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상반기 공연계 경향

_독립유공자, 여성, 장애인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에 총 2,529건의 공연이 무대에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상연 횟수는 2만2248회였으며, 매출액은 460억 원, 관객 수는 193만 명이었다. 장르별로는 클래식이 876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뒤로 뮤지컬 698건, 연극 544건, 무용 128건, 국악 127건, 복합 99건 오페라 57건 순으로 나타났다. 이에 웹진에서는 2019년 상반기 공연계 동향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러나 여기서 다룰 사례들을 일련의 경향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 시기에 특정적으로, 그것도 공연계 전반에서 하나의 경향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다룰 사례들은 극히 일부임을 미리 알려 드린다. 그럼에도 언급하는 까닭은 그것이 유의미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독립 영웅들, 무대에서 부활하다

_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공연

2019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듯 문화계에서는 3.1절과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 11일 즈음에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독립유공자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먼저 독립운동가인 이회영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신흥무관학교>(이희준 작, 박정아 작곡, 김동연 연출)가 2월 9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포문을 열었다. 이어 3월 5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시를 극화한 서울예술단의 <윤동주, 달을 쏘다>(한아름 작, 오상준 작곡, 권호성 연출)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었다. 또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그린 뮤지컬 <영웅>(한아름 작, 오상준 작곡 윤호진 연출) 연출이 3월 9일부터 세종문회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다른 장르에서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줄을 이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중 한 편으로 선보였던 연극 <가미카제 아리랑>(신은수 작, 정범철 연출)은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지역에 거점을 둔 단체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이들은 지역성을 살려 해당 지역의 사건을 가져와 작품을 제작해 선보였다. 일례로 경기도립극단은 제암리 학살사건을 주제로 연극 <끌 수 없는 불꽃>(이양구 작, 구태환 연출)을 선보였다. 그 외에도 독립운동가들을 주인공으로 삼거나, 일제강점기를 다룬 연극, 무용, 콘서트들이 전국 각지에서 공연되었으며, 이는 올해가 가기 전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편 수로 보자면 임시정부 수립과 3.1만세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작품들이 족히 100편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 대개의 작품이 올 초 100주년 기념사업 지원 공고가 나온 후에 급하게 기획된 터라 완성도 면에서는 다소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대부분의 작품이 산발적, 단발적으로 공연되었으며, 일회성 이벤트로 막을 내려 작품의 지속 가능성은 불투명해 보인다.

남녀의 구분을 없애다

_젠더 프리 캐스팅
연극 <비평가>의 2017년 포스터(좌)와 2019년 포스터(우) 연극 <비평가>의 2017년 포스터(좌)와 2019년 포스터(우)
연극 <비평가>의 2017년 포스터(좌)와 2019년 포스터(우)

젠더 프리 캐스팅(gender free casting)이란 남녀의 역할 구분을 없애 배우의 성별에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캐스팅을 의미한다. 사실 이전에도 남녀 역할을 바꾼 공연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전의 공연들이 재미, 혹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성역할을 바꾸는 차원이었다면, 지금의 젠더 프리 캐스팅은 성과 성역할, 성정체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보다 진화한 방식의 캐스팅이다. 이러한 캐스팅은 성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하는 ‘젠더 프리’와 성을 뒤바꾸는 ‘젠더 벤딩’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젠더 프리’라는 하나의 용어로 설명하겠다.

근래의 작품으로는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비평가>(후안 마요르카 작, 이영석 연출)와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달과 아이가 공동 제작한 연극 <묵적지수>(서민준 작, 이래은 연출)가 있다. 연극 <비평가>는 극작가와 비평가가 등장하는 2인극으로, 2017년 초연 당시에는 남성 배우가 출연했지만, 2018년에 여성 배우를 캐스팅하여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였다. 주연 배우의 사고로 인해 낭독 공연 형태로 선보인 <묵적지수>에서는 사상가 묵가의 역할을 여성 배우가 그리고 궁녀 역할을 남성 배우가 맡았다. 이외에 남산예술센터의 2019년 시즌 개막작이었던 연극 <7번국도>(배해률 작, 구자혜 연출) 또한 젠더 프리 캐스팅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뮤지컬에서는 <광화문연가>(고선웅 작, 이영훈 작곡, 이지나 연출)가 대표적이다. 이 뮤지컬에서는 배우 정성화와 차지연을 ‘월하’ 역에 더블 캐스팅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앞선 연극들이 남녀를 바꾼 캐스팅이라면, <광화문연가>는 남녀에게 동일한 역할을 맡김으로써 등장인물을 특정 성(性)에 가두지 않게 만들었다. 이처럼 성을 다루는 방식은 진화하고 있다. 남성, 여성, 나아가 제3의 성을 넘어 성에 대한 개념을 무화시켜 버리는 작업은 특히 공연예술에서 두드러지게 일어나고 있다.

