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기획특집에서 ‘예술경영학과’ 특집으로 예술경영과 관련된 전공 활동, 직업적 전망이 어떤지 살펴보는 좌담회를 가졌다. 그 이후, 문화예술계의 일자리나 직업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고, 종사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물론 문화예술계가 곧 기획자들만의 세계는 아니라는 한계는 있다. 예술가라는 존재가 있고, 마땅히 그들에게 주어진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일자리’를 키워드로 하면 예술가의 입지는 좁아진다. 대개 예술가들은 프리랜서나 자기 작업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일부는 국공립 예술단에 속해 있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일자리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예술가의 일’은 향후 별도 기획으로 다루가로 하고, 이번에는 기획 영역 등에서 활동하는 분들 중심으로, 일자리에 관련된 다양한 경험들을 가진 이들과 진행했다.


일시/장소 : 2019. 11. 8.(금) / 토즈 혜화점
진행 : 안태호(웹진≪예술경영≫ 편집장)
참석 : 김은정(세종문화회관 노동이사)
김한별(한국도자재단 비엔날레국제전시TF팀)
김효진(구로문화재단 문화정책팀)
설동준((사)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 사무국장)
이정희(㈜케이아츠 크리에이티브 책임연구원)
정지민(뮤지엄경영연구소(주) 제2서울 창의예술교육센터 인턴)


일자리와 관련해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모셨다. 현재 하고 있는 일과 그전에 거쳤던 일자리들을 간략하게 소개 바란다.

김은정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있다가 세종문화회관 행정 분야로 이직했고, 이곳이 노동이사 제도를 도입한 지 2년 정도 되었는데 첫 노동이사가 되었다. 노동이사란 직책이 생소할 수 있지만 서유럽 국가들이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제도로, 한국은 서울시에서 처음 도입해 서울시 출연기관 17곳에서 23명의 노동이사가 활동 중이다. 이 직책에 있으면서 현장의 소리를 전달해 기관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정책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정지민 대학에서 작곡 전공을 하고 프리랜서로 강사, 작곡가로 일해오다가 올해 초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현재는 제2서울창의예술교육센터에서 인턴십 중에 있다. 공공 기관에서의 예술행정은 처음 해보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배울 것 같고, 예술 행정에 관한 이야기 보다는 예술인의 일자리에 대해 또래 예술가를 대변하여 고민과 생각들을 나눠 보고 싶다.

김효진 구로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한때는 소위 ‘이직 요정’이라 불릴 정도로 여러 곳을 경험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시절 강남구청 행정 인턴으로 일을 처음 시작했다. 임기제 공무원으로 근무한 후에 부천문화재단,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정가악회,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를 거쳐 현재 구로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김한별 한국도자재단 비엔날레 상설전시 큐레이팅을 맡고 있다. 독립 큐레이터로서 재단, 비엔날레 등 예술사업과 NGO를 통해서 해외 ODA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사회 인식 변화 프로젝트도 했고, 전직으로는 교육에 관심이 있어서 청소년 진로교육도 같이 진행했었다.

이정희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국악을 전공했다. 연주자로서 성공할 만큼 끼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 후, 이론으로 공연기획과 문화이론 쪽을 공부한 뒤, 현장에서 근무하려고 예술위원회와 국악원에서 일했다. 이후 경영학 박사 유학 준비를 하다가 좋은 기회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 들어가 4년간 일했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행정학으로 박사를 취득했다. 졸업 이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1년 반동안 육아휴직 대체 인력으로 일하다가 올해 9월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기술지주회사인 (주)케이아츠 크리에이티브의 책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판단하는 근거는 경제적 보상 수준, 일의 강도, 직무의 자율성과 만족도, 노동시간, 사회적 평판, 좋은 동료의 존재, 리더십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좋은 일자리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

김효진 이직의 가장 큰 기준은 조직 내 분위기와 안정성이다. 다만 나이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부천문화재단에서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대상 교육사업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 사업의 코디네이터로 일했었다. 같이 일하던 사수가 좋은 친구였는데, 그 사업이 갑자기 생겼고 계속된다는 담보가 없으니 아예 사업의 담당 기관으로 가라고 조언해줬다. 그게 계기가 되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계약직으로 근무하게 되었고 계약 연장도 타진해볼 수 있는,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했었다. 그런데 안정성에 무게를 두다가 막상 이직을 경험하다 보니 조직 내 분위기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어린 나이에는 전문성이 있는 곳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경우는 예술인 복지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쪽으로 전문성을 키우기 좋다고 생각했다. 설립된 지 1년이 채 안됐을 때였고 한창 복지가 이슈화되던 때이기도 했다. 이직 경험이 쌓일 때쯤 다른 동료들이 기관에 많이 정착했더라. 그들을 통해 기관이나 조직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사람을 뽑을 때 나의 전문성이 필요하면 이직하기도 했다. 아는 사람이 있어 적응하기 쉬운 곳으로 많이 가게 되는 것 같다.

