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로서 어떤 지향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공식적으로 받을 때, “신화적 개념으로서의 ‘소유’가 아닌, 쉽게 접촉할 수 있는 근본적인 구조와 방법들에 대해 실험하는 것, 이 같은 연구를 통한 전달매체의 다각화와 예술향유의 통로를 현실화하는 것”이라며, 나는 종종 거창하게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건 부정확한 말들이다. 정확히 서술하자면, 나는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것에 몰두할 뿐이다. 한때, ‘국제화의 환영에 빠진 한국미술계’란 시니컬한 태도를 가진 적도 있지만, 조만간 아시아나 아이티의 어느 신인작가와 기획전을 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결합이 만드는 다중적인 개념에 재미를 느끼다가도, 20세기 미술의 인기 카테고리들(정체성, 젠더, 신체 등에 관한 담론)에 때늦은 흥미를 가졌던 것처럼, 내 큐레이팅의 ‘기호’에는 일정한 내러티브가 없고, 대체로 분열적이고 이중적이다.

흔히, 전시는 큐레이터의 세계를 담는다는 말이 있다. 혹은 세계를 대하는 큐레이터의 태도와 시각이 투영된 지형도라 설명되기도 한다. 이 설명에 대입시키면 큐레이터로서의 나는 ‘분열’과 이중성’의 기표들에 흥미가 있고, 혹은 그것들이 유발된 ‘편견’이나 ‘상투성’을 지양하는 셈이다.

대안공간 루프 서진석 대표 인터뷰 닷라인TV 촬영 모습

대안공간 루프 서진석 대표 인터뷰
닷라인TV 촬영 모습

그래서인지 내가 만드는 모든 전시와 컨텐츠들에는 “생소하다. 흥미롭다. 어떤 건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말이 기본 옵션처럼 따라붙는다. 2007년 기획형 인터넷미술방송국 닷라인TV를 통해 전달매체에 관한 실험을 진행할 때도, 2009년 ATU(Alternative, Translate, Universe)가 처음 시도될 때도, 2회째 ATU 행사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가를 이해시키고 내 디렉팅을 충분히 납득시키는 일이 가장 주요한 업무였을 정도로, 작가, 음악가, 스태프 모두에게 처음이고 모험이었으며, 동시에 위험한 실험이었다. 보도하는 기자들도 난감해하긴 마찬가지였다. 경험하지 않으면, 정확히 서술하기 힘든 모호함 때문에 여타 전시처럼 텍스트나 언어로 전달하기도 어려웠다. 체험한 후에야 언어의 빈곤함을 절실히 체감하게 되는 것, 자신의 의식 너머의 것이 뜨거워지는 것, 결국 나는 그런 것을 만들고 싶었다.

‘관계와 전달’이라는 키워드는, 2011년 현재에도 유효해,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네트워크 속에서 이미 수없이 증명되고 있다. 21세기초 많은 미술가들은 지금과 같은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의 징후를 작품 속에 은유했고, 예리한 큐레이터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제시했다.

밴드와 미디어아티스트가 함께한 무대 2010 ATU

밴드와 미디어아티스트가 함께한 무대
2010 ATU

예술을 설정, 제시하고 전달하는 사람인 큐레이터로서, 나는 기존의 틀과 상관없는 ‘전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은 올해 시험가동을 앞두고 있는 국제예술채널 허브(INAHUB)로 이어진다. 국제예술채널은 미술(예술)채널들의 허브 기관이자, 세계 각국의 예술채널과 각종 미술매체, 독립매체들의 플랫폼으로, 이를테면, 올림픽 때 국제방송센터에서 각국 보도채널들이 결집하는 구조를 떠올리면 된다. 더불어 방청석이라는 외연을 확장하여, 공개녹화 형식을 취해 온라인 매체의 특성과 오프라인 현장에서의 시너지를 배합하는 프로젝트다. 그 첫 걸음이 될 소규모 실험을 앞두고 있는 지금, 긴장과 스트레스, 흥분을 어떻게 다스릴까 걱정반 즐거움반이다. 나는 과연, 이런 형식적 변형과 모색을 가지고 얼마동안 연구하며 놀게 될까?

큐레이터 하랄트 제먼(Harald Szeemann) 할아버지가 베를린 쿤스트할레에서 개최된 자신의 전시제목을 통해 ‘태도가 형식이 되었다’고 말했다면, 나는 그 건너편에 서서 “형식이 태도가 되었네요”라고 농담하고 싶다. 작가를 발굴하기에 앞서 나 스스로를 발굴하는 것, 큐레이팅을 발굴하는 것, 아직 그 무엇도 내게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문예진 필자소개
문예진(a.k.a 몰라)은 샘표식품이 운영하는 미술공간인 샘표스페이스의 책임큐레이터로 재직하다가 예능버라이어티에서나 봄직한 기획형 인터넷미술방송국 닷라인TV를 만들어 미술 현장 곳곳을 누비며 웹기반 매체의 형식 실험과 큐레이팅 사이의 경계를 교묘히 유영해왔다. 2009년 ATU 행사를 창설하여, 작년까지 2회 행사를 개최했다. 다원예술의 최전선과 미술의 틈새를 발굴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지만, 늘 독립큐레이터라는 ‘근본’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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