낙관한다. 몇 개월 동안 공연을 못하는 만큼 줄어드는 수입을 감내하는 것이 대표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지 않았을까.

“배우를 포함한 직원들에게 인건비를 줄 수 있게 된 게 겨우 2005-6년의 일이다. 많은 월급도 아니고. 내가 그들에게 보상해 줄 수 있는 것은 꿈을 주는 것, 꿈을 이뤄갈 수 있게 해주는 것밖에 없다. 나 역시 스스로 자신감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바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며, 최근에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 놓은 경영책을 발견했다며 소개해준다. ‘조직은 영원할 수 없다. 파괴해라, 깨트려라. 좋은 인재는 뽑아오는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게 경영자의 몫이다’.

“우리 직원들을 보면 참 다양하다.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이 도모에 들어온 사람, 늦깎이로 공부를 시작한 사람, 어려운 가족사를 가진 사람 등등. 도모의 사람들뿐 아니라 모두가 외톨이고 외눈박이들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회사에서는 대표고 작품에서는 연출이지만, 가제트 형사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리숙한 가제트를 사건해결로 이끄는 것은 소녀 페니와 강아지 브레인 아닌가. 이 둘은 모자란 사람을 도움으로써 성공을 맛보니 만족감이 얼마나 높겠나.”

지역 비영리 예술조직의 사명

춘천이라는 지역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예술적 환경이 좋은 편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모두가 잘 아는 대로, 한국의 공연예술계, 축제의 발전과정에 굵직한 성과를 남겨온 국제축제가 연중 개최되는 곳이니. 그럼에도, 황운기 대표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등 현안의 문제를 꼽는다. 지역 현장 사람으로서, 한 극단에서 사단법인이라는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황운기 대표나 도모가 해온 활동에는 본인의 조직만이 아닌 지역예술을 위한 기여도 눈에 띈다.

“도모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 중 100PS 캠페인이 있다. 100명이 백만 원씩 모은 종자돈으로 문예회관이나 공무원, 서울의 기획사가 원하는 공연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원하는 공연을 직접 불러오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지역의 리더들을 만나 이러한 취지를 설득하고 참여시키면, 단순히 지역민이 원하는 공연을 불러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지역의 공연문화 자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100PS에 참여하는 지역 사장님이 직원들의 문화활동을 지원할 수도 있고, 문화접대 방식이 확산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본 전역에 산재하며 공연유통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연극감상회 네트워크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인데, 추진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애초 취지를 이해하여 ‘요원’의 의무를 생각하지 못하고 로열관극회원 정도로 인식한 참여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하나, 100PS가 도모의 재원충당을 위한 것이라는 오해가 많다. 물론 지역의 인사들에게 황운기 대표나 도모가 인지도를 갖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 100인 조직을 관리하는 데 드는 인력 등은 도모의 직원들이 부가적으로 떠안는다.

지역에서의 공연문화에 대한 고민까지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황운기 대표에게 ‘서울과 춘천을 잇는 복선전철이 춘천 지역문화에 끼치는 영향’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질문을 던져보았는데, 일반적으로 “춘천 관객의 서울 유입”을 우려하는 의견과 달리, 공연단체의 입장에서의 답변을 내놓는다. “이미 춘천의 일반 관객들은 일 년에 한두 작품 보는 공연을 꾸준히 서울에서 보아왔다. 그 부분에서는 새삼 달라질 게 없다.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역에서 비교적 규모 있는 작품을 해오던 단체들이 더 이상 춘천에서 활동할 메리트를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역재단의 적은 지원금을 얻고자 춘천에서 공연할 이유가 없는 거다. 예술가들이 서울에서 활동할 기회는 커지고. 그렇게 지역의 컨텐츠를 잃어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 같다.”

지금의 모습이 나의 정체성

황운기

황운기 대표는 작년부터 MBA 과정을 밟고 있다. ‘역시나’하는 기대와는 달리 단체운영보다는 연출작업 때문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연출적 고집과 철학 때문에 기획의도에서 빗나가고 배우에겐 상처주고, 관객을 졸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데, 그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경영적 마인드를 가진 연출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연출에 있어서도 기획을 고민하고, 경영할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인력관리 방식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결국 ‘경영을 아는 연출가’라고 정의를 내려야할지, ‘무대를 아는 경영자’라고 정의해야할지 좀 고민이다.

“십 년 전 나는 조명 전문가로 통했다. 그리고 절친한 선배 하나는 ‘넌 연출보다 기획을 해야 하는 사람이야’라고 늘 얘기한다. 내가 잘하는 것은 조명, 남들이 잘한다는 것은 기획,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열아홉부터 쭉 연출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하나에 집중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얼마 전 안식월을 가지면서 문득 정리가 되더라. 꼭 무 자르듯 하나로만 정체성을 가져야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렇게 다 하는 사람이 나의 정체성이다.”



황운기: 1974년 강원도 홍천 출신으로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춘천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6년부터 춘천국제마임축제와 춘천국제인형극제, 춘천국제연극제 등 춘천지역 축제에서도 활동학 있다. 현재 춘천국제연극제의 부예술감독이자 극단 도모의 상임연출, (사)문화프로덕션 도모의 대표이다. 연출 대표작으로는 <시나브로> <더 드림> <소낙비> 등이 있다.


고주영 필자소개
고주영은 2006년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팀으로 입사, 2009년부터는 기획지원부에서 웹진 기획편집과 예술경영 직무매뉴얼 등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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