구로문화재단 김효진 구로문화재단 김효진

이정희 나의 경우 직무의 자율성과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중요하다. 국악 전공자가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기관이 국악원이다. 그중 내가 속해 있던 장악과는 공연 기획팀에 해당하는 곳인데, 당시에는 2년에 한 번씩 계약이 연장되는 개념으로 근무를 했다. 그런데 직무의 자율성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1년 만에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소속 기관이라 주제 자체도 옛스러운 것들이 많았고,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는 예상치 못한 일들로 기획자의 의도가 변질되는 경우도 있었다 기획자의 역할이 기획보다는 행정처리를 하는 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면서 일이 재미없어졌다. 그래서 정신 건강을 위해 과감히 퇴사했다.
다음부터는 나의 기획이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갔다. 예를 들어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했던 예술인 해외 레지던시 파견사업의 경우 어떤 예술가들을 어느 국가, 어떤 기관에, 어떤 장르로 파견할 것인지를 기획자가 전적으로 기획하고 협의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문체부와 협의를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다룰 수 있는 예산도 제법 커서 일이 재미있었다. 부가적으로 유연한 회사 분위기도 한몫했다.

김은정 무엇보다 본인의 가치관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의지와 목표를 갖고 공공기관에 입사하지만, 막상 일하는 과정에서 가치관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첫 직장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은 당시 연주자들에게는 꿈의 직장이었다. 그곳에서 18년 간 근무하다가 세종문화회관으로 옮기게 되었다. 오케스트라 활동 중에 예술기관 최초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작업을 함께하면서 예술가와 공공성에 대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은 것 같다. 항간에는 ‘예술하는 사람들이 왜 예술조합을 만들어서 말도 안 되는 활동을 하냐’라고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조합이 아니면 안 되게 되었다. 초기에는 시립교향악단 노동조합이 80명 남짓이었지만 지금은 전국적 예술기관의 조합원이 5,000명이 넘는다. 현재 민주노총 공공연맹 세종문화회관지부는 전국 단위로 노동조합을 만들어 예술인에 대한 복지와 정책을 이끌어가고 있다.
사실 처음엔 조합 활동이 쉽지 않았다. 음악만 하던 오케스트라 주자였는데 어느 순간 노동조합에 가입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었으니. 그런데 싸우고 공부하면서 같이 가야 하는 사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 세종문화회관이 서울시향을 분리하고 개별 법인화하면서 세종문화회관의 행정직으로 전환해 청소년예술활성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아동,청소년들에게 예술활동을 통해 올바른사회인으로 성장할수 있도록 지원하는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를 만들어 10년 동안 이끌어왔다. 그 안에서 본인이 가치관과 주인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김한별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측면에서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내게는 개인의 가치관 정립과 일에서 얻는 즐거움이 가장 중요하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20대의 가치관을 정립하게 되었는데, 공공재로서 문화예술 활동을 한다는 것을 고민했다. 삶의 가치관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직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회에서 나만의 만족감과 충족감을 갖고 살기 위해서는 직업과 사회 변화에 대한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정지민 나 역시도 1순위가 가치 추구였고, 여기에 맞게 살려고 항상 노력했던 것 같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제2서울창의예술교육센터는 서울시 교육청 소속 기관인데, 내가 추구하는 가치인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의 향유와 사유’를 공교육을 통해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지원했다. 사실 좋은 일자리에 대한 생각보다는 예술가로서 처음 접하게 되는 직업이 교육 강사나 시간제 알바 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과 예술활동을 분리해 살아가는 듯 하다. 나 역시 이전에는 자유롭게 예술 활동을 했고, 강사로도 오래 일하였다. 어느 시점엔 일과 예술을 분리시키지 않고 함께 가고 싶어 연기, 음악, 연출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다원예술 창업을 준비해보기도 했다. 예술인으로 여러 안정감을 가지며 자립하기까지는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주변 예술 전공생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예술가는 ‘자기가 잘하는 것을 자꾸 하고 싶어 하는 직군’인 것 같다. 다른 일을 하더라도 자율성을 고려하되 본인의 예술 활동과 적성에 맞는, 연계할 수 있는 일들을 찾게 되더라.

