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공연 산업의 미래를 책임지는 국립 기관인 ‘시어터 트러스트(Theatre Trust)’의 발표에 따르면 웨스트엔드에서 만들어지는 10개의 공연 가운데 7개의 공연이 완벽한 실패를 맛보고 있으며 2개의 프로덕션이 겨우 투자금을 회수하는 정도이고, 단 하나의 작품만이 수익을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발표가 업계 내부에 퍼져 공연 티켓 판매 가격을 높이는 역할만을 충실히 하고 빠졌지만, 여전히 대형 상업 공연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는 것은 도박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공연을 올리는 것보다 정말 더 힘든 일이 있다면 바로 공연을 내리는 일이다.

업계의 놀라운 친절

뮤지컬 프로듀서들의 애환을 다룬 코미디 뮤지컬 <프로듀서들, The Producers> 포스터

▲뮤지컬 프로듀서들의 애환을 다룬 코미디 뮤지컬 <프로듀서들, The Producers> 포스터

제작비(프로덕션 코스트, Production Cost: 공연이 올라가기 직전까지 사용된 제작 비용. 그 이후 공연을 진행하면서 들어가는 주당 운영 비용은 ‘러닝 코스트(Running Cost)’로 분류하고 철저히 티켓 판매분으로 충당한다)를 다 쓰고 공연이 시작되면 매일 아침 프로듀서들은 웨스트엔드의 박스 오피스 성적을 검토해 주당 운영비(대관료, 개런티, 극장 사용 부대 비용 등)를 감당할 수 있는지 살피게 된다. 다행히도 공연이 롱런(연극은 16주, 뮤지컬은 1년을 평균으로 한다)을 하면 해외 판권 자격을 얻게 되고 아마추어, 레퍼토리 극단과 부수적인 판권 계약을 통해 추가 수입이 발생한다. 포스트 웨스트엔드를 무사히 거치면, 조연출을 선두로 두고 배우들을 전격 교체해 지방 투어를 다닌다. 자연스럽게 공연과 그 공연 프로듀서는 업계에서 모피 코트와 시가를 물 수 있는 ‘존경’받는 지위를 얻게 되고, 작가, 스타, 크리에이티브 팀 모두와 결속력을 굳게 맺으면서 해당 시즌 시상식장에서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티켓 판매 수치가 주당 운영비를 넘기지 못할 경우엔 극장주가 먼저 나서서 렌트 비용을 낮춰 주든지 혹은 조용히 렌트 기간을 줄이는 게 어떠냐고 접근하기도 한다. 놀랍게도, 이는 업계의 친절한 정서다. 홍보 회사의 강한 권유로 ‘예치금(RF, Reserve Fund: 보통은 간호사로 비유함)’을 풀어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여 보지만 대부분의 경우, 현실의 이 같은 상황에서는 마케팅의 도움을 기대하긴 어렵다. 한번 발길이 끊어진 공연에 관객들이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를 종종 관객의 재판(혹은 관객의 선고)이라고 비유하면서, 상황을 돌이키려는 노력을 어리석은 짓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렇듯 기울어진 대세를 역전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프로듀서는 극장주에게 달려가 미니멈 2주를 (2주 공연 후 막을 내리겠다는 통보)알리면서 공연의 클로징을 결정한다.

놀랍게도 이 업계의 친절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로열티를 받아야 할 사람들 또한 그 금액을 없애주거나 줄여서 받는다. 장비 대여 업체 및 마케팅 외주사 등 모두가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회계사와 프로덕션 매니저 등은 자신들의 몫을 꼬박꼬박 챙겨가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프로듀서가 마지막 역경을 헤쳐나갈 때 가장 절실하게 도움을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쁜 소식은 업계의 소식통을 따라 빠르게 퍼져가고, 주변을 맴도는 독수리들은(다른 공연 프로듀서들) 빠르게 피 냄새를 맡고 덤벼든다. 왜냐하면 이는 동종 프로듀서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극장이 나오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필요한 공연장을 선점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한 공연의 실패는 새로운 공연의 도전을 예시한다.

실패의 벼랑에 선 프로듀서를 위한 지푸라기, 예치금제도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기간에 배우들의 개런티와 무대 팀의 임금은 어떤 자금으로 집행될까? 연기를 하고도 주급을 받지 못하는 배우들과 갑작스럽게 실직을 하게 되는 무대 팀원들이 있다면, 과연 프로듀서는 향후 다른 작품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프로듀서를 살려주기 위해 업계가 디자인한 것이 바로 예치금제도(Deposit)이다.

프로듀서는 마지막 미니멈 2주 기간에 이 예치금을 풀어 잔금을 치르게 된다. 런던 극장협회(Society of London Theatre, SOLT), 극장 위원회(Theatre Council), 배우협회(Equity)가 함께 만들고 집행하는 이 본드(Bond) 제도는 런던 극장협회의 ‘정식 맴버(Full Member)’ 프로듀서가 아니라면 무조건 등록해 지불해야 할 금액으로 3주간의 배우와 무대 팀들의 임금에 준하는 액수이다. 이렇게 등록 절차를 끝낸 프로듀서들을 통칭해 ‘예치금 멤버(Deposit Member)’라고 부른다. 따라서 제작비를 산정할 때, 프로듀서들은 반드시 추가 예치금까지 함께 포함시켜 모금을 해야 한다.

이런 예치금을 단 한 번만이라도 사용해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면, 모든 투자자에게 현재 공연이 어디 위치에 서 있는지 자세히 알려야 한다. 따라서 프로듀서에겐 상당히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두 번 이상 예치금을 사용한 프로듀서들은 업계에서 살아남기 힘들게 되고,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하지만 이 자금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두 번의 작품을 성공적으로 제작했다면 앞으로 예치금을 협회에 낼 필요성 없게 되는 ‘정식 멤버(Full Member)’의 지위를 얻게 된다.

프로듀서들은 공연을 올리는 시점에 내려야 할 최악의 사태를 늘 염려한다. 공연 제작에 참여하는 관계자 모두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이러한 프로듀서의 작업이 세상을 바꿀 순 없다. 하지만 하나의 예술 작품을 공동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특권을 느끼는 동시에, 공연 업계에서 실패를 맞이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공연이 성공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그 성공에 기여했음을 알리려고 크레디트에 줄을 서게 된다. 하지만, 프로듀서들에게 수여되는 상조차 없는 현실에서 공연이 실패로 돌아서면 그들은 갑자기 가라앉는 배에서 상당한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아난딸로아트센터 /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ABC하우스 전경

과연 우리 뮤지컬계는 프로듀서를 살려내려는 노력과 미지급된 배우의 급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노력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공연 운영 적자를 보고 있을 때 극장주들과 업계 종사자들은 어떤 입장으로 고통을 분담하는지 궁금하다.

 

사진제공_필자

 
 
필자사진_김준영 필자소개
김준영은 현재 ILOVESTAGE 런던 대표이다. 2011~2012년 뮤지컬 〈조로〉 대본 번역 및 로컬 프로듀서를 담당했으며, 드레스 서클 서울 라이선스를 관리하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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