걸 크러시, 무대 접수하다

_실존 여성 주인공 뮤지컬

올해 뮤지컬의 특징 중 하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작품들이 대거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를 올해 처음으로 나타난 경향이라 볼 수는 없다. <시카고>, <아이다>, <맘마미아!>, <레베카>, <안나 카레니나> 등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던 뮤지컬은 이미 다수다. 올해의 경우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창작 뮤지컬들이 눈에 띈다.

이와 관련해 대표적으로 창작산실 올해의신작으로 공연된 <마리 퀴리>(천세은 작, 최종윤 작곡, 김현우 연출)와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강남 작, 김효은 작곡, 오루피나 연출)을 꼽을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실존 인물의 삶을 극화한 작품으로, 그중에서도 여성 작가와 작곡가, 연출가가 의기투합한 <호프>는 여성서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호프>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미발표 소설의 소유권을 두고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과 소송을 벌이다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에바 호프를 주인공으로 한다. 작품은 소설이 인류의 유산인지, 개인의 재산인지를 두고 벌어지는 법정 드라마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원고가 곧 자신의 존재 이유이자 정체성이었던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드러난다. 묵직한 주제, 법정극 형식 등 무거울 법도 하나 섬세한 결을 건드리며 작품은 여성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었다는 평을 받는다.

그 밖에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으로 조선 최초의 신여성이라 평가받는 윤심덕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사의 찬미>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왕비의 삶을 다룬 <마리 앙투아네트>가 공연될 예정이다. 앞선 작품들이 작품성과 대중성, 양쪽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둠으로써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보다 많은 뮤지컬이 제작되길 희망한다.

연극, 귀로 보고 눈으로 듣다

_배리어프리 연극
남산예술센터 <7번국도> 포스터(좌)와 배리어프리 공연 안내문 Ⓒ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 남산예술센터 <7번국도> 포스터(좌)와 배리어프리 공연 안내문 Ⓒ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
남산예술센터 <7번국도> 포스터(좌)와 배리어프리 공연 안내문
Ⓒ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

배리어프리(barrier-free)란 시각이나 청각 등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 역시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운동, 혹은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영화 쪽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자막이나 수어 통역, 음성 지원 등을 통해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인 것이 그것이다.

배리어프리 공연은 그동안 장애인 예술 단체를 중심으로 제작되어 왔다. 비장애인 단체 중 배리어프리에 먼저 관심을 보인 곳은 스튜디오뮤지컬이었다. 이들은 이들공(이곳은 들리는 공연장)이라는 오디오 클립을 제작하여, 팟캐스트 플랫폼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뮤지컬 청취의 기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장애인들의 호응에 힘입어 아예 무대 형태로까지 발전시켜 ‘보들 공연’이라고 불리는 무대를 운영하고 있다.

공연장 중에서는 연극계의 선도적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남산예술센터가 올해 3편의 작품에서 배리어프리를 선보였다. 남산예술센터에서는 올 시즌 기획 작품 중 <7번국도>와 <명왕성에서>, <묵적지수>의 일부 회차를 장애인을 위해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제작했다. 2017년 특별기획 프로그램 ‘불편한 입장들’을 통해 장애인 관객의 접근성을 타진했던 남산예술센터에서는 지난해부터 일부 공연에 한해 배리어프리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올해 ‘대한민국연극제’에 참여한 소울시어터는 <만주전선>을 공연하면서 배리어프리 공연을 선보였다.

배리어프리는 장애인을 위한 것이지만, 공연을 관람한 사람들 역시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입을 모은다. 대사는 물론, 음향효과까지도 손으로 표현하는 수어통역사의 모습에서 비장애인들은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 외국어를 배우며 외국의 문화를 배우며 고정관념을 깨듯, 수어를 보며 일반인들은 언어와 의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기회를 갖게 된다. 보다 많은 작품이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제작되길 희망하나, 그에 앞서 신체장애인들의 물리적 극장 접근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해 보인다.

앞선 사례에서 키워드를 뽑는다면, 독립운동가, 여성, 장애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키워드에서 공통점을 ‘덜 조명되었던 인물들에 대한 조명’으로 정리할 수 있을 듯싶다. 물론 이러한 사례가 공연계 전반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발문에서 밝혔듯, 이와 같은 시도들,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유의미한 현상이다. 비록 아직까진 작은 움직임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전랑이 되어 후랑을 이끌기를 기대해본다.

  • 김일송
  • 필자소개

    김일송은 공연문화월간지 씬플레이빌 편집장으로 재직했으며, 서울무용센터 웹진 《춤:in》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이안재 대표로 재직하며, 월간 《THE NEIGHBOR》에 공연 관련 원고를 기고하고 있으며, 공연 관련 일반인과 예비 기획자 등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페이스북

정보라이선스-정보공유라이선스2.0

facebook twitter

댓글 0

확인
Top
  • 페이스북
  •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