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미디어’에 관한 이 인터뷰는 의외로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다. 2017년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현이 세상을 떠났다. 이 영민하고 젊은 친구의 죽음이 낯설고 슬펐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고 싶어서 세상 이곳저곳에 남은 그의 흔적을 추적하였다. 그룹 음반, 개인 음반뿐 아니라 소설, 라디오 방송, 팬클럽 등 내 손이 닿는 범위 안의 거의 모든 것을 뒤졌다. 그 과정 중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그의 작업은 완성된 낱낱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연속되고 교차되는 활동 반경 안에 팬들과의 교감을 짜 넣는 방식으로 거대한 공유 세계를 건설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를테면 그의 소설을 읽다 어떤 지점에 도달하면 소설이 안내하는 대로 유튜브에서 그의 창작곡을 찾아 들으며 가사를 읽어야 했다. 어떤 경우엔 소설을 읽다 말고 그가 DJ를 하던 라디오 방송을 들어야 했고, 방송을 매개로 다른 팬들의 목소리에도 이르게 되었다. 파편적으로 흩어진 흔적들은 정형화될 수 없는 형태로 모여들었고, 각각 분리된 미디어의 완결된 경계가 무너져 내리면서 가상의 종현 월드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후에 나는 이러한 콘텐츠 생산 방식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개봉했던 엔드게임, BTS 흥행 돌풍이 이러한 트랜스미디어 경험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순수예술 계통에서는 연극 쪽에서 ‘이머시브 공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머시브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지우고, 창작자가 놓여 있는 스토리 ‘안’과 관람객이 놓여 있는 스토리 ‘바깥’의 경계도 지우며 때때로 기술과 융합한다.

이것이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할 무렵, 미디어를 종횡무진 오가는 텍스트의 두터움 때문에 비평가의 역할이 의심받는다는 주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미디어의 기술적 진보, 대중문화 팬덤으로 비평 역할이 사라졌다는 주장이 구태의연하다는 예술가들의 반응도 접했다. 소비자로서 느꼈던 충격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이르니 예술 생산 현장은 트랜스미디어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알음알음 트랜스미디어에 관심을 가진 예술가를 수소문했고 하석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하석준 작가는 건축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삼성에서 7년간 해외 전시 마케팅을 담당하다 한예종 조형예술과에 입학하면서 커리어를 전환하였다. 2010년부터 본격적인 전업 작가 활동에 들어가 경기문화재단 경기창작센터,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에 입주 작가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다양한 경험 때문인지 그의 관심사는 블록버스터 전시에서 작가 개인의 내면을 다루는 작업, 작품의 유통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

‘트랜스미디어’라는 용어를 사람들이 낯설게 느끼는 것 같고 국내 트랜스미디어 작가도 희소해 보인다. 전반적으로 현상에 대한 이해가 그리 깊지 않은 상황이라 우선 작가님이 생각하는 트랜스미디어가 무엇인지 듣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트랜스미디어는 영역 파괴다. 장르 간 영역이 파괴되면서 복합장르를 원하는 기류가 생기다 보니 4년 동안 혼자 앉아 작품을 그리는 기존 방식으로는 안 되는 때가 온 것이다. 복합 미디어를 가르쳐야 되는 때가 된 것 같고, 트랜스미디어 과도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영역 파괴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사실 작가로서 자기 영역이 파괴되는 건 아무도 원치 않는다. 영역 파괴라 함은 안 가본 길을 가 보는 것이고, 나는 트랜스 아트가 제대로 허물기 위한 일종의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영남대학교 트랜스아트과 신기운 교수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분은 변화가 심한 창작 환경을 아우를 수 있는 과가 필요하다고 느껴 다양한 매체를 다룰 수 있는 트랜스아트과를 만들었다. 트랜스아트과에서는 조소도 가르치고, 컴퓨터와 디자인도 가르친다.