자율성, 안정성, 가치를 주로 언급하셨는데, 경제적 안정성은 다들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도 큰 기준 아닐까?

이정희 경제적 안정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양립될 수 있는 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다른 분야에 근무하거나 소위 대기업 다니는 친구의 월급과 나의 소득을 비교하는 순간 경제적 안정성의 일정부분은 포기하는 것 같다. 문화예술계에 입직하고 초반에 그런 체념의 경험을 다들 한 번쯤은 하게 되는 것 같다. 대신 좋은 일,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데서 활동의 의의를 찾아야 가치관과 자율성도 지킬 수 있다. 경제적 안정성을 먼저 쫓기 시작하면 이 분야에 남아있을 이유도, 가능성도 희박해진다.

설동준 문화예술계에서 은퇴의 시점이나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다른 분야 대기업이나 전문직 종사자와 비교했을 때 지금은 분명 금전적으로 열악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분야는 전문적인 경력을 잘 쌓는다면 나이와 무관하게 또는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패널분들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는 포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퇴직 이후 소위 ‘은퇴’ 시점은 언제로 생각하는지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여기서 쌓은 경력이 은퇴 이후의 삶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이정희 그런 지점 때문에 계속해서 일을 바꿔가며 다양한 경험을 해왔다. 국악 연주자로서의 삶을 살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때는 악기를 전공한 사람이 할 수 있을만한 일이 무엇일지를 고민했고, 기획자로서 현장과의 괴리를 느꼈을 때는 또 다른 벽을 느꼈다. 공부와 이직 과정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서는 이 일을 계속한다면 ‘정년’이 훨씬 길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구에는 정년이 없으니까. 경제적 아쉬움을 가늘고 길게 일하는 방향으로 상쇄할 수 있게끔 나의 가치를 정립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바꿔왔던 것 같다.

(사)DMZ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설동준 사무국장 (사)DMZ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설동준 사무국장

설동준 공통적으로 진로 변경이 가치관과 연관되어 있다.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 일 하나하나를 마치 블록처럼 쌓아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가치관은 충분히 동의할 수 있지만 일견 모호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직이 실질적으로 그렇게 스스로 이름을 걸고 기회나 프로젝트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김한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작년에는 해외 비엔날레랑 인천에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사기업과 공공기관 일도 하다가 올해 도자비엔날레에 합류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스스로 업그레이드되고 가치관을 확립하며 마치 테트리스처럼 블록을 모아 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정년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고, 끝까지 일할 텐데 그게 기획 분야라는 한가지 길만을 보고있지는 않고 있다. 지금까지 예술이라는 큰 축을 중심으로 이직을 해왔다. 이직을 통해서 하나의 주제,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가치관 정립과 행동을 위한 여러 기회를 접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직업만 갖고 인생의 정년을 논하기는 어렵다. 문화예술 분야, 공공 분야, 해외 사업 안에서 기획자, 비평가, 교육자 등 여러 방면을 고려하고 있다.

안태호 경제적 조건을 포기한다기보다는 다른 종류의 무엇인가로 보상을 받거나 대체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한다.

김효진 대체에 가깝다고 본다. 이직 시 전문성을 이야기했는데, 내가 했던 일들이 다음 취직에 영향을 미친다. 나중에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이 일을 했다는 게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면서 다음 직장을 구한다. 지금 일하고 있는 재단에서 스스로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일, 경력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다. 전문성이 쌓이다 보면 여러 분야에서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것 아닐까.

정지민 은퇴나 정년을 따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예술인의 삶이 사회에서 정해 놓은, 특히 한국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생애 주기나 과업과 굉장히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하는 예술 작업들이 경제적인 안정감을 주게 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예술을 매개로 말을 하고 자유롭게 표현 하는 것, 예술로 치유가 되는 것 등은 자본에서는 줄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가치를 맛보아서 일까 조금 배고파도 이 가치가 아직은 더 좋은 것 같다. 어쩔수 없는 운명에 걸려든 것처럼. 하지만 요즘 이 부분들이 예술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주 52시간, 워라밸을 키워드로 개인의 삶이 트렌드가 되어 가는 시대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 성공보다는 성장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위해 등, 은퇴에 대한 계획보다 현재의 나를 중요시하게 생각하고 퇴근 이후의 삶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를 다양하게 채워 나가는 것 같다.

