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말로 ‘촌 빨 난다’라고 표현할 때가 있다. 촌스럽거나 구태의연한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문구를 두고 부산사투리라 안하고 부산 말이라고 한 이유는 정독후답(正讀後答)이기에 그렇다. 흔히 국제문화행사, 국제문화교류의 의미를 가지고 열리는 행사가 일 년만 살펴봐도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마치 축제마다 따라다니는 정체모를 토속음식 행상 군단처럼 늘 비슷한 이벤트들이 너무 많다. 거기다 국제라는 명칭을 쓰려면 적어도 3개국이상이 참여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가 정의처럼 떠돈 지 오래다. 교류가 없는 국제행사는 아무런 반성 없이 점점 늘어만 가고, 설사 교류의 실체가 있다하더라도 행사를 위한 단발성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이벤트에는 정부, 지방정부의 요인의 참석여부, 모여든 사람의 숫자가 성공의 잣대가 되곤 한다. 그러니 국가가 나서거나 혹은 지방정부가 나서 엄청난 공공재원을 투입하는 꼴이 되었다. 이 글이 국제문화교류의 주목할 만한 모델을 소개하면서 이를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류” 없는 국제문화행사들이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왔다갔다아츠페스티벌 개막파티 <레인보우 퍼포먼스>

▲ 왔다갔다아츠페스티벌 개막파티
<레인보우 퍼포먼스>

일상에서 시작되는 관찰로부터

2009년 일본 후쿠오카의 예술가들이 부산의 대안공간과 청년문화 지형을 관찰하기 위해 부산을 찾았다. 곤궁한 호주머니를 털어 올만큼 관심이 컸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기억한다. 현장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질문과 메모를 거르지 않았다. 7~8명이던 그룹은 회를 거듭하며 점차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부산의 예술가들도 후쿠오카 전역의 예술 공간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주 오가면서 만들어진 것이 &lsquo;부산후쿠오카아트네트워크&rsquo;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왕래한 횟수가 56회, 지역 또한 큐슈 전역과 부산&middot;울산&middot;경상 동남권 전역으로 넓혀졌는데 이것은 당초부터 문화적 지역국가(Region State) 모델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토대위에서 개별적으로도 자유롭게 교류하며 서로의 작업공간을 왕래하며 숙식도 함께 한다. 양 지역의 맛집도 꿰뚫고 있고, 볼거리 또한 훤히 안다. 2010년 초 이들은 &lsquo;WATAGATA ARTS FESTIVAL(왔다갔다아츠페스티벌)&rsquo;을 창설한다. 2010년 9월에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JR 하카다역, 마츠나카 갤러리 등 시내 전역에서 40여명의 양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했고, 2012년 10월 초 연안여객터미널, 중앙동 일대의 상점 공간, 용두산갤러리, 인쇄골목, 보수동책방골목, 40계단 등 부산에서 열린 2회 행사에는 소통을 강조한 &lsquo;NET-CO&rsquo;를 주제로 5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함께했다. 스텝과 주제를 정하는 일은 물론, 홍보물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머리를 맞대고, 예술가들만이 아닌 시민과 함께 호흡하고 작업하기를 더 선호한다. 방문지역의 스토리와 오브제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만드는 공유의 가치를 지향한다.

왔다갔다아츠페스티벌 부오나카페 전시
아카이브 전시
이창진 작가 작품 <빨래>

▲▲▲ 왔다갔다아츠페스티벌 부오나카페 전시
▲▲ 아카이브 전시
▲ 이창진 작가 작품 <빨래>

행사의 기간은 보통 한 달에서 두 달에 이르며 준비를 위해 수 없이 오간다. 왔다갔다는 일상의 하나다. 부산에서 서울, 후쿠오카에서 도쿄를 가는 시간보다 부산과 후쿠오카는 시&middot;공간적으로 가까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역과 지역이 서로의 특성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관찰했기에 가능한 얘기다. 서로의 형편을 아는 것이다. 후쿠오카의 창작공간은 매우 깔끔하지만 문화산업자본을 확보한 부동산 혹은 공간 개발업자에게 대부분 종속되어 있고, 예술가에 대한 공공재원 지원이나 지원제도 역시 매우 적다. 그렇기에 자유로운 길거리 예술 활동에 대한 시민의 이해와 호응 등은 부산을, 반면 큐슈의 예술가들이 각자의 생업을 가지고 어렵게 창작활동을 하지만 공공재원에 기대지 않는 자생적 노력의 모습은 후쿠오카를 각각 본보기로 삼는다. 부산의 예술가들이 창작을 통한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참여에 적극적인 반면, 후쿠오카는 창작에 있어 깊은 내면적 탐구의 과정을 중시하지만 사회적 참여에 다소 소극적인 특성을 가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관찰을 통해 부산의 예술가들은 자생력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후쿠오카 예술가들은 사회적 가치를 지닌 공공재로서의 예술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가족과 친구의 이야기, 속내까지 스스럼없이 털어 놓다보니 서로의 힘든 점도 예외가 아닐 터, 일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관찰은 뿌리가 깊어 좋은 열매를 맺을 것으로 본다.

유네스코는 문화다양성 협약을 통해 민주주의, 관용, 사회 정의, 그리고 사람과 문화 간의 상호 존중의 틀 안에서 번성하는 문화다양성이 지방, 국가, 국제적 차원에서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필수불가결하다는 점, 문화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다양한 양식을 가지며, 그 다양성은 인류를 구성하는 사람과 사회의 정체성과 문화적 표현의 독특성과 다원성에서 구현된다는 점, 문화다양성이 생각의 자유로운 유통으로 강화되고 문화 간 지속적인 교류와 상호작용을 통해 육성된다는 점을 들어, 문화를 풍요통으로하고 호혜적인 방식으로 유통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하기 위하여 문화 간 존중과 평화의 문화 추구를 목적으로 보다 광범위하고 균형 잡힌 문화교류를 위한 문화 간 대화를 장려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균형 잡힌 문화교류의 한 방편이 &lsquo;로컬 투 로컬/L&middot;T&middot;L'이 아닐까 한다. 목적하지 않았지만 L&middot;T&middot;L를 위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GLOCAL이 소중하지 않을까 한다. 이제 국가 대 국가, 국가 대 지역 등 국가가 직접 나선 국제교류는 촌 빨 나는 일이다. Local to Local. 국제교류의 패러다임이 변화된 지 오래건만 인색한 변명과 무지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듯하다.

차재근

필자소개
차재근은 스스로 경계를 선택하며 산다. 경계의 지평이 넓어질 때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문화예술교육, 원도심창작공간 &ldquo;또따또가&rdquo;, 한울림합창단, 윤이상, 한형석, 로광욱 등 관련 검색어가 꽤 된다.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 전문을 경전으로 삼고 있으며 &lsquo;Prosumer'가 키워드이다. 현재 부산문화재단 문예진흥실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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