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원자력 사태를 불러일으킨 일본 국적을 가진 제게 지금 같은 시기에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지진이 일어난 후, 해외 지인들로부터 받은 메시지에는 ‘Stay strong’ ‘Be strong’이라는 구절이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단어겠죠. 계속해서 같은 메시지를 받아보니, 대체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을지를,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기반해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은, 존재한다

지진, 그 자체는 자연현상이지만, 거기에는 사람이 일으킨 인재도 동반됩니다. 특히 저는 원자력발전 사고를 다른 차원의 문제로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피해의 규모와 성격이 심각할 뿐만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려고 자연을 최대한 이용한 결과로 자연의 자기보존능력을 넘어서는 파괴와 인간의 생존조건에 위기를 불러온 것은 사회와 예술의 환경에도 직접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Yahoo Japan

출처 Yahoo Japan

이미 최근 들어, 적어도 제가 아는 한, 일본과 유럽의 공연예술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경제위기나 정치적 보수화에 따른 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 축소가 문제시 되어왔고, ‘예술의 존재의미’ ‘예술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테마로 논의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제 와 그러한 논의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와 같은 논제 설정의 배경에는 ‘예술이 존재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예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 존재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숨어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전제해두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야기했듯 어떤 상황이든 예술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사회가 예술로부터 어떠한 이익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라는 의미로, 예술 그 자체의 존재조건이 아닙니다. 예술 그 자체는 항상 존재하며, 그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우선, 한 번 더 강조해두고 싶습니다.

지금 일본의 언론은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마음의 치유’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피해자에게도, 방사능에 대한 ‘과잉 공포’에도 ‘마음의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술이 활용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와 예술은 모순 없이 조화를 이루고, 전체적인 형태를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 역시 존재의미와 사명을 획득하겠죠. 하지만, 만약 예술이 그렇게 형태만으로 기능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 역시 자신들이 초래한 자연파괴와 인간 생존조건의 위기를 단지 ‘마음의 고통’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일 것입니다.

절대적 외부자, 예술이 해야 할 질문

저는 이 지진 직전까지, 아니, 이미 몇 년 전부터, 당연시되는 생활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일본에서는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최근 10년 정도 냉장고, 에어컨, 텔레비전이 없는 삶에 도전해 왔습니다. 이러한 사소하고 개인적인 시도가 제게 어떤 발언권을 부여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러한 시도로 알게 된 사실은, 보다 적게 소비하는 것뿐 아니라 ‘전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구태여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그 ‘전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것도 철저하게 되묻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술이 전제를 철저하게 되물을 수 있는 것은, 예술이 사회의 절대적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전제를 철저하게 되물음으로써 절대적 외부에 있게 되거나, 전제를 철저하게 되물은 탓에 사회의 절대적 외부로 추방당하기도 합니다. 어느 경우건, ‘예술경영’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정의되는 우리의 직업은 이러한 외부성을 지금 다시 한 번 사회에 되돌려보내는 일, 예술을 통해 모든 전제를 재검토하고, 사회의 ‘이익’이라는 것을 재정의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지속적인 자기갱신 없이는 존속할 수 없음에도, 갱신의 계기는 사회 내부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예술의 필요성을 소리 높여 표명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사회는 항상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것처럼, 다시 말해, 외부가 필요없는 것처럼 돌아갑니다. 하지만 사회는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의 존속을 위해서도 예술을 필요로 합니다. 그 사실을 명확히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전히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안심할 수 있는 일상은 아니지만, 일단은 수습 국면을 맞고 있고, 복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전사고는 현재 진행 중이고, 원전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바로 지진의 피해자들입니다. 그리고 수습이 되건, 최악의 귀결에 이르건 원전사고는 사회를 ‘복구’뿐 아니라, 부득불 ‘갱신’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지금 저는, 이러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든 이 사회의 구성원이자 예술경영인으로서 어떻게 이 사회를 ‘갱신’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1년 3월 24일

번역 _ 고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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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on the earthquake disaster(English) written by Hiromi Maruo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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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오카 히로미 필자소개
마루오카 히로미(Maruoka Hiromi)는 국제무대예술교류센터(PARC)의 사무국장으로 2005년부터 동경예술견본시(현 요코하마국제공연예술미팅)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2003년, 포스트메인스트림 퍼포밍아츠페스티벌을 창설, 프로그래머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프로듀서로서 다양한 해외공연을 일본에 소개하고 있다. maruoka@tpam.or.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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