뮤지엄경영연구소(주) 제2서울창의예술교육센터 정지민 뮤지엄경영연구소(주) 제2서울창의예술교육센터 정지민

설동준 취직 후 한 직장을 꾸준히 다니는 형태는 이제 끝나가는 것 같다. 자기 삶의 커리어를 만들어나가는 건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과 같지만, 이것이 일반적 현상인 것 같기도 하다.

안태호 자기계발의 주체로 거듭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김은정 이사님은 예술가에서 기획자로 전환을 하신 셈인데, 그 과정에서 고려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은정 서울시향에 있었던 경력이 세종문화회관으로 이직할 때나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교육 사업을 할 때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 서울시향에 들어가기 위해 했던 노력 없이는 지금의 직군에서 일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공공과 민간을 오가며 활동하신 경력들이 다양한데, 일자리로서 양쪽을 비교해 본다면 어떤 것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까?

김한별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공공기관을 높게 보고 그중에서도 중앙정부처와 그 산하기관을 더 크게 보는 경향이 크다. 소위 ‘네임밸류’가 있는 공공기관 근무 경력이 있으면 한국 사회에서는 인정받기 쉬운 경향이 있다. 보통은 어디서, 누구와 일해봤는지를 따지는 경우가 많이 있었고, 나는 이것이 한국사회가 가지는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그것이 맞지 않아 해외 작업 위주로 옮겨 가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공공과 민간 사이의 체계성과 자율성을 함께 배울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 공공분야는 공공재로서의 문화예술을 접근하는 모습을 크게 느꼈고, 민간분야에서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목표에 대한 활발한 접근법을 배웠다.

한국도자재단 김한별 한국도자재단 김한별

김은정 공감하는 한편, 공공기관 소속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누군가에겐 꿈의 직장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요구받는 곳이기도 하다. 공공성과 공익성의 중간에서 예술 단체와 시민 간의 소통을 이끌어내고, 프로그램 기획도 잘 해내야 한다. 예를 들면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장이나 사장에 따라 정책적 변화가 생기는 기관이지만 그럼에도 사업 담당자가 주인 의식을 갖고 자기 일을 지켜내야 한다.

안태호 기관의 위상이나 중요도는 모두 동의하는 것 같다. 민간하고 공공의 차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김한별 공공기관은 행정 업무가 많고 복잡하다. 그리고 제가 일했던 공공기관은 민간보다는 변화에 대해 많이 소극적인 편이었다. 탑다운과 바텀업의 차이도 있다.

이정희 한국에서 공공기관의 위상이 유독 도드라지는 이유가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의 문화예술 지원금이 지자체 또는 민간기관의 재정 중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민간에서 자생하는 단체가 거의 없기 때문으로 본다.
국악 분야를 예로 들자면, 지원금에 기대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공공과 민간의 사업이 다르지 않다. 민간은 자체사업을 벌일만한 재정적 여력이 많지 않아 공공기금 지원사업에 참여하게 되고, 결국 공공에서 요구하는 많은 행정 작업을 하게 된다.
‘정가악회’나 ‘공명’ 같은 단체는 굉장히 성공적인 자생 팀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도 역시 초기에 투여된 많은 공공 지원금이 있었다. 한 단체를 자생적으로 살리기 위한 지원사업이 어느 순간 민간 입장에서도 당연시되어 지원사업을 중단하더라도 공공에 준해서 돈을 쓰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결과적으로 민간도 돈을 쓰는 부분에 있어서는 사실은 공공과 별다르지 않은 행정 처리들을 요구하게 되는 것 같다.

김효진 공공기관들 중 광역 문화재단을 제외하고는 두루 경험한 것 같은데 분위기나 체계를 위주로 보자면 공공은 회사에 가깝고 민간은 가족 같은 느낌이 크다. 직원 개인으로서 공공은 체계가 철저하고 그에 맞춰 담당 업무만 수행하면 되며,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성을 갖는다. 업무적으로는 재직했던 전국구 사업을 하는 문화예술 공공기관을 예를 들면 업무 대부분이 지원금 교부사업을 기획·운영하고 있어 참여 단체 관리와 모니터링, 정산 같은 행정 업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기초문화재단은 문체부나 광역문화재단 사업의 공모에 참여해 보조금을 교부받고 사업을 운영하고, 정산을 거치는 측면에서는 민간 현장과 가깝게 느껴진다. 직원 개인으로서는 고용 안정성은 있지만 어쨌든 현장이 반영된 기획을 할 수밖에 없고, 교부기관의 정산을 무시할 수 없이 가져가야 하는 차이가 있다.

