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해외토픽 중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있었다. 2004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카메라폰 수입과 판매를 금지시키려 했다. 카메라폰 사용을 금지하려던 이유 중 하나로 여성의 사진이 은밀하게 유통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여성의 맨 얼굴 사진을 대중에게 함부로 공개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카메라폰의 보급으로 여성의 얼굴 사진이 함부로 찍히고 온라인상에 돌아다니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사회문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결혼식장에서 여성 하객이 카메라폰에 찍히면서 생긴 폭력사태로 적잖은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 여대생은 친구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퇴학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카메라폰으로 찍은 듯한 성폭행 동영상까지 인터넷에 나돌아 사우디아라비아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2003년 10월, 종교지도자들은 카메라폰이야말로 악(惡)과 음란을 퍼뜨리는 주범이라는 ‘파트와(fatwa, 율령)’를 내렸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통상, 내무부, 재정부 장관들은 카메라폰은 시대의 흐름이니 금지하기 어렵고, 대신 올바른 카메라폰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카메라폰 사용 금지에 반대했다. 이런 첨단정보문화의 변화와 전통사회의 규범이 충돌하고 논쟁하면서 이슬람 사회의 일상이 되었다.

출처 thesocietypages.org

출처 thesocietypages.org

불과 10년이 되지 않은 2011년 이슬람사회에 자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2010년부터 2011년에 걸쳐 튀니지에서 일어난 혁명을 튀니지의 나라꽃인 자스민에 빗대어 이르는 말. 이 혁명의 결과로 23년간 튀니지를 장기집권한 대통령이 사퇴, 망명했다)이 도래한다. 튀니지, 이집트, 바레인, 알제리, 모리타니, 수단, 예멘, 오만 등 아랍 국가들로 퍼져나가는 중동의 민주화운동과 시민혁명은 카메라폰, 인터넷과 유튜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첨단정보기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무장하고는 새로운 혁명의 시대를 열고 있다.

아랍사회가 답습하고 있는 전통적인 전체주의 사회가 21세기를 무사히 지나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미 현대의 이슬람사회는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계급의식이 개혁과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성숙한 상태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물론 SNS가 아랍사회의 민주화열기를 확산시키고 조직화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도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출처 globalcc.wordpress.com

출처 globalcc.wordpress.com

반면 중국의 경우는 그 반대로 정부기관이 첨단정보기술을 갖고 효율적으로 국민을 관리하고 통제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이슬람권의 자스민 혁명의 물결을 신속하게 차단하기 위해 온ㆍ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수단을 감시, 통제, 금지하면서 효과적으로 대처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정보와 지식이 노출되는 사회에서 중국 국민의 보다 더 민주적인 시민 권리에 대한 요구를 중국정부가 언제까지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작은 문’을 뜻하는 ‘케르카포르타’(Kerkaporta)와 비잔틴제국의 멸망을 소개하고 있다. 동로마제국의 수도이자 제국의 마지막 보루였던 비잔틴은 오랫동안 오스만제국의 공세에도 유럽의 기독교세계를 꿋꿋이 지켜 낸 철옹성이었다. 그런데 어떤 실수로 내성(內城)과 연결된 작은 문이 열려 있었고, 이 문을 통해 들어온 오스만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만다. 작은 문이 만일 닫혀있었다면? 역사는 매순간 작지만 결정적인 요인들에 의해 예측을 불허하며 변화한다. 돌아보면 2004년 카메라폰을 둘러싼 이슬람사회의 논쟁은 당시 그저 해외 단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근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전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사회활동의 트렌드로 확고히 자리 잡으면서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과 면식을 나누고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런 우연한 만남은 어떤 식으로든 과거의 삶과 양식을 변화시킨다. 예술가들이라고 해서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를 새로운 예술적 아이디어와 형식을 실험하는 장으로 삼으려는 사람들로 주위가 점점 소란스럽다. 좀 전, 막 클릭했던 ‘좋아요’ 하나로 나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의 흐름에 어떤 결정적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누가 알았겠는가? 몇 년 전 카메라폰 사용을 둘러싼 이슬람사회의 작은 소동이 자스민 혁명과 무관하지 않음을.



김노암 필자소개
김노암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회화繪畵와 미학美學을 전공하였다. 미술현장에서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며 그림과 글로 시절을 보내고 있다. 현재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를 운영하며 미술웹진 [이스트 브릿지], KT&G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의 운영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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