말씀하시면서 트랜스미디어와 트랜스 아트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데 같은 뜻의 용어로 봐야 할까? 예술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 트랜스 아트고 트랜스 아트를 계속 생성해 내는 매체들을 트랜스미디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융복합하고도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데 융복합은 정책 기관에서 많이 쓰는 단어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작품 <종교는 믿든 것, 기술은 이해하는 것>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작품 <종교는 믿든 것, 기술은 이해하는 것>

인터뷰를 위해 작가님 활동을 살펴보고 왔는데 매우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SNS뿐 아니라 3D 프린터, 인공지능 기술도 다루고 TV와 같은 전통적 매체, 거리 퍼포먼스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는데, 작가로서 다매체를 유연하게 융합해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입시 미술을 해 본 적이 없고 전공도 건축,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라서 작업을 스스로 배우며 해 왔다. 그러다 보니 재료에 대한 학습 욕구가 크고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탐구 욕구도 강하다. 보통 작업할 때 도구에 대한 인사이트는 잘 다루지 않고 있다. 작품의 개념, 철학적 밑바탕을 과거의 경험을 통해 투영하는 작업을 많이 한다. 스스로는 재료와 매체 자체의 근원에 집착하는 편이다. 개념과 매체를 대등한 입장에서 바라보고 매체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작가랄까? 예를 들면, 프로그래밍하는 랭귀지가 어떻게 개발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식이다.

인터뷰어로서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가 아까 영역 파괴라고 말하신 그 부분,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관객이라는 요소이다. 트랜스미디어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관객이 중요한 요소로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인터뷰에서 작가님의 <수도자-고통의 플랫폼>을 공연할 때 사람들이 줄을 서서 따라왔다는 부분을 읽었는데 이런 관객 반응이 작품을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주는가? 동료 작가 중에는 관객의 반응이 없어도 전시할 수 있다는 분도 있다. 관객이 오면 좋지만 안 와도 상관은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게는 관객의 반응이 중요하다. <수도자-고통의 플랫폼> 퍼포먼스는 2012년부터 시작했는데 벽에 거는 매체인 TV를 짊어지고 거리를 걸었다. 그 무게가 한 40kg 되는데 꽤 무겁고, 종교적인 느낌도 든다. 매체가 뭐고 나는 뭐고 고통은 뭔지 몸으로 느껴봐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는데 사람들 반응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강남에서는 반응이 없었고 밀라노와 서울시립미술관 근처에서는 반응이 많았다. 밀라노에서는 얼마 주면 짊어진 TV에 광고를 실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미디어 퍼포먼스냐면서 말을 걸고 따라다니면서 사진도 찍더라. 밀라노는 당시 디자인 위크 기간이라 도시 자체가 예술적 에너지로 차 있기도 했다.

반면, 강남에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발가벗고 다녀도 안 쳐다볼 것 같았다. 강남은 신기루 도시, 100년이 지나도 어제 생긴 도시 분위기라고 느끼는데, 멋있긴 한데 시간의 흔적이 없다. 오래된 느낌도 억지로 만들어 내는 식으로, 문화적 공기가 없달까? 그때 밀라노에 가지 않았더라면, 강남에서 반응이 없는 걸 보고 그만뒀을 수도 있었다. 지금은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TV를 계속 메고 다니기가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이 줄줄 따라다니던 경험과 감정을 토대로 실내 작품으로 구상했다. 연속적 작업을 하는데 관객 반응 데이터를 축적해 반영하는 식이다.

나는 작품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관객들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재해석을 하곤 하는데, 내 작품을 마치 타자처럼 보는 자세라고 할 수 있겠다. 동일 작품의 제목도 만든 지 1년이 지나면 제목 뒷부분을 바꾸는 식으로 변화를 주는 등 지속적으로 바꾸면서 제목 아카이브를 생성해 나간다.

2013년 <수도자-고통의 플랫폼> 퍼포먼스 모습 2013년 <수도자-고통의 플랫폼> 퍼포먼스 모습 퍼포먼스 체험을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으로 변형한 <수도자 No.1> 퍼포먼스 체험을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으로 변형한 <수도자 No.1>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디어 아트의 전문성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 작업 내용은 인터랙티브 아트 같기도 한데, 인터랙티브 아트와 트랜스미디어는 무엇이 다른가? 덧붙여, 트랜스미디어와 OSMU를 동일하게 이해하시는 분도 있는데 차이를 설명해 준다면? 인터랙티브 아트는 상호작용에 대한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에 초점을 둔다. 관객의 행동에 따라 앞의 대상체가 변화하는 것인데, 인터랙티브 아트가 회화를 서양화와 동양화로 나누는 차원의 개념이라면 트랜스 아트는 산업 간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것이어서 훨씬 더 광범위하게 볼 수 있겠다. OSMU(One Source Multi Use)는 MCN(Multi Cannel Networks) 비즈니스에서 많이 쓰는 용어로, 콘텐츠를 여러 매체에 실어 나르는 방식이다. 예전엔 매체가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수없이 많다. OSMU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쪽을 강조한다면 트랜스미디어는 생산하는 쪽, 제작 입장이 강하다. 현장에서 느낄 땐 그렇다.