문화예술계만의 일자리 특성이 있다면 무엇일까? 국공립 기관이나 예술 단체라는 것은 소수 인력만 진입할 수 있는 제한된 시장으로 비교가 쉽지 않다. 다른 종류의 특성이 있다면?

이정희 학벌이 높고, 굉장히 고스펙이라는 점이다. 학교에서 6년째 강의 중인데 요즘 학생들은 대학원을 필수로 여긴다. 학력 인플레가 심하니 석사 정도는 졸업해야 적당한 학벌을 채운 느낌인데, 고스펙에 비해 실제 업무를 진행하려고 보면 부족한 점들이 눈에 띈다. 실제로 예술 전공생이 연주 외의 분야로 이직하기 위해서 필요한 컴퓨터 활용 능력을 비롯한 실무 경험이 부족한 것이다. 이게 비단 문화예술계만의 특성일까 싶긴 하지만, 왜 그들이 현장에 나오기 전에 필요한 것들을 학교에서 미리 익히지 못했을까? 어디서부터 일을 알려줘야 하는 걸까?하는 질문과 고민이 있다.

김한별 시각예술 기획자 측면에서 보자면 다들 고스펙에 여러 현장을 전전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중간 매개자’이기 때문에 감정 노동자이자 멀티플레이어로서 애환을 많이 느낀다. 주위 기획자들은 행정이나 기획 등의 업무보다 이 부분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현장에서 선생님들이나 감독님들 비위 맞추는 감정 노동도 해야 하고, 기획도 하고, 현장 설치도 하고, 예산도 짠다. 대부분의 큐레이터들은 프로그램의 A부터 Z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 공공기관에 속해 있는 큐레이터들은 일을 나눠서 진행하는 경우가 있으니 다를 수 있지만, 나누는 비율이 다를 뿐이라 생각한다.

안태호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정지민 선생님은 문화예술교육사에 대한 기대감이나 혹은 인턴 경험에서 느낀 점을 공유해주면 좋겠다.

정지민 보통 다양한 경로로 예술 활동 및 교육 강사를 오랫동안 하다가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막상 기관에서 일하게 되면 행정업무가 대부분인데 머릿속의 기획과 수업의 과정들을 행정언어로 문서화 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럴땐 애매한 신입이 되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서 일자리에 대한 지원이 늘어 났으면 한다. 현재의 나의 고민은 애매한 계약기간과 그 이후의 선택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사는 교육, 기획, 행정 두루 통섭할 수 있는 멀티역량을 가진 사람들인 만큼 일자리에 대한 지원과 안정적인 근로 환경이 늘어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김은정 기획이란 단어를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공공 분야 기획행정가로 일하려면 행정 업무 능력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너무 기획에만 로망을 가져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실은 기초적인 행정실무가 기반해야 기획도 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김은정 세종문화회관 김은정

이정희 기획자란 백조 같은 존재다. 오랜 기간 현장에서 배우고 구르면서 경험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능력이 행정이다. 하다못해 엑셀만 수십 번 고쳐 보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 직종인데, 사람들은 이런 부분은 잘 모르고 환상을 가진 채 업계에 진입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너무 다르다는 것을 곧 느끼는 친구들을 많이 봐왔다. 엑셀 파일로 예산 정리하고 영수증 증빙하는 게 실제 기획자의 현실이다. 애써 만든 기획이 팀장이나 윗선에서 까이기도 부지기수다. 이런 일들을 겪는 과정에서 본인이 시장을 보는 눈이 생기는 것인데 그 과정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물 위에 뜨기 위해 열심히 젓고 있는 백조의 발은 아무도 보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으니까.
왜 그런 설명을 해주지 않을까? 교수들은 본인이 직접 안 하니 모르실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문화예술교육사 과정이 현장과 교육을 연결하기 위한 일종의 매개 형태로 만들어진 것임에도 정말 필요한 스킬을 알려주지 않으면, 그래서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그대로 겪어야만 한다면 자격증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기왕 만들어졌으니 현장 밀착형으로 시스템이 잘 갖춰지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듣고 도움이 될 만한, 기획자로서 이직 과정에서의 실패담이나 불안정성은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김은정 바이올린을 하다가 행정직으로 이직한 입장에서 처음에는 주기적인 근무 시간이 생긴 게 힘들었다. 오케스트라 활동은 주 5일 출근해 2시간 반 정도 연습하고, 공연하는 것이 주생활인데, 행정 업무는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 이게 과연 내가 갈 길인가 고민이 들 정도로 어색했다. 이게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 것 같다. 단순히 좋은 일자리, 복지 좋은 직장에 가더라도 본인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방점을 찍지 않는 한 견디기 힘들다.

