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2 한류아카데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국악원, 국립민속박물관,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한 프로그램으로 방송, 영화, 디지털 콘텐츠 등 콘텐츠산업분야 창작자를 대상으로 전통예술교육을 제공하여 새로운 한류콘텐츠 제작을 돕기 위해 마련되었다.

지난 여름, 잠시 갈등했다. ‘한류 아카데미’라... 여긴 대체 뭐하는 곳일까? 전통예술 교육 프로그램이라고는 하는데, ‘한류’라는 이름이 어딘지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현재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고, 앞으로도 그것을 지속시키고 확장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위해 아카데미를 만드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교육을 받는 것으로 한류의 핵심이 될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기나 한 것일까? 만약 교육 프로그램을 다 마쳤는데도 한류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하지 못하면 그것은 프로그램의 문제일까, 아니면 수강생의 문제일까? 그나저나 수강료가 무료라는데 혹시 프로그램이 부실한 건 아닐까? 등등 자못 삐딱한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방송작가 생활 십몇 년 째. 일하면서 에너지는 나날이 고갈돼가고, 창의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언제부터인가 밥벌이에 급급해져버린 일에 대한 회의가 생기면서 자괴감이 밀려들던 터였다. 뭔가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차에 여름 동안 잠깐 쉬게 됐다. 어떻게 충전할까, 하고 두리번거리던 내 눈에 ‘2012 한류 아카데미1)’ 수강생 공지가 띄었다. 교육과정 프로그램과 세부 일정을 보면서 처음 품었던 미심쩍은(?) 생각은 다소 수그러들었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한국미술사나 민속에 대해 공부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의심 많은 내 성격상 괜히 신청해놓고 아까운 시간 낭비나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일말의 의구심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겪어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일. 그래, 일단 저지르고 보자.


그렇다고는 해도 사실 커다란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전통예술에 대한 기본 교양 수준의 지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어쩌면 구체적인 지식보다는 굳어버린 감각과 느슨해져버린 마음에 호기심과 활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는 어떤 자극, 신선한 균열감(!)을 더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더불어 운이 좋으면 강사든 수강생이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멋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2012 한류아카데미 입문과정(고전과 설화)_신동훈 교수님 강의
2012 한류아카데미 입문과정(궁궐이야기)_신병주 교수님 강의

▲▲ 2012 한류아카데미 입문과정(고전과 설화)
_신동훈 교수님 강의
▲ 2012 한류아카데미 입문과정(궁궐이야기)
_신병주 교수님 강의

9월이라고는 해도 아직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맹렬히 기세를 부리던 때, 한류 아카데미가 시작됐다. 경복궁 함화당에서의 첫 강의는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우리 고전문학이 가지는 힘에 대한 강의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무엇보다 고풍스러운 장소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동안 진행했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여러 차례 궁궐과 한옥 등 고택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하고 시청자를 설득하려 애써왔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라 자부하고 있던 내가 정작 우리 문화와 전통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적은지... 더군다나 명색이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고전문학 중에서 내가 직접 읽은 건 손에 꼽을 정도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선 부끄러웠다.

이후 두 달 동안 일주일에 두 번, 대체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정도까지 진행된 강의는 때론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했다. 그 가운데에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어 보였지만 뜻하지 않게 흥미진진한 강의가 있었는가 하면, 신선한 자극을 주는 강의도 있었다. 물론 지루해서 강의가 얼른 끝나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늦여름에 시작된 교육과정은 추석을 지나 찬바람이 부는 11월 초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 방송가로 돌아왔다. 돌이켜 보니 벼락같은 충격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기대했던 어떤 자극은 받은 것 같다. 일 하는 데 있어 전보다 조금은 더 의욕이 생겼으니까 말이다. 소득은 이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와 멋진 사람들도 알게 됐다. 지난 여름의 선택이 내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은 결과를 낳은 셈이다.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문화 자체의 힘에 주목할 때

그렇다면 한류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측에서는 나 같은 수강생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까? 나로서는 정확한 사실을 알 길이 없다. 그러니 내가 처음 ‘한류 아카데미’에 대해 품었던 불편함의 실체에 대해서나 좀 더 짚어보고자 한다. 나는 두 달 동안 민속 교육과정을 제법 열심히 수강했다. 결석 한 번 하지 않았고, 나름대로는 강의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당장 한류의 확산에 기여할만한 근사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는 없다. 그리고 아마 가까운 장래에도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일까?

한류란, 모두가 알다시피 국적과 문화를 넘어 세계인들이 드라마, 영화, K-pop과 같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즐기고 소비하는 문화현상을 일컫는다. 동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중동, 아니 온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로 인해 이제 세계인들은 한국 콘텐츠 속 한국인들의 생활방식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한류 팬들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나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에 집착했지만, 거기에서부터 출발한 관심이 이제는 음식, 문화, 전통 등 다양한 분야로 번지고 있다. 마치 드라마 <대장금>의 성공 이후, 배우 이영애에 대한 환호뿐만 아니라 한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세계 각처에서 폭발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류 붐이 더 일어날지 거품이 꺼지듯 수그러들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한류의 지속과 확산을 위해서는 우수한 콘텐츠가 필요하고, 그 콘텐츠의 핵심은 우리 것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으로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중요한 것은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우리 문화 자체의 힘인지도 모른다.



2012 한류아카데미 민속과정 민속마을탐방-충남서천 동자북마을 이걸재 선생님과 함께 2012 한류아카데미 민속과정 민속마을탐방-충남서천 동자북마을 이걸재 선생님과 함께
▲ 2012 한류아카데미 민속과정 민속마을탐방-충남서천 동자북마을
이걸재 선생님과 함께

나는 주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우리 역사와 전통에 대한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내 직업적 목표이자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하여 언젠가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에서 우리 역사와 전통에 담겨있는 정서와 가치가 오롯하게 전달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 같은 다른 장르를 통해 세계로 퍼져나간다면, 지난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보낸 두 달 동안의 시간이 헛되지는 않은 것이리라.
김성화 필자소개
김성화는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수의 TV 구성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현재는 KBS <한국재발견>의 글과 구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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