거칠지만 OSMU를 그릇, 트랜스미디어를 그릇에 담는 내용물에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세대학교에서 주로 뉴미디어와 관련해 공간을 설계하는 과를 개발하고 있는데,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공간은 곧 그릇인 셈이다. 요즘 공간을 바꿔 달라는 요청이 와서 제주도의 오래되고 버려진 어시장을 비롯해 여러 곳을 보고 있다. 문화적인 내용물로 채워야 하는 곳들, 말하자면 마포 문화비축기지나 부천 아트벙커처럼 될 만한 곳들인 셈이다. 이런 곳들은 공간만 개발하지 않고, 내용물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공간에 따라 담길 내용물이 달라지고, 담긴 내용물에 따라 공간이 다시 영향을 받는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메이커스 관련한 이력이 다양하다. <예술과 재난> 프로젝트도 흥미로웠고, 세운상가 스페이스바 운영위이자 소속 작가로서 <2018년 세계 놀이문화와 메이커스 활동 리포트>에서 국제 테마파크 전시회 'EAS(Euro Atrraction Show)'에 대한 발표도 했다. 작가님의 메이커스 활동과 트랜스미디어 작업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나 EAS(Euro Atrraction Show)는 쉽게 말하면 테마파크에 들어가는 모든 산업적 영역을 다루는, 유명한 테마파크 산업 쇼다. 다소 뜬금없는 일이었는데 예술 작품으로 중소 규모 공간에 전시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소개하니까 바이어들이 많은 관심을 표했다. 최근에는 국내의 여러 시도가 해외에 나가서 가치를 더 인정받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해외 진출을 위한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다. 순수예술 쪽으로는 베니스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이 있지만 비엔날레는 마치 올림픽과 같아 산업을 키운다기보다는 명예에 가까운 방향이랄까. 나는 순수 미술의 깊은 철학적 아우라(aura)도 깔아 주는 동시에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길로 가서 산업 영역을 키우고 싶다. 그러려면 결국 미디어가 섞여야 하는데, 왜냐하면 엔터테인먼트와 순수 예술의 중간 지점을 본다고 했을 때 트랜스미디어, 트랜스 아트 쪽이 유연하게 접근하기 좋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지원금만으로는 어림없고 분야도 좀 다르다. K-pop처럼 예술 분야도 배송이나 유통에 드는 비용을 전담할 수 있는 기획사 같은 게 필요하고 실제로 관심도 많다. 어렵긴 하지만 그런 사례를 네덜란드에서 보고 왔다.

K-pop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그런 부분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음악 자체의 밀도가 높고 활동이 다매체화되어 있는 걸 세련되게 느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이런 관심사에 영감을 주고 있는 트랜스미디어 작가를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실 수 있는지? 자크 리버만(Zack Lieberman)이라는 작가가 코딩을 이용해 작업을 하는데, 내가 작업한 코딩 방식 자체를 개발한 분이기도 하다. 이런 작가들은 확장성이 큰 작업, 그룹 프로젝트를 많이 한다. 반면 전통 매체에 근거해 작업하는 작가들은 제자가 있을 뿐이지 그룹 작업을 잘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무라카미 다카시는 조수들이 그림을 다 그리고 자기 이름으로 전시를 하는데, 나는 그런 방식은 원치 않으며 공동 창작 작업을 원한다. 개인 성향의 작업이 아니라 그룹 성향의 작업이 훨씬 트랜스미디어, 트랜스 아트 작업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트랜스미디어는 여러 매체들이 섞이니까 공동 작업을 통해 내가 모르는 걸 배우면서 할 수 있다.

트랜스미디어를 통한 공동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예술 산업적으로도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해외 진출은 혼자서는 너무 어렵고, 규모가 좀 되어야 한다. 나는 축구 선수처럼, BTS처럼 여러 명이 붙어서 작업하고 싶다. 예술가들끼리 협업하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트랜스미디어 방식을 통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 김유진
  • 필자소개

    김유진은 다음커뮤니케이션, 네이버를 거치면서 공공 영역에서 더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회사를 뛰쳐나와 생활문화 및 문화예술교육 분야 사업·연구에서 주경력을 쌓았다. 청년기 하자센터와 인연을 맺었고, 장소기획, 시민 관찰과 인터뷰, 설치미술과 통계의 결합 등 종종 흥미로운 문화기획·기록 작업을 시도했다. 현재는 부천문화재단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사업 <문화기획의 윤리적 업(業)그레이드>의 주멘토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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