김한별 독립 큐레이터, 프리랜서 기획자로 살다 보면 주변 지인의 소개로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그런 소개와 추천의 자리에 그냥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분야가 워낙 좁고, 어떤 일이든 간에 거절이 쉽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환경이나 조건에 대한 본인만의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일은 자기성장의 계기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가치지향을 드러내는 기제이기도 하다. 일을 통한 가치와 성장이라는 측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은정 우연한 기회에 연주자에서 기획행정 분야로 이직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계속 무대에 서고 싶었을 것 같다. 다만 지금 진행하는 사업을 10년에 걸쳐 꾸준히 담당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예술이 개인과 사회에 어떻게 환기될 수 있는지를 목격할 수 있었던 덕분이기도 하다. 정년 이후에도 이런 일을 하고 싶다 생각할 만큼 인식의 전환점이 되었다.

김효진 큰 대의를 가지고 이직했다기보단, 이런저런 기회가 생겨서 직장을 옮겼고, 그때마다 그에 대한 가치를 얻는 식이었던 것 같다. 강남구청에서는 기본 행정 업무를, 정가악회에서는 다양한 조직 형태를 만들고 살아가는 방식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예술인의 예술 작업을 노동으로 인식하고 다양한 예술 활동의 가치를 배웠다. 그리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에서는 공모사업의 형태를 제대로 보게 되었고, 부천문화재단에서는 기초문화재단의 역할과 실무를 경험했다. 지금의 구로문화재단에서는 이 모든 것을 더해 기초문화재단이 예술가와 상생하는 다양한 구조들을 고민하고 있다. 이 경력들이 다 파편화되어 있는 것 같지만, 점차 하나로 모이는 느낌이 든다. 그런 측면에서 자기 성장이 된다고 확신한다.

김한별 30대 초중반에 다다르니, 일과 나의 성장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이러한 동반 성장에 대해 반문하는 경우가 많다. 일이 자신의 성장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돈을 벌 수단으로서만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면에서는 적어도 문화예술계가 큰 메리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문화예술분야 종사자들은 스스로 이 분야를 선택한 경우가 많아, 일을 통해서 자기 성장과 가치를 만들어 스스로를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러한 이유로 문화예술계를 택했다.

㈜케이아츠 크리이에티브 이정희 ㈜케이아츠 크리이에티브 이정희

이정희 결과론적으로 지금껏 거쳐 왔던 일자리들이 지금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중요한 자양분으로 역할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로 성장하기 위하여 거쳤던 고된 교육과정과 기획자로서 활동한 몇 년, 행정 지원 기관에서 했던 여러 일들이 결국엔 지금 연구자로서 활동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 다양한 경험들이 내 연구 안에서 누군가를 이해하기에 좋은 프레임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그리고 경험이 쌓이면서 막연하게 내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들 사이에서 실제로 잘할 수 있는 것들을 가려낼 수 있었다.
15년 정도 일을 하고 중간 점검을 했을 때 이 모든 과정이 모두 유용했음을 깨달았다. 일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겪는 불안정성이 있고 때론 실패도 하지만, 결국에는 나라는 사람이 이 분야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그 모든 것들이 서로 상생했다고 본다.

정지민 기관에서 근무하며 이 직종에서 흥미와 안정을 찾았고 계속 해나가고 싶어졌다. 자유로운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을 다루는 직장 환경에 있으니 조금 완충 되는 부분도 있다. 기획서를 제대로 써보지 못했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행정 역량이 많이 자라 개별 예술 활동에도 도움이 되었다. 가능하다면 계속 관련 기관에서 근무하고 싶고, 예술적 목마름은 근무시간 외의 생활로 채우며 성장해 나가고 싶다.

설동준 스스로 생각하기에 굉장히 소극적이면서도 열정적으로 일해 왔다. 주어진 것을 그저 열심히 하면서 살았던 사람이라 커리어를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이번에 모인 기획·행정군 패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공에서의 ‘기획’이 무엇일지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안태호 ‘좋은 일자리’란 특정한 자리나 정답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본인에게 맞는 일자리를 맞춰나가는 과정이나 문제인 것 같다. 오늘 좌담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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